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SuperS
꿈과 사랑의 이름으로, 어른이 되자
“고마워. 하지만 넌 언젠가 날 잊어버릴 거야. 너뿐이 아니라 모두 언젠가 나를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그걸로 괜찮아. 날 잊어도 날 좋아했던 마음은 남아. 아이돌을 졸업하고 좋아한단 마음을 남기고 여자는 진짜 사랑을 알게 되는거야” —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S] 中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uperS](이하, [SS])는 애매한 위치에 서있었습니다. 바로 전 시리즈인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Super](이하[S])가 지나치게 잘 만들어졌었기 때문입니다. [S]는 [극장판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을 뼈대로, 어째서 “세일러 문” 츠키노 우사기(이하 우사기)가 메시아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외행성 전사들과의 대립을 통해, 장편 구성으로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그것도 여러가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표현을 통해서 말이죠.
([S]의 재기발랄함 중 하나.
그렇다, [S]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이런 걸 당당하게 내보냈다)
문제는, 이미 완벽한 구세주로써 모습을 갖춘 우사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 혹은 위기에 빠트리는 것은 단순한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극장판으로 했던 것을 장편의 TV 시리즈 포맷으로 바꿔서 했기 때문에 세 번째 동어반복이 되어버립니다. 이쯤되면 슬슬 보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질려버리게 됩니다. 여기서 [SS]는 그 방향성을 바꾸는데, 물론 세일러 전사들이 모두 등장하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세일러 치비 문” 치비 우사(이하 치비 우사)의 ‘성장담’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SS]의 구성은, 일단은 ‘아름다운 꿈’속에서만 산다고 하는 존재, “페가서스”를 찾아 헤메는 “데드문 서커스단”과 세일러 전사들의 대결이라는 [세일러 문] 시리즈 다운 구성이긴 합니다. 하지만 세일러 전사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견습 미소녀 전사” 치비 우사의 시점에서, 그러한 대결을 보면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리하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치비우사가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페가서스와 상담하는 장면이 자주 들어가 있습니다.
(이 녀석이 [SS]의 주인공이자 미래에서 온 우사기의 딸, 치비 우사. 애초에 [SS]의 엔딩은 전부 치비 우사가 메인이다.)
그리고 이 성장에 가장 큰 두 축으로 등장하는 것이 ‘사랑’과 ‘꿈’입니다. ‘사랑’과 ‘꿈’을 배워가는 것이 바로 치비 우사의 성장인 셈이죠. 여기서 “데드문 서커스”의 주된 간부인 “아마존 트리오”와 “아마조네스 퀀텟”의 역할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아마존 트리오부터. 아마존 트리오의 경우에는 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설정상 인간이 아니라 본래 동물이었던 존재들이고, 따라서 그들은 꿈을 꾸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미래를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사랑만을 추구합니다. 이 현재의 사랑이란 부분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쾌락적이고 파괴적인 형태입니다. 아마존 트리오의 경우에 대개 그 사람의 마음에 드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그들의 아름다운 꿈을 살펴보고는 페가서스가 없으면 파괴하려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을 깊게 남기는 것은 여장남자 “피시 아이”입니다. 아마존 트리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스러운 외모에 목소리(그렇습니다, [SS]에선 이시다 아키라의 사실상 여자 연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를 지닌 그는 주로 남자를 유혹하고 다니지만, 대개 그 남자를 멋대로 자기 취향에 맞게 바꾸고는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다른 아마존 트리오의 행동이 상징적으로 그들의 ‘사랑’의 방식을 나타냈다면, 피시 아이의 행동은 구체적으로 아마존 트리오의 사랑의 방법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턱시도 가면” 치바 마모루에게서 우사기를 빼앗으려다 아마존 트리오들에겐 우사기처럼 ‘꿈’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에 대해 회의하게 됩니다.
(거울 모양의 아름다운 꿈을 들여다보는 아마존 트리오.
[ㅁㅁ 모티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아마존 트리오가 퇴장한 이후에 등장하는 아마조네스 퀀텟은 꿈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책임을 지거나, 잘못을 하면 사과를 하거나,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 어른이 되기를 극도로 꺼리며, 어린이인 채로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끊임없이 반문합니다.
여기서 아마조네스 퀀텟은, ‘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포함하진 않습니다.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등장했던 아마존 트리오는 확실히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아마조네스 퀀텟의 경우에는 놀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치비 우사의 남자 클래스메이트 들에게 아마조네스 퀀텟이 접근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성이라기보다는 동성의 친구와 같은 모습으로 접근할 뿐입니다. 즉, 아직 ‘사랑’에 대해 관심이 없는 아이와 같은 모습이랄까요.
즉, 아마존 트리오와 아마조네스 퀀텟은 각각 ‘꿈 없는 사랑’과 ‘사랑 없는 꿈’을 대변하는 악당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즐거움을 즐기라’는 명제에만 갇혀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에는 관심이 없으며, 이것들을 파괴하는 데에도 일말의 주저가 없습니다. 당장의 즐거움만을 채우면 만사 OK란 느낌이죠.
(“내 꿈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친구가 되는 거야. 나는 페가서스를 원하는 게 아니야. 친구가 되고 싶은거지. 그러니까 힘으로 말을 듣게 하는 건 나한텐 의미 없어”)
이 과정에서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페가서스”가 그 꿈에 깃들어있는 치비 우사도 몇 번인가 위기를 맞는데, 각각의 경우 둘 다 “페가서스”와의 거리가 문제가 됩니다. 아마존 트리오의 경우에는 페가서스에게 재갈을 물린 상태로 치비 우사에게 넘겨주려고 하고, 아마조네스 퀀텟은 (치비 우사의 바람대로) 몸만이 커진 상태로 페가서스와 만나게 하려고 함으로써 이뤄지는데 이는 둘 다 잘못된 형태의 ‘사랑’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꿈’과 ‘사랑’의 문제는 데드문 서커스 단의 총수, 네헤레니아 여왕의 과거 얘기로 명확해집니다. 자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믿고 있던 네헤레니아 여왕은, 노쇠와 파멸을 두려워 해 “페가서스”의 힘을 손에 얻고자 했으나, 페가서스의 육체만을 확보했을 뿐 그 영혼까지 잡아두는 것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뭐, 당연하지만, 영혼까지 잡으려고 했던 것은 세일러 전사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끝을 맺게 됩니다만, 여기서 네헤레니아 여왕은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나를 다시 저 거울 뒷편으로 가두려는 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좋지. 이런 추한 모습으로 살아갈 미래따윈 바라지 않아. 거울 속이라면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어 (…) 누가 꿈따위를 내버릴 수 있단 말이냐. 누가 어른따위 된단 말이냐 (…) 혼자서 살아갈 것이다. 영원히 혼자. 아름답고, 젊게 살아갈 것이다”
그리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고 울분을 토하며 네헤레니아 여왕은 똑같은 꼴을 당하게 해주겠다며 치비 우사를 공중에서 집어던지고, 추락하는 치비 우사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어 몸을 던지는 세일러 문의 대사가 나오는데, 여기서 네헤레니아의 대사와 큰 대비가 이뤄집니다.
"부탁이야, 치비 우사, 눈을 떠 … 이대론 우리들 미래를 잃어버려!
둘이서 어른이 되자, 어른이 되어 함께 꿈을 이루자!”
세일러 문이 언급하는 것은 다른 것도 아닌 ‘미래’입니다. ‘현재의 기쁨’만을 추구하는 데드문 서커스가 갖지 못한 관점이고, 거기에 더해서 ‘어른이 되어 꿈을 이루자’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설정상, 페가서스가 아름다운 꿈에 깃드는, 그리고 누구나가 어렸을 적에 본 적이 있는 동물로써 등장하는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존재임을 생각해 봅시다. 즉, 페가서스의 힘을 가지려면, 억지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꿈 없는 사랑’일 수도 없으며, 책임 없는 ‘사랑 없는 꿈’일 수도 없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현재가 아니라 미래,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해집니다. 어른이 되었을 때, 단순히 꿈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이건 단순히 몸이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될 줄 아는 능력이란 의미에서 ‘사랑’을 하는 능력을 얻음으로써,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 — 그것이 치비 우사의 장대한 성장담을 통해 [SS]가 시청자들에게 이야기하려 했던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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