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넌 그저 14살의 작은 소녀야. 그렇지 않니?
14살은 현실에 맞서, 배우기 싫은 것도 배워야 하는 시기야.
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니?
-성우 미야무라 유코가 아스카에게
아스카 "엄마! 엄마! 나, 됐어요, 인류를 지키는 엘리트 파일럿이요! 세계 제일이에요!
누구에게도 비밀이지만 엄마한테는 가르쳐 줄래!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줄 거예요. 그래서 외로울 일도 없어요!
그러니까 아빠가 없어도 돼. 쓸쓸할 일이 없는 걸!
그러니까 봐요, 날 봐요 엄마!"
"……!"
에반게리온 2호기의 파일럿이 됐다는 확정 통보를 받고, 어린 아스카는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를 만나러 갔다. 무슨 실험 때문에 정신을 놓은 후론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들고 가면 또 모를 일이다. 아빠가 더는 자기와 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항상 울던 엄마였다. 손에 든 인형을 아스카라 부르면서 함께 죽자고 그랬지만, 이제 진짜 아스카인 내가 에바 파일럿이 되었으니 얘기가 다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특별히 대해 줄 테니 더는 외로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아스카가 문을 열었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줄에 목을 매단 채로 죽어 있는 엄마였다. 딸이라 부르던 인형과 함께.
기획 단계의 아스카
아스카는 일본, 독일 혼혈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로, 마르두크 보고서에 따른 세컨드 칠드런이다. 즉, 애초에 그녀는 재능과 무관하게 게히른에 의하여 에바 파일럿으로 내정된 아이였다. 그 배경에는 어머니의 접촉 실험이 있었다. 게히른 독일 지부 과학자였던 쿄코는 2호기에 아스카에 대한 모성만 남겨 둔 채로 세상을 버렸다. 하필 쿄코가 사망한 날 아스카가 정식 파일럿이 됐다는 것은, 2호기의 정상적인 운용을 위해 남은 부분의 영혼도 필요했으며 그래서 남은 영혼이 회수 가능할 때를 기다렸다는 소리가 된다. 키타무라는 심지어 게히른 측에서 쿄코를 살해한 후 자살로 은폐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아무튼 2호기의 코어 안에는 이제 아스카를 사랑하는 쿄코와, 나머지 부분의 쿄코가 함께 담겨 있다.
눈과 영혼의 상관 관계?!
참고로 에반게리온 기체의 눈 디자인이 코어 속 영혼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재미난 주장이 있어 짚고 간다. 우선 유이의 온전한 영혼을 담고 있는 초호기가 눈이 두 개이고, 영호기의 경우 레이와 함께 릴리스의 영혼을 나눠 가지고 있으니 눈이 한 개, 2호기의 경우 두 부분의 영혼이 함께 들어 있으니 눈이 네 개라는 식이다. 덤으로 양산기의 경우 영혼의 정체가 불명인 만큼 아예 눈이 없다는 것.
아스카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면 싫다기 보단 저런 상황 자체를 즐긴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2호기의 쿄코는 여러 이유에서 초호기의 유이와 달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유이는 코어 속에서도 자신과 아들 신지에 대한 인식이 뚜렷했고, 때문에 전투에 있어선 거의 언제나 아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지만, 아스카는 달랐다. 카오루의 말을 빌려 쿄코의 영혼은 코어 깊은 곳에 박혀 있었고, 아스카는 순전히 본인의 능력과 프라이드 하나로 2호기를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에바 파일럿이 될 운명이었으나, 그녀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머리도 비상해 13살에 이미 대학을 졸업했고, 운동 신경도 굉장한 수준이라 싱크로만 유지할 수 있다면 2호기로 하늘도 달릴 정도. 게다가 외모 또한 출중하여 학교에선 아이돌 스타가 따로 없다. 다만 한자 정도만 마저 익힐 목적으로 굳이 학교에 다니는 상황.
아스카 등장!
아스카 "서드 칠드런? 잠깐 와 봐라."
위엄을 강조하는 방법
그녀의 이런 특출한 능력과 프라이드는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며 지금의 아스카를 이룬다. 제작진에 따르면 아스카는 ‘누구보다도 위에 서고 싶어 하는 소녀’라고 한다.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물론, 물리적인 공간에서도 그녀는 아래에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처음 그녀가 등장한 장면을 생각해 보자. 자신이 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밝게 빛나는 태양을 뒤로 당당히 선 그녀의 실루엣. 신지를 견제하며 그를 부를 때에도 에스컬레이터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고, 2호기의 강점에 대해 강의를 하던 때에도 발 디딜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신지를 내려다 봤다. 강박이라 해도 좋을 만큼 항상 높은 곳에서 자신의 우월을 강조하는 것이다.
달의 소녀, 태양의 소녀
아스카는 간단히 말해 태양의 소녀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제작진이 레이에게 달의 이미지를 부여했음을 설명했는데, 아마 이와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아스카에게는 태양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앞서 봤던 아스카의 등장 컷에서도 그녀 뒤로 밝게 비치는 태양이 있었고, 엔드 오브 에바에서 아스카의 최후를 그릴 때에도 태양을 비추는 연출이 있다. 그 외에도 아스카와 태양 이미지를 연계한 장면 구성들은 확실히 의도적인 수준이다. 25화에서 주요 인물의 보완 과정을 조명할 때에도, 레이를 비추는 불이 바닥에 달의 형상으로 닿는 것과 대비하기 위해 아스카의 경우 노란 태양 형상을 그려 넣었다. 그녀를 대표하는 레드 컬러링과 함께, 아스카의 화끈하게 타오르는 성격과 강인한 품성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또 다르게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태워 빛을 내야만 하는 그녀의 운명에 대한 암시이기도 했다.
잘 봐라잉
그렇게 누구보다 위에 서서 태양처럼 밝게 빛나야 했던 그녀이기에, 다른 두 명의 파일럿은 중대한 견제 대상이었다. 당장 먼저 만나게 된 서드 칠드런, 이카리 신지. 매가리 없는 한심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카지의 말을 듣자면 싱크로 수치가 상당히 높고 실적도 꽤나 좋은 편이라고. 따라서 그에게 자신의 실력과 우월함을 증명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과제였다. 8화에서 아스카는 신지를 2호기에 태운 채로 아주 훌륭한 데뷔 전투를 보여 주었다. 가만 보면 그녀 입장에선 난생 처음 마주하는 거대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승리를 거둔 셈인데, 그 배경에는 어떻게든 신지 위에 서겠다는 그녀의 프라이드가 있었던 거다.
아스카 "헬로? 네가 아야나미 레이네, 프로토 타입 파일럿."
레이 "……."
"난 아스카,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잘 지내자."
"내가 왜?"
"그렇게 하는 편이 편하니까."
"명령이라면 그렇게 할게."
(뭐냐, 얜?)
신지는 됐고, 그렇다면 다음 타겟은 아야나미 레이. 학교에 온 즉시 그녀는 퍼스트 칠드런을 찾았다. 이유는 같다. 자신의 대단함을 보이지 않고는 갑갑해 견딜 수 없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높은 돌단 위에 서서 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 소녀, 보통이 아니다. 아스카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성의 없이 대답하는 그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먹고 사는 아스카에게 이런 타입은 계산 밖이었다. 아스카 입장에서 레이의 이런 반응은 명백한 거부 행위였고, 결국 그녀에 대한 아스카의 마음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꾸준히 혐오 일로를 걷게 된다. 그러나 어떻든 실적과 싱크로 수치로 따지면 아스카는 실질적으로 레이 위에 서 있었고, 때문에 아스카는 안심하게 된다. 누구도 자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전제만 있다면, 아스카는 확실히 괜찮은 아이였다. 반 친구들과도 나름 무난하게 지냈고, 미사토에게도 마음을 열었다. 내키진 않지만 작전에 따라 신지, 레이와 협력도 하면서, 이스라펠, 산달폰, 마타라엘, 그리고 사하퀴엘을 무찌르며, 계속해서 승리를 거둔다. 여전히 혼자 이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어쨌든 누가 봐도 명백한 넘버 원은 아스카였다. 그게 그녀의 여유였고, 그 사실 하나로 아스카는 잘 지낼 수 있었다.
분리 불안 / 애착 행동
그런데 아스카가 이렇게 여러 면모에서 우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큰 몫을 했다. 그녀 스스로 대단한 아이가 될 수 없으면, 누구도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을 거란 불안이 깔려 있었다. 25화에서 아스카의 보완 과정 중, 텔롭은 그녀 마음의 결여를 ‘분리 불안’이란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분리 불안이란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서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독립했을 때, 특정 대상에 대해 특이한 애착 증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아스카에게 그 대상이란 2호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적절하지 않은 독립이라, 말하자면 아스카는, 과거 엄마가 함께 죽을 것을 명령한 아이였다. 어쩌면 이렇게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잘못인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아빠의 사랑을 받고 자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리뷰 11편에서 언급한 대로 그녀의 아버지는 쿄코가 죽기 전에 이미 그녀를 담당하는 의사와 바람이 난 상태였다. 결국 아스카에게 있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누구의 도움 없이도 혼자 설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의 생존 전략이다. 가장 가깝게 지낸 엄마라는 사람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엄마는 같이 죽자고 하고, 아빠는 내가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아스카는 철저하게 혼자여야 했다. 당연히 울지도 말아야 했다. 마음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걸로 끝장이니까.
머리에 주목하자.
그런 아스카에게 있어, 에바 파일럿은 가히 천직이라 할 수 있다. 에바에 타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 쏠려 있다. 아스카가 머리에 늘 끼고 있는 붉은 핀을 보자. 사실 그건 에바 기동을 위한 인터페이스 헤드셋이다. 신지나 레이가 에바에 탑승할 때에만 착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머리에 헤드셋을 액세서리인 양 달고 다닌다. 학교에서는 물론, 수영을 할 때도, 심지어는 온천에서도! 에바 2호기에 대한 애착 증상인 것이다. 그녀 입장에선 2호기의 파일럿인 아스카야 말로, 유일하게 세상에 있어도 괜찮다고 허락을 받은 단 하나의 자신이었다. 물론 진짜 아스카는 다른 데 있었다. 22화에서 정신 공격을 받았을 때, 아스카의 두 가지 숨은 모습이 나온다. 하나는 쿄코가 품에 안고 있던 인형의 모습으로, 또 하나는 새로 맞은 엄마가 선물한 원숭이 인형으로. 그러나 아스카는 두 모습 다 거부했다. 전자의 경우, 엄마의 뜻을 거부하고 다만 이 세상에 살기 위하여. 후자의 경우, 믿을 수 없는 남과 관계를 맺지 않아도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래서 인형은 필요 없다.
레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에바는 움직이지 않아."
아스카 "마음을 닫고 있단 거야, 이 내가?"
"그래, 에바에겐 마음이 있어."
"그 인형한테?"
"알고 있을 텐데."
"허, 네가 먼저 말을 걸다니, 내일은 눈이 내리겠다?"
"……."
"뭔데, 내가 에바에 탈 수 없는 게 그리도 기뻐?
하아, 기계 인형 비슷한 너한테 이런 동정을 받을 정도라니 나도 이제 끝이구만!"
"난 인형이 아냐."
"시끄러! 남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주제에. 넌 이카리 사령관이 죽으라면 죽겠네?!"
"…그래."
"……!"
"역시 인형 맞잖아! 너 같은 애 인형 같아서, 너무 싫었다구!"
레이에 대한 아스카의 혐오는 이런 측면에서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녀에게 레이는, 어쩌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아스카와 꼭 닮아 있다. 정확히는 쿄코와 함께 죽었어야 했던 아스카 말이다. 그녀는 레이에게 물었다. 이카리 사령관이 너에게 죽으라고 시키면 죽겠느냐고. 그 질문에 레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럴 거라고 대답했다. 아스카에게 그 반응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자신에게 있어 그 질문은 한심한 가정 따위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을 지배하던 기억이었다. 엄마는 딸로 삼은 인형에게 죽음을 권했다. 그것을 거부한 대가로 아프게 살고 있는 그녀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레이를 보고, 아스카는 참을 수 없었을 거다.
"…모두 다, 모두 다 너무 싫어!"
기어코 레이의 뺨을 때리고 만 그 승강기 안에서, 레이는 실은 아스카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했다. 사실 그 날의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선 마지막이었다. 레이는 아마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감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스카에게 먼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 날 아스카는 싱크로 문제와는 또 별개로 생리 탓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엄마 따위, 절대로 될 일 없다며 이를 가는 아스카의 마음을 레이도 조금은 알았던 게 아닐까 싶다. 아스카가 자신의 모성을 부정하는 건 과거의 아픈 기억 탓이기도 하고, 엄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할 테다. 그런데 레이는 설명한 대로, 인류의 어머니 그 자체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 인간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혹시 레이는 자신이 할 수 없게 된 어머니의 역할을, 또는 최소한 그 마음을 아스카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아스카는 신지와 함께 새로운 세상에서 가장 처음으로 눈을 뜨는 여성이 되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스카는 과연 레이 대신 다음 세상의 어머니가 되는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 대화, 정확히는 레이가 아스카에게 넌지시 전하려 했던, 그러나 아스카가 거부한 메시지(부탁)는 작품의 완결에 대한 하나의 복선이었던 셈이다.
"인형 따위, 필요 없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해!"
그러나 진짜 아스카는 항상 울고 있었다. 인형을 들고.
아스카는 마치 고양이와 같다. 혼자이길 원하면서, 외로운 건 싫다. 누군가 자신을 함부로 만지면 화를 내면서도, 만져 주지 않으면 또 화를 낸다. 아스카가 진정 원하는 건, 아마 그녀 스스로도 몰랐겠지만, 고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진심 어린 온기였을 것이다. 그녀가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은, 다른 사람의 진심이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던 탓이다. 엄마와 아빠가 가르쳐 준 세상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철저히 혼자 사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에 대한 혐오로 점철된 자기애로 치장한 채, 아스카는 나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프라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아픈 것인데, 왜 아픈 줄도 모르고 그녀는 다만 어른이 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 아스카가 인형을 집어 던진 것이다. 어른이고 싶어서.
카지 "아스카는 아직 어리니까 말이다."
아스카 "에?! 재미 없어."
"난 이제 충분히 어른이란 말예요. 어른이에요!"
카지 료지는 그런 점에서, 아스카가 동경하는 궁극적인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족 하나 없이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얽매일 필요 없이 자유와 여유를 만끽할 줄 아는 사람.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하여, 아스카는 그런 남자를 필요로 했다. 카지는 그런 아스카를 어리다는 이유로 거부했지만, 어차피 아스카에겐 카지의 사랑이란 어른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의 무심한 반응에도 전혀 굴하지 않았던 거다. 문제는 같은 집에 살게 된 미사토였다.
"어차피 난 불결한 어른들의 사교 따윈 하고 싶지 않은 걸. 위선자, 완전 싫어!"
카지가 원하는 어른이란 것이, 미사토를 칭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 아스카는 서서히 그녀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기 시작한다. 이 부분이 바로 아스카의 카지에 대한 애착을 일렉트라 콤플렉스로 해석하는 근거가 된다. 사회적인 의미로 미사토는 아스카의 어머니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데, 만약 아스카가 그 역할을 수용하게 되면 동시에 카지는 아스카의 사회적인 아버지가 되는 식이다. 아스카가 끝내 미사토를 거부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카지를 남성으로 남겨 두기 위한 이유가 가장 컸다. 카지가 품은 사람이 자신이 아닌 미사토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납득했지만, 가슴으로는 결국 수긍할 수 없었던 거다. 그렇게 막연하게 기다리던 카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신지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희망도, 어른이 되는 길도 모조리 잃고 만다.
미사토 "신지야, 유 아 넘버 원!"
아스카 "아, 지고 말았네, 아주 간단하게 이겨 버렸네!
이렇게 쉽게 지게 되다니 솔직히 조금 억울하긴 해!
대단해! 훌륭해! 강해, 너무 강해 어쩜 좋아!"
"아, 무적의 신지 님! 우리도 덕분에 좀 편하게 지낼 수 있겠네!
하지만 우리도 너무 뒤처지지 않도록 힘을 내지 않으면…"
레이 "…안녕."
잘 알고 있겠지만, 아스카를 파멸로 이끌었던 건 바로 지금의 아스카를 만들어 준 프라이드 그 자체였다. 카지와 미사토의 관계를 알게 된 후 그녀의 컨디션이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동시에, 신지는 반대로 겐도우의 칭찬 등 적절한 동기 부여 덕으로 싱크로 수치가 날로 상승하고 있던 참이었다. 결국 16화에서, 아스카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다. 지고 만 것이다. 이제 넘버 원은 신지였다. 이제 아스카에겐 여유가 없다. 더는 잘 지낼 수 없게 되었다. 당장 같은 에피소드에 등장한 레리엘과의 전투가 그 양상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아스카의 활약은 없다.
레리엘 전에서도
바르디엘 전에서도
제루엘 전에서도
아라엘 전에서도, 아스카는 이길 수 없었다.
레리엘 전에서 아스카가 한 일은 신지가 디라크의 바다에 빠지는 원인을 제공한 정도. 사도를 무찌른 것은 신지가 탄 초호기였다. 다음 사도는 바르디엘이었다. 아스카는 사도의 기습 공격으로 가장 먼저 짐이 됐을 뿐, 도움을 준 일은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사도를 처리한 건 역시 신지가 탄 초호기였다. 그렇다고 신지가 떠난 제루엘 전에서 레이 위에 설 수 있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아스카는 정말 전력을 다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도에게 힘으로 완패했다. 결국 사도를 처치한 것은 귀환한 신지였다. 아라엘 전에서는 어땠나. 아스카는 처음에 레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으란 명령을 받는다. 그녀에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했던 아스카에게 인형 비슷한 레이 뒤에 서라니, 그런 전투 배치는 파일럿으로서 사형 선고와 같았다. 결국 파일럿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작전 부장의 명령을 무시한 채 그녀는 아라엘에게 정면으로 대항한다. 그러나 그 날,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치부를 모두 들키면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만다. 사도를 무찌른 것은 자기가 그렇게 무시하던 영호기의 레이였다. 이에 아스카는 절망한다. 고르고 골라 자길 구한 사람이 레이라니, 그 여자라니!
신지 "…다행이다, 아스카."
아스카 "시끄러워! 다행은 무슨, 고르고 골라서 저딴 여자한테 도움을 받다니,
저런 여자 따위에게…! 이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았어!"
"싫어, 싫어 전부 다 싫어!"
아스카 "난 울지 않아! 난 스스로 생각할 수 있어."
어렸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 줬던 엄마가 자기를 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히 세상을 떠났을 때, 어른들의 가증스런 눈물을 보면서 아스카는 다짐했다. 다시는 울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 완강한 다짐이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깨지고 말았다. 히카리를 옆에 둔 채 그녀는 끝내 울었다.
아스카 "나, 이길 수 없었다? 에바로. 이제 내 가치는 없어. 어디에도….
싫어…너무 싫어…그치만 제일 싫은 건, 나 자신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알미사엘이 내습하고, 아스카는 다시 불려 나갔다. 이젠 뭐,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체념했다. 그런데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2호기는 아예 움직여 주질 않았다. 모든 게 끝이었다. 2호기를 움직일 수 없는 아스카는, 살 자격이 없는 아이였으니까.
"…움직이지 않아…."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했다. 아주 예전에, 엄마가 같이 죽자고 했을 때, 아스카는 그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사는 쪽을 택했다. 나는 엄마의 인형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틀린 결정이었던 걸까,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말이다. 다만 남이 자신을 죽이는 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죽을 거면 스스로 죽겠어. 그것이 그녀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어느 빈 집에, 의자에는 가지런히 옷가지를 개켜 놓고, 욕조에 물을 채워 그 안에 들어가 누웠다. 태양이 적나라하게 자신을 비추는 곳에서, 동맥을 끊고, 피로 물을 적시며, 그녀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간다.
"이제 내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어….
아무도 나를 봐 주지 않는 걸. 아빠도 엄마도, 누구도."
작품은 이 비극적인 장면을 제법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천하의 아스카가 아무리 상황이 나쁘겠기로서니,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어 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TV판에서는 그나마 욕조 속을 애매하게 채색한 탓에(심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해석의 여지를 두는 것 같지만, 비디오로 출시한 완전판에서는 욕조 안이 아주 진한 핏빛을 띠고 있다. 24화의 후반 부분이나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아스카가 병실에 계속 누워 있던 것도 당연히 이 사건 때문이었다.
TV판 / 완전판
하지만 이 죽음은 쿄코 때와는 반대로, 타의에 의해 거부된다. 네르프가 아스카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헌데, 정보 부원은 마치 그녀가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절묘한 타이밍에 그녀를 발견했다. 휴가와 미사토가 예상한 대로, 제레는 타브리스를 위해 파일럿에 의한 2호기 기동을 막아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늦게 그녀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즉, 아스카가 욕조 속에서 팔을 끊고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야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찾았다고 보고하여 병실 안에 수용한 것이다. 제레가 얼마나 잔인한 집단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 맞지?"
레이가 아스카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조언 말이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에바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 말은 단순히 에바 기동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스카가, 아니 사람이 살기 위해선 가장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닫힌 마음의 끝에는 죽음이 있고, 열린 마음의 끝에는 희망이 있는 법. 적어도 인간답게, 아스카가 마음을 열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에반게리온] 30. 아스카 ② If You Can't Be Mine/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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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 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미리 구성을 좀 말씀 드리자면 아스카는 2편 구성이되 보완 이후의 이야기는 따로 다루게 될 겁니다. 그건 아스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서요. 30편은 화요일 늦은 밤에 들고 오겠습니다. 재밌게 봐 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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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스카는 그러지 않아 이 댓글을 꼭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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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봐요!" 이 대사 하나로 아스카라는 캐릭터는 정의할 수 있을것 같아요. 마치 태양처럼 말이죠. 아스카는 누구보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죠ㅠㅠㅠㅠ 잘난 존재인데도 가장 인정받고 싶은 대상에게 계속 부정당하고 정말 너무나 가여운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레이가 모든것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반면 아스카는 너무 뜨겁고 뜨거워서 자기자신까지 불태우는 느낌이에요.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다음주까지 또 어떻게 기다리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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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기다리는 낙에 삽니다! 드디어 아스카 ㅎ! 아스카가 욕조에 들어가있던게 자살기도였다는 건 충격이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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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를 이니셜로쓰면 SAL 즉 일본말로 사루, 원숭이가됩니다. 그래서 원숭이 인형으로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버리려고 하지만 그러지못하는 아스카를 빗대어 표현 했다는 것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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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스카는 그러지 않아 이 댓글을 꼭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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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기획 작화는 지브리 작화와 많이 닿아 있어요...근데 그건 무엇? ㅎㅎ | 13.02.02 0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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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를 이니셜로쓰면 SAL 즉 일본말로 사루, 원숭이가됩니다. 그래서 원숭이 인형으로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버리려고 하지만 그러지못하는 아스카를 빗대어 표현 했다는 것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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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기다리는 낙에 삽니다! 드디어 아스카 ㅎ! 아스카가 욕조에 들어가있던게 자살기도였다는 건 충격이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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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봐요!" 이 대사 하나로 아스카라는 캐릭터는 정의할 수 있을것 같아요. 마치 태양처럼 말이죠. 아스카는 누구보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죠ㅠㅠㅠㅠ 잘난 존재인데도 가장 인정받고 싶은 대상에게 계속 부정당하고 정말 너무나 가여운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레이가 모든것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반면 아스카는 너무 뜨겁고 뜨거워서 자기자신까지 불태우는 느낌이에요.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다음주까지 또 어떻게 기다리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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