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부터 김대중까지 6명 당선 지켜봐
"쉽게 넘어간 선거는 한 번도 없어" 회고
1960년대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4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장관급 지위에까지 올라 ‘한국 선거사의 산증인’으로 불려 온 김봉규 전 선관위 상임위원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1936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3년 선관위 공무원이 되었다. 대선, 총선 등 모든 형태의 선거를 직접 관리하는 선거국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지내고 사무차장을 거쳐 1989년 1월 선거관리 업무는 물론 선관위 안살림까지 총괄하는 사무총장에 발탁됐다. 1992년 정부는 입법·행정·사법부와 대등한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선관위의 위상을 감안해 그 사무총장을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시켰고, 고인은 계속 사무총장으로 남아 1994년 12월까지 6년 가까이 ‘장수’했다.
이후 김영삼(YS) 당시 대통령에 의해 역시 장관급인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 상임위원은 명목상 선관위의 ‘2인자’에 해당하나 선관위원장을 현직 대법관이 겸임하는 관행을 감안하면 평상시 선관위 운영을 책임지는 사실상의 ‘1인자’라 할 수 있다. 고인은 상임위원으로서 헌법이 정한 6년 임기를 꽉 채우고 2000년 12월 선관위를 떠났다.
무려 37년간 선관위에 몸담으며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6명의 대통령 당선을 지켜봤다. 총선과 지방선거까지 더하면 고인이 관여한 전국 단위 선거만 최소 30차례가 넘는다. 가히 ‘한국 선거사의 산증인’으로 불릴 만하다. 그렇게 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고인은 “쉽게 넘어간 선거는 한 번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민주화 이후, 특히 고인이 사무총장으로 있던 YS정부 초기에 선관위 권위가 막강해졌다. 1994년 3월 여야 합의로 개정된 선거법이 선거 때 각 정당이 사용한 자금 내역에 대한 조사권을 선관위에 부여한 것이다. 이로써 선관위가 ‘부정 후보자’로 규정하면 정치판에서 퇴출되는 구조가 확립됐다. ‘선관위가 실세 기관이 됐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고인은 “주어진 권한만큼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한국의 선거문화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는 데 일익을 담당하도록 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한성순씨, 아들 김동일(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수웅(LX하우시스 부장)·진씨(엘리시안리조트 부장), 며느리 김미리·송경화·이은재씨 등이 있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발인은 24일 오전 6시. (02)2258-5961 또는 (02)880-7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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