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민주당, 회피·모순된 해명 안돼
지난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은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즉각 코끼리를 연상케 하는 프레임 씌우기를 일삼았다. 핵심적 문제는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고 여론과 언론, 국회, 유가족과 다른 탈북민들도 프레임 안에서만 갑론을박하며 지치게 했다.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에겐 ‘월북’ 프레임을 씌워 북한 정권의 살인범죄를 가렸다. 사실이 불명확한 20대 탈북 선원 2명은 ‘흉악범’ 프레임을 동원해 사지로 내쫓고 남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를 덮으려 했다.
정부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고 말뿐이었다. 배치되는 정보나 따져봐야 할 단서들은 비밀로 감추거나 인멸하기도 했다. 정부 대변인들은 섣부른 추정과 확정할 수 없는 혐의를 단정적으로 읊었다. 고위공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이 법령에도 없는 ‘귀순의 진정성’이라는 해괴하게 급조한 용어로 혼란술을 펼치며 ‘저들은 함께 살 자격 없는 사람들’로 규정했다. 정권 지지자들은 프로파간다를 확대재생산했고, 휩쓸린 군중심리는 정부가 낙인찍은 사람들과 유족에 대한 배제와 혐오 공격으로 이어졌다. 테러·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결정한 사람을 향해 군중들로 하여금 돌멩이를 던지게 하는 투석형, 북한의 공개재판이나 공개처형과 본질이 다를 바 없었다.
정권교체 후 감춰져 있던 기록이 하나둘 공개되며 사건 당시부터 제기된 의혹 대부분이 사법당국이 수사해야 할 실체가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해선 안 될 일이란 찜찜함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발탁과 승진 유혹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침묵했던 공직자 일부도 뒤늦게 책임을 통감한다며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정권이 바뀌니 번복하는 것 아니냐’고 평가절하하지만, 연루된 부처와 기관들이 중요한 자료도 내놓고 있으니 이제야 진실을 향하는 중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또 궤변을 내놓고 있다. 새 정부의 ‘신북풍 몰이’라는 주장이 그렇다. 남한 정세를 살피며 침묵하던 북한도 같은 대남선전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과 북한 모두 더 이상 쏟아지는 의혹과 진실에서 도주할 방법이 없다고 느끼고 있음을 뜻한다. 지금은 동일한 적반하장 선전 중이지만, 어느 쪽 책임이 더 무거운지 따질 때쯤이면 달라질 것이다. 전례를 보면 북한은 문재인정부 및 민주당 인사들과 거리를 두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남남갈등 국면을 유도할 폭로를 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의 파트너가 권력을 잃으면 잔인하게 버리고, 한동안 새 정권을 을러댄 후 대화에 응하는 시늉만으로도 이익을 취하려는 북한 정권의 행동 패턴을 다시 볼 것 같다. 두 사건으로 고발되거나 수사선상에 오른 공직자와 정치인들도 이를 모를 리 없으니 불안을 느낄 만하다.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거나 ‘진실은 알 수 없다’는 식의 불가지론을 설파하며 수사를 차단하려는 시도는 가당치 않다. 최대한 빠르고 심층적인 진실 규명만이 모두에게 최선이다. 드러나는 진상에 따른 응당한 책임 추궁은 가시적이고 효과적인 재발방지 조치의 중요한 한 축이다. 또 관련 법제 정비와 정부 시스템 혁신에도 필수적이다.
‘국내적 사건’ 내지 ‘남북한 간 사안’으로 축소하려는 시도는 더욱 가당치 않다. 두 사건의 중대성과 충격, 비판과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적이었다. 국제인권협약과 난민법 등 주요 인권규범의 중요 원칙들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문제로 여러 차례 유엔의 서한들이 한국으로 날아와 쌓여 있다. 문재인정부가 회피와 모순된 해명으로 일관해 국제적 비판과 의혹만 더욱 키워놓았을 뿐이다.
윤석열정부는 사건의 재조명 노력과 드러나는 사실, 재발방지책 등을 종합해 유엔에 다시 답변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일본 등 북한 문제의 주요 이해당사자인 동시에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 정부들과도 정보를 공유해 국제적 의구심을 해소하길 바란다. 그래야 한국이 아시아의 중요한 자유민주주의 및 법치 국가라는 평판과 기대를 회복할 수 있다. 또 한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우리 대북접근법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도 더욱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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