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토스트(toast)향과 몰트(malt)향은 어떤 차이일까? 언뜻 비슷한 인상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토스트와 몰트는 모두 곡물이 가열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내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물의 속성에 비유하는 것은 커피의 모호한 맛을 시각화함으로써 명료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커피 향미를 표현할 속성에 관한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전문가가 지녀야 할 미덕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토스트와 몰트 중에 어느 쪽이 특정 커피의 향미를 보다 적확하게 묘사하느냐는 점이다. 우선 토스트와 몰트가 상징하는 바를 서로 다르게 정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토스트 같은 커피’와 ‘몰트향 커피’를 구별할 수 있다.
커피 향미 표현에서 두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97년이다. 콜롬비아커피생산자연합회(FNC)가 프랑스의 와인전문가인 장 르누아르에게 의뢰해 ‘르네뒤카페’라는 커피아로마키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향미 묘사에 활용할 36개의 속성이 탄생했다.
그는 토스트와 몰트를 ‘토스티(toasty)’라는 그룹에 함께 포함시켰다. 이 그룹은 정서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속성들을 묶은 것이다. 다른 점에 관해서 장 르누아르는 몰트향에는 ‘셀룰로오스의 느낌’이 가미된다고 적었다. 빵을 구울 때 생성되는 기분 좋은 향이 토스트라면, 몰트는 보리차를 마신 뒤 느껴지는 무겁고 다소 거친 뉘앙스인 것이다.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르네뒤카페를 토대로 작성한 ‘커피에서 향을 지각하는 기술’에서 토스트향은 갈변반응그룹으로 분류된 반면 몰트향은 건열반응그룹으로 묶였다. 토스트향을 유발하는 주요 물질은 질소를 품고 있는 피라진(pyrazine) 구조인데, 커피를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아미노산의 질소 원자들이 탄수화물과 결합해 이런 속성을 만들어낸다. 몰트향의 원인 물질인 말톨(Maltol)은 질소가 없는 탄수화물 구조이다. 몰트의 느낌은 로스팅을 더 진행함에 따라 열에 의해 분자구조가 조각났다가 무작위로 다시 결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토스트향을 지나쳐 몰트향이 나타나면 더 진하게 볶인 커피라고 판단할 수 있다.
미세한 차이가 향미 속성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지만, 커피를 즐기는 우리의 혀를 리트머스 종이처럼 놀리며 정답을 찾으려 애를 쓸 필요는 없다. 커피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이취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속성보다 정서에 집중해야 한다. 2017년 세계적으로 표준화한 플레이버휠에는 토스트가 사라지고 몰트만이 남아 ‘로스티드’(볶은 듯한) 그룹으로 분류됐다.
2014년 뷰미라타나 박사 등이 커피 향미가 불러 일으키는 감정 어휘를 연구한 결과, ‘로스티드’는 “안정적이고 평온함을 주는’ 정서와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머리 속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점두가 없어 고유의 향미를 장애물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이어 따스한 불을 쬐는 듯한 평온한 마음이 들면서 추억 속에서 구수한 보리차를 마시는 때가 떠오르게 되는 식이다. 커피를 마시면 속성보다 정서가 먼저 다가온다. 정서가 마음 속에 띄워 주는 이미지가 속성이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향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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