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근본 개편·원유 수입선 다변화 필요
국내 물가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10월부터 3%대를 유지하던 물가상승률이 금년 3월에는 4%를 넘어섰다. 또한 소비자들의 체감물가 수준을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 증가율도 5%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늘어나는 석유 및 곡물 등 원자재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수급불균형이 물가상승의 주요 요인이다. 특히 국제유가 및 곡물 가격 상승은 해당 원자재를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구조상 효과적인 물가안정 대책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수요충격에 의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공급충격에 기인한 물가상승에는 기준금리 인상 효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경기하방 압력을 높여 향후 경기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경기부진의 가능성과 물가상승 압력 증가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이중고다. 본격적 긴축기조에 접어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을 감안할 때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한·미 금리차 역전 및 내외 금리차 확대 허용 시 달러 대비 원화 약세기조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원화 약세는 달러로 결제되는 수입 원자재의 도입단가를 상승시켜, 국내 제품의 소비자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대출이자율 상승으로 이어져 차주들의 금융비용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전기료, 유류비 등 유틸리티 비용 성격의 고정비 상승은 가계의 금융비용 증가와 함께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를 유발할 것이다. 가계소득 감소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5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비 감소는 제조업체의 고용 감소로 이어지고, 실물경제 위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 특히 현재 3%에 육박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은 향후 임금 인상을 가져오고, 가수요를 촉진해 물가상승 압력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데 모든 정책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강구할 수 있는 모든 정책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유류세의 근본적 개편을 통해 한시적, 30%의 일률적 인하가 아닌 항구적 석유제품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 최근 글로벌 유가정보 리서치 기관인 ‘글로벌 페트롤 프라이시스’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휘발유 평균가격은 세계 평균가격인 ℓ당 1.33달러보다 약 26%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전 세계 170개국 중 42번째로 휘발유 가격이 비싼 국가가 우리나라다. 국내 휘발유의 60%, 경유의 51%가 세금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 자동차세(주행분), 교육세 등으로 구성된 현행 에너지 관련 소비세 재편을 통해 석유제품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
둘째, 유가보조금 및 유가환급금의 확대 시행이 필요하다.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했던 2008년 저소득층 대상 연 24만원의 유가환급금 및 월 2만원의 유가보조금 정책이 시행된 바 있다. 이 정책을 통해 가계의 소비지출 증가 및 물가하락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던 경험을 참고해야 한다.
셋째, 수입 원유의 수입선 다변화 추진 및 비축유 방출도 검토해야 한다. 중동지역에 대한 높은 원유 수입 의존도는 원유 도입단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국내 수입 원유의 3분의 1을 담당하는 사우디는 국내 정유사를 대상으로 한 OSP(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에 붙는 프리미엄)를 지속적으로 인상하고 있다. 원유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가격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또한 필요시 유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보유 중인 106일분 비축유 방출도 검토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인 에너지 가격 인하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금통위의 긴축적 통화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정책 공조도 시급하다. 가계의 이자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정책 마련이 그것이다. 민간 금융기관의 대환대출 프로그램 확대를 유인하고, 금리인하 요구권의 적극 홍보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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