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윤리·직무역량 검증 분리 검토해볼 만
새 정부 시작과 함께 또다시 인사청문회 시즌이 찾아왔다. 그러나 공격과 수비가 바뀐 만큼 정권교체를 실감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청문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들을 공격하기 바빴던 국민의힘은 이제 여당이 되어 본격 방어 모드에 돌입하였고,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년 동안 청문회에서 부담스럽게 짊어졌던 무거운 방패를 내려놓고 날카로운 공세의 창을 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견제하고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성과 직무 역량을 검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김대중정부 시절 처음 도입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난 20년간 행해져 온 인사청문회 장면들을 돌이켜보면 공직 후보자의 직무 수행 능력을 면밀하게 검증하는 모습보다는 지명된 후보자의 개인사나 도덕성을 둘러싼 의혹 제기와 공방만이 남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도덕성의 강조는 부적격 인사를 걸러내고 공직후보자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순기능도 하였지만, 청문회 개최의 또 다른 목적인 후보자의 정책 역량과 전문성 검증 기능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는 과제를 남겼다.
최근 정파적 양극화의 심화는 청문회 보고서의 미채택과 대통령의 임명 강행 빈도를 꾸준히 증가시켜왔고, 이에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론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게다가 다수 인재들이 청문회에 선뜻 나서기를 주저하게 되면서 대통령은 인력난을 호소하기 일쑤이고, 인사청문회를 우회하여 마음에 드는 인사를 청와대에 임명하다 보니 국정이 행정부보다는 청와대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된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정치권은 이미 여야를 떠나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국회 청문회로 인재들의 공직 기피 문화가 확산되고 여야 간 대립이 고조되는 것은 어느 정당에도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양대 정당은 그간 개최된 청문회를 통해 몇 번의 공수 교대를 거치게 되면서 서로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정부 시기였던 19대 국회 때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도덕성과 전문성 검증을 분리하는 청문회 개선안을 제안한 바 있고,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 또한 비슷한 취지의 법률안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020년 11월 박병석 국회의장 주도로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에 합의하기도 하였다.
여야가 합의를 통해 인사검증과 관련된 일관된 기준만 마련할 수 있다면 적어도 청문회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정치권에서 ‘내로남불’의 공방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청문회 제도 개선 방향과 관련하여 우선 공직윤리와 직무 역량 검증을 분리하고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다만, 여전히 고위공직자에게 높은 윤리기준을 요구하는 다수 국민들이 공개적 도덕성 검증을 원하고 있고, 또한 현실적으로 청문회가 완전히 분리되어 진행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따라서 인사청문회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을 보다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애초에 의혹투성이인 인사가 청문회장으로 들어올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백악관뿐만 아니라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윤리위원회까지 3개월 이상에 걸쳐 사전에 철저한 인사검증을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한국의 경우 단기간 동안 청와대가 검증을 독자적으로 주도하다 보니 인사의 허점을 자주 드러낸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존중과 야당에 대한 협치 의지 또한 우리 청문회를 보다 내실 있게 만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대통령이 공직후보 임명을 앞두고 미국 상원의 주요 지도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관례를 참고할 만하다. 이러한 철저한 인사검증 관례가 200년 이상 청문회 제도를 유지해 온 미국에서 장관 인준 거부율을 한 자릿수로 유지해준 비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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