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쓴맛은 우리에게 위협일까, 위로일까? 고통일까, 축복일까? 인류는 오랜 시간 독을 먹고 목숨을 잃는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진화적으로 위대한 장치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쓴맛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미각으로 포착하는 다섯가지 맛 가운데 쓴맛은 목숨과 직결된다. 다른 맛들은 농도가 강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수준이지만, 쓴맛은 수위를 넘는 순간 치명적이다.
일상 중에 강한 쓴맛을 경험하는 일이 줄어든 것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위험한 음식들을 우리의 주변에서 솎아낸 덕분이다. 자연에는 여전히 독이 되는 먹거리가 도사리고 있다. 쓴맛을 감지하는 인간의 수용체가 25종으로 단맛(1종)이나 감칠맛(2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수용체가 여러 개라고 해서 쓴맛이 다양한 느낌으로 우리의 관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쓴맛은 추구할 감각이 아니라 단지 마셔도 될지 안 될지를 구분하는 지표로만 작동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커피에서 감지되는 쓴맛을 두고 깊이 사유하며 감상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쓴맛은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수십만년 전 인류가 불을 사용하면서 쓰디쓴 뿌리채소를 익혀 먹을 수 있게 됐다. 이 지점을 현생 인류가 호미닌에서 침팬지와 갈라지는 분기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쓴맛을 극복한 이 대목이 없었다면, 인류는 쓴맛에 대한 민감성 때문에 커피를 지금처럼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커피에서 쓴맛의 원인 물질은 몸에 이로운 클로로겐산이나 트리고넬린과 같은 항산화물질이나 알칼로이드의 분해 산물로서 육체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항염증, 항당뇨, 항암효과가 이들 덕분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각성 효과로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카페인은 커피의 쓴맛에 단지 10%가량 관여할 뿐이다. 디카페인커피의 쓴맛이 여전하다는 점이 경험적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관능에서도 커피 쓴맛의 진가는 새롭게 조명된다. 커피 향미를 묘사하는데 활용하는 ‘플레이버 휠’에는 8시 방향에 ‘bitter(쓴맛)’가 당당히 속성으로 올라 있다. 하지만 쓴맛은 홀로 빛나지 못한다. 신맛과 짠맛은 쓴맛을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오게 할 뿐이다. 감칠맛은 쓴맛을 만나면 저 멀리 도망간다. 오직 단맛만이 쓴맛을 고양시킨다. 소다나 삼뿌리같은 쓴맛이 단맛을 만나면 온순해지고 혀에 감기며 초콜릿을 떠오르게 하는 속성으로 승화한다.
단맛 역시 쓴맛이 있으면 더욱 존재를 과시할 수 있다. 거칠거나 쓴맛에 빠져들지 않고 부드러운 초콜릿이나 생동감을 주는 허브, 쌉싸름한 호두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은, 그 커피가 향미 성분들이 풍성하다는 점을 웅변하기 때문이다.
먹지 말라는 경고인 동시에 향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는 ‘쓴 커피의 이중성’을 먼 옛날 오스만 튀르크인들은 ‘악마의 키스’에 은유했다. 쓴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질 때, 순간의 정서를 표현해도 좋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묘사한 ‘bitter-sweet’는 쓴맛에 보내는 찬사가 될 수 있다. 쓴맛의 미학이 커피를 더욱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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