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문화 혁신이 국민체감도 더 높을 것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당선인은 새 정부의 청사진을 그리느라 한창 바쁠 때다. 새 정부가 들어설 무렵에 취하는 행위 중 하나는 정부조직 개편이다. 이번 인수위도 예외는 아니며 이곳저곳에서 이른바 조직 개편 브로커들도 한 시절 만난 모양새다. 문득 과거 모 대통령께서 정부 개혁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주변에 대국, 대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수석한테 부처 통폐합의 성과와 관련하여 다른 나라의 사례를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한 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 보고하지 않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어 새로운 시각과 문제의식 아래 기존 정책이나 정부 관행을 되짚어 보고 개선하는 것은 선거의 중요한 기능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조직을 개편하는 것이 마치 당선인의 당연한 어젠다처럼 반복되고 인수위의 단골 메뉴로 거론된다.
새 정부가 정부조직을 개편하고자 하는 이유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정권 차원의 혁신수단으로 삼기 위해서, 새로운 정부 출범의 상징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 선거 공약 이행이라는 의미 부여도 가능하며, 특히 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제도 개선의 노력일 수도 있다. 문제는 정부 개혁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다. 조직 개편과 같은 설계적 관점인지, 일하는 방식과 같은 운영 관점인지 등 시각에 따라 정부 모습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과거 정부 개혁의 경우, 부처 통폐합과 같은 하드웨어적 접근을 선호하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행정문화나 일하는 방식 개선과 같은 소프트웨어적 접근을 중시한다. 이는 부처 통폐합을 통한 조직 개편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기적으로 하드웨어적 개편을 시도했지만 성과가 분명하지 않고 피로감만 쌓여 온 것이다.
반면 소프트웨어적 접근을 통한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과 행정문화 혁신은 그 과정과 결과가 축적적이고, 특히 국민 입장에서 더 편리하고 신속한 행정서비스를 체감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국민비서’와 같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조직 개편의 결과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축적된 정부의 일하는 방식 개선, 예컨대 데이터 실시간 개방과 행정서비스 통합 등이 토대가 됐단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부득이 새 정부가 정부조직을 개편해야 한다면 최소한의 범위에 국한하되 몇 가지 점에 유의하기를 바란다. 첫째, 근거에 기반한 조직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 정부조직의 문제점을 먼저 정확히 밝히고, 제안하는 조직 통폐합의 근거를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누구의 입장에서 볼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적어도 당선인이 강조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직 개편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마련하고 국민 불편사항을 해결해야 한다. 셋째, ‘무엇을 위한 조직 개편인가’라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거시적으로 국가 거버넌스 차원에서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성찰하고, 국민이 원하는 좋은 정부에 대한 합의 형성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오래전 영국 캐머런 전 총리가 정부 혁신의 초점을 ‘큰 사회’(Big Society)에 둔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조직 개편은 설계도 중요하지만 개편 후 변화 관리가 더 중요하다. 화학적 결합 없는 통폐합은 결국 실패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다섯째, 미래 정부는 예산과 인력과 권한이 집중된 거대조직이 아닌 여러 곳에 분산된 권한과 자원을 적절하게 연결하고 동원하여 활용할 수 있는 최적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끝으로, 조직 개편에 정답은 없다. 제도적 융통성을 용인하고, 욕심부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무엇보다 정부조직 개편을 정치 이슈화하려는 유혹을 차단해야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플랫폼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인류는 이른바 호모 플랫포미언(Homo-platformian)으로 진화하고 있다. 당선인이 공약한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신속한 구축과 효율적 운영에 더 큰 관심과 기대를 두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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