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와 합의… 정치 불신 해소를
정권교체를 앞두고 임기 말 인사권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법적으로는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기 전까지는 계속 인사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현 정부가 임기 초에 전 정권 때 임명된 사람들에게 사퇴를 압박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도 정권교체기 및 임기 말 인사권 논란이 되풀이될 수 있음을 생각할 때, 명확한 기준 설정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등은 임기가 엄격하게 보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정한 업무 수행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 오남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직무는 차기 대통령의 의중을 고려한 인사에 비중을 둘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문제 되는 임기 말 공기업·공공기관 수장 인사는 의미가 다르다. 박근혜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던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청와대 출신 및 친여 인사들을 대거 발탁하고, 관련 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들을 임명한 것에 ‘알박기 인사’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건 차기 정부의 정책 집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가장 합리적인 해결 방법은 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과 협의하여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는 현직 대통령이 법적으로 인사권의 주체라는 점을 존중하되, 차기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야 할 인물에 대한 인사에는 차기 대통령의 의사를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에서 5월9일까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사권이 있음을 지적한 것은 절반의 정답일 뿐이다.
문제는 정권교체기에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합의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칫 정치권뿐 아니라 국민들 사이 갈등과 대립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잖아도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대 최고의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는 상태에서 신·구 정부의 인사권 논란은 진영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 이후에는 공공기관 인사에 대해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이 협의하도록 하고, 협의 절차·방식에 관한 규정을 두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그리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정치력을 발휘하여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문 대통령이 공기업·공공기관에 대한 인사권을 강행할 경우의 득실을 따져 보자. 얻는 것으로는 법적 권리를 행사했다는 자존감,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배려한 데 따른 내부 결속력 증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잃는 것으로는 국민의 신뢰 약화, 차기 정부와의 갈등 심화를 들 수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더 큰 것일까?
가시적인 것만 보면, 얻는 게 더 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장은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국민의 신뢰를 더 잃는다는 건 정치인으로서, 정당으로서 가장 큰 것을 잃는 것이다. 또한 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민주당이 정권을 잃게 됐음을 충분히 반성하지 못했단 의미다.
대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몇 명 인사가 갖는 의미와 비중은 별것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국민들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훨씬 크고 중요한 일이다. 이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소탐대실을 반복할 수밖에 없고, 향후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 오는 일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국민의힘도 차기 대통령의 인사권을 앞세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압박하기보다는 국민을 설득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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