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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시로 향하는 차도를 리무진 한 대가 달려나간다.
푸른 하늘로부터 내리쬐는 오전의 햇살을 검은 차체는 윤택한 빛을 띄며 반사하고 있었다.
살다살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차에 타게 될 줄이야.
편안한 좌석에 앉아서 흔들림없는 승차감을 만끽하면 그만이겠지만, 유진은 괜한 어색함을 맞이하고 있어야 했다.
'진짜 카이바 코퍼레이션에 간다는 말이지…."
범퍼 위에 달린 'KC' 엠블럼도 확인했겠다, 무엇보다 반댓편 좌석에 앉아있는 경호원 사내가 직접 얘기했으므로 어디로 가는지 불안해 할 필요는 없을 터.
모친도 일단 이쪽에서 근무하고 있고, 여기서 서비스 중인 게임에 본인도, 생전의 부친도 매달려 있었으니 지겹게 이름을 들을 수밖에 없는 회사다.
그런 기업에서 부름을 받은 것이니 귀빈 비슷한 입장이긴 하지만 분에 넘친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만약 다 거짓이고 자신을 어딘가로 납치 중인 것이라면 어쩌나, 하는 불안마저 찾아올 지경이었다.
그런 우물쭈물한 모습을 경호원 사내는 이미 살피고 있었던 듯 보였다.
"금방 도착할 테니 편히 계시죠."
"아, 네."
이런 사람과 대면하는 것 자체로 오히려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한다면 실례일 것이다.
하다못해 D-패드 화면이나 쳐다보고 있으려 해도 해킹을 당한 상태라 제대로 쓸 수도 없으니.
대신 바라본 차창 밖은 푸른 하늘 아래 다른 차량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시시각각 바뀌고는 있어도 딱히 낯설지는 않은 풍경은 썩 보기가 재미있지는 않았다.
"………."
역시 어색하다.
이 침묵을 해소해보기 위해서라도 유진은 입 안에서 맴돌던 의문을 조심스레 꺼내보기로 한다.
"저기, 죄송한데요."
"네."
"가서 뭘 하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본사의 사장님께서 부르셨으니, 그 분을 뵈러 가게 되겠지요."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사장. 그게 누구인지 의문을 가질 것도 없었다.
"사장님? 카이바 사장님이요?"
"그렇습니다."
다음은 한동안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사정을 듣게 될 때마다 들던 의문.
"그렇구나. 언제부턴가 안 보이던데. 어디서는 이미 돌아가신 걸 숨기는 게 아니냐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함부로 믿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말투가 살짝 더 엄중해진 것을 보면 역시 꺼내서는 안 될 질문이었던 듯 하다.
"앗, 죄송합니다. 전 그냥…."
"카이바 님이라면 멀쩡히 살아계시죠. 지금도 열심히 근무 중이십니다."
"그런데 요새는 왜 방송 같은 데에도 잘 안 보이세요? 그 정도로 바쁜 건가요?"
"…이런저런 일이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니 용서해 주시길."
곤란하다면 어쩔 수 없지. 이번엔 자신과 맞닿아 있는 다른 화제를 꺼내본다.
"그럼 혹시 '듀얼 태스크 포스'라는 조직이, 정말로 이 회사에서 세운 게 맞나요?"
경호원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것까지 숨길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레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어쩌다가요? 언제부터?"
"그건 사장님께 직접 여쭤보시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이번 것도 곤란한 질문이렷다. 애초에 관할인 분야조차 아닐 것이다.
괜히 모셔가는 사람 붙잡고 계속 떠드는 것도 예의에 맞지는 않는다고 봤기에 유진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 사장을 직접 만난 순간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할 수밖에.
카이바 세토(海馬 瀬人).
지금의 서문유진과 비슷한 나이 또래에 군수 기업이었다던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사장 자리를 찾이한 인물.
취임 직후부터 자사를 게임 산업을 비롯한 IT 분야 기업으로 과감하게 전환하고, 다양한 기술에 손을 뻗쳐 우주 규모로 기업의 위세를 끌어올린, 여러모로 전설적인 기업인이다.
그런 그가 특히 기술을 집중시킨 분야는 '듀얼몬스터즈'라는 카드 게임. '매직&위저드'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카드를 실체화하는 홀로그램 기술의 결정체 '솔리드 비전', 그리고 선 채로 듀얼을 즐길 수 있게 해준 기기 '듀얼 디스크'라는 기기를 개발하며 게임의 인지도를 더욱 넓히는 데에 공헌해왔다. 그 이전에는 앉아서 솔리드 비전으로 듀얼을 펼치는 '듀얼박스'라는 기기도 내놨다던가.
그렇게까지 한 이유라면 카이바 본인 역시 열정적인 게이머, 즉 '열정적인 듀얼리스트'였기 때문이리라. 세상에 몇 없는 레어 카드로 덱을 만들어 듀얼킹의 자리를 넘보기까지 한 그였다.
신제품 발매나 게임 이벤트 등의 홍보 방송에도 직접 출연하던 그의 모습이 유진의 기억에도 남아 있었다.
훤칠한 풍모로 시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멋들어진 대사를 읊더니 갑자기 위풍당당하게 웃어대던 것을 어찌 잊으랴.
그 기이한 카리스마에 사로잡힌 시청자들은 어느새 그가 가리키는 '듀얼리스트 제군'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하늘을 두려워 하기는 커녕 아예 우주까지 뚫고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건드렸다고 봐도 좋은 남자. 안하무인의 결정체.
게임의 창시자인 페가수스 J. 크로포드가 사라진 현재에는 그 카이바 세토라는 자야말로 '듀얼몬스터즈'라는 게임 프랜차이즈를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한 인물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 예상이나 했겠냐고.'
고작 학생 신분에 아마추어 듀얼리스트에 불과한 본인이 그런 어마어마한 사람을 직접 만난다면 무슨 얘기부터 하게 될지, 유진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정도로 도저히 닿지 않을 것만 같은 격차가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도 어둠의 듀얼리스트라는 존재를 알고 있겠지.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찌를 '태스크 포스'라는 부대를 세웠겠지.
그것까지는 짐작이 가능했지만, 그런 존재들을 그는 직접 만나봤을지, 나아가 결투(듀얼)에서 이겨봤을지가 유진에게는 의문이었다.
거기서 이어지는 의문이 또 하나.
태스크 포스에 속한 사람들이 진즉에 그를 만나봤더라면, 듀얼도 치뤄본 사람이 있을까. 혹시나 그를 이겨본 사람도 있을까.
유노가 그곳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바로 연락을 보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이 검은 쇳덩이에 몸을 싣고서 잠시 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안락해야 할 가죽 시트의 감촉은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 위에 얹어진 손은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오히려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야,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편할리 없으니까.
◇
"안 되네."
아이바 유노는 시동을 꺼놓은 바이크에 탑승한 채 통화 중이던 D-패드를 끊는다.
"아까부터 몇 번을 해도 안 받아. 아니, 그냥 끊기고 있어."
"너도?"
"응. 무슨 일이 생긴 건 확실해."
그녀는 어제 그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분명 리퍼로서 유진과 어둠의 듀얼을 강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런 벌칙도 없이 대화로서 상황을 매듭지었을 터.
잠들 시간까지만 해도 그는 멀쩡히 연락을 보냈으니, 그의 근심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그가 아침부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니.
이전에 말했던 꿈 속의 듀얼이 다시 펼쳐진 것이 아닐까. 나아가 이번에는 그 게임을 이기지 못하고 무슨 일이 생겨버렸다면 어쩌지.
그런 근심이 피어오르던 유노에게, '무슨 일'이라는 말을 곱씹던 아린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유진이, 지금 무사한 거 맞겠지?"
이런 상태로 무턱대고 '그렇다'라 장담할 수 있을리 없다. 유노는 근거를 얻고자 바로 본부 측에 연락을 보내놓은 상태지만 아까 돌아온 답변은 더욱 속을 삭히게 할 만한 것이었다.
"일단 데려갈 사람은 이미 보냈대. 그런데도 안 나오고 있나 봐. 아무 연락도 못 받고 있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고."
대답을 들은 아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머지 학생들이 등교하는 와중에 혼자 카드가 가득 든 가방을 매고 사복을 입은 채 길바닥에 누워 있던 그의 모습을.
척 봐도 이상한 그 일의 전말을, 그는 게임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며 넘겨왔다.
그것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라는 사실을, 방금 전에 유노에게 전해들은 참이었다.
새로 생긴 듀얼 친구라던 그녀는 다 알고 있던 것이다.
"혹시, 어디로 떠나 있는 거 아냐?"
"어디?"
"그러니까, 듀얼할 수 있는 데라면 어디든…."
그녀의 말도 한 편으로는 정답이었다.
한동안 그는 정말로 어디든 듀얼을 펼칠 수 있은 곳으로 끌려가는 처지였으니까. 그 꿈 속만 해도 그렇다.
유노는 그런 식으로 어둠의 듀얼을 치르고 어떻게든 살아남은 유진에게 뒤늦게 보고를 들어야 했다.
그 때마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억지로 계속 싸운다는 선택밖에 할 수 없다. 도망친다는 선택이 허락되지 않으니까.
이번에도 필시 그럴 것이다.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당했으리라는 추측을 내리는 것이 스스로도 두려워진다.
서서히 망가져 가는 걸 막아보려던 시도가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니.
익숙한 연락처에서 전화가 오자, 불안에서 눈을 돌리듯 그녀는 바로 받았다.
"네, 마리아슈 씨?"
"유진 씨라면 지금 출발했대요."
기대하던 답이었을 텐데도 막상 들으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디 있던가요?"
"…아침부터 누군가한테 협박을 받고 약속 장소로 나가 있었다네요. 겨우 탈출해서 돌아온 거래요."
"연락은 어떻게 된 거죠? 방금 전에도 안 됐던데."
"해킹이 있었대요. 통화도 메신저도 먹통이었다고…."
보고를 듣는 순간 이번에도 가슴이 철렁거린다.
우려가 맞아떨어졌으니까.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려던 시도가 헛수고가 된 채 그는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었을 터.
"그 건부터는 사측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하니까. 유노 씨께서는 어느 정도 마음 고생을 덜으셔도 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란해진 채 통화를 끊은 유노는 간결하게 결과를 알려주었다.
"무사하대."
"정말?"
"응."
"어디래?"
유노가 대답에 뜸을 들이자, 이번에는 아린 쪽에서 먼저 추론해왔다.
"지금 네가 가려는 데에 있겠지?"
답이 나올 때까지 그녀의 시선이 떠나지 않으리라. 유노는 시선을 여전히 꺼진 D-패드 쪽에 둔 채 무거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정말 따라가게?"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는지 아린은 바로 대답을 꺼내지 않았다.
"함부로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니야. 아무리 나라도 너까지 들여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지 몰라."
이런 일이라면 자신 역시 들여보내주지 않으리라는 가능성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내가 다음에 차근차근 알려줄게. 내 쪽이 들은 건 더 많을 테니까 조금 더 정확할 거야."
자신이라고 일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쪽이 더 많다.
"굳이 유진이한테 직접 가서 알고 싶으면, 나중에 돌아올 때 물어봐도 되는 거잖아."
자신마저도 그가 돌아와서 대답해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럼에도 느닷없이 연락을 보내오더니 아침부터 나타난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식으로라도 변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일에 함부로 나섰다간 너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유진이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제서야 대답하는 아린에게 유노는 고개를 돌린다.
"나 진짜 아무것도 몰랐어. 그냥 무슨 일이 있구나 하고 생각만 했지. 물어봤자 제대로 답도 못 들었는걸."
이번에는 유노 쪽의 대답이 끊길 차례였다.
"내가 안 물어봤으면 너도 아무 얘기 안했을 거야. 맞지?"
"…위험하니까."
"그건 너한테도 마찬가지 아냐?"
역시 성아린이라는 아이는 영리하다. 학업 성적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아이일 것이다.
그 동안 유진과 서로 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뭔가 수상하다는 걸 충분히 눈치 채 왔을 테지. 그럼에도 솔직한 대답을 듣지 못하니까 계속해서 자신한테 대신 안부를 물었을 터.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일 하고 있는 거고, 유진이까지 도와주고 있는 거잖아. 지금은 걱정되니까 바로 찾아갈 생각인 거고. 맞지?"
아침부터 집에 찾아갔다가 유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기어이 이렇게 유노 앞에 나타나고야 말았다.
이걸 어떻게 넘길지 고민하던 유노는, 그가 아직 약속 장소로 출발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찬가지로 근심에 빠져든 상태였다.
복잡해진 머리로 무슨 대답을 내뱉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의문은 리퍼마저도 좀처럼 해결하기 힘든 분야였다.
다시 입을 닫은 유노에게 재촉하듯 또 한 마디.
"그럼 내 마음 알 거 아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대답해야 할 입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알아. 위험한 일인거. 너만한 힘이 없으니까, 가봤자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될지도 모른다는 거. 그치만 이대로 지켜보기만 하는 건 솔직히 못 버티겠어."
그녀도 별달리 납득시킬 만한 구실이 없으니까 감정에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진심을.
"이건 내 선택이니까, 무슨 일 생겨도 너 탓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부탁할게. 근처에 있게만 해줘도 되니까."
그래봤자 부외자에 불과에 불과하지 않은가. 비밀리에 진행 중인 일에 함부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간 서로만 위험해지는 수가 있다.
'친구'로서 정중하게 집에 돌려보내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경고)도 함께 해서.
그럼에도 그런 당연한 일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그녀가 있었다.
전부 어설픈 온정 탓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 아이를 철저하게 감시의 대상으로만 간주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 편으로 유노는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빠른 선택이 연이어 요구되었던 나날.
그 동안 인간성을 저버린 인간을 철저하게 지워버리는 것에 집중해 온 그녀는, 그렇지 않은 아이를 보고서 망설였다.
결국 그녀는 손을 내밀기를 택하고서, 같이 어떻게 해나갈지를 망설이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자신은 이 선택을 후회하고 있는가.
유노가 무심코 고개를 쳐드니 햇살이 눈에 닿는다. 눈앞의 상황을 마주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따끔한 힐난처럼 느껴졌다.
순간 눈꺼풀을 닫아버린 그녀는 바로 그늘 쪽으로 고개를 떨군다. 여전히 정수리로 따끔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D-패드로 잠시 가려보기도 했다.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자신이 한 선택의 결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은 자신의 부정이나 다름없다. 리퍼가 지적하지 않아도 머리가 알아서 떠올려버리는 사실이었다.
선택 다음에는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그녀는 여전히 그 갈림길에 서 있을 뿐.
시간은 없고, 선택을 번복할 여유도 없다.
"이거 써."
결국 그녀는 못 당하겠다는 듯 여분의 헬멧 하나를 아린에게 내주었다.
"…뭐?"
"얼른 타."
"데려다 줄 거야? 진짜로?"
그리고는 그저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린다.
'감당할 수 있겠나? 저 애까지 책임질 자신이 너한테 있는 거냐?'
그럼에도 머릿속에 들려오는 리퍼의 목소리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있다고 확신할 수가 있을까. 이런 선택을 해놓고 서문유진을 무슨 낯으로 봐야할지 알 수가 없다.
분명 괜찮다고 입으로는 말할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리고 뒤에 앉아있는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도 불안해진다.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탓하지 않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렇게 자신이 겁이 많았던가 하고 스스로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그녀는 엔진에 시동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꽉 잡고 있어."
유노에게 보고를 마친 리자니는 곧장 다음 연락 상대와 통화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확실하겠지?"
"오전에 다른 D-패드를 해킹한 기록이 있었거든요. 로그를 추적해 봤더니 후보 선상에 두던 IP 주소가 나왔네요."
"드디어 걸려드셨나. 근데 지금도 아직 오전일 텐데. 벌써 끝난 거냐?"
"건드린 게 우리 회사 기기고, 해킹 대상이 된 학생 분도 우리 회사에 접촉할 예정이었으니까요. 그 학생을 약속 장소로 유인한 모양이던데, 방금 전에 들어온 보고대로라면 여기로 오기 전에 어둠의 듀얼을 벌일 작정이었나 봐요."
"또 애를 건드리다니. 나간 놈은 어떻게 됐지?"
"학생 분은 무사히 확보했습니다. 지금 현재 회사 쪽으로…."
"아니, 꾀어낸 놈 말이다."
"그거라면 현재 수색 중이네요."
"발 한 번 빠르긴."
수화기 너머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약속 장소는 어디였지?"
"주택가 외곽에 있는 게임센터입니다. 하지만 IP 주인하고 동일인물이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이미 다른 인원이 여기로 투입 중이라서요. 해당 IP의 기록이 최근에 남은 장소를 또 보내드릴게요."
"이번에도 고맙다."
"뭘요. 바로 출발하실 건가요?
"당연하지."
단호한 대답이었다.
"저쪽도 저쪽대로 냄새를 맡았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무슨 행동을 취할지 알 수 없어."
"알겠습니다. 그럼 정보가 추가로 확보되면 따로 연락 드리죠."
"그럴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리자니가 생각하기로, 태스크 포스에 들어오는 인원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우선 정의감을 발휘하여 제발로 들어온 사람, 단순히 이익 관계에 따라 스카웃 되어 들어온 사람. 그리고 뭔지 몰라도 그냥 재미있거나 만만해보여서 들어온 사람.
애초에 그런 인원들이 들어오기 쉬운 구조이기는 했지만, 임무를 시작하면서 경과를 지켜보다 보면 진짜 마음가짐이 들여다보이는 경우가 있다.
즉 속으로는 다른 이유가 있으면서도, 자신은 정의나 보수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 자기암시를 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들이 상대하는 어둠의 듀얼리스트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인물들도 있을 터.
"새삼스럽겠지만, 조심하세요. 오래 버티는 만큼 만만찮은 사람일 수 있으니까."
"그런 놈을 상대하려고 마련한 덱이다. 쉽게 질 생각 없어."
그리고 어떤 유형이 되었던, 오래 살아남는 쪽은 임무 적성이 맞는 사람, 즉 듀얼에 능한 사람이었다.
지금 연락 중인 사람의 경우엔 무뚝뚝해도 조용히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이라는 첫인상이 있었다. 대부분 바쁜 사람들이지만, 막 들어온 시점부터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고 나섰으니까.
실력 역시 그 동안 살아남아서 임무를 완수해 왔다는 경력이 증명하고 있다.
"지금 추적할 인원이, 혹시 위저드인가?"
"글쎄요. 저번 게임에서 목격했다는 리퍼 씨의 제보가 있었는데, 그 게임에서 살아남지는 못한 모양인지라."
"교차 검증된 사항이 아니지."
"리퍼하고 유노 씨가 둘 다 증언한 건데요?"
"어차피 한 몸뚱아리잖아. 나란히 기만 작전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을 텐데."
아까 말한 그 학생도 목격자라는 사실은, 이 자리에서 꺼내기에는 복잡한 이야기 같았기에 일단 언급을 보류하기로 한다.
"정말 아니라면 다른 후보겠지. 역시 직접 확인하는 게 답이군."
냉철해지기 위해서는 매사에 의심을 품게 되는 법. 그렇기에 확신을 얻으려면 제 발로 뛰어서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항상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리자니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잠은 제대로 주무셨나요?"
갑자기 사적인 화제로 흘러가서인지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잠깐의 공백이 생긴다.
"…갑자기 뭐냐?"
"뭐니뭐니 해도 머리 쓰는 게임이잖아요. 피로가 남아 있으면 게임을 하는 데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문제라면 익숙해. 그리고 당신이 걱정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저야, 틈틈이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있으니까. 책상에 앉아 있는 덕분이죠."
"차 안에 히터만 틀어 놔도 잠 잘 공간은 생기지."
"불편하실 텐데."
"편하게 있을 거면 이런 일 시작도 안 했어."
무엇이 이 사람을 악착같이 움직이도록 만들었을지는, 소통할 시간이 많지 않은 이상 상상의 영역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또 있거든 끝나고 나서 들어줄게."
그런 매정한 대답을 끝으로 통화는 끊어진다.
이래뵈도 직접 대화로 하는 순간보다는 길게 이야기를 나눈 편이었다.
D-패드의 통화 기능을 끄고 나서 리자니가 무심코 고개를 드니, 한창 떠오르는 햇살에 눈이 부셔왔다.
지평선을 노랗게 물들이던 태양이 어느새 하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햇빛은 오늘도 공평하고 무심하게 모든 것을 향해 내리쬘 테니, 이변이 없으면 오늘 하루는 맑고 화창하겠지.
그것이 불만이던 고맙던 함부로 쳐다보기라도 했다간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 땅에 붙어 있을 뿐인 미물은 그늘로 피해주는 것이 상책이리라.
'햇살이 눈을 찌르네요. 잠들지 말라고.'
그 전에 리자니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근무 중 낮잠이라는 것이 쉽게 용납되는 처지도 아니고, 잠기운이 남아 있어도 용납될 만한 시간은 이미 지났다.
그렇다면 오래토록 치뤄 온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지금이야 아직 한기가 남아 있는 바깥 공기 덕분에 정신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오후가 되어서까지 그럴지는 걱정이다.
중요한 날이 올지 모르는 마당에 이래서야 곤란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다고 정신이 얼마나 말짱해질지도 알 수 없다.
돌아가서 커피 한 잔이나 또 타 마시기로 하며 리자니는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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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게와 금제라는 숨막히는 타이밍 사이에 조심스럽게 투고합니다
빠른 시일 내로 다음 화를 뵐 수 있도록 하겟슴다
![[팬픽] 유희왕 D-GEN TURN-41_1.png](https://i1.ruliweb.com/img/25/12/20/19b380e2cb320b132.png)
![[팬픽] 유희왕 D-GEN TURN-41_2.jpg](https://i1.ruliweb.com/img/25/12/20/19b3b6d390220b13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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