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허실을 진단한다
문화병 ④ 고급전축
음악보다는 최고품 과시 위해 구입
신흥재벌-재벌2세들이 특히 심해
전직 공무원 50대 C 씨. 기울어진 어깨에 옷차림도 허름한데다 말수도 적다. 무슨 일에나 크게 관심도 표시하지 않고 욕심도 없는 C 씨지만 한 가지만은 남다르다. 바로 좋은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음질을 감상한다는 편이 더 적절하다.
자주 드나드는 서울 충무로 N 전파상에 물건이 새로 들어올 때마다 그는 거의 미친다. 지금은 다른 것으로 마련했지만 오랫동안 숙원이던 매킨토시(앰프의 상표이름)를 마련했을 때는 기계가 황홀해서도 잠을 못 이루며 석 달을 만지고서야 자신이 찾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소중한 기계는 절대 다른 사람이 만지지 못하게 해 그의 부인은 그러한 그가 아주 못마땅하다.
지금 그가 5평 면적의 방에 가지고 있는 설비는 턴테이블과 앰플리파이어, 스피커 모두 한 해 시가 1천만 원 정도. 6개월 전에 쓰던 것에 웃돈을 얹어주고 바꾼 것인데 우리나라 음악감상실에서는 최고의 설비인 50평 면적의 클래식 전문 R 음악감상실보다 더 좋은 시설이다. 물론 C 씨의 형편으로는 확실히 무리이고 얼마쯤은 아직도 부인 모르는 빚이 있다. 부인은 그 가격을 정확히 모른다. 다만 더 급한 것이 있는데도 전축이나 음반에 돈을 쓰는 남편을 이제는 반쯤 체념한 상태에서 바라만 보고 있다.
C 씨처럼 음악에 미쳐서(?) 또 음질을 알기 때문에 분에 넘치는 줄 알면서도 오디오 설비에 무리를 하는 문화병 환자들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예비역 장성으로 현재 모 회사 중역 N 씨는 얼마 전 친지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전축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벌개지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모두들 자기 집 전축 자랑을 했기 때문이다.
당장 친구가 소개해 준 전파상으로 달려가 100만 원 정도로 마련을 해 달라고 해 먼지만 쌓였던 고물 전축과 바꿨다.
그러나 N 씨 집 전축은 그 후에도 먼지투성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는 차분히 음악을 들을 정도로 여유 있는 사람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어쩌다 한 달에 한두 번, 그것도 N 씨가 기분 좋게 술에 취해야만 겨우 이미자(李美子)나 조미미(曺美美)의 노래를 소리높이 틀 때만 뚜껑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신흥재벌들이나 재벌 2세들로부터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은 장식품으로 고급전축을 마련한다. 음악을 좋아하기보다는 내 집에 이만한 고급전축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조그만 회사의 사장인 S 씨의 경우는 좀 다르다. 기계를 좋아하는 부하 직원의 지도를 받아가며 기계를 열심히 사 모은다. 비싼 것일수록 값이 올랐으면 올랐지 절대 떨어질 리가 없는 외제 오디오 설비를 몇 세트인가 쌓아두고 있는 그는 요즘도 부지런히 충무로를 돌아다니며 체크를 하고 좋은 물건이 나온다는 정보만 돌면 지체없이 예약을 한다.
오디오 설비에 필수적인 음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좋은 카트리지를 쓸수록 디스크도 좋아야 제소리가 나므로 디스크도 오리지널이 아니면 안 되는데, 외국에서 오는 여행자라도 5장까지밖에 통관시켜주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원판은 비싸기도 비싸거니와 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흘러나오는 원판들은 진짜 그 곡을 들으려고 간곡히 부탁했던 음악도의 귀에 그 디스크가 나왔다는 이야기조차 들어가기도 전아 누군가가 비로 쓸듯이 싹 쓸어간다.
이렇게 가져갔던 레코드들이 도로 나올 때가 있다. 얼마 전 어느 회사 사장이 미국으로 이민 가며, 3천여 장의 컬렉션을 내어놓았는데 반 이상이 뜯지도 않은 새것, 오페라 전곡 같은 것은 특히 그랬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물건들이 대부분 부정외래품인 탓. 그러나 이 외래품들도 얼마 전부터는 품귀 상태다.
어쨌든 웬만한 고급 설비도 갖추고, 디스크라도 몇백 장 꽂아놓게 되면 이번에는 고민이 생긴다. 바로 아는 체해야 하는 고민이다. 올바른 수집가라면 디스크를 그 정도 모으는 동안 자연히 축적되는 음악적 소양이 있게 마련.
모르고서는 듣기 어려운 것이므로 대개 오디오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고 하면 그 세계에서는 어느 수준 이상의 음악 지식이 있다는 대접을 받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자신의 기호나 감상 능력과는 관계없이 반은 자기 과시로, 반은 투자로 여기는, 자기집 디스크에 무슨 곡이 담겼는지도 모르는 이들은 따라서 항상 전전긍긍하게 마련. 바로 계속 투자는 해야겠고, 자신의 교양(?)을 과시는 해야겠는데 지식은 달리니 일본에서 나오는 전파잡지, 음악을 좀 안다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어, 자기 견해라고는 하나도 없이 자시는 써 보지도 않은 기계를 혹평하고 자신은 들어보지도 않은 외국의 피아니스트 아무개는 터치가 어떻다느니 누구의 지휘가 어떻다느니 하는 공허한 음악애호가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무릇 예술이란 인간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하고, 예술을 감상함으로써 인간은 더욱 소박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쯤 되면 음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자칭 음악애호가들은 음악을 자기 정화가 아닌 허욕과 자기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지…….
〈김근희(金根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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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3월 19일 자 조선일보
지금도 딱히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 인간은 참 변하지를 않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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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랬지.... 그리고 저런건 8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음 아마....LD나왔을때 까지도 계속됐을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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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랬지.... 그리고 저런건 8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음 아마....LD나왔을때 까지도 계속됐을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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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도 보급화됬던건 라디오 정도였지 개인 영역까지 가려면 90년대 가야되고 | 25.12.21 04:5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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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저위에 스피커랑 앰프인가? 설마... | 25.12.21 06:1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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