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영토 주권을 일부 상실한 상태였고
그에 대한 상실감이 드레퓌스 사건으로 표출될 정도로 국민 내부의 결속도 취약했음
정치적으로도 왕당파 세력은 소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남아 있었고
공화주의자들 안에서도 온건파/급진파가 나뉜 데다가
찐 급진파들은 아예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자고 했으니
어쩔 수 없니 온건/급진파 공화파들이 연합해서 사회주의자랑 왕당파 두 세력을 압도해야 하는 정국이었고
거기다가 왕당파 세력이랑 결탁한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지방의 토지랑 학교를 장악해서
장래의 국민이 될 아이들에게 공화주의 교육이 미치는 걸 막고 있었고
공화주의자들이 공화국 전통을 세우려고 혁명기념일을 만들었을 때도
기념하는 데 참여하지 않고 2차 대전이 종결될 때까지 3공화국 체제를 인정하지 않았음
우리의 입장이 결국은 일뽕/중뽕 반민족세력을 토벌하고
운동꿘/윤어게인 세력을 정계의 극소수 변방으로 몰아내고
자유민주주의의 대의 절차와 참여를 존중하는 온건 세력이 주축이 되는 정치를 하자는 건데
그래도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여러 선거에서 연달아 이겨서 공화국 체제를 안착시키기라도 했지
우린 그때 프랑스로 치면 빨갱이가 1당, 왕당파 반동주의자들이 2당, 공화주의자가 극소수파나 한가지니까
그때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이랑 닮았으면서도 오히려 더 위태로운 상황인 거 같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