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기록형 DVD 규격 전쟁
가전시장 선점 불붙었다
RAM형 도시바-마쓰시타-히타치 ‘연합’
RW형 소니-휴렛팩커드-필립스 ‘동맹’
【도쿄=박정훈 기자】 AV(오디오-비디오) 가전 시장의 ‘제2차 규격 대전(大戰)’이 본격 개전됐다.
무대는 일본 가전업계. 전장(戰場)은 21세기형 ‘꿈의 영상기기’로 불리는 반복 기록형 DVD(디지털 비디오 디스크) 시장이다.
70년대 말 VTR 규격을 둘러싸고 촉발됐던 ‘제1차 규격 대전’에 이어 20년 만에 재연된 세계대전 급 격전이다.
싸움은 ‘DVD-RAM 연합군’과 ‘DVD+RW 동맹군’ 간 전면전 양산으로 전개되고 있다. 선제공격에 나선 쪽은 도시바와 마쓰시타, 히타치를 주축으로 하는 DVD-RAM 연합군 측. 이들 회사는 서로 규격을 통일시킨 DVD-RAM 제품을 지난 4월부터 발매, 시장 선점을 위한 진격을 개시했다.
이에 대항해 AV 시장의 리더 소니는 필립스(네덜란드), 휴렛팩커드(미국)와 손잡고 DVD+RW 동맹군을 결성했다. 동맹군 측은 별도 규격의 DVD+RW 제품을 올가을부터 시판, 반격에 나선다는 계획. 피차 생사를 건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두 진영의 제품 규격은 호환성이 없게 설계돼 있다. 기록 구조 체계나 트랙 간격 등이 서로 달라 소프트웨어도 별도로 제작해야 한다. 일본 가전업계에선 오랫동안 규격 통일을 위한 협상이 진행돼 왔지만, 소니가 이를 박차고 나와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이같은 두 진영의 대립은 기존 CD(콤팩트디스크) 시장의 기득권을 둘러싼 이해관계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현재 CD 시장을 장악해 막대한 라이선스 수입을 올리고 있는 소니는 그 기득권을 가능한 한 오래 끌고 가길 원한다. 그래서 DVD+RW도 CD-RW(CD롬에 기록 기능을 추가한 제품)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설계됐다.
반면 CD 시장에서 고전했던 다른 메이커들은 가능한 한 빨리 ‘CD 시대’를 종식시키고, ‘DVD 시대’로 넘어가려는 전략이다. CD와는 전혀 별도 규격인 DVD-RAM 규격을 채택한 것도 ‘지는 게임’을 끝내고 새로운 분야에서 싸움을 벌이려는 전략에서 나온 것.
가전업계에서 DVD 규격 전쟁은 ‘20세기 최후의 전쟁’으로 불리고 있다. 승리하는 쪽이 DVD 시장뿐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가공할 규모의 소프트웨어 시장까지 장악하게 되기 때문. DVD가 현재의 VTR를 대체한다고 생각하면 그 시장 규모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일본 국내만 쳐도 2000년엔 3조 엔 시장이 된다고 한다. 2001년엔 전 세계에서 1억 2천만 대의 DVD 기기가 팔릴 것이란 전망도 있다. 여기에다 소프트웨어까지 합치면 “DVD의 승리자가 세계의 음향-영상산업을 거머쥔다”는 업계의 얘기가 과장만은 아니다.
VHS 방식과 베타 방식이 전면전을 벌였던 70년대 말 ‘VTR 규격 전쟁’ 때는 소니의 대패(大敗)로 끝났었다. 당시 베타 방식의 기술적 우위성만 믿고 세력 규합을 소홀히 했던 소니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그 20년 뒤 벌어진 20세기 최후의 규격 전쟁은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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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08일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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