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의 죽음은 촉의 정치의 엄청난 영향을 준 사건으로 그 여파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는 의견을 쓸려고 합니다.
제갈량 사후 정권 계승
제갈량의 평소 은밀한 뜻은 양의의 성정이 견협(狷狹-성미가 급하고 편협함)하다 하여 장완(蔣琬)에게 뜻을 두었으니 마침내 장완이 상서령, 익주자사가 되었다. 양의는 중군사(中軍師)에 임명되었으나 통령할 바가 없어 종용(從容-여유로움,한가함)할 뿐이었다.
당초, 양의가 선주(先主)의 상서가 되었을 때 장완은 상서랑(尙書郎-상서의 속관)이었고, 그 뒤 비록 둘다 승상 참군, 장사가 되었으나 양의는 매번 제갈량을 수행하며 노극(勞劇-번다하고 무거운 임무)을 맡았으며, 스스로 연환(年宦-나이와 관직)으로 장완에 앞서고 재능도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양의전
제갈량은 또 은밀히 표를 올려 유선에게 말했다.
"신에게 만일 불행이 있게 된다면, 훗일은 응당 장완에게 맡기십시오."
-장완전
『익부기구잡기(益部耆舊雜記)』에 이르길: 제갈량이 무공(武功)에서 병세가 악화되자, 후주는 이복을 파견하여 병세를 알아보고, 이후로의 국가를 위한 계책에 대해 상의하고자 했다. 이복은 가서 빠짐없이 임금의 뜻(聖旨)을 전하여 제갈량의 말을 듣고 헤어져 며칠을 가다가, 돌연 (제갈량이 말해준)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리하여 말을 달려 제갈량을 보러 돌아갔다. 제갈량이 이복에게 말하길,
“나(孤)는 그대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알고 있소. 근 며칠동안 말을 주고 받았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이 있으니 다시 와서 결론을 듣고자함이오. 그대가 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공염(公琰= 장완)이겠지요.”
이복이 사의를 표하며 묻기를,
“이전에 공(公= 제갈량)께 묻고자 했던 것을 잊어버렸었는데, 공의 백년(百年: 여기서는 제갈량의 사후) 뒤에는 누구에게 대사(大事)를 맡겨야(任) 하겠습니까? 그것을 묻고자 다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청컨데, 장완(蔣琬) 뒤에는 누구에게 맡겨야 됩니까?”
제갈량이 답하기를,
“문위(文偉= 비의)에게 이어받게 한다면 적합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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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자신을 비밀리에 후계자로 했다고 주장해서 양의를 제치고 정권을 잡습니다.
제갈량이 비밀리에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내용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황제 유선의 신임을 받아서가 아니고 제갈량의 권위를 빌려서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 하는 부분이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제갈량이 죽자 장완을 상서령(尚書令)으로 임명했으며, 오래지 않아 관직을 더하여 도호를 대행(行都護)하도록 했다. 이어 장완에게 부절(假節)을 주고, 익주자사를 겸임(領益州刺史)시켰다. 장완은 승진하여 대장군(大將軍), 녹상서사(錄尙書事)가 되었으며 안양정후(安陽亭候)로 봉해졌다.
(중략)
연의 원년(238)에 유선이 장완에게 조서를 내렸다.
(전략)
그대는 전쟁 준비를 하여 군사들을 통솔(總帥諸軍)해 한중에 주둔하고, 오나라의 행동을 기다렸다가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호응하여 틈을 타서 행동하라.
또 장완에게 부서를 개설(開府)하도록 명령했다. 다음 해에 장완에게 관직을 더해 대사마(大司馬)로 승진시켰다.
(중략)
장완은 명을 받들고(承命) 상소(上疏)를 올려 말하길:
- 세상에 만연한 독을 제거하고 재난을 없애는 것은 신의 직책이 처리할 일입니다. 신이 명령을 받아 한중에 주둔한 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장완은 곧 부(涪)현으로 돌아가 주둔했고, 이후에 질병이 더욱 심해졌다.(후략)
연희 9년(246)에 세상을 떠났다.
-장완전
제갈량이 죽자 비의는 후군사(後軍師)로 임명되었다. 그 얼마 뒤에 장완(蔣琬)을 대신하여 상서령(尙書令)이 되었다.
장완이 한중에서 부(涪)로 돌아온 뒤 비의는 대장군(大將軍) 녹상서사(錄尙書事)로 올랐다.
-비의전
상서령 장완은 익주자사를 겸임했을 때, 상소를 올려 비의와 동윤에게 자리를 양도하려고 했고, 또 유선에게 상소를 올렸다.
(중략)
연희 6년(243)에 보국장군(輔國將軍)을 더했다. 7년(244)에 시중수상서령으로서 대장군 비의의 차관이 되었다. 9년(246)에 세상을 떠났다.
-동윤전
연희(延熙) 원년(=238년), 대장군(大將軍) 장완(蔣琬)을 따라 한중(漢中)에 주둔하였다. (장)완이 대사마(大司馬)로 오른 뒤에 (강)유를 사마(司馬)로 삼으니 수차례 편군(偏軍)을 인솔해 서쪽으로 침입하였다.
(연희) 6년(=243년),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영(領) 량주자사(涼州刺史)로 올랐다.
-강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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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완시기 촉은 장완,비의,동윤이 정권의 핵심 인물로 보여지면
장완은 부서를 개설해서 부로 돌아가기 전가지는 한중에 쭉 주둔했습니다.
246년 장완,동윤이 죽는 상황이 발생하고 비의가 집권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
(연희) 11년(=248년), 나가서 한중(漢中)에 주둔하였다. 장완으로부터 비의에 이르기까지 비록 스스로 몸은 (수도) 바깥에 있었으나 경상형위(慶賞刑威,포상과 형벌)를 모두 먼저 멀리 (그들에게) 자단(諮斷,자문하여 판단함)한 연후에 실행하니 그들을 추임(推任,높이 받들며 신임함)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뒤에 (연희) 14년(=251년) 여름에 성도(成都)로 돌아왔는데, 성도(成都)의 망기(望氣,기운을 살펴 길흉을 점침)하는 이가 도읍에 재상(宰相)의 자리가 없다고 말하였으므로 겨울에 다시 북쪽으로 가서 한수(漢壽)에 주둔하였다.
연희 15년(=252년), 비의에게 개부(開府)하도록 명하였다.
(연희) 16년(=253년) 세수(歲首,새해 초)에 큰 모임(大會)이 있었는데 위(魏)의 항인(降人)(→위나라로부터 항복해온 사람) 곽순(郭循)(※)이 그 자리에 있었다. 비의가 환음(歡飮)하여 몹시 취하였다가 곽순이 지니고 있던 칼에 해를 입었다. 시호를 내려 경후(敬侯)라 하였다.
-비의전
동윤(董允)을 대신하여 상서령(尚書令)이 되었는데, 각종 사무가 남아있지 않았으며 문에서 기다리는 빈객도 없어졌다.
(중략)
연회 14년(251)에 여예는 세상을 떠났다.
-여예전
비의(費禕)는 그를 매우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동윤의 뒤를 이어 군주를 가까이서 모시도록 했다. 여예(呂乂)가 죽은 후, 진지는 또 시중수상서령이 되었으며, 진북장군을 더했다.
-진지전
[246년에 장완이 죽은 뒤] (연희) 10년(=247년), 위장군(衞將軍)으로 올라 대장군(大將軍) 비의(費禕)와 함께 상서의 사무를 총괄하였다.
(중략)
매번 군대를 크게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비의(費禕)가 늘 재제(裁制)하며 따라주지 않아 그에게 만 명을 넘지 않는 병력을 주었다
-강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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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는 여예,진지를 중용했고 한중에 주둔했는데 여예가 죽은 251년에는 한수에 주둔했습니다.
장완,비의는 제갈량이 자신을 선택했다라고 주장한걸로 집권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후임자들은 그것을 주장하기 힘듭니다.
미래를 맡길 젊은이를 양성하는 것은 실패하고 기존에 있었던 인재를 활용했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르는 상황에서
비의가 암살 당합니다.
///
대장군 강유(姜維)는 비록 계급은 진지보다 높았어도 항상 군대를 이끌고 밖에 있었으므로 조정의 정사에 직접 참여하는 일은 드물었다.
진지는 위로는 황제의 뜻을 받고, 아래로는 환관과 사귀었으므로 유선의 신임과 총애를 깊이 받았으며 실권은 강유보다 컸다.
경요 원년(258)에 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유선은 비통해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조서를 내렸다.
-진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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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 16년(=253년) 봄, (비)의가 죽었다. 여름, (강)유가 수만 명을 이끌고 석영(石營)으로 출병
(중략)
(연희) 19년(=256년) 봄, (사자가 종제로) 나아가 (강)유를 올려 대장군(大將軍)으로 임명했다.
-강유전
여름 4월, 위장군 강유가 다시 군사를 이끌고 남안(南安)을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후주전
연희 18년(255)에 위장군(衞將軍) 강유(姜維)와 함께 성도로 돌아왔다
강유가 다시 출병할 것을 제의했을 때, 오직 장익만이 조정에서 논쟁을 하여, 국가가 작고 백성들은 피곤하므로 병력을 남용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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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가 죽은 이후는 촉 내부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시기에 비교하면
첫번째로는 진지의 실권이 높았던 이유는
진지는 비의가 중용했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지의 실권이 큰 이유는 대장군 강유가 밖에 있고 유선의 신임과 총애를 깊이 받았다 라고
제갈량을 집권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삼던 이전과 다르게 유선의 신임과 총애가 중요한 사유가 되었습니다.
두번쨰로는
실권은 진지가 강할지라도 명목상 계급은 강유가 높습니다.
그리고 주로 한중에 집권자가 주둔했던 이전과 다르게 진지는 한중에 주둔하지 않았습니다.
진지가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모르겠지만 자신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더이상 장완,비의 시절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포기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결과 한중에 있는 강유에 대한 통제력은 이전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줄어들었던걸로 보입니다.
검색을 해본 결과 청두시에서부터 한중까지 424km정도 됩니다.
비의가 죽은 게 1월로 보이고 4월 출병한걸로 후주전에서 기록하니
하루에 100km정도 간다 가정하면 왕복에만 8일정도 걸린다하고 조정에서 논의하는 시간+대규모 군대를 준비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조정의 의지라고 보기는 힘들고 강유의 의지가 강하게 보이는 걸로 보입니다.
이후에 강유에 대해서 탄핵여론이 강했던 것과 대비되게
255년에는 조정에서 장익만이 논쟁했는데
이거에 대해서 여론이 강유의 정책을 지지했다는 설은 장완,비의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고 강유가 북벌에 실패하니
강유를 대체해서 북벌하자고 주장한게 아니니 저는 이주장은 배격할려고 합니다.
256년에 대패해서 강유의 권위가 실추하기 전이라는 점과
비의 암살이후에 강유에 반대할 무게감 있는 인물이 없어서 강유의 출병에 대해서 논쟁할 인물이
비의사후부터 255년까지는 없어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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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개인적으론 미안한 말이긴 한데 너무 추측이 많고, 제갈량 행동을 일부분만 가져와서 논리를 채우는 듯한 느낌이라서... 무엇보다 느끼는건, 굳이 그렇게 까지 해서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 치곤 뭔가 싱겁고 밋밋한게 문제이긴한듯 뭐랄까, 얘네들 사실 음흉한 놈이에요 해서 아니그럴리가 있나! 또는 오 그렇겠는데? 하면서 뭐라 얘기할만큼의 무언가가 아닌듯한 느낌? 아무래도 처단된 애들이 위연이랑 양의라는 점에서 그런 점이 큰것 같긴함. 무고한 희생자라기 보단 분탕 둘 음모론 적용해도 정치싸움에서 너무 쉽게 져버린 피라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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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마냥 강유 탄핵여론이 많은게 사서에 많긴 하지만 별개로 한가지 걸리는게 있음, 왜 그런 의견이 지속됨에도 초주와 진지가 지은 '구국론'에 대해 사람들이 무시했는가? 개인적으로 숨은 음모론이나, 정쟁암투같은걸 조명하는건 좋은데, 그건 본인이 까고 싶은쪽뿐만 아니라 반대쪽에도 적용을 하여야한다고 봄 | 25.06.03 00:0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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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강유가 정치나 조정에서 멀어져서 밖에서 군대를 돌리고 있다면 당연 기록을 관리하거나 편찬하는 쪽에서도 상당히 멀어져있을텐데, 그럼 이런 쪽에선 기록에 대한 편향성이 없는가? 이런게 궁금하긴 함 | 25.06.03 00:0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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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시 사람들은 초주(譙周)는 그 시대에 맞는 재능이 없다고 말하며 그를 존경하는 자가 적었지만, 양희만은 그를 중시하였다. -양희전 초주 관련해서 여러가지 말이 많은데 일단 구국론에 대해서 사람들이 무시한 이유는 잘모르겠지만 촉내부에서 초주에 대한 여론이 안좋은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음 | 25.06.03 00: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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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으로 후계자를 장완으로 지명해서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하지 않는게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기 떄문임. 장완-비의 정권 승계 과정을 보면 장완시기에 비의는 요직에 있었고 장완이 건강이 안좋아지니 대장군 녹상서사 자리를 주었고 유비-제갈량도 녹상서사 가절로 삼고 장비가 죽고 사례교위를 겸하게 했는데 유독 제갈량-장완은 시기에는 그런 조치가 부족함 양의가 노극을 맡았으며 연환이 앞서기 때문에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분란이 발생하기 쉬운데 그런 조치는 개인적을 부족해 보임 이엄을 처리할떄 제갈량을 보면 납득하기 힘든 부분임 | 25.06.03 00: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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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엄을 처리할 때 굉장히 꼼꼼하긴 했지만, 이는 별개로 이엄이 자꾸만 선을 넘었기에 어떻게든 탄핵시켜야한다는 각을 본 이상 그런거라고 보는데. 물론 꼼꼼한 사무처리는 제갈량이 특징이긴하지만, 자신의 사후 후계자의 사후 후계자까지 면밀히 체크해서 뭔가 했다 안했다는 알수없다고 봄, 제갈량이 할 업무가 한 두개가 아닌지라, 몇개는 적당히 하던 것도 있고. 남중에서 물자만 가져오는 선에서 그만둔다던가 사관을 두지않는다던가. | 25.06.03 00:2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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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애초에 제갈량이 후계자를 정리할 시간이 있었냐면 또 그것또한 아니라고 느낌 제갈량이 어디서 죽었는지 알잖아. | 25.06.03 00:3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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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거기까지 생각했으면 본인 수명이나 건강 생각해서 북벌도 멈추고 내부안정화에 후계자 선정부터 했겠지, 제갈량 이런부분에서 꼼꼼하지 않으니까 제갈량답지 않다, 나름의 음모가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어찌보면 전쟁나간것부터가 꼼꼼한 행동이 아니라서 어느정도는 반박이 되는 것이라고 봄 | 25.06.03 00:4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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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또 하나 문제점이 있다면, 그런 음모론이 제기될정도로 장완과 비의를 대신할 유력자가 있었냐는건데... 있었었나 싶음. | 25.06.03 00:4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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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제갈량의 집권기간이 짧은 수준은 아니기도 했고 후계자 선정 과정이 이상하게 해서 분란이 발생한 경우가 많은데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연환이 앞서는 양의 제끼고 장완을 밀었는데 그거에 대해서 조치가 부족한 것은 제갈량을 엄청 저평가해야 할 요인 같은데 장완과 비의가 양의 제거하고 정권 잡았으니 동기는 충분한거 같고 익부기구잡기 신뢰성은 넘어가고 이복이 중요한 제갈량이 병세가 심각해져서 파견한 사신인데 제갈량 사후 대사를 맡길 인물을 물어보지도 않았다가 갑자기 돌아가서 물어보는게 장완,비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끝이라는 기록이라든가 제갈량이 장완을 은밀히 밀었다고 주장한것을 그대로 신뢰하는 것보다 차라리 장완이 그렇게 주장하고 정권을 잡았다 이게 더 신뢰하기 쉽다고 생각함 | 25.06.03 00:5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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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기록에 어느정도 신빙성이 의심되면 의혹은 제기해도 된다고 보지만 이건 좀 너무 갔다는 생각이 듦, 오히려 어쨌건 자신 생전에는 써먹어야했던 양의와 위연의 성격을 고려하면 대놓고 공표하면 제갈량 입장에선 결국 하나를 버려야한다는 거지, 웃긴게 님이 말한 이엄일화가 이걸 어느정도 설득력 있게 해줌 이엄같은 경우에도 선을 계속 넘었지만 여러이유로 곧바로 탄핵하지 않고 냅두다가 참다참다 터진거니까. | 25.06.03 01: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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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이엄은 제갈량과 함꼐 유비한테 유조를 받은 무게감 있는 사람이라서 쉽게 건들이기 힘든 사람이고 양의,위연,장완 이런 사람들은 제갈량보다 명백히 아래인데 이엄 탄핵을 바로 안했다는 걸 이쪽에 적용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음 | 25.06.03 01:0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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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기록이 양의랑 위연을 모함하고 있더라도, 결국 다른건 몰라도 양의랑 위연은 서로 싸워댔고 양의가 위연을 담구는데 적극적이었다는건 변함이 없음, 적어도 한쪽은 버림패라고 할 수밖에. 적어도 군바리였던 위연은 몰라도 양의쪽이 수술당하고 기록도 모함 당했을수도 있겠지. | 25.06.03 01:0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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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인재부족, 정말로 양의와 위연을 제친다는 포고를 공고히 할경우 터지는 리스크가 더 클수도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생각함. | 25.06.03 01:0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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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별개로 장완이랑 비의 자체가 그러한 과정을 거친 권력찬탈자, 강탈자라는 것과는 좀 거리가 멀어보이는 성격의 재상이라서... 저기 저 오나라쪽이나 위나라쪽의 권력 획득에 성공한 권신들의 무빙이 워낙 적나라해서 그런지도 모르지. | 25.06.03 01:1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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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 25.06.03 01:1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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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미루기만 하는 것은 자기 생전만 생각하면 맞겠지만 사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저런 태도는 분쟁이 발생해서 큰 손실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음 제갈량 사후에 위연,양의가 나가리 되는 과정등을 보면 이게 진짜로 제갈량의 의중이면 제갈량을 크게 저평가할 요소라고 생각함 오일 이야기는 장완이 정권 장악하고 오일 꼬드겨서 양의가 분란 일으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의도가 강하지 않을까 이걸 이야기 할려고 하는데 일단 추측이기도 하고 주제에 벗어난 느낌이 있어서 삭제했음 | 25.06.03 01: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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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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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개인적으론 미안한 말이긴 한데 너무 추측이 많고, 제갈량 행동을 일부분만 가져와서 논리를 채우는 듯한 느낌이라서... 무엇보다 느끼는건, 굳이 그렇게 까지 해서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 치곤 뭔가 싱겁고 밋밋한게 문제이긴한듯 뭐랄까, 얘네들 사실 음흉한 놈이에요 해서 아니그럴리가 있나! 또는 오 그렇겠는데? 하면서 뭐라 얘기할만큼의 무언가가 아닌듯한 느낌? 아무래도 처단된 애들이 위연이랑 양의라는 점에서 그런 점이 큰것 같긴함. 무고한 희생자라기 보단 분탕 둘 음모론 적용해도 정치싸움에서 너무 쉽게 져버린 피라미 느낌 | 25.06.03 01:30 | | |
(IP보기클릭)6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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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실제 제갈량은 연의처럼 신묘한 수로 정적을 제깍 제깍 자르는 인물이 아니라,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짜내서 목표를 이룰려던 인물이라 이상할것도 없음 북벌의지가 계속 있었고 죽기 직전까지 계속 지속했으니까, 그러니까 위연이나 양의나 나가리 못시키고 살아있었던거고 저평가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데 님 말대로 저평가해도 딱히 별 문제는 없다고 보기도 함. 솔직히 음모론보단 전쟁준비로 거기까진 제대로 못준비했다가 말이된다 봐서 | 25.06.03 01:3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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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여튼 이야기는 재밌었음. 다만 역시 장완 비의라는 인물들이 뭔가 권신으로서 음흉한 모습을 재상때 보여준 느낌은 아니라서 뭔가 음모론이 전부 맞는 가정하에도 맛이 밋밋한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음. | 25.06.03 01:3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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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싸움에 쉽게 저버렸다기에는 촉의 기록만 보면 위연건은 잘못하면 북벌군이 위험해지는 상황이었는데 겨우 수습한거고 양의는 장완이 요직을 차지하고 독한중으로 오일을 임명한 시점에서 할 게 없는 상황이고 후계자를 공고히 했을 떄 생길 손해와 실역사에서 발생가능 했던 위험성을 생각하면 제갈량의 정치적인 지능을 너무 낮게 보는 거 아니면 믿기 힘들다고 생각함 비의시절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재 수급이 안되는게 뻔히 보여서 붕괴되는게 시간 문제인 시한부 체제를 유지할려고 무의미한 노력을 하는데 암살로 펑하고 터지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여에,진지도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으니 비의가 자연사했으면 충격은 적긴 했어도 기존에 했던 방식은 더이상 안되지 않을 까 싶음 | 25.06.03 01:4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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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긴 한데 인물 개개인을 보자면 위연은 막상 명분 싸움으로 모랄빵 나서 군인들 죄다 흩어져버렸고 양의는 님이 말하는데로 이미 진 상태라 뭐 더 말할 것도 없고 말 그대로 정치적으로 쳐발린거라 내 표현엔 이상할 거 없다보는데 그리고 아까 말했듯 제갈량에겐 남은 시간 따윈 없었고 말이야, 솔직히 딱히 제갈량을 내가 신이라고 부르짖는 것도 아니고 한계도 있다고 생각해서 후계건 관련해서 비판하는 건 뭐 그러려니 하다고 봄 어디까지나 난 음모론이 이상하다고 했지 제갈량의 후계선정과정을 비호하려는건 아닌지라. | 25.06.03 01:5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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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님 이야기대로라면 본래 제갈량은 장완 비의한테 권력을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는건데 그럼 다음 자리는 양의였고 군부는 위연쪽이 맡았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감? | 25.06.03 01:5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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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솔직히 님 의견에 가장 회의적인건 내가 정사 읽으면서 느끼는 이 양의의 행적 전반이 모함이나 조작당했다고 말하는 느낌이라 그럼, 여러모로 인성하자가 너무 느껴지는 양반이라 이걸 단순 모함의 피해자라고 하기엔 뭔가가 애매모호혀. | 25.06.03 02:0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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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장완이 주장한게 거짓이라 한다면 누군가에게 정권을 물려준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에 가깝지 않을 까 싶음. 양의,위연, 장완 이런 개인한테 정권을 계승시킨다 이런생각을 안했을거 같음. | 25.06.03 02:0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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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6278762111
그런걸 고려하면 오히려 제갈량이 막판에 뭐라도 하고 간거라고 봐야지, 음모론으로 죽기전까지 아무것도 안했다... 이러면 그냥 더 능력치 떨어지잖슴. | 25.06.03 02: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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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그리고 그게 맞다면 제갈량 선택대로 결국 장완이 양의를 지지하여 위연을 처리하고 그 다음 양의도 제대로 처리했으니 딱히 선택이 틀렸다고 볼순 없다고 보는데. | 25.06.03 02:0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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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라면
제갈량같은 경우가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한다면 제갈량 사후에 누군가가 제갈량이 했던 것처럼 정권을 계승하는 것보다 노멀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음. | 25.06.03 02:07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