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
1992년 봄.
벚꽃은 만개했고, 교정은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유영숙에게 봄은 그저 또 하나의 계절일 뿐이었다.
입학 이후 세 번째 봄.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해. 여전히 혼자였고, 여전히 조용했다.
왕따. 고추 달린 년. 변태. 괴물.
그 단어들은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았다.
단지 이따금씩 마음 한쪽에 조용히 내려앉는, 오래된 먼지처럼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조용히 강의실로 향하던 그날,
노란빛이 도는 긴 생머리를 질끈 묶은 한 여학생이 그녀 앞에 뛰어오더니, 숨을 고르며 환하게 웃었다.
“언니! 저기요, 언니 맞죠? 진짜 너무 예뻐요!”
유영숙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숨을 헐떡이며 뭔가 쑥스러운 듯 말을 덧붙였다.
“립스틱 뭐 쓰세요? 색이 너무 예뻐서…”
“…어… 난 립 안 발라.”
영숙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금세 사라졌다.
여자는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해맑게 웃었다.
“와… 타고나셨구나. 진짜 부러워요!”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숙의 옆에 딱 붙어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영숙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날 이후 그 여자는 매일같이 그녀를 따라왔다.
이름은 박가원. 92학번. 나이는 두 살 어렸고, 1년 재수했다는 말도 했다.
밝고, 긍정적이고, 엉뚱하고, 그리고 조금은 철없었다.
“언니, 오늘 저랑 밥 먹어요. 어차피 혼자 드실 거잖아요.”
“언니, 이거 봐요. 이 만화책 진짜 웃겨요.”
“언니, 그 사람들 말 신경쓰지 마요. 그런 말 하는 애들이 문제지, 언니가 뭘 잘못했어요.”
가원은 그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유영숙은 처음엔 경계했고, 그다음엔 피했고, 그다음엔 당황했고…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이 아이는, 왜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처음엔 동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원의 눈동자엔 단 한 번도 그런 기색이 없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조용한 구석자리에서 둘이 김밥을 나눠먹고 있을 때, 누군가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우우~ 미녀와 야수 지나간다~ 야수는 고추 달렸대~”
가원의 손에 들린 김밥이 멈췄다.
영숙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
그 말을 하기도 전에, 가원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뭐?! 미녀는 맞는데, 야수는 누구야?! 누구라고?! 어디서 지껄이는 거야?!”
몇몇 학생들이 힐끔 쳐다봤고,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가원은 씩씩거리며 다시 앉더니 영숙의 김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네요. 언니 김밥 솜씨 짱.”
그 말에, 영숙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작게… 아주 작게,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후로, 누가 뭐라고 해도 가원은 늘 영숙 옆에 있었다.
누가 수군대든, 피하든, 웃음거리로 삼든, 개의치 않았다.
가원은 그저 말했다.
“언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지 말아요. 언니는 언니니까.
나는… 그냥 언니가 좋아요.”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은 마치 따뜻한 봄비처럼, 얼어붙었던 유영숙의 마음 한켠을 조용히 녹여주었다.
그리고 그즈음, 교내에선 두 사람을 ‘미녀와 야수’라 불렀다.
가원이 미녀, 유영숙이 야수.
누구나 그 조합을 놀라워했고, 웃음거리로 삼았지만…
정작 당사자 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녀와 야수.
그건 이 둘에게 있어, 차마 하지 못한 감정의 이름이기도 했다.
1992년 봄.
벚꽃은 만개했고, 교정은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유영숙에게 봄은 그저 또 하나의 계절일 뿐이었다.
입학 이후 세 번째 봄.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해. 여전히 혼자였고, 여전히 조용했다.
왕따. 고추 달린 년. 변태. 괴물.
그 단어들은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았다.
단지 이따금씩 마음 한쪽에 조용히 내려앉는, 오래된 먼지처럼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조용히 강의실로 향하던 그날,
노란빛이 도는 긴 생머리를 질끈 묶은 한 여학생이 그녀 앞에 뛰어오더니, 숨을 고르며 환하게 웃었다.
“언니! 저기요, 언니 맞죠? 진짜 너무 예뻐요!”
유영숙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숨을 헐떡이며 뭔가 쑥스러운 듯 말을 덧붙였다.
“립스틱 뭐 쓰세요? 색이 너무 예뻐서…”
“…어… 난 립 안 발라.”
영숙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금세 사라졌다.
여자는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해맑게 웃었다.
“와… 타고나셨구나. 진짜 부러워요!”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숙의 옆에 딱 붙어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영숙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날 이후 그 여자는 매일같이 그녀를 따라왔다.
이름은 박가원. 92학번. 나이는 두 살 어렸고, 1년 재수했다는 말도 했다.
밝고, 긍정적이고, 엉뚱하고, 그리고 조금은 철없었다.
“언니, 오늘 저랑 밥 먹어요. 어차피 혼자 드실 거잖아요.”
“언니, 이거 봐요. 이 만화책 진짜 웃겨요.”
“언니, 그 사람들 말 신경쓰지 마요. 그런 말 하는 애들이 문제지, 언니가 뭘 잘못했어요.”
가원은 그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유영숙은 처음엔 경계했고, 그다음엔 피했고, 그다음엔 당황했고…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이 아이는, 왜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처음엔 동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원의 눈동자엔 단 한 번도 그런 기색이 없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조용한 구석자리에서 둘이 김밥을 나눠먹고 있을 때, 누군가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우우~ 미녀와 야수 지나간다~ 야수는 고추 달렸대~”
가원의 손에 들린 김밥이 멈췄다.
영숙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
그 말을 하기도 전에, 가원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뭐?! 미녀는 맞는데, 야수는 누구야?! 누구라고?! 어디서 지껄이는 거야?!”
몇몇 학생들이 힐끔 쳐다봤고,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가원은 씩씩거리며 다시 앉더니 영숙의 김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맛있네요. 언니 김밥 솜씨 짱.”
그 말에, 영숙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작게… 아주 작게,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이후로, 누가 뭐라고 해도 가원은 늘 영숙 옆에 있었다.
누가 수군대든, 피하든, 웃음거리로 삼든, 개의치 않았다.
가원은 그저 말했다.
“언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지 말아요. 언니는 언니니까.
나는… 그냥 언니가 좋아요.”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는,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은 마치 따뜻한 봄비처럼, 얼어붙었던 유영숙의 마음 한켠을 조용히 녹여주었다.
그리고 그즈음, 교내에선 두 사람을 ‘미녀와 야수’라 불렀다.
가원이 미녀, 유영숙이 야수.
누구나 그 조합을 놀라워했고, 웃음거리로 삼았지만…
정작 당사자 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녀와 야수.
그건 이 둘에게 있어, 차마 하지 못한 감정의 이름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