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느긋하게 써보는 고려사입니다
일단 평소대로 꼴짤부터 올리고
지난 글에서 거란이랑 송을 다뤘으니 이번에는
여진족, 즉 금나라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원래 이 여진족의 세력은 국가라고 보기에는 조금 힘든 세력이었습니다.
여진족은 다른 북방민족들이 대부분 그렇듯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민족이었거든요.
그럼 이런 여진족에 대해서 고려가 취한 태도를 시기별로 알아보도록 하죠
고려는 건국 초기에는 여진에 대해 지속적으로 포섭 정책을 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여진은 거란처럼 통합된 세력이 아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확실하게 위협이 될 거란에게는 강경책을 핀 반면, 여진족은 가능한 한 포섭하려고 했습니다.
고려의 관계체계에는 항복한 여진족 추장들에게 주는 명예직과 비슷한 개념인 향직, 무산계가 존재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는게 고려 조정의 기본 마인드였습니다.
「고려사」에서 태조의 말을 인용해보면
'북번(北蕃) 사람들은 사람 얼굴에 짐승의 마음이라서, 굶주리면 찾아왔다가 배부르면 가버리며 이익만 보면 부끄러움을 잊는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진은 상황에 따라서 노략질, 항복을 일정치 않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고려는 때로는 토벌을, 때로는 유화책을 펴며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여진을 대하는 정책을 이어나갔습니다.
실제로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는 여진 추장들이 항복했다는 기사와 여진을 정벌했다는 기사가 비슷한 비율로 나옵니다.
이랬던 고려와 여진의 관계가 변하기 시작하는 것은 여진의 일부 세력 중 완안부의 성장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진족 세력 중 완안부라는 세력이 크게 성장하게 되는데, 이들은 다른 여진 세력들을 정벌, 흡수하며 그 세력을 심상치 않게 키워나갔는데, 고려 기준 숙종대였습니다.
(고려 조정 회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고려 내에서는 이런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고, 강경론과 온건론이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강경론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 여진을 무력으로 강력하게 제압을 주장했으며
온건론은 이전처럼 가능한 한 완안부를 달래서 포섭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려가 채택한 방안은 강경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태는 고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임간의 1차 토벌, '윤관'의 2차 토벌. 두 번의 시도 모두 고려의 패배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고려조정에 2차 토벌 사령관 윤관은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제안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윤관은 이번 패배의 원인을 병과의 차이로 봤습니다.
보병 중심이자 현종~숙종대 오랜 평화로 인한 고려의 군사적 약세는 한창 성장한 여진 기병군을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윤관은 별무반이라는 새로운 군사조직을 편성했습니다.
이들은 기병, 보병, 승병으로 구성된 고려의 새로운 군사조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별무반을 중심으로 한 고려의 여진 토벌은 숙종 사후, 예종 2년에 다시 개시되었습니다.
별무반을 중심으로 한 윤관의 여진 토벌 작전은 교과서에도 많이 나오고, 한능검에도 자주 나오는 문제지요.
동북 9성을 건설하며 이를 중심으로 여진 방어진을 구성하게 됩니다.
단순히 성곽의 건설에서 그치지 않고 사민정책, 즉 백성을 이주시켜서 이 지역 자체를 성장시키는 것이 고려의 대여진 정책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진행중이기에 여러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동북 9성의 정확한 위치나 사민의 규모 등...
아무튼 이번 여진 정벌은 확실한 효과를 보였지만, 완벽한 정벌까지는 무리였습니다.
이번 정벌로 완안부 여진의 대고려 근거지를 파괴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여진의 유격전에 윤관의 고려군은 계속 고전하고 있었죠.
이처럼 양측의 전선이 고착되어 가는 가운데, 여진에서 먼저 손을 내밀게 됩니다.
동북 9성을 다시 돌려준다면 이후 고려와의 마찰을 그만두겠다는 제안이었죠.
이런 여진의 제안에 고려 조정 내에서는 여러 의견이 오가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이상의 충돌을 포기하고 동북 9성의 반환을 댓가로 우호책을 펴기로 합니다.
사실 동북 9성은 고려 입장에서 유지하기에는 손해가 크고, 슬슬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고려 내에서도 점점 불만이 생기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고려는 동북 9성을 반환하고 여진과의 화평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안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여진과 고려는 행복하게 잘....
...살지 못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나중에 이어서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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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안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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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안보잖아! | 24.04.27 10:5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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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코로나가 핫했던 20년 4월이었죠... 복학하자마자 코로나를 겪은 저는... | 24.04.27 10:5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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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 뭐 어때 | 24.04.27 11:1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