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해주세요.”
로건은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웠다.
시동은 끄지 않고.
“그래.
답해주기로 한건 내 약속이었으니까.
나는 자네의 경력을 알고 있었지.
자네의 성격도 유추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높은 사람들에게 밉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지.
그래서
조만간 옷을 벗게 될 것이란 것도.
아 물론 옷을 벗는 다는 것은 요원을 관둔다는 의미야.
괜히 이상하게 곡해해서
권력형 성희롱을 당했느니.
그러면 곤란...”
“본론으로.”
트레이시가 그의 농담을 끊었다.
농담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 진짜 끝이라고 막 나가는구만.
알겠어.
나중에 후회하게 해주지.
기대하라고.”
트레이시는
아무말 없이 부지국장을 노려봤다.
어서 말해 이 자식아!
그런 눈빛을 담아서.
“왜 그런 것 있지?
가끔씩 예상도 못한 와일드카드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로즈볼에서 우승하거나,
아니면
후보 중에
후보가 우연히 게임을 나가서
막 60야드 패스 성공하고,
색 하고, 터치다운 성공하고.
나는 그런 부분에서
자네가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 거지.”
“전 미식축구를 안보는데요?”
“오. 이런.
자네가 그만둬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군.
CIA 요원이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를 안 본다니.
맞다.
자네는 축구(Soccer)를 했지?”
“축구(Football)을 했습니다.”
“영국놈들 같은 소리를 하는군.
아무튼.
4년전 그 때
자네를 비행기에 태운 이유는
자네가 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지.
이야기가 길어지는군.
짧게 말하지.
비행기에 누군가를 태워서 가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사실 요원이 아니어도 괜찮지.
그냥 서류 하나 던져주고,
걸프스트림에 태워보내면
지가 알아서 다 꺼내 먹을테니까.”
트레이시도 동의했다.
트레이시의
그 당시 역할은
브리핑이라기보다 의전수행에 가까웠다.
그런데
사쿠라바 잇토키라는 소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의전을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각국 정보기관에서는
단순히 쓰고 버리는 식의 독립요원이자
나이도 초등학생 5학년 정도로 어린 소년이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자네를 거기에 태우고,
서류까지 미리 챙겨주면서 브리핑을 시켰을까?
그 정도 수준의 정보를
왜 자네 같은
일반 요원에게 공개했을까?”
확실히 이상했다.
트레이시의 지위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그런데
사쿠라바 잇토키
그 소년을 도우라는 이유로
그 정보가 자신에게 허락됐다.
“의도했단 말인가요?”
“그래. 내가 의도했지.
자네라면,
직설적이고,
감정적이고,
욕심이 많은 자네라면
분명 그 상황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네에게 득이 되는 장치를 해 두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
자네 혹시 바둑을 둘 줄 아나?
포석이라는 개념을 아나?”
“잘 모릅니다.”
“참나.
아직 멀었군.
이러면서 동아시아 지부에서 일을 한다니.”
로건은
트레이시를 약올리듯이
손가락을 까닥까닥거렸다.
“그럼.
혹시. 전화번호도,
제가 전화번호를 넘길 것을 예상했나요?”
“예상이라.
표현이 맞지는 않군.
그냥 가능성이 있다 정도로 해 두지.
자네는 몸에 쫙 붙는 스커트를 입고
섹시하게 걸프스트림에 앉아있었지.
승무원 역할에 불과했지만
작전이 작전인만큼 흥분했을 가능성이 높았지.
그리고
거기에 맞춰 행동했고.
힌턴에게 쏘아 붙이는 건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었어.
힌턴 그 개자식에게 한방 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 때,
자네를 뽑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니까.
그런데 그 힌턴
그 머저리는
그놈의 잘난 자존심 때문에
4년이나 그런 중요한 말을 꺼내지 않아서
지금까지
4년이라는 세월을 허송세월하게 만들었으니........
그 보답으로
그 멍청한 놈은
지금 알레스카 레이더 기지 경비
그것도
책임자가 아닌
단순한 구역 경비원이나 맡게 되었지.
그 멍청이를 먼저 보내고
나중에 뜨뜻한 옷이나 싸서 부쳐주려고 하니까.”
“....... 전화번호 이야기로 돌아오지요”
“그래.
전화번호.
만약 작전에 성공한
그 소년을 태우고 돌아온다면
자네는 분명히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지.
비단 자네뿐만 아니지.
작전의 전체적인 그림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그 작전은 절대로 실패야.”
트레이시는 침을 삼켰다.
“초고공낙하로 침투해
코란과 마약에 미쳐있는 광신도들 사이에서,
그것도
탈레반도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는
알샤바브의 요새에 몰래 들어가
손발가락이 짓이겨진 사람을 구출해 20km를 걸어 나온다고?
그것도 단독으로?
불가능해.
절대로.”
자신도 모르게
트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성공했어.
말도 안되지.
에티오피아에서.
어디였지?
하랄 어쩌구 하는 공항에서
자네는
그 사쿠라바 잇토키라는 소년
아니
괴물을 기다리면서
이 작전이 성공 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하랄 메다 공군기지입니다.”
“답을 피하는군.
아주 능숙해.
하지만 수준은 낮아.”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공한다 해도
그 날 당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나오라고.
자네는 페이브호크가 다가오는 것을 봤어.
특수작전에 투입되는 구출용 헬리콥터가.
그리고
거기에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내리는 그 괴물도 보았지.
흥분했을 거야.
분명.”
정확했다.
트레이시는 흥분했었다.
그것도 매우.
“묻고 싶은 게 많았지.
성공했는가?
성공했으면 어떻게?
그런데
자네는 묻지 않았지.
아니 묻지 못했지.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그럴 지위가 아니니까.
그 상황에서 힌턴이,
자네만큼 묻고 싶은 게 많은 힌턴이 불쑥 끼어들었지.
그래서 면박을 준 거고.”
“....................”
“하하.
4년 전
자네가 작성했던
그 흔해빠진 작전보고서로만 생각해서
랭리의 머저리 책상물림들이 읽어보지도 않고
책상 서랍에 처박한 채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그 보고서를 보니
돌아오는 내내
그 괴물은 잠만 잤다고 하더군.
자고 잠깐 일어나 먹고,
또 자고.
자네는 잠든 그 괴물을 보면서 생각했을 거야.
묻고 싶다.
궁금한 것을 묻고 싶다.
그리고
또 이 생각도 했을 거야.
이 괴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분명 앞으로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CIA와 연결될 것이다.
친구든.
아니면 적이든.
그래서.”
로건은
이미 얼음은 다 녹은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트레이시도
갑자기 갈증을 느꼈다.
그 갈증이
목마름의 갈증인지,
다음에 이어질 말에 대한 갈증인지
아니면
둘 다일지
잠시 고민하던 트레이시의 귀에 이어지는 로건의 말이 들렸다.
“그래서
자네는 전화번호를 넘겼지.
선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경력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트레이시는
알몸으로 로건 앞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자신까지
그가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본문
[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245)
2023.04.23 (00:3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