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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무리의 동료들을 방패 삼아 겨우 빠져나온 중대장과 C부팀장(김승준)은 좀비들을 피해 어느 고층 빌딩으로 향했다.
문이 잠겨져 있었기에 가지고 있던 도끼를 이용해 부수고 들어갔다.
안쪽에는 총에 맞아 죽은 몇몇 시체들이 널려 있었고, 많은 양의 탄피가 굴러다녔다.
중대장은 무언가를 눈치채고 갑자기 자신의 온 몸을 더듬었다.
“뭐해요?”
비상계단 출입구 앞에서 갑자기 멈춘 중대장을 보고는 김승준이 물었다.
“가만 있어봐”
중대장은 왼쪽 주머니에 있던 자신의 경찰 공무원증을 발견하고는 손에 꼭 쥐었다.
“올라가자. 너 무슨일 있어도 그냥 닥치고 있어”
중대장은 김승준에게 거의 협박하듯이 말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계단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정지 정지 정지!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흑복과 헬멧을 쓴 경찰 2명이 비상계산 문 앞에서 중대장과 김승준을 총으로 겨냥하였다.
“사, 살려주세요. 저는 그냥 민간인이에요. 도, 도, 도와..”
김승준이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중대장은 발로 김승준의 종아리를 살짝 치며 눈치를 주었다.
“강남 경찰서장, 총경 박태준이다.”
박태준(중대장)이 경찰 공무원증을 쥔 오른손을 천천히 뻗으며 말했다.
경찰 2명 중 키는 작지만 덩치가 큰 사람이 눈짓을 하자, 키가 큰 다른 한명이 공무원증을 빼앗듯이 집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총구는 김승준과 박태준의 이마를 향하고 있었다.
“충성! 실례했습니다. 박태준 총경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기다렸습니다.”
덩치가 큰 경찰이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상당히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어어 그래 수고했다”
‘기다렸다고? 나를? 왜지? 중요 임무 중이었나? 뭐지?’
박태준은 경찰들의 어깨를 툭툭 주무르며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갔지만 머리속에서는 십수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위에 쌓아둔 바리케이트도 신경쓰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흑복을 입은 경찰 10여명과 정장을 입은 남자 한명이 있었다.
그중 흑복을 입은 남자 한명이 박태준 앞으로 다가와 얼굴을 살폈다.
“박태준 형? 형!”
흑복의 사내는 바라클라바를 벗으며 박태준을 안았다.
“이태성? 이야~ 오랜만이다.”
박태준은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자 뛸뜻이 기뻤지만 최대한 자중하였다.
“본부에서 구출팀 보낸다는게 형이었어?
어쨋거나 다행이다. 이제 지긋지긋한 여기서 나갈 수 있겠네”
“어? 어어어. 너는 좀 어때? 괜찮아? 어떻게 된거야?”
박태준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애매한 말을 하였다.
“에휴~. 위에서 우리 경찰특공대에 김남희 의원 구출 명령을 내려서 왔다가, 생각보다 감염자 수가 너무 많아서 이 빌딩에 고립됐었어. 통신 두절 전에 구출팀 보낼테니까 빌딩에서 대기하라고 해서 지금까지 대기하고 있었고.”
이태성의 말을 들은 박태준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주요인사들을 구출해서 서울공항을 통해 계룡대로 피신시킨다는 것은 얼핏 알고 있었으나 경찰특공대까지 차출할 줄도 몰랐고, 최근까지도 구출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형 근데 다른 애들은? "
이태성은 한발짝 뒤로 가더니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박태준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사실대로 말할까? 이태성은 충분히 조종할 수 있는 놈이잖아?'
'아냐, 혹시 어떻게 될지 몰라. '
'아, 아까 위쪽에 바리케이트 있었지?'
"지금 본부쪽에서 서울 외곽으로 감염자들을 유인하고 있어. 그래서 서울 도심지 내부는 비어져있어. 고립된지 한 2,3주 됐나? 건물에만 있어서 알기 어려웠겠지만 많이 사라졌어."
김승준은 표정하나 안 바뀌고 거짓말을 하는 박태준을 보고 어이가 없었지만 자기가 살 유일한 길인것 같기도 했기에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일부로 얼굴을 구겼다.
박태준은 놀란듯 했다.
"진짜? 그 정도야? 정리가 되고 있긴 한가보구나?"
박태준의 얼굴은 한결 편안하고 밝아졌다.
'그게 정리가 되겠냐? 병신아'
김승준은 생각했다.
"근데 여기 시야확보가 잘 안되나봐? 이정도 고층 빌딩이면 감염자수 충분히 파악 가능할텐데?"
박태준은 이미 이들이 위층을 못 올라간다는 사실을 눈치챘기에 확인삼아 미끼를 던져봤다.
"위에는 지금 위험해. 너무 많아. 감염자가."
이태성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답했다.
"어쨋거나, 차고온 차량 있지? 경특대 방탄차 타고 왔을 거 아냐"
박태준은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 어어, 혹시 몰라서 지하 주차장에 놔뒀어. 그 당시에 가장 감염자가 없던 구역이어서"
대화 도중 김남희 의원이 다가왔다.
"야! 그래서 언제, 어떻게, 어디로 나갈건데? 어? 여기에 지금 며칠째 있는거야? 경찰이면 빨리빨리 생각해서 빠져나가야할 것 아냐!! 아 씨발 이런 새끼들을 뽑아놨으니 나라가 안 돌아가지."
갇혀있는 동안 이미 서열은 정해진듯 했다. 김남희 의원의 반말과 하대는 아주 자연스러웠으며 이태성 또한 딱히 얼굴을 구기지 않고 그냥 듣고만 있었다.
박태준은 한숨을 푹 쉬려는 것을 참고 말을 시작했다.
"김남희 의원님, 강남 경찰서 서장 박태준입니다. 김남희 의원님 구출하려고 왔고요. 감염자들 동태하고 차량 확인한 다음 며칠뒤에 서울공항으로 떠날 겁니다. 거기서 계룡대로 헬기를 이용해서 떠날거구요."
김남희 의원은 박태준 앞으로 가서 손가락으로 명치를 두번 툭툭 밀었다.
"똑바로 하라고, 알았어?"
박태준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이태린 때도 속은 끓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기분이 더러웠다.
이태린이 그립기는 처음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더욱 기분이 더러워졌다.
마음속으로 이미 이태린을 자기 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속으로 복잡해지는 마음을 다잡고자 심호흡을 여러 번 했다.
"형 괜찮아? 어차피 며칠 있으면 끝나니까 좀만 참자"
이태성은 박태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얘기했다.
박태준은 지금까지 밖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약간의 거짓을 함유시켜 말했다.
이후에는 이태성이 빌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상황설명을 해주었고, 박태준은 주요사항을 빠짐없이 머리속에 박아넣었다.
"김남희 저 인간 지금 가족들이랑 같이 있어서 더 성질 더러우니까 그냥 대충 넘겨."
이태성은 혀를 차며 얘기했다.
"하아… 너 며칠동안 저 인간이랑 있었던 거지?"
"한 17일 정도 됐나? 가족들이랑 레스토랑에 갇혀있던거 구해서 꺼내줬지. 근데 진짜 형이랑 쟤밖에 없어?
아무리 그래도 증원 없이는 좀 힘들지 않나?"
이태성은 손가락으로 김승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어어. 괜찮아. 어차피 길잡이 겸 소식통으로 온 거여서."
박태준은 당황스러운 속마음을 어떻게든 들키지 않게 노력했다.
“그래? 다행이네. 어쨋거나 아까 한 얘기 계속해봐. 어떻게 빠져나갈건지”
“니들 도어 브리칭 장비 있지? 폭발물로”
“뭐 일단 있기는 하지”
“니들 차량 가스는?”
“밑에 차 많으니까 다른차에서 빼오면 돼”
“지금 10km 근방 서울에서 가장 감염자 많은데가 어딘지 알아? 서울 멀티플렉스 쪽이야. ”
이태성은 박태준의 말과 오묘한 표정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건물 폭발시키자고? 안돼 너무 위험해.”
이태성이 손을 가로지으며 얘기했다.
“걱정할거 없어. 적당히만 하면 돼. 건물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고, 감염자들 눈길 끄는 동시에 상당히 많이 처리할 수 있어”
“그러다가 잘못하면 괜히 더 모이기만해. 설령 한다고 해도 지금 폭발물 처리반은 없어. 저번에 폭발물 설치하다가 범위 파악 못해서 죽었다고!”
이태성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래도 다른애들도 기초 교육은 다 받았잖냐”
“그게 같아? 교육 내용 차원이 다른거 알잖아? 잘못하면 서울에 감염자 더 몰려서 살아있는 사람들 더 위험해진다고! 경찰 서장이라는 사람이 할 말이야?”
'이새끼가 원래 이렇게 경찰의식이 투철한 놈이었나?'
생각보다 거센 이태성의 항의에 박태준은 살짝 당황했다.
"하아… 알았다. 일단 쉬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박태준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을 마쳤다.
"형 제대로 생각해!"
이태성은 멀어져가는 박태준의 뒤통수에 대고 이야기했다.
김남희는 지금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애인을 구하려고 경특대에 말을 해두었지만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자신의 어린 아들이 목격하였다.
장인의 힘으로 의원까지 달게 된 김남희는 언제 자신의 아내에게 들킬까 불안했고, 자신의 애인 또한 걱정되었다.
정확히는 애인이 아니라 김남희 자신의 애완동물에 가까웠지만.
"똑똑"
"김남희 의원님. 점심식사입니다."
경특대의 막내 대원이 통조림을 들고 김남희 의원과 가족들이 있는 방안에 들어왔다.
김남희의 아들은 통조림을 빤히 보더니 코를 막고 고개를 돌렸다.
이 모습을 본 김남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야 이새끼야. 이딴거 말고 제대로 된거 가져오라고 했지! 몇번이나 말해야해 이 무식한 새끼야. 어?"
김남희는 뺨을 살살 서너대 치더니 점점 강도를 높였다. 막내 대원은 그냥 가만히 서서 맞았다.
이 모습을 보자 더 짜증이 솟구쳤는지 김남희는 발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꺼져 이새끼야. 뭔 병신같은 새끼들만 모아놨어. 경찰특공대라는 새끼들이"
막내 대원이 문을 닫고 나가자 대부분의 대원들이 빤히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중 몇몇 대원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이태성에게 달려갔다.
"대장님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저 인간만 아니었으면 여기 벌써 빠져나갔습니다!"
김남희 의원과 그의 가족들은 위험의식이 전혀 없었다. 당연히 자신들이 구출될 줄 알고 있었고, 그 외의 사항은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속에서도 말도 안되는 것들을 요구하고는 했다.
"본부에서 증원 왔잖냐. 금방 나갈 수 있어. 좀만 참고 기다리자"
이태성은 등을 돌린채로 말했다.
"저 인간 되도 않는 고집 때문에 저희 애들 몇명이 죽은지 아시잖아요? "
대원의 말에 이태성은 성큼성큼 걸어가 뺨을 갈겼다.
"내가 그 얘기 그만하고 했지! 걔네들은 자기 의무를 다하다가 죽었어!"
대원은 조용히 고개를 올리고 십수초간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증원 온 총경님과 대화 나눈 것 들었습니다. 멀티플랙스 폭발시키고 서울 공항으로 가면 쉬워지는 것 아닙니까?"
"니가 서울에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아? 그 사람들은 어쩔건데?"
이태성의 얼굴은 점점 상기되어 갔다.
"대장님은 대원들 보호하실 생각은 아예 없으신겁니까?"
"나가!"
역린을 건드렸는지 얼굴은 붉그락푸르락 거렸다.
대원들은 굳은 얼굴을 한 채로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