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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멀티플랙스에서 라이터를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태린은 다시 도로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다니며 차창을 살폈다. 10분이 지나자 태린은 반가운 차량을 발견했다. 헌병 특임대 당시 출동 때 탑승했었던 미니 버스였다. 군 생활에 엄청난 향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기에 반가웠다. 바로 올라타서 탐색을 해보니 탄약, k2c1 1정, k1 5정, 제리코 권총 6정, 방탄복3개, 방탄방패2개가 있었다. 완전히 노다지였다.
"허! 옛날 친구가 선물도 주네"
"어어어...어...으어..."
희미한 신음소리에 운전석을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운전대 밑에 엉덩이가 끼인체로 좀비가된 운전병이 있었다.
“이건 뭐여 시발.”
짧은 욕지거리를 내뱉은 태린은 빠르게 도끼를 꺼내 목을 그었고, 신음소리는 더욱 희미해지며 이내 사라졌다. 도끼에 묻은 피를 운전병의 옷에 닦다 보니 상의 주머니와 하의 주머니에 네모난 무언가가 윤곽이 잡혀 있었다.
"뭐지?"
주머니를 뒤져보니 한쪽에서는 담배와 지포라이터, 한쪽에서는 전자담배가 나왔다. 혹시나 싶어 필터 쪽을 깨끗이 닦고 버튼을 누르니 전자담배는 정상 작동했다. 라이터도 제대로 작동했기에 태린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전자담배를 길게 빨고 내뱉으며 버스정리를 시작했다. 먼저 운전병을 버스 밖으로 끌어내렸다. 그 후 무기들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넣은 후에 애좀들이 매고 있던 가방을 버스안에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누울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누워서 잠깐의 여유를 즐기며 확보한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까 생각을 했다.
태린이 몸에 지니기 가장 이상적인 무장 방법은 제리코 두정과 소총 한정을 장비하는 것이었다. 너무 많으면 빠른 이동에 방해가 되었고, 어차피 총기는 유사시에만 쓰고 대부분 소음이 적은 냉병기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아까 마주한 식인 집단이 남은 총기를 확보할것이 염려되었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생각하던 태린은 갑자기 일어나서 제리코1정에 탄창을 장착하고, 도끼와 홀스타를 챙겼다.
"쏴아아~"
그렇게 미니버스에서 내리려하는데 하늘에서 빗방물이 떨어졌다. 버스 뒤쪽에 묶여있던 애좀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에 놀라 예민하게 반응하다가 이내 적응을 하였다. 다만 걸음걸이를 비롯한 신체활동 속도가 조금 느려진 감이 있었다.
태린은 한참동안 비를 구경하다가 우비를 꺼내 입고 가까운 자전거 도로로 향했다. 어차피 비가 내려 냄새, 소리가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애좀들은 버스에 놓고 홀로 떠났다.
총기를 버리기는 아까워서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애좀들 어깨에 거치대와 고정틀을 만들어서 여분의 총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때문에 자전거의 핸드폰이나 손전등 거치대의 고정쇠가 필요했다.
이상하게도 아까 지나왔던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 킥보드 등이 10여분 동안 안보였기 때문에 진행방향으로 걸어갔다.
물웅덩이를 추적추적 밟으며 10분 가량을 걷다보니 200m 정도 앞에 좀비들이 모여있는것을 볼 수 있었다. 좀더 가까이 가니 굴다리 입구는 자전거, 킥보드 등으로 막혀져 있고 그 앞에 20 여 마리의 좀비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투하고 있었다. 그리고 희미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태린이 좀비들 5m 뒤까지 슬금슬금 다가가 굴다리 안을 보니 젊은 여자가 갓난아이를 안으며 울고 있었다.
피 묻은 나무 막대가 널려져 있는 것과 10여마리 이상의 좀비가 앞에서 죽어있는것으로 보아 최대한의 저항은 해보다가 지쳐서 마지막을 기다리는 듯 했다.
태린은 치열한 이들을 좋아했다. 좌절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체념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살아날려고 하는 이들. 이 젊은 여자는 충분히 치열해보였다. 나무 창을 잡고 수십번을 찔러서 작은 손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고, 갓난아이의 새하얀 옷에는 피가 스몄다. 좀비들의 비명소리에 귀를 막고 싶어하지만 아이를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어서 그저 벌벌 떨수밖에 없는 상황.
한동안 지켜본 태린은 도끼를 꺼내들고 좀비들의 경추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5명을 처리하자 나머지 15명이 달려들었고, 태린은 지나온 길로 도망치며 줄지어 쫓아오는 좀비들을 한명씩 처리했다. 이제는 좀비들을 죽이며 미소지어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나마 웃는 소리를 내는 것만을 참을 수 있었다.
마지막 좀비가 남은 것을 확인한 태린은 좀비의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 도끼로 난도질을 시작했다. 좀비의 육편은 마구잡이로 흩어졌고, 몇몇 육편은 태린의 얼굴에 튀겼지만 태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이어나갔다. 좀비의 비명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다가 완전히 끊겼을때, 좀비의 시체는 마치 포탄에 맞은 듯한 모습으로 찢겨있었다.
태린은 손으로 빗물을 받아 얼굴에 묻은 육편을 씼어내고, 가글을 하였다. 도끼날의 핏물은 빗방울에 씼겨져 내려갔다. 비옷에 묻은 피가 충분히 씼겨져 내려갔다고 생각이 들 무렵 태린은 다시 굴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굴다리로 돌아가자 남아있던 좀비 1명이 있었기에 깔끔하게 목을 날렸다.
여자는 여전히 갓난아이를 안은채로 웅크려 있었다. 눈은 동공이 열린채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치 더 밑에 있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느낌이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여전히 덜덜 떨며 움직이지 않았다. 태린은 쌓아둔 자전거와 킥보드를 하나씩 내리며 작은 입구를 만들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살짝 흔들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태린을 보고는 앉은채로 다리만 움직여 구석으로 피했다. 한손으로는 아기를 든체로 한손으로는 다시 창을 잡았다.
“괜찮아요. 이제 좀비들 다 잡았어요. 비도 내리고 있어서 한동안은 좀비가 오지도 않을거고요. 어디 다친데 없어요?”
태린은 그녀의 다친손을 빤히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
그녀는 살짝 곁눈질로 태린을 보며 겨우 말을 꺼냈다.
“에휴~”
태린은 항상 들고 다니는 힙색에서 연고와 붕대를 꺼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태린의 의도를 눈치챘지만 더욱 세게 아이를 안았다. 하지만 태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간 힘을 주어 그녀의 다친 오른손을 끌어내서 치료를 했다. 그녀는 처음 한순간은 저항했지만 이내 그냥 힘을 뺀체로 얌전히 치료를 받았다.
“몇살이에요?”
치료를 계속하며 물었다.
“열..여덟”
“어리네요. 동생이에요?”
“…..네”
“이제어디로 가요?”
“없어요. 딱히”
“저랑 갈래요?”
그녀는 치료를 하고 있는 태린의 뒤통수를 빤히 쳐다봤다.
“그냥 제안이에요. 어차피 갓난아이 데리고 다니는거 어려울 것 같고, 저는 목적지가 있어요. 거기는 조금 안전할 거에요. 산골짜기여서. 아, 근데 이름이 뭐에요?”
태린이 상처를 치료하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자 그녀는 마치 태린을 보고 있지 않았다는 듯이 시선을 거두었다.
“차…태연…이요”
“자아~ 다 끝났다. 오케이, 그래서 같이 갈래요? 차태연씨? ”
차태연에게 딱히 희망적인 방향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이가 자신을 구해주고 같이 안전한 곳으로 동행하자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
“그래요. 같이가요. 동생 이리 줘보세요.“
태린은 자신의 비옷으로 갓난아이를 감싸며 말했다. 차태연은 아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듯이 더욱 꽉 안았다.
“애기 뺏으려는 거 아니에요. 밖에 추워요.”
차태연은 그제야 손을 슬쩍 풀었다. 태린은 비옷으로 아이를 둘둘 만 후에 다시 태신에게 건네주었다.
태린은 이후 가져온 공구를 이용하여 자전거나 킥보드, 오토바이등에 붙어있는 부착물을 떼어 망가지지 않은 자전거 한대에 모두 장착했다. 15분 정도에 걸쳐 대부분의 부착물을 옮겨 달던가 바구니에 넣었다.
“자, 이제 가요”
밖에는 비가 더욱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천의 수위는 상당히 높아져서 자전거 도로와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태린은 자전거를 끌고 산책하듯이 천천히 걸어갔다. 태신은 아이를 꽉 안은채로 그 뒤를 따랐다.
10여분 정도를 걸은 후에따시 고속도로로 올라가서 미니버스로 향했다. 태린은 태연이 버스에 오르기 전에 버스 안에 있던 담요를 건냈다.
“저기 나*키 가방안에 여벌옷이 좀 있어요.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몸 다 닦고, 옷 갈아입어요.”
태린은 태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버스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태신은 떨떠름해하다가 옷을 벗고 담요로 몸을 닦은 후에 가방 속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벗은 교복은 일단 한쪽 구석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다른 담요를 찾아 갓난아이에게 둘러주었다. 이제 됐다고 생각한 태연은 차문을 두드려 태린에게 알렸다. 팔짱을 낀체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태린은 두드리는 소리에 바로 차문을 열고 들어갔다.
“으으~ 추워. 잠깐 앞 조수석에 가 있을래요? 저도 갈아입어야해서”
태린은 양손으로 양팔을 비비며 말했다.
“아아… 네”
태연이 갓난아이와 함께 조수석으로 이동해 눈을 감자 태린은 곧바로 옷을 벗은 후에 몸을 닦고 가방 안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태연이 아끼며 입었던 구찌 티셔츠와 A팀장이 입었던 와이드 팬츠로 갈아입었다. 마지막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시금 고무줄을 이용하여 올려 묶었다.
“이제 다 됐어요.”
태연에게 말했다. 태연은 다시 뒷자리로 돌아가서 편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이는 미니버스로 오는 내내 울다가 지쳤는지 비로서야 잠에 들었다. 아이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한 태연은 버스에 아이를 천천히 내려놓고는 메고 있던 백팩에서 분유와 젖병을 꺼냈다.
“분유에요? 언제먹여야 해요?”
태린은 흥미롭게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아마 1,2시간 뒤면 깰거에요. 그때 2스쿱 타서 먹이면 돼요.”
“물 끓일 버너는 있어요?”
“아….맞다”
태린은 가방을 뒤지더니 휴대용 버너를 꺼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아 근데 지금부터 끓이면 벌써 식을텐데요”
“알아요. 저희도 밥은 먹어야죠. 라면 괜찮죠?”
이렇게 말하면서도 태린은 이미 냄비에 라면스프를 넣고 있었다.
“네에..”
라면은 금방 만들어졌다. 비 때문에 체력도 떨어지고 배고팠던 태연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태린 또한 배고팠으나 태신이 걸신 들린듯이 먹는 모습을 보자 안쓰러워졌는지 자신은 일부러 천천히 먹었다. 차태연은 태린의 그러한 행동에 잠깐 부담을 느꼈으나, 그런 불필요한 감정보다는 배고픔이 먼저였는지 다시 금방 식사를 진행하였다.
“….잘… 먹었습니다..”
부끄러운 것인지 낯간지러운 것인지 민폐가 아닌지 눈치가 보이는 것인지. 태연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태린은 웃는 것으로 화답을 하였고, 차문을 조금만 열고 미친듯이 내리고 있는 비로 설거지를 하였다. 그 잠깐의 사이에 태연은 잠에 들었고, 태린은 아이가 나중에 깰 것을 대비해서 미리 분유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분유 준비를 마친 후, 애좀들의 상태가 궁금했던 태린은 백미러 너머로 관찰하였다. 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더 움직임이 없고 얌전했다. 대충 확인할 것을 다 확인했다고 느낀 태린은 한쪽 구석에 기대 태연을 유심히 보았다.
“…아는 사람 닮은 것 같은데?”
이미 너무 피곤했더 태린은 더이상 생각을 계속할 수 없었고, 눈꺼풀은 무거워졌다.
깊게 잠을 자던 태연은 잠에서 깨어났다. 왜 깬 것인지 알 수 없던 태연은 일어난 김에 소변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미니버스의 문을 살짝 열고 소변을 누었다. 개운하게 일을 마친 태연은 아직도 굵게 내리는 빗소리 속에서 연속된 인위적인 소리를 들었다.
태연의 몸에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았고 차문을 닫지 못한채로 가만히 몇분동안을 있었다. 그동안에도 소리는 들려왔다. 그리 위험하지 않을것 같다고 느낀 태연은 조심히 차에서 내려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갔다. 미니버스 뒤쪽으로 간 순간 태연은 공포와 놀라움에 나오는 옅은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손으로 입을 막아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애좀이 한쪽으로 걸어가려고 하면서 묶어둔 줄이 미니버스 차체를 계속해서 때려 소리를 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의 공포. 그 무언가는 좀비가 아닌 태린을 향한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태연 자신이 방금 목도한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가 빙글돌며 어지러웠고, 토를 하고 싶었다.
태연은 곧바로 도망쳤다. 비가 얼마나 내리든, 넘어지든, 미끄러지든 도망치는 것을 멈출 수 않았다. 그러다가 또다른 굴다리를 발견해서 거기로 숨었다. 그리고 주변의 짱돌을 집어서 벌벌 떨며 몸을 웅크렸다.
태린은 잠에서 깨어났다. 왜 깨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인위적으로 깬 느낌이었다. 무언가 연속된 소리에 미니버스 뒤쪽으로 가보니 애좀들의 목줄이 차 뒤범퍼를 때리고 있었다. 소리가 거슬렸기에 목줄을 걸쇠에 감아 더 짧게 만들었다. 일어난 김에 소변을 보고 차 안으로 들어가니 태연이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그와 동시에 갓난아이도 잠에서 깨어 울기 시작했다. 태린은 아까 준비해둔 분유를 데워서 아이에게 먹였다. 꼴깍꼴깍 거리는 소리를 내며 분유는 빠르게 사라졌다. 그렇게 한동안을 기다려도 태연이 보이지 않자 태린은 나갈 준비를 하며 골똘히 생각했다.
“….아!.. 말 안했던가?”
애좀들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좀비이기 이전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좀비가 된 상태로 꽤 긴 시간을 같이 있었기에 너무 익숙해져있었다. 그래서 미처 말을 하지 못했고, 아마 이것 때문에 태연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하아.. 피곤하다 진짜. 병신새끼, 이거 보면 당연히 도망가겠지”
짧은 자책을 한 후에 태린은 도끼와 제리코, 후레쉬를 챙기고 간단한 차림으로 태연을 찾아나섰다. 비는 아직도 세차게 내리고 있었기에 태연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차들중 사이드미러가 조금씩 접혀 있는 것을 보고 진행방향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태린은 한동안 자전거도로 주변을 계속해서 수색했다. 비도 오고 해서 멀리 가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해 몇개의 배수로와 굴다리를 계속해서 확인했다. 비도 오고, 동생도 남겨두었기에 다시 돌아올거라고 태린은 생각했지만 지금 만나야했다. 혼돈의 상황에서 혼란이 찾아 올 것이고, 그러면 차연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태린은 차연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