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底坑圖
*
태어나는 순간
절벽으로 떨어졌다
어머니가 팔을 뻗어 핏덩이를 감싸안으려 했지만
그 또한 절벽에서 추락 중이었으므로
아이를 끌어안을 수 없었다
울면서 허공을 수직하강하는
모자의 손은 닿을 듯 닿지 않았다
모자의 주위에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절벽을 추락 중이었고
그들의 비명이 반도 안 허공을 채웠다
방금 공중출산을 한 사람들의
비명이 절벽의 제일 예리한 벽에 부딪쳐 흩어졌다
그중 날렵한 그림자 몇이
절벽 모퉁이를 부둥켜안았다
절벽 가장자리 모래로 만든 계단이 이어지고
계단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이
모래 은행에 들러 모래로 찍은 돈을 빌려
모래로 만든 아파트를 세채 네채 구입하고
어떤 자는 수백채를 구입하고
상권이 좋다는 모래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들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이들에게
헬로! 잠시 멈추고 여기 좀 봐
여기에 이국풍의 멋진 레스토랑을 차리는 거야
어린 송아지 구이와 철갑상어 요리를
지중해산 와인에 곁들여 먹은 다음
다시 떨어져도 후회 없을 거야
씨1팔 이왕 떨어지는 김에 눈 호강 입 호강 좀 하는 게 무슨
죄야
몇은 국개의원이 되기 위해
모래 정당에 가입하고
모래 보스에게 꾸벅꾸벅 절을 하고
몇은 장관이 되기 위해
하루 종일 장을 관통하는 거짓말을 하고
아름다운 조국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듭시다 노래하지
완강한 그들의 혓바닥이
추락하는 내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지
태어난 내내 추락 중이야
절벽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비참한 것은 오늘 막 허공에서 태어난 아이야
그가 생 내내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남은 추락의 시간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야
*
엄마 왜 나를 낳으셨죠?
절벽이 아닌 꽃밭 한가운데 낳으면 안 되나요?
아가 이것이 우리가 만든 징벌이구나
모래 계단 위 일제와 손잡고
짝짜꿍놀이 한 개인간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온갖 부패의 모래 계단 위에 함께 올라 춤추고
착하게 착하게 떨어지는 이들을 마음껏 조롱한
쓰레기들을 운명처럼 바라만 보았으니
아가 우리 빨리 떨어지자
쿵! 하고 부딪치는 소리 기다리며
착한 눈물을 허공에 뿌리자
*
마천루 위 스위트룸에서 웃는 그대여
당신도 태어나는 순간 절벽에서 떨어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길이 없다
쿵! 떨어지는 소리 끝내 만나지 못할 것이다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시선 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