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재 연재소설 게시판에서 판타지 소설 개인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저번화에도 언급은 했지만 월영전과는 번갈아가며 집필 중입니다.
그래도 메인은 월영전입니다.
http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
http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search_type=member_srl&search_key=574330
링크 드리니 관심 부탁드립니다!
월영전은 루리웹 활협전 게시판에서만 연재되고 있는 2차창작, 팬픽입니다. 본작의 스토리에서 따와 개인이 만든 것이니 본작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있지 않습니다. 별개의 작품입니다. 월영전은 활협전이 아닙니다.
저는 활협전의 본 스토리를 존중합니다.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대련의 시간이 왔다. 안에서 위국을 보고 있던 우소매가 밖으로 나와 자리를 잡았고, 자연스럽게 남은 인원은 묵령, 비연, 번소천, 우소매 네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제비의 결과.
묵령과 번소천.
둘은 그다지 부딪힐 상황이 없었건만 드디어 맞붙게 되었다. 당문과 설산파 직계제자의 대련. 어떤 그림으로 다가올지 궁금한 조합이었다.
소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 대사형의 사매이시니까... 뭐라고 부르면되죠?"
"편하게 불러. 정식자리이긴 하지만, 너하고는 그래도 편한 관계가 유지되었으면 하니까."
"히히. 그럼 그냥 평소처럼 언니라 할래요."
"후후. 그래."
묵령이 조그맣게 미소지었다.
"준비됐어?"
"네!"
둘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고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였다.
"설산의 힘, 당가의 딸의 자격으로 직접 그 힘을 받아내 보겠어."
"당문의 힘을 직접 받아보는 일이 저에게도 생겼네요. 대사형도 당문인이었지만 당문무공을 직접 전수받은게 없다는 상황이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암기술만큼은 심오하고 어렵더라구요."
"......"
둘은 슬슬 말없이 호흡하기 시작했고, 그녀들 사이에 서로다른 공력이 모아지자 기운끼리 부딪히며 정전기가 일어나듯 짜릿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파지지지직.
"소사매의 무공이라... 천지무성세(天地無聲勢)를 그녀에게서 본게 묵령보(默鍈步) 뿐이긴 하지만 늘 비밀에만 부쳤던 것이 드디어 보여지겠군...... 내가 봐도 괜찮을까?"
당포의는 묵령의 무공의 대부분을 본 것은 아니었다. 장문인이 그녀를 수련동으로 따로 불러 전수하러 들어가는 것 만을 봐왔기에 정확한 모습을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에게 그것을 선보이는 자리가 되었으니, 이제 딱히 비밀이랄 것도 없었다.
사실상, 말 수 적고 얌전한 소사매를 떠올리기 쉬웠지만, 그간의 일들로 현실을 깨닫고 지금을 살고 있는 소사매의 모습은 마치 젊을 적 장문인을 떠올릴 정도로 화풍이 뒤바뀌었다.
"......고생 많았구나."
휙! 탁!
묵령이 암기를 던져 소천의 얼굴을 지나 뒤쪽 나무에 박히는 소리와 함께 대련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경공의 대결. 소천이 제 아무리 설산파 직계제자였어도 천지무성세를 어릴 때부터 수련해온 묵령과는 격차가 너무나 컸다. 땅을 밟은 것인지, 바람을 딛은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정숙한 묵령의 걸음은 소천의 눈으로 따라가기가 너무나 벅찼다.
"윽! 경공 싸움은 어쩔 수 없나...?!"
순식간에 묵령보의 걸음은 소천의 사각으로 교묘하게 다녔고, 그것을 빠르게 눈치채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는 발바닥에 진기를 모으고... 흐읍!"
콰직! 파아아!
소천은 설산의 진기를 모으고 땅을 강하게 박찼다. 그곳을 중심으로 차가운 풍압이 사방으로 퍼지고 그 여파에 사각을 교묘히 넘나들던 묵령이 그대로 밀려나 모습을 드러냈다.
"설산무원공(雪山霧源功). 설파장(雪破掌)!"
퍼엉!!
소천은 무방비의 묵령에게 설파장을 쏘았고, 그것을 마주한 묵령도 곧바로 반격했다.
"천지무성세(天地無聲勢). 무성파(無聲波)!"
보이지 않은 묵령의 파동이 그대로 설파장의 새하얀 냉기를 잠식시켰고, 묵령은 그대로 허공답보하여 소천에게 뛰어들어 근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낭아지세(狼牙之勢). 격(擊)!"
투탁! 탁! 타타탓! 휙! 탁탁!
늑대와도 같은 자세와 이빨같이 날카로운 묵령의 주먹과 각법은 소천의 급소를 예리하고 정확하게 노렸다. 소천 역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지만 빠르게 들어오는 묵령의 공격에 반격은 커녕 방어하는데에만 급급했다.
' 윽... 그래도 나도 나름 근접은 자신있는데... 하지만 스승님께 그 꼴을 차마 보이기 싫어... 최대한 거리를 벌려 장법으로 승부보자...! '
하후란이 소천의 망설임을 읽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 소언아. 왜 그러느냐. 어째서 망설이는 것이냐. '
"하아아! 설공파(雪功破)!!"
소천은 다시 설산의 진기를 담은 장을 바닥으로 흩뿌렸고, 그 여파로 다시 묵령과의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했다. 묵령은 그대로 뒤편으로 간격이 벌어지자 손을 뻗어 지면을 짚고 앉아 자세를 잡았다.
' 방금 무공이면 내력소모가 클텐데... 마치 접근전을 피하는 것 같아. 그렇다면...! '
묵령은 뒷주머니에서 암기를 꺼내들어 소천에게 두어개를 던졌다.
휙! 휘휙!
날아들어온 암기들을 손에 진기를 모아 그대로 흘려보내는 소천. 그리고 묵령과의 거리를 더욱 벌려 양손에 진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설화난장(雪花亂掌)!!"
설파장이 마치 한겨울에 쏟아지는 눈꽃처럼 날파람에 휘날려 사방에 흩뿌리듯 묵령을 향해 쏘았다. 꽤나 넓은 범위의 장이 끝없이 펼쳐져 덮치는데, 묵령은 그저 냉정한 눈빛으로 빈틈을 찾아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 일쑤였지만, 그 와중에도 소천을 향한 반격을 잊지 않고 있었다.
휙! 휙!
새하얀 난장판 속에서 암기가 튀어나와 자신을 공격하자 더욱 높게 뛰어올라 안의 상황을 살폈다.
' 령 언니는 암습의 달인이야. 당장 위치를 파악하고 다음 수를 준비해야... '
설화난장의 안개가 걷히고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개가 걷어진 대회장은 텅빈 상태였다.
"어? 어, 어디...?!"
.
.
.
.
.
.
"여기."
"꺅!!"
갑자기 뒷편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버렸다. 화들짝 놀라 뒤를 향해 손을 휘둘러 뻗었지만, 묵령의 손에 가볍게 제압되었다.
"생각은 괜찮았어. 근접전을 피하고 원거리전으로 양상을 바꾸고 다가오지 못하게 발을 묶는 것까지는. 내가 설화난장을 피하고 있을 때를 노려서 마지막에 큰 기술이 왔어야 했어. 이전 경기에 란 소저께서 사용한 설파빙옥장(雪破氷玉掌) 같은게 말이야. 소천은 순간 판단이 느린 것 같아. 망설이지마."
"큭!! 어, 언니야 말로...!"
소천에게는 아직 근거리를 위한 설산의 무공이 남아있었다. 서둘러 묵령의 손을 뿌리치고 공력을 모아 손바닥을 그녀를 향해 뻗었지만 묵령도 이미 손을 뻗고 공력을 뿜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초가 급하니 서로가 동시에 자신의 기술을 사용했다.
"설파격장(雪破激掌)!!"
"격공장(激功掌)!!"
뻐어엉!!
공기를 찢는 듯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졌고, 그 여파로 공중에서 둘의 사이가 크게 벌어져 그대로 바닥에 착지했다. 소천은 당문 멸문 뒤에 다시만난 그때를 떠올렸다.
그날의 묵령과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자신은 스승의 내력을 물려받고 탈백유란의 재림이라 일컬어져 그녀와의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을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그녀는 단지 실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할 뿐이었고, 누군가가 뒤에서 밀어주기만 한다면 귀신 씌인 듯한 경공을 바탕으로 단숨에 고수의 경지로 올라설 수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던 고치속의 나비였던 것이었다.
"물향기(水香). 잔걸음(潺步)."
"윽!! 빠, 빨라!!"
퍽! 퍼퍽! 툭! 타탁!
지금의 그녀는 정말로 등에 날개를 단 나비로 우화하였고, 벼락과도 같은 속도의 경공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접근전을 유도해 소천을 파죽지세로 궁지에 몰아넣을 정도로 강해진 상황이었다.
' 소언아... 왜 망설이는 것이냐. 네 특기는 누구보다 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어째서 그것을 사용을 하지않는 것이지? 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이냐... '
하후란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주특기는 원거리전이 아니라는 것을. 개방에서 자라나 누구보다 접근전에 능숙할 터 였는데 자꾸만 그것을 피하려하니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형세는 자꾸만 묵령에게로 기울어만 갔고, 일방적인 공격에 작아지기만 하는 소천이 안쓰럽기만 했다.
"윽...! 하아, 하아, 하아..."
"......"
묵령도 의아했다. 소천의 특기를 부군인 조활에게도 들었던 적이 있었다.
' 번 동생은 근접의 달인이야. 정말 미친개가 따로 없지. 제아무리 빠르게 경공으로 다가가서 손을 뻗는다 한들 개의 움직임과 매우 흡사하게 움직이니, 맹수가 따로 없었다니까? 소사매, 만약 동생이 뛰어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고기로라도 달래줘야 할 정도였어. 어떤지 알 것 같아? 결코 흉내를 내는 수준이 아니야. 개, 그 자체야! '
.
.
.
.
"천아."
묵령이 소천을 불렀다.
"헉헉... 어, 언니?"
"조 랑에게 듣기로는 천아는 접근의 달인이라지? 어째서 설산무공에 집착하는 거지? 비록 설산파 직계제자라지만 원거리전은 너와는 안 맞아. 마치 네가 탈백유란이 된 듯, 흉내를 내고 있는 것 같잖아. 이유가 있는 거야?"
"그, 그건..."
묵령의 이야기에서 그제서야 소천이 과감하지 못한 원인을 알게된 하후란이었다.
' 그런가... 내가 소언에게 준 것은 탈백유란의 이름만이 아니라 그 자체를 물려준 것인가... 탈백유란의 재림이라니... 내 실수구나... 설마 그런 곳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가. 그래서 혼자서 몰래... '
하후란의 의도는 이랬다. 부디 자신을 이어받더라도 결코 남들에게 헛되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건만, 탈백유란의 이름이 그녀의 한걸음에 장애물을 놓은 꼴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소언!!"
하후란이 외쳤고, 당황한 소천이 그녀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 쳐다보았다.
"너는 너이니라! 탈백유란이 아니야! 네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별호도 있지 않느냐! 너는 나일 필요가 없다! 네가 그동안 살아온 과거가 있는데 어찌 쉽게 그것을 뿌리치려 하는 것이냐! 자연스러운 것이야말로 너의 힘이다! 부디 나를 닮지 말거라!!"
"스, 스승님..."
소천은 그날 스승의 앞에서 했던 맹세를 되짚었다. 머리를 곱게 빗고, 온몸의 흙먼지를 설산의 냉수로 씻으며, 말투와 몸가짐을 단정히하고, 스스로 여자임을 자부심 가지고 살아가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작 나자신이 아니었다. 억지로 끼워맞추며 스스로를 봉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모를리가 없었다. 밤마다 남몰래 억눌러온 본능을 푸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이 있던 것은 분명했다.
하후란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자신이 그녀에게 큰 짐을 준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스스로의 길을 가거라!! 너는 창빙란천(蒼氷蘭天) 이니라!!"
"스승님...!"
소천은 하후란의 외침에 닫혔던 눈을 뜨고 봉인된 의지를 풀기 시작했다.
땅이 진동하고 빙화의 꽃이 피어나 사방을 비추니, 한겨울에 태어난 설산의 영혼을 담은 맹수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역시, 자신을 봉인하고 있었구나. 조심해야겠어. 그녀가 올거야. 가면을 벗어던지고...! '
묵령은 그제서야 빈 손을 버리고 부군의 검을 닮은 목검을 빼어들었다. 설산빙견(雪山氷犬)의 등장을 온 몸으로 마주하기 위해서, 설산의 정수를 머금은 광인(狂人)을 맞이하기 위해서.
소천은 자세를 바꿨다. 곧게 뻗은 허리를 굽히고, 맹수와도같이 언제든 뛰어나갈 준비를 위해 팔과 다리에 힘을 축적하기 시작했고, 눈빛은 사냥 준비를 마친 안광을 비추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에게 탈백유란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
파아앗!!
"...!?"
어느샌가 소천은 묵령에게 뛰어들어 양손을 차례로 휘둘러 공격을 시작했다.
휙! 휙!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속도로 묵령의 목을 옥죄기 시작했고, 갑작스럽게 시작된 그녀의 광기어린 행동에 한박자를 헛딛여 다리의 힘이 풀려버렸다.
"윽...! 이, 이것이 사형이 말했던?!"
갑자기 몰아치는 소천의 오른손의 일격이 넘어진 묵령의 머리위를 스쳐지나갔다. 가까스로 피했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소천은 휘두른 관성을 이용해서 몸을 비틀고 뒷발을 묵령에게 휘둘러 후속타를 날렸다. 묵령은 양손을 교차해 겨우 그것을 막았지만 팔목이 욱신거릴 정도로 덮쳐온 뒷발의 힘에 밀려나버렸다.
"움직임이 달라. 진짜 맹수가 되어 버리는구나...!"
"설산견아권공(雪山犬牙拳功)!!"
"?!"
잠시도 쉴새없이 몰아치는 거대한 오른팔의 일격이 묵령을 덮쳤다.
"휘휘절아(揮暉絶牙)!!"
소천은 오른손을 단순히 휘두르는 것이 아닌, 설산의 냉기를 머금은 손톱을 휘둘러 묵령을 찢기위해 공격했다. 하지만 묵령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찌되었든 경공의 달인이었다.
"물향기(水香). 무위보(舞褘步)."
묵령은 지면을 살살 딛어 물살에 쓸려나가듯 빠져나왔고 소천의 휘휘절아는 그대로 허공에 그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휘휘절아는 설산의 냉기를 품은 공격. 손톱에 담긴 냉기가 그대로 묵령에게 뻗어나가는 조기(爪氣)가 되어 그녀를 이중으로 덮치자, 다시한번 무위보를 이용해 재빨리 피했다.
하지만 맹수의 빠르기는 쉴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손을 뻗어 반격하는 묵령.
"천지난연장(天指亂蓮掌)!!'
묵령이 뻗은 손바닥에서 폭풍우같은 장이 쏟아져 소천을 덮쳤고 짐승같은 움직임으로 이리저리 피하고는 또다시 묵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묵령은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낭아지세(狼牙之勢)!!"
소천의 달려드는 격한 충돌에 근접으로 맞섰다.
탁탁! 휙! 파아앗!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는 움직임으로 묵령을 압박하는 소천이었다. 폭풍우같이 격한 권격이 사정없이 서로를 찌르고 때리고를 반복하며 타격전으로 들어갔다. 난장의 상황에서 둘의 눈빛은 이리저리 공격을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그때 소천이 손을 뻗어 묵령의 얼굴을 날카롭게 노려들어갔고, 묵령은 서둘러 고개를 돌려 공격을 흘렸다. 잠시나마 빈틈이 발생했고 묵령은 냉정을 잃지않은 눈빛을 유지하며 곧바로 손을 뻗어 격공장을 쏘아냈다.
"격공장(激功掌)!"
뻐어엉!
"윽...!"
격공장을 쏘아낸 손은 어느새 소천의 양손에 잡혀있었다. 하지만 손을 잡혀있었을뿐 두 다리는 멀쩡했다. 묵령은 재빨리 다리를 휘둘러 걷어차 소천을 밀어 간격을 벌렸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거리가 벌어진 묵령과 소천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둘의 이마에는 그간의 소동에 방울방울 맺힌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낭아지세는 그저 늑대의 기세를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천아는 진짜 맹수, 그 자체가 된것같아. 내가 근접전에서 방어하는 것이 고작이라니... 개방은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시련을 준 것인지 예상이 안돼. 무슨 삶을 살아온거니? '
' 이길 것 같아. 내가 실수만 안한다면... 근접전을 최대한 벌여야해. 속도는 못따라가는게 흠이지만 일단 붙기만 한다면...! '
눈 한번 깜빡이는 순간조차 서로가 서로를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신경은 날카롭고 눈빛은 집중하다못해 무아의 상태로 접어들어 발끝의 흔들림마저 그녀들에게는 여간 신경쓰이는 요소가 아닐 수가 없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지나자 곧바로 서로 달려들어 수십 합의 근접전이 시작되었다.
"소언의 설산의 정수와 개방의 짐승같은 움직임이 합쳐지니 실로 놀랍구나. 그 아이가 둘을 합쳐 자신의 무공을 만들었을 줄은... 게다가 당 소저도 듣던 것 이상으로 강하기도 하고... 나도 저들과 싸워보고 싶구나..."
하후란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는 그녀들의 대련을 부러워하기에 이르렀다. 무림인으로서의 피가 들끓는 순간이었다.
"어허. 싸우고 싶다니. 내력 부족으로 허덕이는 여인네가 뭘 더 싸우려하는 것이오?"
"...당포의."
당포의와 어느덧 깨어난 용상이 하후란 곁으로 다가왔다. 용상은 하후란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자 당황했지만 금방 표정을 풀고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라, 란 언니."
"상아. 깨어났느냐?"
"네, 네..."
하후란은 둘을 빤히 쳐다봤지만 당황해하는 용상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시선을 다시 대회장으로 돌렸다. 당포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하후란에게 물었다.
"안 물어보시오?"
하후란은 그의 물음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회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왜? 사람은 저마다 따라가는 인연이 있을지언데 본녀가 굳이 입을 열 이유가 있더냐?"
하후란은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용상은 언니의 반응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이유를 본인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 같은 하후란의 반응에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 언니..."
바로 전에 경기를 치뤘던 용상이 힘없이 입을 떼자 하후란은 안타까움이 실린 한숨을 쉬고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인생의 결정은 스스로 하는거다, 상아. 네가 그리 결정했다면 그런 것이겠지. 상대가 왜 저 사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저 사내의 질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구나."
"아으..."
당포의는 하늘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재꼈다.
"거참, 욕 한번 제대로 먹는구만."
대충 말하는 그의 무책임함에 하후란은 크게 화를 내려 했으나, 용상을 앞에 두고 차마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다.
"할 말은 많다만 더는 이야기 하지 않겠다. 게다가 지금은 이리 말싸움 할 상황도 아니고. 본인의 상황은 본인이 직접 말하라. 조만간 시간이 생길 것이니, 모두에게 밝히도록."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던 당포의는 나지막하게 말을 흘렸다.
"고맙구만."
"......별게 다."
하후란은 그저 떨고있는 용상의 손을 잡고서 자신의 옆에 앉혔고 아무 말없이 대회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포의가 의기롭게 입을 열었다.
"소사매는 어떤 것 같소? 란 소저."
여유로움을 보이는 그에게 눈길을 잠시 흘긋 주고는 다시 시선을 대회장에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적어도 네 복잡스러운 휘갈김보다는 냉정하고 정갈하니 그녀야말로 장문인의 기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여협이다. 천지무성세는 본녀도 오늘 처음 마주하여 그것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장문인이 그녀를 위해 창안한 것이 신의 한 수일 정도로군. 정교하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굉장한 초식이야."
그녀의 평에 화답하듯 당포의는 번소천의 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반대로 번 소저의 모습은 굉장하군. 설산의 정수를 품은... 어... 견아(犬兒)라니. 이로 말 할 수없이 변화무쌍한 초식들이 굉장하군. 스스로가 저런 경지를 만들어낼 정도면 애초에 잠재력이 굉장한거 같은데, 그걸 엿보고 제자로 받은 것이오?"
하후란은 그저 냉정히 답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저 좀 유명한 개방광인이라길래 그냥 넘어갔지만, 조활과의 대련에서 잠재력을 느꼈지. 특히 근접전에서 신기에 가까운 반사 신경을 보였으니 잘만 다듬는다면 어린 나이에 최강의 협녀가 될 것이라 여겼다. 특히나 상성 면으로 본다면 지금의 소언은 이전 시합에 나왔던 팽 부인을 어렵지 않게 이기겠지. 허언이 아니다. 그정도로 소언은 강한 아이다."
당포의는 하후란의 이야기에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큰 검을 가지고 무거운 초식을 사용하는 팽소월은, 변화가 다양하고 사각을 집요하게 노리는 쾌속의 상대와는 상성이 그리 좋지 못하다. 그렇기에 큰 범위 공격으로 사각을 버리는 것이 최선인 반면, 자신의 속도로 상대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쾌속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 될 위험이 크다. 물론 그것에 대항할 수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좋은 상황이 나올리 없다.
"개방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극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겠지? 그 험한 세상에서 온 신경을 자신을 보호하는데 써야 했으니 예민함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소언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산에서 그런 사건을 겪고 나서는 개방의 자신을 지워버리고 본녀의 직계제자가 되겠다 선언했으니, 그것이 족쇄가 되었을 줄은 본녀도 생각치 못했다. 이 경우는 스승이 영리하지 못 한 경우다. 그래도 스스로가 본인을 되찾고 한 층 성장했으니 스승으로서는 기쁘군. 해 볼 만한 대련이다."
당포의는 슬쩍 하후란을 쳐다보고는 다시 대회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우리 소사매도 만만찮소. 근접이며 원거리며, 뭐하나 빠지지않는군. 게다가 천지무성세의 이치 중 하나인 냉정이 무너지지 않는 것을 보면 상대에 대한 분석도 탁월하지. 소사매는 안질거요."
"길고 짧은 것은 대뵈야 아는 법이지. 설산이냐 당문이냐. 설마 이런 상황에서 자웅을 가릴 줄은 몰랐군."
"하하! 그러게 말이오."
그리 이야기하고는 다시 시선을 대회장으로 돌렸지만, 당포의는 그녀의 천지무성세에 슬슬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 하지만 소사매가 사용하는 초식이니, 기술이니 하나하나가 이상해. 소름이 돋을 정도군. 저게 정말 당문 무공이 맞는 건가? 마치 움직임이 당문에 대적하기 위한 무공같은데... 천지무성세... 장문인께서는 대체 무얼 만든거지? '
.
.
.
.
"천지월보격(天指月步擊)!!"
묵령이 허공을 박차고 그대로 소천을 향해 떨어져 그녀를 내리찼다. 소천은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나 묵령의 공격을 흘려냈고, 그대로 다가가 손을 뻗어 공격했다.
소천의 날카로운 조법을 양손으로 받아내고 묶어둔 뒤, 몸을 휘둘러 돌려찼다. 그녀의 날카로운 발차기에 무릎을 몸통까지 들어올려 막아내고는 손으로 묵령을 붙잡고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휘익!!
"설화난장(雪花亂掌)!!"
소천은 무방비의 묵령에게 눈꽃의 냉기를 담은 장법을 넓은 범위로 쏟아내었다. 묵령은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허리 뒷 춤에서 구를 하나 집고는 그대로 설화난장 안에 던졌다.
퍼엉!
묵령이 던진 것은 연막탄이었고, 연막이 소천을 그대로 덮쳐 시야를 감추는 방법을 택했다. 소천은 차라리 잘 됐다 싶어 연막 안에 몸을 숨기고 움직임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피부로 느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후각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냄새의 위치를 파악한 듯 손을 들어 크게 휘둘렀다.
"공아절조(恐鴉絶爪)!!"
연막을 찢어버릴 정도로 날카로운 조법이 허공을 그었지만, 그 자리에는 묵령의 겉옷 만이 있었다.
"아차!!"
냄새를 이용한 묵령의 재치였다. 소천이 연막속에서 바로 나오지 않자 직감적으로 그것을 이용할 것이란 것을 알아챘고, 그녀의 특성이 맹수와 같다는 것에서 착안해 자신의 냄새가 배어있는 겉옷으로 유인하려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상은 적중했고 위치가 들통난 소천을 향해 재빨리 돌진하여 그녀의 뒤를 잡고 바닥에 쓰러뜨려 제압했다.
승부가 났다.
"후우... 내 승리야."
"윽... 견아권공을 선보이고나서도 금방 붙잡히다니... 괴, 굉장해요. 게다가 후각을 이용하다니, 얍삽하기 까지..."
"후후. 견아권공이라... 천아도 굉장했어. 뛰어난 반사신경에 재빠른 속도. 이전 설산무원공에 의지했던것 보다 훨씬 강했어. 예전 개방시절이 생각나는데?"
묵령은 소천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천은 묵령의 손을 당겨 일어나 몸의 흙먼지들을 털어냈다.
"으으... 스승님한테는 이 추태를 죽어도 안보이려 했는데..."
"어째서?"
"그야..."
소천이 하후란을 흘긋 쳐다보았고, 눈이 마주치자 하후란이 손을 흔들며 반겼다. 그 모습을 본 소천은 한결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가슴속에서부터 품고 있던 불문율이 깨져버린 것 같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야, 탈백유란은 아름다워야 하니까요. 푸른 옷의 아름다운 여협이 양손, 양다리로 땅을 기어다닌다니, 누가 그걸보고 좋아하겠어요? 나름 저는 탈백유란의 재림이라 불렸는데 모양도 안 좋고, 스승님은 모를 줄 알았는데... 아으..."
"후후.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칭하는거야?"
"네?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묵령은 소천의 어깨를 두드려 위로했다.
"괜찮아. 소천이 탈백유란이 아니라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게다가 란 소저도 직접 너에게 말했잖아. 너는 탈백유란이 아니라 창빙란천이라고."
"령 언니..."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여운을 남긴채 대회장에서 퇴장했다.
.
.
.
.
.
당포의가 말했다.
"핫하! 당문의 승리구만. 자, 금전 내놓으시오."
하후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 오년 전의 약속을 아직도 기억하다니."
용상이 놀라서 물었다.
"오년 전의 약속이라니요? 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당포의가 의기양양하게 하후란으로부터 수금을 하고난 뒤 입을 열었다.
"당문과 설산파. 대결에서 이긴다면? 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었소. 설마 그게 오늘 이뤄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하하!"
"라, 란 언니..."
하후란은 기세가 들끓었다. 귀신이 깃들어버렸다.
"회복하고나서 다음은 네놈이다, 당포의..."
당포의는 서둘러 용상을 앞세우고 하후란의 기운을 막았다.
"다, 당포의?? 지, 지금 무슨...!"
"후후. 잠시 방패가 되어주시오."
"큭...! 감히 상아를 방패삼다니, 당포의 놈!"
.
.
.
.
"오래기다리셨죠?"
그때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이 깃들었던 하후란은 그 목소리를 듣고 몸가짐을 정리하고 시선을 돌려 맞이했다.
"오. 고생했다, 소국. 몸은 좀 어떠냐?"
위국은 욱죽의 부축을 받으며 한손에는 비파(琵琶)를 가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간의 고생이 고스란히 보여지듯, 정갈했던 머리 칼이 헝클어진 모양새를 보여 얼른 다가가 그녀를 정리해주었다.
"좀 피곤하긴 하지만 이제 내력을 부릴 수 있게 되었어요. 덕분에 이제 철비파공(鐵琵琶功)도... 윽..."
아직 채 회복이 되지 않은 듯, 고통을 호소하며 억지로 나온 분위기였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하후란이 아니었기에 부축해 줄 뿐이었다.
"그렇군. 그러나 너무 무리말거라. 아직 시간은 있으니 회복부터 하자꾸나."
"네, 란 언니."
하후란은 옆에서 고생한 욱죽도 챙기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죽아(竹兒)는 어떻느냐? 괜찮느냐?"
다행히 욱죽의 상태는 제법 괜찮았다. 암혈혼단(巖血魂丹)의 괴력과 내력이 제법 깊고 강고하다는 것을 몸소 욱죽의 표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전 멀쩡해요, 란 언니. 국 언니가 많이 피곤해하니 거들어야지요."
"그래. 그러자꾸나."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대회가 끝난 후.
묵령의 앞에 표정을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쓴 채 비연이 덤덤히 서있었다. 묵령은 의아했지만 비연의 이야기를 듣고자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비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내력은 괜찮습니까?"
"연 소저?"
묵령이 그녀의 상태가 이상해보여 되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묵령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녀의 어투에는 무언가 의지가 실려있었다. 가면 뒤에 가려진 그녀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신과의 대련이 목적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어찌..."
"지금 남은 건, 저와 매 소저이긴 하나, 본녀는 그대와 우선 싸우길 바라고 있습니다. 매 소저께는 미리 양해를 구했으니 순서는 상관없을 겁니다. 부디 재고해주시길."
"......"
묵령은 그녀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고 싶었지만 물어본다고 한들 가르쳐줄 것 같지도 않았다. 비연의 어투에는 적의는 없다. 단지 단순하게 자신과의 대련을 원하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으니 의아해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
"엽 랑."
"괜찮소."
비연의 뒤에는 엽 부부가 숨어 있었지만 묵령은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묵령은 깊게 한숨을 쉬고 일단 비연의 의도에 넘어가주자는 의미로 생각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대신에 일각(15분)의 시간을 부탁드리지요. 본녀도 회복은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비연은 묵령과의 약속을 받아내고는 그대로 뒤돌아 대기장으로 돌아갔다. 묵령은 문득 이전에 그녀를 덮친 사건이 떠올랐다.
' 설마, 그때의 습격이 아직 마음에 걸린 것일까? 그러고보니 나는 그녀에게 아직 사과도 제대로 못 했구나. '
.
.
.
.
.
' 령아(鈴兒)... '
월영전(月鍈傳) (3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