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게임은 페르소나 3의 리메이크.
페르소나 3 리로드이다.
낮에는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고, 밤에는 정체불명의 탑을 오르며 악마들을 때려 잡는... 대충 그런 이야기다.
* 페르소나 시리즈가 특별한 이유가 뭘까?
현대 배경,
랩과 보컬이 들어간 팝적인 음악,
단순하지만 속도감 넘치는 턴제 전투,
세련된 비주얼.
뭐,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이유는 전투를 하는 게임 주제에 일상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안에서 일상은 극히 단편적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갓 오브 워의 크레토스는 신들 목 뽑기 바쁘고,
데빌 메이 크라이의 단테는 악마들 후드러 까기 바쁘다.
다른 RPG 게임들? 끽 해야 모여서 밥 먹는 정도다.
애시당초 RPG면 현실 배경이 아닌 경우가 열에 아홉이고.
심즈처럼 작정하고 그쪽 장르가 아닌 이상
전투가 있는 게임 속 주인공에게 일상은 아예 없거나 아주 일부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니면 지나간 과거거나.
* 페르소나의 주인공은 단순히 몬스터를 잡고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 뽑아내는 킬링 머신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오락실을 간다거나,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이런 일상적인 모습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그런 평범함이 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든다.
억지로 캐릭터들 모아놓고 아아... 이건 주먹밥이라는 거다... 밀푀유라는 거다...
이 지랄 떨면서 밀린 숙제 치우듯이 억지로 일상과 유대를 쑤셔 넣는 게임이 아니다.
* 그런 점에서 페르소나 3는 시리즈 내에서 가장 독특하다.
아이러니한 이유 때문인데.
가장 비현실적인, 비일상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 페르소나4는 현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배후를 쫓다는 골자도 그렇고, 배경을 아예 깡촌으로 돌려서 소박한 일상을 잘 표현했다.
5는 실제 사건과 실제 배경을 갖다 써서 현실감을 더욱 불어넣었다.
물론 3도 현실감이 있고 그것이 세일즈 포인트였던 작품이지만 후속 시리즈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전작들을 해봤다면 묘하게 딴 세상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완전 고등학생 히어로가 되어 몰입하고 싶은데, 그게 힘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
* 게임의 기본 전개는 밤에만 나타나는 탑을 오르며 악마들을 때려 잡고, 탑의 비밀을 파헤치는 거다.
5편을 통해 유입된 유저라면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
딱히 어떤 기믹이 있다거나 정해진 형태가 없다.
디아블로처럼 무작위 생성 던전이다.
1층이나 100층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소리.
눈 심심하지 말라고 일정 층마다 인테리어를 바꾸기는 하더라.
* 원작도 그랬으니까... 라고 하기에는 이게 좋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10층, 20층, 50층, 100층... ... 아무런 특징도 차별점도 없는 던전을 무한정 오르다 보면 뇌가 녹는 기분이다.
* 사족으로 대부분의 전투마다 써야 하는 총공격 연출은 너무 화면을 가까이서 잡고, 막 흔들고 화면이 하얗게 번져서 눈이 아픈데.
나중에 눈을 덜 피곤하게 하는 옵션을 넣어줬으면 좋겠다...;;;
* 뭐, 바톤 터치라거나.
부술 수 있는 오브젝트라거나.
필살기도 새로 생기기도 했고.
이런저런 추가점이 있긴 하지만 소소하다.
* 애초에 리로드 자체가 원작과 큰 차이가 없다.
좋게 말하면 원작을 존중...
나쁘게 말하면 힘을 좀 빼고 만든 티가 난다.
* 리메이크를 하는 자세가 그렇다.
원작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예쁜 그래픽을 덧입히고, 거기에 몇 가지를 추가했다.
그게 끝이다.
무려 18년 전 작품을 리메이크를 했는데,
실상은 그래픽만 빼면 '페르소나 5 -> 페르소나 5 로얄' 정도의 변화라는 이야기다.
확장판을 하도 많이 만들다 보니 리메이크도 확장판스럽게 작업했나 보다.
마치 직업병처럼.
몇 몇 괴상했던 NPC 스토리라도 다듬었으면 좀 어땠을까.
* 내가 극적인 변화를 원했던 이유 중 하나는 3편의 스토리가 4나 5에 비하면 동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4편은 살인 사건의 배후를 뒤쫓고,
5편은 멀리 갈 거 없이 첫 번째 에피소드로 동력이 풀충전 된다.
하지만 3편은?
12시가 되면 갑자기 탑이 솟아 오름...
이유는 모름...
암튼 탑에 올라보자...
몇 층까지 올라야 하는지는 모름...
무기력증에 빠진 환자들이 속출함...
이유는 모름...
탑 말고 동네에서도 괴물이 나옴...
이유는 모름...
모르지만 일단 잡고 보자...
잡으니까 무기력증 환자가 줄어듬...
이유는 모름...
이런 식이다.
미스테리에 기반했는데 게임 전개가 길고 느슨한 편이라 동기부여가 약하다.
추가한 건 동료 에피소드가 고작이다.
근데 그건 위에서 말한 '밀린 숙제 치우듯이 억지로 일상과 유대를 쑤셔넣는' 방식이라서 얄팍하다.
야심이 너무 없단 말이지.
* 결과적으로 페르소나 3 리로드는, 그래픽은 5편보다 좋지만 게임적으로 5편의 후속작 같지는 않은 어중띤 작품이 되었다.
그보다는 4편의 후속작에 가까워 보인다.
무쌍이나 유비소프트 게임 같은 옆그레이드 느낌.
왜 그랬을까?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
선배들의 유산에 짬찌들이 함부로 손 댈 수 없어서?
야심차게 변화를 줬다가 망치면 오롯이 자기들 탓이니까?
고전 명작 잘못 건드리면 오지게 욕 먹으니까?
주요 개발진이 전부 빠져서?
변화를 크게 주면 작업량이 많아져서 힘드니까?
제작비의 한계 때문에?
적어도 원작 존중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임에는 분명하다.
이를 의심하는 이유는 엔딩 이후에 올라오는 스탭롤이 생각보다 짧았기 때문이다.
안팎으로 참 현실적인 게임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페르소나 최신작이면서 입문용으로 걸맞는가에 대한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게임 시리즈는 최신작이 입문용으로 추천되는데 리로드는 5와 비교하면 각각 일장일단이 있으니까.
4와 5중에 뭘 추천할 거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5겠지만 리로드와 5는?
글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게임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아쉬운 건 지나치게 안전빵을 추구한 방식이지 게임에 하자가 있다거나,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애니메이션 스타일 게임 중에서 페르소나와 맞먹는 게임은 거의 없으니까.
시리즈 양산을 안 한 덕인지 퀄리티 유지가 안정적이고 대체제가 없으니까.
쿨한 팝 스타일의 음악과 현란한 비주얼,
풍부한 볼륨과 빼어난 캐릭터 모델링, 화려한 연출, 파행이 적은 스토리.
결정적으로 게임패스 데이원...
이건 안 할 수가 없다.
* 다음에 나올 4 리메이크, 혹은 6편도 기대해 본다.
다음 작도 현실적인 안정성을 선택할지, 아니면 비현실적이지만 도전을 추구할지.
과연 아틀러스의 선택은 무얼까?
* 특징.
<증명하기보다는 혼나지 않기 위해 애쓴, 고전 명작 RPG의 리메이크.>
* 장점.
<애니메이션 풍 게임 중 최상위 퀄리티.>
<쿨한 음악.>
<현란한 연출과 아트.>
<빼어난 캐릭터 모델링.>
<속도감 넘치는 턴제 전투.>
<파행이 적은 스토리.>
<엔딩.>
<풍부한 볼륨.>
<예쁜 여캐들.>
* 단점.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험.>
<성의 없는 배경, 엑스트라 그래픽.>
<지루한 던전.>
<작붕은 없지만 2% 부족한 애니메이션 완성도.>
<아이템 얻을 때 기능을 바로 안 알려줌.>
<수많은 전투 아이템이 한 카테고리에 있어서 바로 바로 꺼내쓰기 불편함.>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이 약함.>
<뒤로 갈 수록 지치는, 시리즈 특유의 답답하고 경직된 게임성.>
<정신없는 연출과 빛효과가 많아서 눈이 많이 피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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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의 공허한 느낌은 오리지널을 했을 때의 느낌이 새록새록 나더라고요. | 24.03.02 20:3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