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3 때였던가... 학교 1편이 방송을 했었다. 그당시 E본부에서도 청소년 드라마를 했었지만 어딘가 감도는 어색함이 비현실적이라 여겼을 때 학교 1의 현실적인 느낌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악역이었던 권혁수는 지금 생각해도 중2 악역 캐릭터의 모범답안 중 하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캐릭터도 잘 짜여있었고 재밌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학교 1의 추억이 잊혀져 갈 무렵에 우연히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이 드라마의 방영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랫만에 만나는 반가움이란...
역시나 오랫만에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답게 인물 구성이 학교1과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아마 학교 1의 인물구성이 매력적이었고(생각해보면 뭐 학원물 인물 구성의 전형적인 클리셰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는 모험을 피한 것 같지만 학교 1의 재탕이라는 진부함이 덜 느껴졌던 이유는 교권이 절대적이었던 90년대에 비해 지금은 체벌도 금지되어 있고 부족한 교사의 인원 수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기간제교사 제도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설움과 불안함과 유사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고액과외나 재벌급 입시학원 등의 폐해가 업데이트되어 있는 느낌은 그 나름대로의 학생과 교사의 고충을 담아내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게다가 학원물, 항상 재밌고 그래서 계속 재탕되는 소재 아니던가.
이 드라마에서 주로 얘기하고 싶었던 테마는 마지막화의 오정호의 명대사 "너무 걱정마지 마세요. 나쁘게는 안 살께요."에서 드러나듯이 성적만을 강요받는 청소년들과 명문대로 학생들을 구겨넣어야 되는 의무감을 가지고 사는 교사들이 얼마나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냐이다. 명문대에 대한 진학에 대한 압박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담을 쌓고 살던 여주인공 송하경은 결국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학생이 되었고 과거의 실수로 미래가 보이지 않던 고남순과 박흥수는 의리(라고 쓰고 애정이라고 써야되나...)를 되찾고 그나마 무사히 고3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으며 타인의 위기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로 변모했다. 일진 패거리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직업학교라도 가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고 계나리는 자신의 컴플렉스를 친구 신혜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들의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었고 극성 맹모 김민기의 어머니는 이미 망친 자식 농사에 대한 집착을 털어버리고 진정한 모성애를 아들에게 발휘할 수 있었다. 교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인재는 본인의 학생을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연마되지 않고 거칠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강세찬은 과거 트라우마로 인해 좋은 선생이기를 포기하고 강남 일타강사로 전전하다가 잃었던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러한 갱생이 이루어지는 곳, 밤바다의 등대불처럼 컴컴한 각자의 인생길의 가이드가 되어주는 장소가 바로 학교인 것이다.
학교라는 곳에서 각자의 인물들은 놀이동산 범퍼카들처럼 서로 부딪치면서 그들이 원래 가려던 동선이 틀어지고 원래 가려던 길을 잃는 것처럼 보여도 앞에서 언급한 학교의 순기능에 의해 각자 웃음을 되찾는다. 물론 마지막화에서 오정호는 현실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이상적인 구원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게 되지만 적어도 사회의 쓰레기로는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을 보면 현실과 이상의 중간지점에서 타협을 본 열린 결말도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의 사회 시스템에 억눌린 모습에서 충격을 받거나 공감을 하고 원래 가야 될 길을 사건들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가게 되는 모습에서 그들을 응원한다.
다만 무수히 던져진 떡밥을 풀어놓고 회수하기에는 턱없이 방영분량이 모자라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고 '하얀 거탑'에서의 최도영처럼 비현실적이고 이상만을 추구하는 인물인 정인재가 있었지만 정인재는 계속 숱한 위기를 넘기고 강세찬의 도움을 받고 자기 자리를 지킨다. 물론 여지껏 쳐 놓은 사고가 있어서 계속 힘없는 기간재 교사로써 겉돌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그러한 정인재의 마음을 통해 나비효과가 발휘되어 많은 사람들이 교화되는 모습과 현실의 벽에 부딫쳐서 방황하는 정인재의 모습은 하얀거탑보다 현실적이었다 생각된다. 뭐 하얀거탑의 원작이 일본 소설이고 일본 쪽 정서는 정말 만화같은 구석이 있고 그게 한국 사람 입장에서 덜 와닿는 건 뭐 어쩔 수 없으니. 그래도 하얀거탑이나 학교 2013이나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 싶었던 주제의식은 명확했고 내용 전개도 재밌었으니까.
이 드라마는 나로 하여금 엔하위키 항목의 상당량을 작성하게 만들 정도의 몰입감을 줬다. 물론 막판 스페셜 방송이 부녀자를 위한 게이쇼처럼 되어버려서 실망했지만 그래도 지난 날 보았던 웰메이드 드라마가 요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고 새로 등장한 모습과 실망시키지 않는 내용은 한동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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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 개인감상평 - 학교 20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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