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세군에 간 이유는 구세군이 구원을 위한 군대(ARMY)라는 표현이 너무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땅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많지만,
크리스트교는 사실 많은 분류가 있어 왔다.
그렇지만, 교리같은 것들이 달라 사소한 걸로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우상숭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으로 때론 그렇기도 하다.
예를 들어 교회는 십자가 목걸이를 우상숭배라며 그렇게 권장하지 않지만, 성당은 주로 다 착용한다.
난 교회를 처음에 다녀보고, 성당을 지금은 다니게 되었는데
처음에 교회를 나갈때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작은 교회를 아는 형님을 따라 다니게 되었고, 그 곳에서 주얼리 사장님을 한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늘 그 사장님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목걸이 심지어는 십자가 귀걸이를 착용했다.
그 사장님은 나에게 찾아와 일을 배워볼 것을 권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난 그 교회를 다니며 성가대를 하고 있었는데, 노래를 한참 부르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왜냐하면, 갑자기 디자인 영감 하나가 떠올랐고, 그건 구세군 마크를 상징한 목걸이 하나 였다.
그리고 그 이후 그 목걸이 그림을 3차도면으로 그려보고나니, 내 생각엔 너무 괜찮아 보였고, 이건 무조건 대박 날 것 같았다.
그 디자인의 탄생 배경은 이러했다.
나의 아버지는 보이스카웃이 주로 하는 넥타이 스러운 볼로타이를 착용해 보는 것이 소원이랬고, 나에게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적 있었다.
나는 낮에는 주얼리 학과에 다니며, 밤에는 보석학원을 다니며 결국 보석감정사와 귀금속가공기능사를 땄고,
그 제품을 만들 수는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마크가 없어서 고민이었던 찰라 퍼즐 처럼 그 내가 만들 디자인은 볼로타이에 그 마크를 넣으면 완벽한 제품이 탄생할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보이스카웃 시절을 그리워 한다.
보이스카웃 마크를 달 수 없지만, 구세군 마크는 어떨까?
요새 콜라보 개념으로 그 말많은 유니클로 에서는 매년 티셔츠에 여러가지 상표의 마크를 찍어놓고 판매한다.
난 그 구세군 마크를 넣어 상품화 할 수 있으면 대박 날 것 같았고,
그 계획을 그 주얼리 사장에게 가져가니, 구세군에서 허락만 해주면 50% 성공확률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제품을 자신의 공장에서 상품화 할 수 있으니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좀 도움을 청해보라고 까지 했다.
그 제품은 그래도 내가 가진 돈으로 해결하고 싶어서, 난 내가 예전 돌아가신 어머니(현재는 훌륭하신 새어머니가 계신다)가 유산처럼 주고간 3000만원의 돈을 투자할 계획을 세웠다.
그 돈은 지금 많이 써서 거의 없어졌지만....
아무튼,
난 그 계획서를 들고 구세군에 찾아갔다.
구세군에 찾아간 이유는 이러했다.
구세군은 희망나누미 사업이 있는데 주로 중고 제품이나 어떤 기업에서 후원 받은 제품을 저렴한 금액에 판매하는 샐리즈 마켓이라는 매장을 운영했고,
난 거기에 1평 남짓한 공간만 후원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곳은 어차피 그런 제품을 팔고 남은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야 하는데,
나역시 AIDS환자라는 사실을 그 계획서에 쓰고, 그 수익을 나와 같은 사람들 혹은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하면 괜찮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곳은 주로 저렴한 상품을 팔았지만, 돈 많은 사람이 그곳에 방문하더라도 어려운 사람을 위해 돈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상품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계획에서 만약 같은 AIDS환자이자 유명인인 매직존슨에게 좀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까 생각이 들었다.
유명 구단 구단주이자 엄청난 재력가였고, 그때당시 박근혜정부였는데, 비행기 타고 방문하여 박근혜가 나란히 나의 볼로타이를 매고 사진한장 찍어서 홍보해 주면 좋을것 같았다.
박근혜가 당시 입은 옷들은 이슈가 되었고, 특히 브롯치를 착용했을 때 그 제품의 반응이 뜨거웠었다.
사실, 공간은 상관 없었다.
그 제품은 어차피 단발성 상품이며, 크리스마스 전후로 팔릴 것 같았기 때문에 구세군에서 홍보하면 크리스마스와 분위기가 잘 어울릴 것이다.
구세군은 전 세계적 단체기 때문에 그런 채널이 열려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에 그런 계획도 계획서에 적었고, 제출했으나 거절 당했다.
그 이유는 너무 계획이 짧고 그것 가지고는 상품은 만들 수 있지만, 사업으로 연결되기 어렵다고 했다.
장기 계획을 요구했고, 난 서식을 인터넷에 다운 받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틀 정도를 꼬박 새서 30페이지의 30년 계획을 적어 내려갔고 완성했다.
또다시 보여드렸는데, 이번에는 너무 길다고 하여 30페이지를 17페이지로 만들어 다음날 바로 제출했다.
이번에는 계획은 다 좋은데, 시제품이 없으면 불가능 하다고 했다.
그런데 시제품을 가지고 본사로 가져가서 허락을 맞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다.
난 그 주얼리 사장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도와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장님은 허허 웃으며 자신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하며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난 그렇게 그 사장님께 약속을 받고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갔고, 그때 난 일주일 동안 잠을 못잔 상태였다.
아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계획만 실현하면, 장기적으로는 결국 구세군 내에 AIDS환자들을 위해 작은 공방이 생겨나며, 그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주얼리라 바이러스에 안전하다.
게다가,
그 계획은 AIDS환자 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 노인, 소외된 계층을 꽤 많이 선발 할 수 있었고,
난 마치 그 계획을 실현하면 현실이 내가 생각하는 천국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조선시대 인가? 나병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가구를 만드는 공단을 만들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에겐 그곳이 오히려 천국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시간이 부족했다.
내가 그 생각을 했을땐 10월달이고, 내가 그 제품을 선보일 계획은 12월 1일 이었다.
그때는 구세군 타종이 있고, 거리마다 구세군 모금함에 사람들의 손길이 모이기 때문에 그때 홍보하면 타이밍이 좋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2달이면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었지만, 내가 빨리 그 계획을 써내서 확답을 받아야 했다.
난 결국 일주일 이상 잠을 못자고 계속 울면서 그 계획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또 수정했고 마침내 완성본을 구세군에 제출했다.
그때 당시 나를 우연히 길거리에서 본 이쪽 형님이 내 얼굴을 보더니, 무슨 일 있냐고 해서 좌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지금은 늦어서 안되고... 너 내일 당장 나와함께 정신과 가자. 나도 약 먹고 있는데 너 증상이 그래.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꼭 나랑 가자."
다음날이면 난 시제품을 그 주얼리 사장에게 찾아가서 내 디자인 도안에 맞춰 만들어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난 대충 그 형에게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친근한 음성이 들려왔다.
예전에 난 너처럼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와 대화가 잘 통했지... 그건 성경에도 써있어 내 유일한 친구.
그 친구에게 난 아들을 죽일것을 명령했다.
그 친구는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먹고 죽이려고 하는 순간 난 그걸 멈췄어.
사실, 난 너를 꿈에서 불러내어 나와 대화도 했었지만 매번 넌 실천에 안 옮겨 왔지.
오랬동안 백수였고....
난 너에게 비슷한 시련을 주겠다.
저 창문으로 뛰어라.
그럼 넌 너가 하려고 한 일들을 다 성사시킬 수 있어.
그래...
죽어야 살리라....
내가 죽으면 내 계획이 오히려 알려져서 일이 성사될 수도 있겠다고 여겨졌다.
사실상 내 계획이 잘 홍보되면 그 목걸이가 강아지목걸이라도 살 사람은 있을 것만 같았고, 굳이 내 볼로타이가 아니어도 그 제품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나는 죽더라도 나랑 비슷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자리가 생길 것이고 그 사람들은 거기서 행복할 수 있다.
나는 당시 아파트 12층에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를 밀치고 서슴없이 뛰었다.
이글은 네이버 웹소설 작가 호랑군의 글의 일부를 퍼온 겁니다.
미스터리 한 글인거 같아서 여기에 올립니다.
그 이유는 '구세군'이라는 글과 '구원을 위한 군대'라는 글이 거의 똑같이 진행이 되는데,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첫 글은 죽었는데, 뒷글은 살아있다는 것은 작가의 말에 나오긴 합니다만....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면 완결된 모든 글을 보실수 있습니다.
몇 편 안되는 글이니 쉽게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아무튼 이만.
엘 프사이 콩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