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log.naver.com/96spore/110189377326
최근 동물원들의 백사자, 백호 등의 백색증(알비니즘 Albinism의 한국어명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기선 루시즘 Leucism 등 모든 종류의 멜라닌 색소의 정상적인 발현을 막는 형질로 범위를 설정함) 개체를 인위적으로 선택교배하며 유지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을 한 바 있다.
최대한 흥미롭고 쉽게 쓴다고 쓴건데 반응들이 없는걸 보아 이해를 못했거나 그냥 그런가보다 했거나 읽지도 않았거나 하는 모양이다.
혹은, 백사자 백호 보유 동물원이나 백사자 백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진실을 부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나도 동심이 파괴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ㅎ)
반응이 없는 이유야 어떻든, 해당 포스트는 현재 하루 30여회 정도의 꾸준한 조회수를 기록하며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으며, 검색창에 '백사자'로 검색하면 상위노출되고 있고, 잘 하면 이것을 좀 더 전문화시킨 글이 지역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가능성도 있다.
이 시점에서, '동물과의 대화' 를 드디어 읽었다. 작년에 읽은 샬럿 울렌브럭의 동명의 책과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자폐증을 극복(...?) 한 세계적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의 유명한 저서로, 자폐인과 동물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굉장히 유사함을 들어 그녀의 동물행동에 대한 접근방식은 남다르고, 그리고 누구보다 정확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뜻밖의 수확을 했다.
바로 이 책이 가축의 품종개량에서 오는 여러가지 현상들을 잘 설명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엔 엄청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품종개량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모색을 만들어내는 기법(?) 들에는 알게 모르게 색소 감소 현상을 이용한 것이 아주아주 많다. 알비니즘 보다는 루시즘을 이용한 것이 더 많은데, 이것은 루시즘의 정확한 원인과 정의와 범위가 아직 연구되지 않았다는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알비노가 아닌 색소감소현상을 보이는 동물은 모두 루시스틱이라고 할 수 있다.
여튼, 그 일례가 바로 '얼룩무늬' 이다. '점박이'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는 얼룩무늬는 불규칙적으로 몸의 구석 구석에서 다른 색, 그 중에서도 색소가 부족할 때 나오는 색들이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경우로는 홀스타인 품종 젖소, 보더콜리, 달마시안(점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불규칙성과 가변성을 생각해보라) 등이 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색소가 부족해지는 현상 역시 루시즘의 하나이다.
템플 그랜딘은 예로 든 이 세종의 '비정상성'을 묘사했다. 홀스타인 젖소는 항상 입으로 뭔가를 씹거나 핥기를 원한다. 야생 원종의 소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다양한 소 품종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집착을 보인다. 보더콜리는 지나치게 활달하고 쉽게 흥분하거나 지나치게 집중을 잘 한다. 이 현상은 몸에서 흰 털의 비율이 높아질 수록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달마시안은 훈련이 굉장히 어려운 견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역시 흰 털의 비중이 높을 수록 심화된다.
템플 그랜딘에 따르면 흰색의 동물은 그들에게 훈련이 따르는 곳에서는 거의 선호되지 않는다고 한다. 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이 푸른색이거나 피부가 붉거나 핑크색일 수록 그 정도가 나쁘다고 한다. 알비노는 최악이라고 했고, 따라서 현재까지 생물학 연구에 널리 쓰인 알비노 마우스는 실험실에서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백색증 개체와 정상색 개체는 단순히 색만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정상 개체들과 정신적, 생리적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점점 증명되고 있다.
그랜딘은 이 이유를 멜라닌의 잘 알려지지 않은 기능으로 설명했다. 멜라닌은 색소 발현 뿐만이 아니라 뇌 보호 기능을 가져서, 인간의 중뇌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색소가 감소된 개체들에서는 당연히 이 기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흰 말이 '미쳐버리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랜딘이 본 흰 말중에는 규칙성있게 고개를 등 뒤로 틀어버리는 불수의 운동을 하는 개체도 있었단다.
여기서 나는 SBS TV 동물농장에서 본 백호의 모습이 생각났다.
영상에서 백호는 다른 백호들과 잘 섞여서 걸어가다가 돌연 화들짝 놀라는 듯한 동작과 함께 등 뒤로 몸을 틀었다. 다른 백호들은 다 멀쩡한데 그 개체 혼자만 그렇게 행동했다.
이어 읽은 내용에서도 자꾸 백호가 떠올랐다.
한 학자가 붉은여우의 가축화에 따른 변화를 실험한 내용인데, 개 수준으로 사람을 잘 따르는 개체들끼리 선택교배를 진행한 결과 그들의 두개골 모양과 신체 비례가 마치 개 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변화가 관찰된다.
흰 얼룩무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가 북미에서 관찰한 수달에 대한 내용도 비슷하다. 유달리 사람을 피하지 않고 앞에서 관심을 보이던 개체 두마리는 모두 흰 반점을 가지고 있었다.
백호는 황색 정상 호랑이에 비해 개체간 유대감이 좋고 사육자에게 더 호의적이라는 사실은 여러 사육시설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다.
이어 다른 비슷한 사례들이 머리속을 때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황색 색소의 발현을 억제하는 형질을 가지고 태어난 '화이트페이스' 품종의 내 왕관앵무의 공격적이고 예민한 성향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동물의 몸에 전에 없이 나타나는 흰색은 동물의 뇌에서 어떤 부분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움을 넘어서 오싹하기까지 하다.
하얘지는 과정은 '가축화'되는 과정이고 '가축화'되는 과정은 햐얘지는 과정이다.
식용이나 사역용, 애완용으로 소모된 가축들에서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보기에 좋다는 이유로 많은 야생동물들을 희게 만들고 있다.
그랜딘은 '나쁜 것이 정상적인 것이 되는 형국'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동물원에서 버마비단구렁이를 보며 이 종은 원래 노란색 뱀이며, 다마사슴을 보며 이 종은 원래 순백의 사슴이라고 배우게 될 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색소처럼 정신적으로도 어딘가 지워진 개체들을 두고 말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정황상 이건 심각한 일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야생동물에게 행하는 이 위험한 짓을 당장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