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어진 3점
세조 어진 1점
*원종 어진 1점
숙종 어진 5점(소본 1점)
*영조 어진 12점(연잉군 초상 1점)
정조 어진 7점(소본 2점)
순조 4점(소본 2점)
익종 4점(소본 1점)
헌종 4점(소본 1점)
*철종 4점(소본 1점)
*고종 5점(소본 2점)
(*표시는 남아있는 어진)
사실 구한말에 들어서는 이미 별로 남아있는 어진이 많지 않았고
용두산 대화재로 사라진 어진은
세조, 숙종, 정조, 순조, 헌종 5명 (추존왕 제외)
이 중 세조도 밑그림을 찍은 사진은 남아있고..
나무위키에 따르면 왜란까지도 어느 정도 남아있던 어진(태종 세종 등)이
병자호란으로 사라진 거 같다는 듯.
선조나 인종처럼 아예 어진을 안 그린 경우도 있고
대학자 중에도 이이처럼 초상화를 안 남겼다는 기록이 확실한 케이스를 보면
그냥 조선 전기에는 초상화 자체를 별로 안 그렸나도 싶음.
송시열이 초상화를 그리고나서부터 초상화 남기는게 크게 유행했다는거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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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인지는 모르겠는데 유교적 이유가 있긴 했을거 같음. 우상숭배 비슷한걸로 여겼던걸까도 싶고. | 25.10.03 14:1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