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17년(1357, 공민왕 6) 2월에 중대부(中大夫) 비서감 보문각 직학사(秘書監寶文閣直學士)가 더해지고, 4월에는 존무강릉 겸삭방도채방사(存撫江陵兼朔方道採訪使)가 되었다. 삭방도 여러 고을이 오랫동안 여진(女眞)에게 함몰되어 국경이 분명히 나누어 있지 않아서 전투가 벌어지면 백성들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선생이 강역을 정하고 백성의 살림을 보살피되 그 지방에 알맞게 하니, 백성들이 편하게 여겨 부로(父老)들 수백 인이 조정에 천장(薦狀)을 올렸고, 지금도 그 일이 칭송된다.
- 삼봉집 제4권, 정선생(정도전의 부친 정운경) 행장
정도전이 직접 지은 자신의 부친 정운경의 행장에 의하면 정운경은 쌍성총관부 탈환 직후 함경도 일대에서 근무하면서 민생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맡은 바 있음.
저기서 말하는 삭방도가 고려시대 행정구역으로 오늘날 함경남도 남부에서 강원도 동부에 해당하는데, 알다시피 쌍성총관부 지역이 바로 이 일대에 해당함. 그리고 이성계 가문의 본거지도 이 일대였고.
쌍성총관부 탈환 이후 이 일대를 안정시키는데 정도전의 부친인 정운경이 파견되어 근무했고, 이 과정에서 지역 유력자였던 이성계 가문과도 안면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
물론 정도전과 이성계가 처음 만난 건 서기 1383년의 일이지만, 의외로 정도전 집안과 이성계 집안의 만남은 그보다 더 빨랐다는 이야기.
여말선초는 의외의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맥과 연결고리가 종종 발견되서 흥미로운 부분이 많지.
그래서 요즘은 '권문세가'와 '신진사대부'를 구별하는 것도 지양하는 분위기고. 다들 학연,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던 관계라서 딱딱 나누는 게 의미도 없고 올바른 구분도 아니라는 거.(이걸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 조준과 하륜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