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전 총리의 '대한민국 생존전략' 강연 일정이 오늘(11월 9일) 고려대에서의 강연을 마지막으로 끝났으므로
비공개했던 강연 전문 스크립트를 다시 공유합니다.
1. 강연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_rFHyLve8s&ab_channel=%ED%99%A9%EC%9E%91%EA%B0%80TV
강연 정보
[IPUS평화학세미나] 대한민국 생존전략 – 이낙연 前 국무총리
https://ipus.snu.ac.kr/blog/archives/news/8287
2. 강연 전문
구글 계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2개 구글 문서 모두 사본을 만들어 자신의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 구글 닥스로 정리한 스크립트 (읽기 편하도록 정리)
https://docs.google.com/document/d/1XYsG9iXc0Gh6vTLejlcP3YT4c0dbhpnhNiR2pGAf828/edit
구글 닥스의 경우 부분별 내용 파악이 쉽도록 소제목을 추가로 붙여뒀음.
※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정리한 스크립트 (영상에서 발언 위치 찾기 쉽게 정리)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h-NrM7wQ5BRduGveP9cyy5gFEUBeTWhVfGGrrTTFnT4/edit#gid=0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사회 발언
시간이 되어서 저희 평화학 세미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평화 세미나는 대한민국 생존 전략이라는 주제 하에 이낙연 전 국무총리께서 오늘 세미나를 강연으로 이끌어주실 예정입니다.
아마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이 책이 대한민국 생존 전략이라는 책입니다. 1년 동안 미국에 계시면서 국제정세를 보시고 또 거기에서 많은 전문가들과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시고 하시면서 지금 이제 전 세계 상황과 동북아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이 어떠한 생존 전략을 가지고 가야 되는가에 대한 책을 출간을 하셨고요.
오늘 특별히 저희 이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평화 세미나에 강연자로서 오늘 도와주셨습니다. 너무나 바쁜 시간 중에도 이렇게 도와주신 데 대해서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따로 이낙연 국무총리님 약력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워낙 유명하시고 또 저희 저보다 더 아마 여기 계시는 청중들께서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세미나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주최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강연을 시작하시기 전에 통일평화연구원 원장께서 축사겸 환영사를 해 주시겠습니다.
김범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원장 환영사
예, 안녕하십니까 지금 방금 소개받은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원장 김범수입니다. 다시 한 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 여러모로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저희 통일평화연구원에서는 이 평화 세미나와 통일학 세미나 그리고 평화 포럼, 통일화 포럼 이렇게 운영을 하고 있는데요. 오늘 평화 세미나 자리에 귀한 손님으로 이낙연 전 총리님을 모실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게 생각합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앞서서 말씀하신 우리 박태균 원장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만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이 요즘 녹록지가 않습니다. 미중 경쟁이 날로 심화되고 있고 소위 신냉전이라고 불리우는 그러한 국제정세의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상당히 전쟁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복잡한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될지 상당히 지금 난마처럼 얽혀 있는 상황인데요.
오늘 이낙연 총리님을 모시고 이렇게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좋은 말씀을 청해 듣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조금 점심이 조금 지나서 여기 와 계신 청중분들 중에서도 조금 피곤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잘 집중해서 총리님께서 하시는 강연을 잘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긴 말은 안 드리고요. 이런 정도에서 마치고 곧바로 총리님 모셔서 이야기 듣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박태균 교수 사회 발언
예 감사합니다.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이낙연 총리께서 총리 재직 시절에 사실은 외교에 한국의 투톱으로서 굉장히 큰 역할을 하셨고요. 대부분의 역할이 사실 이 한반도 평화 정착과 관련된 중요한 역할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평화 세미나의 가장 적임자 중 한 분이라고 생각을 해서 오늘 모셨고요. 강연은 한 50분에서 1시간 정도 진행을 하고요. 그 이후에 Q&A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은 혹시 기자님들께서 계시면 저희가 오늘 하는 이 세미나는 보도를 안 해주시기를 좀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거나 이거는 괜찮은데요. 오늘 내용을 따로 보도를 안 해 주시기를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다른 신문사에도 다 그렇게 공지를 했는데 지금 들어오셔서 보도를 하시면 저희가 사실 그 룰을 어긴 게 되기 때문에 그거에 대한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낙연 국무총리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이낙연 전 국무총리 강연
제가 여러분께 국제관계를 말씀드릴 만한 지식이 없어요. 오늘 오후 이 시간이 여러분 인생에서 큰 낭비가 안 되기만을 바랍니다.
저는 이 학교를 나왔습니다마는 이 캠퍼스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아주 오래된 졸업생이 됐다는 얘기죠.
그리고 제가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한 것이 21년인데 그 기간 동안에 도쿄 특파원과 국제부장은 했어요. 제가 오늘 굳이 국제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이유를 구차하게 지금 변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이크 교체 후) 이게 성능이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까? (새 마이크를 들고 진행) 그리고 정치를 하면서는 통일외교위원회 국방위원회 에서 이래저래 한 4년 일했고요. 총리로 일하면서 아까 박태균 교수님 소개해 주신 대로 30개국을 방문했습니다. 아마 대한민국 국무총리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일 겁니다.
그리고 이제 작년 6월부터 금년 6월까지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었습니다. 조지 워싱턴 대학 가게 된 것은 박태균 교수님이 국제관계 국제대학원 원장으로 계실 때 소개를 해 주셔서 글로 가게 됐어요. 제가 여기 오게 된 것도 아마 그 인연이 크게 작용을 했을 겁니다. 저 같은 사람 불러주신 김범수 원장님 감사드리고요 김현철 원장님 고맙습니다.
특히 박태균 교수님 조금 전에 어줍잖은 저 책까지 소개해 주셨는데 그 책이 나온 것도 박태균 교수님 때문입니다.
저를 억지로 미국까지 보내셔가지고 그 대학에서 1년짜리 방문연구원이 책을 쓴 건 제가 처음이라고 해요. 그래서 앞으로 유학생 받기가 더 어려워지게 되는 것 아니냐 그런 걱정도 하더라고요.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저 아까 제가 소개해 드린 그런 이력 정도를 가진 한 정치인이 본 국제관계 국제 질서에 대한 작은 의견 이렇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부상, 다가오는 다극 체제
요즘 이스라엘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벌써 사망자가 5천 명을 넘었습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엄청난 테러가 기다리고 있겠죠. 저는 이 전쟁의 전개 과정을 보면서 국제질서의 변화가 이 전쟁에도 드러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크게 봐서 두 가지 변화가 느껴집니다.
하나는 미국의 쇠락이라고 할까요 미국의 디클라인이 분명히 느껴집니다. 그 징후가 몇 가지 있죠. 첫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는 것 이것 자체가 미국의 리더십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이번에 드러난 것이 예를 들면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가면서 4개국 정상회담을 희망했는데 이집트와 요르단이 그걸 거부해서 이스라엘과만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갔지 않습니까 미국의 청을 거절하는 나라가 많이 생겼다 이것도 약화죠 약화고.
또 하나는 하마스를 오랜 세월 이란이 지원해온 것으로 돼 있지 않습니까 그런 하마스가 전쟁을 일으킨 것까지 이란이 지원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하여간 전쟁을 일으켰어요. 이스라엘이 그러면 중동에서는 가장 강력한 국방력을 가진 나라이지요. 거기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단 말입니다. 이것 자체가 미국을 얕보는 세력들이 지구상에 늘어나고 있다는 뜻도 되죠. 그리고 이란 러시아가 미국에 반대하는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그런 얘기도 되죠. 누구와 함께? 중국과 함께. 그래서 흔히들 얘기했던 미국 일극주의 미국 혼자서 국제 질서를 주도했던 그 시대가 끝나가는구나 하는 걸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사우디 아라비아의 변화입니다. 1945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45년에 2차 대전이 끝나기 전에 얄타에서 회담을 했죠. 이른바 얄타 회담입니다. 거기서 전후 체제가 합의가 됩니다. 그때 합의된 체제를 얄타 체제라고 부르죠.
그 얄타 회담이 끝나자마자 루스벨트 대통령이 비밀 방문한 곳이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만나서 이렇게 합의합니다. 사우디 안보는 미국이 책임지겠다 도와주겠다 그 대신 석유를 수출할 때 달러로 결제했다 이 합의입니다. 국방과 달러의 결합이죠. 그것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의 상징입니다. 그 이래로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 최대 맹방이었습니다. 그 사우디 아라비아가 변화하는 기미가 이번에 드러났죠.
하나는 금년 3월이었습니까 사우디와 이란이 중동의 앙숙인데 이슬람의 사우디는 수니파의 대장이고 이란은 시아파의 대장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앙숙인데 그리고 안보상으로도 늘 홍해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두 나라가 화해하고 국교를 정상화했거든요. 그 장소가 어디였게요? 베이징이었습니다.
중국 지도자들의 초청과 중재에 따라서 사우디와 이란이 베이징에 가서 화해하고 국교 정상화를 했어요. 아주 극적인 사건입니다. 중국이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을 했는데 그 등장도 평화와 화해의 사도로서 등장하는 것 아닙니까.
미국은 늘 전쟁하고 이런 이미지가 남아 있는데 반대로 중국이 그렇게 했어요. 그 뒤로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을 했거든요. 그래서 8월에 사우디와 미국 사이에 먼저 합의가 돼요.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겠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미국과 사우디가 합의를 한 게 금년 8월입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정상화 움직임이 이번 하마스 도발의 표면적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됐죠. 그래서 전쟁이 일어났어요. 일어나자마자 사우디가 발표했죠.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협상을 중단하겠다.
이게 국제 외교 무대에서 중국의 화려한 부상과 달리 미국의 초라한 쇠락 같은 걸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사우디와 이란은 베이징에 가서 화해하고 국교정상화 사인을 했는데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국교 정상화 협상은 하려고 했으나 하마스 공격 한 방에 중단 발표를 한 그래서 미국과 사우디의 합의가 무력해져버린 백지처럼 변한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 변화들에서 느껴지는 것이 미국의 쇠락의 과정 또는 최소한 국제적 리더십의 약화가 이번 전쟁에서 드러났다는 것이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미국 1극 체제가 끝난다고 했을 때 그다음에 오는 세계 질서는 무엇일까가 이번에 암시됐다고 느껴져요. 제가 보기에는. 내일 당장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1극 체제 다음에 오는 것은 미국 중국 중심의 다극 체제 불완전한 다극 체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 시사가 바로 이란이 중국, 러시아와 함께 반미 연대의 멤버로 뚜렷이 부각됐다. 그리고 그 멤버 중에는 다른 나라들도 있죠. 원래 다극 체제가 된다고 했을 때 제일 주목됐던 것이 브릭스(BRICS)입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이렇게 브릭스죠.
이 브릭스의 특징이 각 대륙마다 가장 덩치 큰 나라들의 모임이에 영토도 넓고 자원도 많으나 어쩐지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던 나라들이 모였던 게 브릭스인데 그 브릭스가 이제는 과거의 브릭스가 아니라 중국과 중국처럼 미국과 거의 대등하게 경쟁하는 그런 나라가 됐고 러시아처럼 미국 말 듣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도 생겼고 인도는 중국, 러시아, 미국 사이에서 굉장히 자유롭고 독립적으로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국익을 위해서 현란한 외교를 지금 하고 있죠
거기에 추가로 인도네시아 이런 나라들이 반미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미국과 거리를 두는 그런 움직임이 지금 나타났고 이번 이스라엘은 하마스 전쟁에서 이란의 태도 또는 중국의 태도를 보면 그것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몰라도 국제 질서에 남기는 영향은 제가 말씀드린 그 두 가지 언저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중국의 대외 정책 단계적 변화
문제는 중국과 미국인데, 중국의 대외 정책 소극주의에서 적극주의로 변해가지 않습니까? 보통 그것을 중국의 경제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해 왔어요. GDP가 얼마가 됐다 또는 중국의 GDP가 미국의 40%에서 70%가 넘어갔다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됐는데 그 말이 맞아요. 맞으나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자료에 근거한 책들을 보면 중국의 대외 정책이 소극주의에서 적극주의로 변해가는 과정에 항상 등장하는 것이 미국과 유럽의 추락입니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대외 정책을 3단계로 나눕니다.
첫째가 1990년 또는 89년 이 무렵부터 시작된 도광양회 시대가 있어요. 덩샤오핑이 말했던 도광양회,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자, 이게 도광양회죠.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왜 중국은 그랬는가.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것은 경제력에서 미국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것만 알고 있는데, 그때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중국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이것과 연동해서 보는 것이 맞을 거예요.
1989년에 중국에서 천안문 사건이 납니다. 중국 내부에서 처음으로 민주화 요구가 분출합니다. 중국 지도부는 위기의식을 느꼈겠죠. 이걸 어떡하지 이걸 어떡하지. 그리고 1990년에 걸프 전쟁이 일어나요. 미국이 컴퓨터 게임하듯이 이라크와의 전쟁을 해치우거든요. 그리고 그걸 CNN이 중계방송을 해요. 그 압도적인 힘을 중국이 보고 놀랬죠.
그리고 1991년에는 소련이 붕괴돼요. 도미노처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집니다. 그런 와중에 나온 것이 도광양회, 그렇게 보는 것이 맞을 거예요. 경제력이 약하니까 엎드리자고 했을 거다? 그것만은 아니다 이거죠. 내부에서는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기 시작했고 외부에서는 미국의 압도적인 힘을 받고 사회주의권의 취약한 종말을 본 거죠. 그래서 엎드리자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자. 도광양회 이렇게 된 거예요.
그다음이 유소작위.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자. 이제는 너무 소극적으로 엎드려 있지만 말자. 그것이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이렇게 시대 구분이 됩니다. 그때 서방에서 벌어진 최대의 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리먼 브라더스 사건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 그러면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을 강타하죠.
그걸 중국은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러면 자본주의의 허약함을 보았다. 오히려 중국식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가 더 나은 대안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래서 유소작위가 그때 시작이 돼. 우리도 이제는 어깨를 펴고 적극적으로 할 일을 하자. 유소작위입니다.
그리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 이른바 중국몽의 시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시대 대변동의 시대 이렇게 불리는 거예요. 100년 만의 변화. 청나라 건륭제 강희제 시대는 중국의 세계 GDP의 30%를 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게 130년 정도 계속됩니다. 그때의 영화를 되살리자 하는 것이 중국몽의 시작이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중국몽.. 미국의 꿈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르는데 중국몽은 차이니스 드림이라고 안 부르고 차이나 드림이라고 불러요. 차이가 있죠. 국가 목표인 겁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인들의 꿈이에요. 사람의 꿈이에요. 차이나 드림은 국가의 목표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는데 그 중국몽이라는 단어는 2012년에 시진핑이 후계자로 정한 그 시점에 썼던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국가의 기본 정책으로 채택된 건 그때가 아닙니다. 2017년 당대회 때 비로소 그것이 국가 정책의 기본으로 등장합니다. 당대회 연설 한 번 하는데 시진핑 주석이 중국몽이라는 단어를 32번을 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와요.
이른바 전랑 외교 싸움 늑대 늑대 같은 외교를 마구 공격적으로 하는 그런 식의 최근에 주한 중국 대사가 누구를 만나가지고 좀 심한 얘기를 해서 야단 맞은 적이 있죠. 카메라가 있어서 그다음 얘기 못 하겠네. (좌중 웃음) 그것이 한국에서는 야단 맞았지만 베이징에서는 칭찬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그분이 예정됐던 재임 기간보다 더 오래 근무할 거예요.
왜 중국이 그때 그렇게 변했는가.. 2016년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브렉시트가 2016년에 나오고, 영국이 EU에서 탈퇴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걸 보고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고 중국이 자본주의도 끝나간다라고 봤던 것처럼 2016년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을 보면서 중국은 민주주의도 별것 아니다라고 보기 시작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EU를 충분히 각계 격파할 수 있는 상대로 보기 시작한 거죠. 왜? 유럽 통합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중국은 EU를 EU 덩어리로 보고 공세를 취한 것이 아니라 개별 국가로 보고 했어요. 그래서 EU 멤버들 중에서도 이태리 같은 나라는 일대일로의 멤버가 됐었죠. 그리고 트럼프 파퓰리즘으로 미국 같은 세계적 지도국가의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외쳤던 아메리카 퍼스트라고 하는 것이 미국 사람들한테는 자랑스러운 일이 그렇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고립주의, (즉) 국제 무대에서의 미국의 퇴각을 말합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집권했던 그 4년 동안에 미국이 국제기구 열몇 군데에서 탈퇴합니다. 유네스코에서 탈퇴했죠, 파리 기후협약 탈퇴했죠, ICAO 국제민간항공기구 거기서도 탈퇴했죠, 여기저기 마구 탈퇴합니다. 그 공백을 누가 차지했을까요? 중국이 들어가죠. 유엔 산하기구 중에 4개 이상의 기구의 수장을 중국인이 맡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이것이 미국인들한테는 가슴 벅찬 설레는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중국에서 보면 퇴각하는구나 이렇게 보이는 거죠. 그걸 보면서 중국몽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 어떤 나라의 대외 정책을 볼 때 그 주변 또는 상대 국가 또는 진영의 움직임을 함께 볼 필요가 있어요.
대한민국의 4가지 숙명
제가 오늘 여러분께 두 가지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에서 보는 국제질서의 변화 조짐.
두 번째는 지난 30여 년 동안 중국의 대외 정책이 변해왔는데, 소극주의에서 적극주의로 변해왔는데, 그것이 경제력이 커지는 것만이 아니라 서방 세계의 추락을 봐가면서 그와 연동해서 중국이 적극주의로 변해왔다.
그 말씀을 드렸어요. 그 틈바구니에 한국이 있습니다.
한국은 매우 특별한 나라예요. 나폴레옹이 말했죠 지도를 보면 그 나라에 대외 정책이 보인다 하는 얘기를 했는데 맞아요. 지도를 보면 한반도처럼 복잡한 곳에 위치한 땅이 없죠. 세계 4강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나라는 한반도밖에 없어요. 그렇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 꽉 놓여 있어요. 그 한반도가 또 남북으로 갈려 있고 북쪽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그 밑에 깔려 있듯이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이런 위치 또는 역사가 우리에게 짐지운 숙명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그 네 가지를 그 숙명을 제가 말씀드릴 텐데 어떤 수사도 레토릭도 이 4가지 운명보다 더 우선하는 걸 저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어요. 대한민국의 4가지 운명입니다.
첫째는 분단 국가입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3년 동안 전쟁을 했고 그 전쟁이 종전되지 않고 휴전된 채로 70년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평화의 확보가 가장 절실한 과제의 하나가 됩니다.
두 번째 대한민국은 동맹으로 갑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과 동맹. 대한민국이 동맹을 맺은 것은 지구상 200개 나라 중에서 미국뿐입니다. 물론 미국의 동맹은 한 50 몇 개 나라가 돼요. 우리는 그중에 하나일 뿐이에요.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오직 한 나라 미국만 우리의 동맹이 그 동맹의 우상 아래서 우리는 안보를 지켜왔고 안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미국의 지원 내지는 영향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죠.
우리의 삶의 패턴 우리의 정치 제도 우리 사회의 관습 또는 문화적인 경향 이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자유, 인권, 다양성의 포용, 약자에 대한 배려 이런 것들도 거기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지켜가야 될 거고 그것을 하지 않으면 국민이 용서를 안 할 거예요. 기본적으로 동맹으로서의 신뢰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함께 공유했고 함께 추구했던 그 가치들을 앞으로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게 동맹 국가의 숙명이죠.
세 번째 대한민국은 반도 국가입니다. 지구에 있는 땅에 거의 4분의 3, 3분의 2 그 중간쯤 되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꼬리처럼 달려 있는 게 한반도입니다. 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교량이죠. 좋게 말해서 교량이지 실제로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각축장 전쟁터가 되어버렸습니다. 반도 국가이기 때문에 이웃 나라하고 잘 지내야 되는데 그 이웃 나라가 보통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덩치 큰 나라들 러시아와 중국이 반도 국가이기 때문에 그 이웃 나라와 최고 좋게 말하는 우호적인 아니면 안정적인 관계라도 가지고 가야 돼요. 절대로 적대적 관계가 되면 안 돼요. 그게 반도 국가의 숙명입니다.
네 번째 대한민국은 통상 국가입니다. 무역으로 먹고 살았어요. 대한민국의 무역 의존도가 수출 수입 합친 겁니다. 무역 의존도가 낮을 때도 60% 선 많을 때는 85%까지 올라갑니다. 무역 없이는 대한민국이 존립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무역에 강하냐 그러면요 제 후배 중에 면봉 공장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귀 후비는 면봉 있잖아요. 장가를 갔는데 부인이 면봉 팔아서 언제 먹고 살아 했는데 코로나가 터져가지고요. 면봉이 온 세계 사람들 콧구멍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대박이 났습니다. 충청북도 오성에 작은 중소기업이 있어요. 코로나 진단 키트를 개발했습니다. 불과 두 달 만에 세계 165개국으로 수출하게 됐어요. 그게 대한민국의 수출력이에요.
무역 의존도라는 말을 어떤 학자들은 그게 나쁜 것이냐, 그만큼 시장을 많이 개척했다는 뜻이니까 무역 개척도 이래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의견도 있습니다만, 하여간 그러나 의존도는 의존도지 우리는 장사해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어떤 손님에게도 잘해야 돼. 기분 나쁘다고 하지 마세요. 이럴 수가 없어. 손님과 손님 사이를 이간내서도 안 돼. 그러면 손해는 우리한테 가요. 대통령이 두바이에 가서 일 안 하고 요즘 안 좋대 이런 얘기했잖아요. 그걸 하면 안 돼요. 왜? 우리는 장사니까.
대한민국은 모든 숙명을 다 끌어안아야 한다
이 4가지 숙명이 대한민국을 규정짓는 이 네 가지 숙명 중에서 민주당 사람들은 정권을 잡건 또는 정권을 못 잡건 간에 분단 국가라는 걸 조금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죠? 남북 정상회담이 이제까지 다섯 번 있었는데 모두 민주당 대통령 있을 때만 했어요. 김대중 한 번 노무현 한 번 문재인이 세 번이에요.
지금 국민의힘 그 전신이 이름이 많이 바뀌었는데 그냥 합쳐서 보수정당이라 그래요. 보수정당은 동맹 국가라는 걸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미동맹 강조해 그렇게 정당에 따라서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느냐 차이는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있어야 되죠. 똑같다면 뭐 하려고 두 개 정당 두겠어요.
그런데 어느 쪽도 어느 하나를 절대시하면 안 돼. 하나만 하면 나머지는 다 만사형통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나머지 3개가 도와줘야 그 한 개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요즘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 또는 한미일 연대 강화하면 그것이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처럼 해왔던 기간이 있어요. 그건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세 가지 운명이 그걸 방해해요.
잘한다고 박수 쳐주는 게 아니에요. 우리 동맹 국가니까 동맹하고 잘 알겠습니다 하면 반도 국가 옆에 있는 나라들이 박수 쳐주는 게 아니에요. 분단국가로서 이웃에 있는 북한이 잘한다고 박수 쳐주는 게 아니에요.
어느 것도 절대시하면 안 됩니다. 상대적 비중은 둘 수 있지만 그것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착각하는 것 그건 아닙니다. 위험합니다.
그러면 어떡하란 말이냐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이렇게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죠.
그게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입니다. 회담 결과가 발표된 게 6월 15일이기 때문에 지금도 흔히들 6.15 정상회담 이렇게 불러요. 그 정상회담이 있기 전에 5월 하순에 대통령이 민주당에게 요청을 했어요. 4개국에 국회의원단을 좀 보내야 되겠다. 그래서 긴급히 의원 5명씩 2개 반을 편성했어. 미일반, 중러반 해가지고 보냈습니다. 제가 미일반의 제일 쫄병이었어요. 그때 저는 그해 4월에 처음으로 국회의원 돼서 5월 30날 국회에서 선서를 해야 임기가 시작되는데 그것 가느라고 선서도 못 했어요.
왜 그걸 보냈느냐 하면 김대중 대통령의 설명이 이거였습니다. 4대국 정부한테는 우리 정부에서 이미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이해와 협력을 이해를 구했고 협력을 다짐받았다. 그런데 못한 게 있다. 4대국의 정계와 언론계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을 못하고 이해를 구하지 못했으니 정치인 여러분이 가서 종교와 언론계에 가서 그 일을 좀 하고 와라 그랬었어요.
저도 잽졸병으로 가가지고 그때 저희 팀의 단장이 유재근 의원이었어요. 재미동포 변호사 출신으로 귀국해서 텔레비전 토론회 사회도 보시고 국회의원이 되셨던 분이죠. 우리 LA 쪽에서 있었던 이철수 사건이라고 있습니다. 한인 청년이 살인죄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데 그걸 무죄 만든 변호사가 바로 그분이세요. 그분이 우리의 단장이었어요. 그리고 중러반의 단장은 문희상 의원 나중에 국회의장이 되신 분이죠.
그분이 굉장히 체격이 크고 우락부락한데 놀랍게도 유머 감각이 있어요.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릴까요? 여러분 심심하죠? 제가 국회에 있을 때 농수산위원장을 한 번 했거든요. 그때 한우에 요즘 무슨 럼피스킨인가 뭐 같은 그런 돌림병이 있었어요. 한우 소비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소비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었어요. 그 모임을 제가 만들었는데 그때 문희상 의원이 국회 부의장을 했어요. 그분을 모셔다가 축사를 좀 해달라고 여기 와서 축사를 했습니다. 축사 첫마디가 이거였습니다. “소잔치에 돼지가 왔습니다.”
한 번은 어느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의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요. 그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갔어요. 마치 예식장 앞에서 문희상 의원을 만났어요. 선배님이시니까 문희상 선배가 앞장서고 뒤따라가는데 신랑 아버지하고 악수하고 그다음에 신랑하고 악수하고 이렇게 오잖아요. 악수를 딱 하고 오더니 그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소보다 송아지가 이쁘다. 얼굴은 닮았으나 짐작이 가시죠? 그 말씀을 하셔서 선배님 제가 선배님의 아들을 몇 달 전에 어디서 만났는데 확실히 저보다 송아지가 이쁩디다. 이랬더니 그분 대답이 나도 한때는 송아지였어. 그리고 갸도 이제 소 됐어. 장가가서 애 낳았다고 말이야.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데 북한뿐만 아니라 4대국 모두에 그만큼 정성을 쏟았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기적처럼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북한과 4대국이 모두 지지한 전무후무한 사건이 그때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책을 내놔도 모두가 지지하지는 않아요. 특히 지금 정부가 뭘 내놓으면 미국 일본은 찬성이고 중국 북한 러시아는 모두 반대하고 이렇게 돼 있잖아요? 그때는 그러지 않았어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하나 우리가 지금 생각해야 될 건 그만큼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분단국가 동맹국가 반도 국가 이 요건을 다 채우려고 한꺼번에 채우려고 노력했었다. 지금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 몹시 아쉬워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최근에 한중일 정상회담을 연내에 열 것 같은 움직임이 있어요. 우리 외무장관이 베이징에 다녀왔고 잘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보완을 해야 돼. 우리가 동맹 국가의 숙명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했다면 이제 반도 국가로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분단 국가로서 우리의 평화를 확보하는 것 빨리 서둘러야 돼. 그것은 지금까지 안 하고 있는 것 이거 좀 아쉽습니다.
서울 올림픽 -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예 그렇습니다. 최근 역사를 이렇게 나눠볼 수 있어요. 1945년부터 91년까지가 냉전 기간입니다. 그렇죠 91년 소련 붕괴로 탈냉전이 시작되죠. 작년 10월에 미국 백악관에서 발표한 국가 안보 전략 보고서 그러니까 탈냉전은 최종적으로 끝났다 라고 발표를 해요. 그리고 중국이 미국의 유일한 경쟁국이 됐다.
중국은 세계 질서를 바꿀 의지와 능력을 갖춘 유일한 국가다. 세계 질서는 미국이 주도했던 이란 뜻이지.
그래서 미국이 아마도 가장 늦게 공식 인정했을 텐데 작년 10월에 탈냉전이 끝났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그 이후는 지금 탈냉전 이후 시대가 됐어요. 아까 김범수 원장님 말씀처럼 그걸 신냉전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고 아직 그렇게까지는 해서는 안 된다 그냥 이중 전략 경쟁이라 하자 이런 사람도 있고 그래요. 하여튼 그렇게 세 단계의 변화를 우리가 관통해 오고 있습니다.
모든 변화는 갑자기 오는 건 아니에요. 뭔가 준비 기간이 있고 조짐이 나타나고 그것이 무르익어서 터져나오는 것이죠. 91년 소련이 붕괴해서 냉전이 끝났는데 그것이 갑자기 벌어진 게 아닙니다. 해마다 무슨 사건이 터졌어요. 그 1년 전 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죠. 그 1년 전 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요.
그 1년 전 88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죠? 서울올림픽이 있었어요.
서울 올림픽이 이 역사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제가 볼 때는 엄청난 관계가 있어요. 냉전 붕괴의 시작은 서울 올림픽이었다. 저는 감히 그렇게 주장을 해요. 왜 그러냐 그러면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모두 불참해서 반쪽 올림픽이 됐거든요. 그 4년 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서방 국가들이 모두 불참해서 또 반쪽이 됐어요.
그런데 서울 올림픽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모두 참가해서 8년 만에 완전체 올림픽이 된 겁니다.
그때 제가 동아일보 기자였어요. 스위스 로잔에 가서 ioc 본부를 찾아가가지고 사마란치 ioc 위원장하고 인터뷰를 했어요. 동아일보에 지금 그게 실려 있습니다. 저는 그때 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참가해서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북한도 참가해서 우리 국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열리는 여는 그 올림픽이 성대하게 성공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동유럽 국가들이 참가했으면 좋겠는데 참가할 것 같으냐 이걸 물어봤던 것 같아.
그때 사마란치 위원장이 이렇게 말했어요. 동유럽 국가들이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그게 동아일보 제목이었어요. 그게 86년이었을 겁니다. 그 올림픽의 꽃이 뭐죠? 사람마다 다 다르죠. 그러나 많은 사람이 설레고 흥분하고 하는 것은 개막식 그중에서도 선수단 입장일 거예요. 각 나라 특징이 다 드러나고 그 청춘들이 마구 터지듯이 마구 폭발되는 그 현장 아닙니까. 선수들이 입장하면 박수를 치죠. 놀랍게도 가장 많은 박수와 함성을 받은 선수단은 중공 선수단이었어요. 그때는 중국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중공이라 불렀어요. 수교 전이었고요. 두 번째가 소련 선수단 입장 때 박수갈채가 많이 났어요. 미국보다 더 셌습니다.
당시에 제가 기자였어요. 굉장히 궁금했어요. 저렇게 박수치고 함성을 지르는 우리 국민들 마음은 뭘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공 교육을 가장 길게 받고 자라온 한국인들이 공산국가 중국과 소련 선수단 입장할 때 가장 크게 박수를 보냈다. 이 모순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멋지게 표현하면, 냉전의 벽은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이미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근사하지.. 그랬는지도 몰라요.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 1년 뒤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그 1년 뒤에 독일이 통일돼 그 1년 뒤에 소련이 무너졌잖아. 그렇게 보면 우리 가슴속에 이미 냉전이 무너지고 있었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서울 올림픽이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 그 성공이냐 아니냐의 척도는 공산국가들이 참여하느냐 마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데 드디어 쟤들이 왔구나 서울 올림픽은 성공하겠구나. 아마 이것이 다수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지 않았는가 생각을 해.
하여간 국제적으로 보면 미국 LA에서 벌어졌던 올림픽 소련 모스크바에서 벌어졌던 올림픽이 모두 반쪽이었는데 분단국가 한국 서울에서 벌어진 올림픽이 8년 만에 완전체가 됐다. 이것 자체가 냉전의… 아이고 한상진 교수님 오셨네. 예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우리가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질서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쇼윈도 같은 곳인 것은 틀림없어요.
(한상진 교수님을 향해) 선생님, 그래도 강의는 거의 끝날 때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좌중 웃음) 선생님 오셔서 무식한 소리라고 야단 맞을 텐데…
탈냉전이 던져준 빛과 그림자
그리고 탈냉전이 옵니다. 이 탈냉전 기간이 우리 대한민국에는 엄청난 빛과 그림자를 던져줍니다. 그때 한국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이었어요. 노태우 정부의 가장 빛나는 대외 정책이 북방 정책입니다. 뭘 했기에? 중국 소련을 비롯해서 무려 32개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를 합니다. 소련과 1990년 중국과 1992년에 수교합니다. 그리고 동유럽의 무슨 루마니아 불가리아 한가이 그다음에 중앙아시아 무슨 수단 무슨 수단 모두 투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한국의 외교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혔을 뿐만 아니라 경제 지평을 또한 넓힌 거죠.
외교 관계만 맺은 게 아니라 바로 무역이 시작되고 우리가 경제가 마구 테이크오프를 시작한 그 무렵에 그것에 굉장한 힘을 준 게 그거였거든요. 국제 사회 세계의 조류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거기에 부응한 것은 대단한 성공적인 정책이었다. 이렇게 봐야죠. 그 시기에 대한민국 경제는 어떻게 변했는가 1994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됩니다. 2006년에 2만 달러가 됩니다. 2017년에 3만 달러가 됩니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북한의 유일한 동맹 중국이 안방을 남쪽에 열어준 거잖아요. 외교적인 안방도 경제적인 안방도 서울한테 열어줘요. 자기들의 뒷배 소련도 한국과 수교해 자기들의 경제협력 파트너였던 동유럽 국가들 중앙아시아 국가들 모두 한국과 경제관계를 심화시켜 북한으로서는 외교적 경제적 고립이 시작되는 거죠. 그때 북한은 미국 일본과 수교하려고 해요. 특히 미국한테 수교하겠다고 정식으로 요청을 해요.
우리 한국 정부는 이렇게 발표합니다. 우리가 중국 소련과 수교했듯이 북한이 미국 일본과 수교한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 발표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했습니다. 저는 그때 동경에 있어서 제가 아는 일본 정치인이나 이시하진이라는 분이 지금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저한테 당신 한번 물어보자. 당신네 나라에 혼네가 뭐냐 진의가 뭐냐 왜 그러냐 아니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는 거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왜 견제하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걸 어떤 전직 외교관은 이런 표현을 썼어요.
탈냉전 시대를 열었던 미국과 탈냉전의 혜택을 누렸던 대한민국이 북한에 대해서만 냉전적 사고와 태세를 유지했다. 북한이 그렇게 고립돼 갑니다. 외교적으로도 누구도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고 경제적으로는 파트너를 믿고 그렇게 됩니다. 어느 정도까지 북한이 북한 나름으로는 그전과 다른 태도를 취했느냐 그러면 1991년 말에 비핵화 공동선언이라는 걸 발표해요. 남북한 기본 합의가 그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해 9월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 이루어져요. 그전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이것은 분단 고착화라고 그래서 반대하고 그랬거든요.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다급했었어요.
그리고 91년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그러면 그때 미국 대통령이 아버지 부시입니다. 남한의 배치돼 있던 전술핵을 모두 철수하겠다. 이렇게 발표를 했어요. 그때 철수한 게 580개였습니다. 1958년부터 91년까지 전술핵이 있었는데 아 제일 많을 때가 900기를 넘어섰습니다. 그것은 철수하겠다 발표합니다. 말하자면 탈냉전의 무드가 생긴 거예요.
그해에 한미 양국 정부가 한미 합동군사훈련 합동군사훈련 이름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합니다. 그 당시에는 팀 스피리트라고 불렀어요. 92년에 팀 스피리트 중단을 발표합니다. 92년 맞죠. 북한 입장에서는 고립도 있었지만 안심되는 것도 있었겠죠. 남한에 있는 전술핵을 모두 철수한다. 그리고 실제로 노태우 대통령도 남한은 어떤 핵도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발표를 해요. 아버지 부시가 그렇게 선언한 대로 실제로 이행이 됩니다. 그리고 한미 합동군사훈련 연례 합동군사훈련 해마다 하는 겁니다. 그걸 중지하겠다고 발표해요. 그것은 북한으로서는 약간의 안도가 됐겠죠. 외교적 경제적 고립은 계속되지만 안보상의 위협은 어느 정도 완화된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1993년으로 해가 바뀌자 한미 양국의 대통령이 바뀝니다. 한국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죠.
2월 25일 미국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1월달에 취임합니다. 취임하자마자 한미 양국은 팀스피리트 재개를 발표합니다. 93년 초입니다.그것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NPT(Non-Proliferation Treaty, 핵 확산 금지 조약) 탈퇴 발표입니다. NPT, (즉) 핵 확산 금지 조약이죠. 핵 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했다는 것은 핵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인데 탈퇴한다는 뜻은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죠. 탈퇴를 발표합니다. 그것을 1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 뒤로 북한은 핵무장 강화로 질주하죠. 그 핵무장 북한 핵무장의 속도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증가의 속도가 무섭게 일치합니다.
93년에 북한이 NPT 탈퇴를 발표하죠. 94년에 한국은 1인당 중에서도 만 달러가 돼. 2006년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시작합니다. 그 해에 한국은 2만 달러가 됩니다. 2017년에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발표합니다. 핵무력을 완성했다 핵 보유국이 됐다고 발표합니다. 그 해에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됩니다.
약속하고 그런 건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데 남북한이란 참 묘합니다.
서울에 신라호텔이 생기면 평양에 고려호텔이 생기거든요. 이상하죠 보니까 그런지 모르겠어. 그 탈냉전이 한국으로서는 외교의 지평이 넓어지고 거의 지구상의 외교 관계가 없는 나라라는 그 당시에는 쿠바 정도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쿠바와 북한 정도 남아 있고 모두 국가와 외교 관계가 수립되고 모든 국가가 무역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됐어요. 그리고 반복되지만 국민 소득이 1만 달러에서 3만 달러를 넘는 그게 탈냉전 시대입니다. 그 시기에 북한은 NPT 탈퇴 발표부터 1차 핵실험 그리고 6차 핵실험 끝에 핵무력 완성 상황 여기까지 갑니다.
제가 빛과 그림자라고 표현한 이유가 그겁니다.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풍요를 주었을지 모르지만 핵을 가진 북한과 상대하게 된 그런 기간이 바로 그 기간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기간에 만불부터 3만 불까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의 하나가 미중 관계가 안정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미 경제관계는 중국 쪽으로 훨씬 더 많은 비중이 가 있었어요. 무역액도 그러하고요. 지금도 미국, 일본 무역액 합친 것보다 중국 무역액이 더 큽니다. 그렇게 해도 미국 눈치를 안 봐도 됐었어요. 미국이 중국을 속으로는 어땠을지 몰라도 그렇게 도전자라든가 경쟁자라고 생각을 안 했었어요. 그 기간이 한국에는 축제 같은 기간이었어요. 그래서 소득이 늘고 경제가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단 북한을 계속 봉쇄하고 고립시키는 그 결과로 북한은 핵을 가진 국가가 되어가지고 그런 탈냉전이 끝났어요.
탈냉전 이후 대한민국의 과제
(탈냉전이) 끝났다는 것은 이제는 중국과 경제 교류를 하더라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 되는 시대가 된 겁니다. 미국 신경 안 쓰고 마음대로 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뜻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핵을 가진 북한이 남아 있습니다. 탈냉전 이후 시대가 신냉전이든 또는 무엇이든 간에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훨씬 더 교묘한 지혜, 훨씬 더 단호한 용기 이런 것이 우리한테 남아 있는 숙제죠.
여기까지만 하고 여러분 질문 받고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상입니다.
박태균 교수 정리 발언
예, 감사합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은 뒤에 안 해 주셔서 저희가 Q&A 시간에 날카로운 질문으로 좀 조금 그 답을 좀 끌어낼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을 최대한 짧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사실은 더 많은 저희가 Q&A를 진행할 수가 있고 그다음에 총리께서도 답변을 너무 깊게는 [영상 중단]
3. 강연 후 질의응답 전문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7006893
4. 이낙연 전 총리의 광주 KBS 대담(2023/10/24)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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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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