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안네스 8세는 여러모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군주였다. 그는 뛰어난 통솔능력과 동시에 황제에 어울리는 지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로마 제국이 망해가는 15세기에 황제가 되었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날개를 온전히 펴지 못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요안네스 8세는 자신의 치세 동안 제국을 되살리기 위해 여러 조치들을 행했다. 그 중 하나가 모레아 정복전이었다.
모레아는 15세기의 동로마 제국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유일무이하게 남은 대규모 거점이었다. 방어능력도 뛰어났고, 미스트라를 중심으로 한 역량도 건재했다.
요안네스 8세는 이 모레아를 완전히 제국의 소유로 하기 위해 그 곳에 있던 여러 프랑크, 라틴 세력들을 박살내었다.
그 최후의 상대중 하나는 이피로스 전제 군주, 카를로 토코였다.
카를로 토코의 클라렌자 공세에 요안네스 8세는 역공 명분을 얻었고, 동생인 친왕 콘스탄티노스(후일 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함께
파트라스 앞바다로 진공하여 이피로스군을 상대로 승리, 클라렌자를 탈환하고 토코의 이피로스 점령지들을 함락했다.
카를로 토코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고, 요안네스 8세 황제는 그에게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그의 딸,
막달레나 토코를 동생 콘스탄티노스에게 시집 보낼 것을 명령했다. 그것은 지참금 명목으로 이피로스의 땅을 모레아 전제군주령에 포함시키기 위함이었다.
콘스탄티노스는 형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이 승리를 거둔 상대의 여식과 결혼했고 그 지참금으로 이피로스 영지들을 얻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결혼 궁합이 나쁘지는 않아서, 막달레나와 콘스탄티노스의 사이는 꽤나 좋았다.
안타깝게도 결혼 생활은 테오도라(막달레나는 콘스탄티노스에게 시집을 가면서 자신의 이름까지 동로마식으로 개명했다.)가
콘스탄티노스의 아이를 낳다가 죽음으로서 비극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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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자
| 19.12.13 00:5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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