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할머니 댁에서 일기를 발견했습니다. 상자 가득 들어있던 노트 페이지에는 이것 또한 빽빽하게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할머니께 여쭤보니 5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30대쯤부터 계속 써 오던 일기인 것 같은데, 50대쯤에 그만두셨다고 합니다.
닥치는 대로 페이지를 대충 넘겨보니, 매일매일 친구들과 놀러 다닌 이야기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거웠다는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친구들과의 추억이나 이름 등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의외로 친구가 많으셨구나 싶어 조금 놀랐습니다.
제가 일기 읽는 것에 슬슬 질려갈 때, 아까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30대쯤부터 계속 써 오던 일기인데 50대쯤에 그만두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미 습관화되었던 일기를 왜 그만두셨을까.
혹시 마지막 일기에 그만둔 이유가 쓰여 있지 않을까 싶어, 저는 마지막 일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마지막 날짜가 적힌 노트는 비교적 빨리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기대하며 마지막 날짜의 일기를 읽었습니다만, 거기에 기록된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너무나 슬픈 것이었습니다.
지금 와서야 할아버지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눠볼걸 하고 생각합니다.
이하, 일기 내용입니다.
[일기 내용]
"내가 오늘까지 이 일기에 써 온 내용은 모두 엉터리다. 고독을 달래기 위한 망상을 여기에 기록해 왔는데, 최근 나는 현실의 기억과 일기의 내용이 섞이고 있다.
어제, 내가 친구에게 내 반려동물 이야기를 할 때도, 견종은 치와와라든지, 이런 행동이 귀엽다든지 유창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것은 과거에 썼던 일기의 내용이었다. 애초에 반려동물조차 키운 적 없던 내가 그 정도까지 술술 추억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이제 어떤 추억이 진짜고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학생 때 첫사랑 ○○와 함께 갔던 불꽃놀이는 진짜일까?
첫 월급으로 샀던 것이 명함지갑이었던 것은 진짜일까? 친구, 동료, 내 가족과의 추억, 무엇이 진짜지.
그렇게 생각하니 무서워져서 나는 오늘을 끝으로 붓을 놓기로 한다. 이제부터 만들 추억은 진실만 있을 거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