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내가 그곳에 배치되었을 당시에도 전산센터라는 말은 이미 구식이던 시절이었다.
시스템 운영의 아웃소싱은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었고, 최신 내진 구조와 무정전 전원 장치를 갖춘 ‘데이터센터’가 전국 곳곳에 존재했다.
신입사원이었던 시절, 나는 선배 직원들과 함께 여러 데이터센터를 견학했다.
교외 산 속에 갑자기 나타나는 거대한 하얀 시설도 있었고, 시부야구의 멋진 1등지 지하에 숨겨진 시설도 있었다. 겉모습은 마치 비밀기지 같았고, 내부는 80년대 SF영화에 나올 듯한 ‘근미래적’ 분위기였다.
그것들에 비하면 전산센터는 ‘레거시’라는 단어가 딱 어울렸다.
적어도 그 제2전산센터는 확실히 그랬다.
1969년에 가동을 시작한 제2전산센터는, 내가 입사했을 때 이미 건축된 지 40년이나 된 시설이었다.
국내에서도 매우 이른 시기에 지어진 정보 처리 전문 시설이었다.
한때는 대량 우편물이나 각종 서류를 인쇄하는 대형 프린터들, 당대 최신형 메인프레임들이 다수 설치되어 있었고, 그것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직원뿐 아니라 파트타이머, 운송업자, 장비를 보수하는 제조사 기술자까지 포함)이 24시간 상주하여, 전성기에는 2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잘 알려진 것처럼 다운사이징, 아웃소싱, 클라우드화라는 업계의 흐름과, 무엇보다 시설 자체의 노후화라는 이유로 제2전산센터는 서서히 그 역할을 잃어갔다.
도심에 있는 본사에서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두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그 건물은, 규모에 비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느낌을 풍겼다. 노쇠한 경비원이 있는 정문 주위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건물 자체도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일부가 떨어져 나간 채 방치되어 있었다.
IT의 최첨단을 표방하는 우리 회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올드 패션.
잊혀진 장소. 처음 그곳을 방문한 나는 그런 첫인상을 받았다.
입사 2년 차 영업사원이던 어느 날, 나는 상사로부터 부서 이동을 명령받았다.
다음 주부터 제2전산센터에서 유지·보수 업무를 맡으라는 것이었다.
아마 여러분이 지금 떠올린 것과 같은 생각을 나도 했다.
“좌천이다.”
컴퓨터도, 프로그래밍도, 운영도 모르는 내가 전산센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걸까?
고객을 화나게 할 만한 실수를 했던가? 임원에게 반감을 살 만한 무언가를 했던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거부할 이유도 없었기에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센터 내부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현관에서 나를 맞이한 센터장과 함께 내부를 둘러보던 중, 요즘은 센터 내에 3명 이상 사람이 있는 경우조차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층에는 넓은 창고와 회의실이 몇 개 있었지만, 방 안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고 빈 랙과 락커만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었다.
지하에는 두 개의 큰 방이 있었다.두 방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두 방을 가르는 벽은 철거되어 바닥에 붙은 양생 테이프로만 방을 구분하기에, 실제로 지하는 하나의 거대한 공간과 화장실, 복도, 계단으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두 방에는 각각 ‘제1전용룸’, ‘제2전용룸’이라는 표지판이 달려 있었지만, 제2전용룸의 문은 완전히 폐쇄되어 있었고 제1전용룸 쪽 출입문에서만 드나들 수 있었다.
센터장과 함께 제1전용룸에 들어가자, 안에는 휑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희미하게 어두운 방 중앙에 책상과 파이프 의자가 놓여 있었고, 초로의 남성이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 제1전용룸이 그날부터 나의 업무 공간이 되었고, 나는 그 중년 남성에게서 업무 인수를 받았다.
업무 내용은 정말 단순했다.
근무는 2교대제였다.
나는 오전 9시 또는 오후 7시에 제1전용룸에 입실하여, 그 전에 근무하던 직원에게서 일지를 받는다.
그리고 방 안의 파이프 의자에 앉아 제2전용룸 방향을 ‘감시’한다.
제1전용룸은 몇 개의 형광등이 켜져 있었지만, 제2전용룸 쪽은 조명 장치가 전혀 없어 완전히 어두웠다.
그런데 딱 의자 정면에는 녹색등 두 개가 좌우로 나란히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녹색등 한쪽 혹은 양쪽이 노란색으로 변하면, 15분 이내에 1층에 있는 전용 전화기로 ‘보안센터’에 연락해야 한다.
업무 시작 후 12시간이 지나면, 일지에 근무 중 있었던 일을 적고, 교대 직원에게 일지를 넘겨주고 퇴근한다.
딱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세부적인 금지사항이 있긴 했다.
하나. 휴대전화 등 기록 가능한 전자기기는 1층 락커에 넣고, 지하에는 절대 가져오지 말 것.
하나. 지하의 조명 스위치에는 절대 손대지 말 것.
하나. 바닥의 보호 테이프를 넘어 제2전용룸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 것.
또 하나, 보안센터에 전화했을 때는 지시가 있기 전까지 지하로 돌아오지 말 것 등등.
‘왜?’ 싶은 것투성이었지만, 나는 묵묵히 그 규칙들을 따랐다. 우리가 컴퓨터나 인터넷, 스마트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고, 고객이 개발자들이 수년 동안 기능을 덧붙이고 수정해 엉망으로 꼬여버린 소스코드를 가진 패키지 소프트를 아무 문제 없이 쓰는 것처럼,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원리나 이유를 알 필요는 없고, 정해진 절차만 따르면 그만큼 월급이 더 나오는 일.
제2전산센터에서의 업무는 내게 천직이었다.
정면의 어둠을 가끔 흘끗 바라보는 것 외에는, 그냥 책을 읽고 있기만 하면 됐다.
처음 며칠은 감시 카메라가 의식되어 시종일관 두 개의 녹색 램프를 주시했지만, 사흘쯤 지나자 조금씩 긴장을 풀었고, 일주일 뒤에는 파이프 의자 위에서 다리를 꼬고 문고본을 읽을 정도로 대담해졌다.
물론, 한 줄 읽을 때마다 얼굴을 들어 램프 색이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만은 잊지 않았지만.
참고로, 램프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는 일은 평균 두 달에 한 번 정도였다.
2교대 근무는 나를 포함한 네 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배치되고 반년쯤 지나 초로의 직원 A씨(나에게 업무를 넘겨준 사람)가 그만두고,
새로 후배 I군이 배치되었다.
I군과는 인수인계를 계기로 금세 가까워져, 비번 날에는 단둘이 술을 마시러 갈 정도가 되었다.
그는 이 업계에서 이직에 유리한 여러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IT 지식도 풍부한 우수한 직원이었다.
성격도 좋았고, 이런 지루하고 생산성 없는 제2전산센터에 왜 배치된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센터 업무에 꽤 관심이 있는 듯했다.
한 번은 술집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듣게 되었다.
I군은 제2전용룸의 어둠 속에는 대형 금융기관의 계정계(핵심 은행 시스템)를 돌리는 메인프레임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당시 대형 은행의 통합이 화제였고, 많은 기업의 시스템이 오픈화되어 가는 와중에도
금융기관만은 메인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시기였다.(지금도 절반 정도는 사실이다.)
복잡해진 시스템을 잘못 개편했다간 어떤 장애가 터질지 모른다.
그래서 거의 폐허가 되어버린 이 전산센터조차 옮길 수 없는 것일 거라고 했다.
우리 회사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노리기 때문에,
전기·설비 비용을 아끼고 소수 직원에게 그 메인프레임을 ‘감시’시키는 것일 거라고.
듣고 보니 그의 추리는 제법 그럴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꽤 틀린 추측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회사 경영진이 구두쇠라 해도, 그렇게 위험한 방식의 유지 체계를 택할까?
애초에 자동 감시 시스템을 쓰면 될 일 아닌가?
우리에게 꽤 많은 월급을 주면서까지 램프 두 개를 ‘눈으로 확인’하게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업무의 정체가 무엇이든 나에겐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I군의 추측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다음 근무 때 가져갈 책을 고민하고 있었다.
I군이 배치된 지 약 1년쯤 지난 어느 날,
한밤중에 I군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다.
제목도 본문도 없고, 단 하나의 이미지 파일만 첨부되어 있었다.
그 이미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두 개의 붉은 빛이 나란히 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우선, 지금 I군은 야간 근무 중일 터였다.
휴대전화 반입 금지 장소에서 어떻게 메일을 보낸 걸까?
그리고, 이 두 개의 붉은 빛은 뭐지?
평소 우리가 감시하던 램프임은 짐작했지만,
색이 문제였다. 녹색도 노란색도 아닌, 붉은색은 본 적이 없다.
혹시 지금 제2전산센터에서 전례 없는 사고가 일어난 건 아닐까?
그렇다면 회사 전체에 장애 알림이 와야 하지 않나?
회사 휴대폰으로 연락도 와야 하지 않나?
I군은 지금 예상치 못한 사태에 패닉 상태인 걸까?
수많은 생각이 오갔지만—결론적으로 나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여러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결국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게 옳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음 날 이후로도 제2전산센터는 평소와 다름없이 운영되었고,
회사도 직원들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능했다.
달라진 것은 딱 하나—
I군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것뿐이다.
그 메일 이후, 그는 완전히 연락이 두절되었다. 메일을 보낸 날을 기점으로 결근을 이어갔고,
센터장도, 다른 직원들도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I군의 실종은 며칠간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지만, 원래 사람 수도 적은 직장이었기에 추측도 소문도 금세 사라졌고, 일주일쯤 지나자 제2전산센터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니, 마치 I군이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담담히 업무를 이어갔다.
I군의 빈 자리는 센터장이 직접 메웠다.
2020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제2전산센터는 반세기 동안의 역할을 마치게 되었다.
폐쇄 결정 반년 전에 나는 센터장으로 승진했지만,
그 직함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경영진의 지시에 따라 몇 건의 승인 문서에 도장을 찍었을 뿐,
제2전산센터의 폐쇄와 해체는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센터에서 물품을 반출하던 날, 업체의 요청에 따라
나는 처음으로 제2전용룸의 조명을 켰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버나 메인프레임 같은 컴퓨터가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랙도, 로커도, 의자도, 책상도,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까지 우리가 감시해오던 녹색으로 빛나던 두 개의 램프조차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호 테이프 너머에는 완전히 텅 빈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밤사이에 누가 치웠나?” 그럴 리 없다는 것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센터 입구의 감시 카메라, 직원들과 경비원의 증언, 그리고 일지까지
어디에도 반출 기록은 없었다.
그렇다면 지난 십수 년 동안
우리는 이 ‘아무것도 없는 방’을 도대체 무엇을 ‘감시’하고 있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조명이 꺼져 있었다고 해도
그 방은 ‘이상할 정도로 어두웠다’.
멍하니 서 있는 내 앞에서 반출 작업은 문제없이 끝났고,
몇 달 뒤 그곳은 완전히 빈 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내 손에는
I군이 보냈던 두 개의 붉은 빛 사진이 남아 있다.
그 빛은 마치 어둠 속에서 먹잇감—즉, 우리를 노려보며 번들거리는 괴물의 눈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