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A가 맨홀에 떨어져 죽었다.
사고였다.
A가 죽고 며칠이 지난 어느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
어둑한 어느 골목 뒤였다.
내 발치에는 뚜껑이 반쯤 어긋난 맨홀이 있었고, 그 틈새 아래에서 A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요, B. 오랜만이다』
“요… 요, A. 너, 왜 그런 데 있는 거야…?”
내 질문에, A는 쉰 목소리로 케케케 하고 웃었다.
나는 ‘얘가 원래 이렇게 이상하게 웃는 애였나?’ 하고 생각했다.
A의 얼굴은 맨홀 뚜껑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두 눈만 희미한 빛을 받아 어둠 속에 떠 있었다.
『나 말이냐? 나는 지금 여기서 살고 있어.
난, 맨홀 인간이 됐거든』
“맨홀 인간…?”
『그래』 A는 또 케케케 웃었다. 『맨홀 아래에는 지하 세계가 있어. 그곳에 사는 게 우리 맨홀 사람들이지.
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맨홀 아래에는 하수도 같은 게 흐르고 있는 거 아닌가?”
“매일 맨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게 있었다면 지금까지 세상에 안 알려졌을 리가 없다” …그렇지?』
『—맞지?』
방금 전까지 쾌활하게 떠들던 A는 갑자기 낮고 무서운 목소리가 되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더 중요한 의문을 잊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좋아, 너는 내 절친이니까 특별히 알려줄게.
우선, 동네에 있는 대부분의 맨홀은 그냥 평범한 맨홀이다.
안에는 하수가 흐르거나 전기 케이블이 얽혀 있겠지?
그런데 그중 몇 개만, 수백 미터 아래의 지하 세계로 이어지는 특별한 맨홀이 있어.
그 맨홀은 늘 잠겨 있어서 열리지 않아.
지하 쪽에서만 열 수 있게 되어 있거든.
맨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 열리지 않는 맨홀은 뭐지?” 하고 생각해도, 회사의 높은 사람들에게서 “신경 쓰지 마라. 무시해라” 하고 지시를 받아.
회사의 높은 사람은 더 높은 정치인에게서 그렇게 지시받고, 그 정치인들도 또 더 높은 존재에게서 지시받는 거지.
그래서 아무도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거야.』
“엄청 높은 사람들만 알고 있다는 거야?”
『그래. 그리고 너처럼, 맨홀 사람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은 운 좋은 녀석 정도만 알고 있는 거지.』
A는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더 알려줘.
지하 세계는 어떤 곳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지상에서 수백 미터나 아래에 있어. 지하철이 다니는 깊이보다 훨씬 더 깊어.
그 아래에는 거대한 공간이 있는데, 천장까지의 높이는… 도쿄 돔 정도 될까?
그런 공간이 이 마을보다—아니, 일본보다 훨씬 훨씬 넓게 퍼져 있다고.』
“근데 지하는 완전 어둡잖아? 어떻게 그런 걸 알아?”
『나도 처음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근데 신기한 게, 금방 몸이 적응되더라고. 지금은 낮처럼 똑똑히 보여!
눈이 익숙해져서 천장을 잘 보니까, 조그맣게 뚫린 구멍들이 있더라고.
그게 내가 떨어져 내려온, 지상으로 이어지는 구멍이구나 하고 알았지.
다른 것들은 맨홀 사람 친구들이 가르쳐줬어.
걔네 정말 착하고 똑똑해. 아마 지상 사람보다 훨씬 발전해 있을걸?
지하 세계의 지리나 역사, 지상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앞으로 이 별에서 일어날 일까지… 뭐든 다 알고 있어!』
흥분한 A의 목소리만 맨홀 틈에서 울려 나왔다.
그런데 왜 이 녀석은 얼굴을 내밀지 않는 걸까?
『그리고 말인데, 맨홀 사람들은 늙지 않는대! 장로 같은 애들은 몇 백 년을 살았다고 하더라!』
“몇 백 년 전이면… 맨홀 자체가 없었던 거 아니야?”
『…뭐라고?』
낮고 무서운 목소리.
“미안.” 나는 바로 사과했다.
『하여튼, 지하 세계는 정말 좋은 곳이야! 맨홀 사람들도 전부 좋은 녀석들이라고!
B도 와! 학교도 없고, 공부 안 해도 되고, 하루 종일 놀아도 아무도 뭐라 안 해!
난 말이야… 차라리 더 일찍 맨홀에 떨어졌으면 좋았을걸 싶다니까?』
그래. A는 맨홀에 떨어졌었다. 맨홀에 떨어져서, A는…
나는 떠올렸다. 잊고 있던 의문.
이상함.
“근데 너… 맨홀에 떨어져서 죽었잖아…?”
갑자기, 맨홀 아래가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A… 너는 맨홀에 떨어져 죽었—”
쾅!!
눈앞에서 뭔가가 폭발한 듯한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히는, 발치에 있던 맨홀 뚜껑이 하늘 높이 튀어 올랐을 때의 소리였다.
엄청난 속도로 맨홀에서 튀어 오른 A의 머리에 받쳐서 뚜껑이 날아간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미친 듯이 고함치는 A의 얼굴은 내 머리 위 5미터 상공에 있었다.
그 눈은 하얗게 흐려 막이 끼었고, 심해어처럼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통은 뱀처럼 길고 길고 길게 늘어나 맨홀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파! 아프다고! 그만해! 씹지 마! 지금, 이 녀석을 데려갈 테니까! 지하로 데려갈 테니까! 그러니까 씹지 마!
야, B! 우리 절친이잖아? 같이 가자고! 지하 놈들이 말하길, 지상 사람을 한 명 데려오래!
안 데려오면 끔찍한 일을 당하게 한다고 했어!
내 몸, 변해버렸어! 지하로 떨어지고, 어둠에서도 보이게 됐더니, 어느새 이렇게 길어져 있었어!
내 다리는 아직 지하에 있어! 몇백 미터 아래 그 지하에 있다고!
걔네가 지하에서 내 다리를 먹고 있어! 아그작 아그작 씹고 있다고!
얼마나 먹혀도, 금방 살이 붙어서 돌아와! 죽을 수가 없어!
도와줘! 이젠 아픈 건 질렸어! 부탁이야! 나랑 같이 지하로 와줘!
혼자 싫으면, 네가 좋아하는 옆반 C도 데려오라고!
그래, 셋이라면 씹히는 것도 1/3씩이잖아! 그게 좋다! 나중에 바로 데리고 올게!
…야, 왜 도망가? 장난하냐? 왜 나만 그래? 왜 나만 이런 꼴이야?
장난하지 마. 절대 용서 안 해. 데려갈 거야.
반드시 너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비명 소리로 잠에서 깼다.
파자마는 땀으로 흠뻑 젖어 엉망이었다.
※
※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C도 맨홀에 떨어져 죽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맨홀이 무섭다.
〈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