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말했는지는 이제 와선 생각해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지만,
어쨌든 “폐가 탐험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쉬는 날에 나와 악우 카즈키, 이렇게 둘이서 그 폐가로 향하게 됐다.
마을 외곽에 있는 그 폐가는 예전에 가족 동반 자살이 있었다, 강도살인이 있었다,혹은 그냥 야반도주했다,
이런 믿기 힘든 소문만 떠돌 뿐 실제로는 아무도 진상을 모르는 그런 장소였다.
뭐, 폐가란 어디든 다 비슷비슷하기도 하고.
그 집은 우리 동네에서는 대부분
‘빨간 손의 집’이라고 불렸다.
이름의 유래는, 그 집 2층에는
빨간 손자국이 잔뜩 찍혀 있는 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방에서 여자 귀신이 나온다, 들어갔다 나오면 저주받는다, 등 별별 얘기가 떠돌았지만
이것도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일 뿐이었고, 내 주변에는 실제로 그 손자국 방을 본 사람은 없었다.
“우린 둘 다 영이라고는 1mm도 없지만,
거긴 진짜 귀신이 나올지도 모르지.”
그런 십대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와 심심함·호기심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단조로운 매일에 자극을 주려는 마음으로 그 폐가로 향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심령 스폿 같은 데 갔다간 어떻게 되는지,
그날 바로 비싼 수업료를 치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빨간 손의 집’은 나무들에 파묻히듯 산자락 한쪽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서양식 2층짜리 집으로, 멀리서 봐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기묘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우릴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황폐한 앞마당이었다.
부지는 예상보다 작았고, 형식적으로만 출입금지라고 걸어둔 로프가 있었지만
전혀 소용이 없어 보였다.
우리 말고도 탐험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현관까지 이어지는 길은 풀이 밟혀 작은 오솔길처럼 돼 있었다.
원래는 새하얀 벽이었을 외벽은 관리하는 사람 없이 수년간 비바람에 노출되어
더럽게 검게 변색되고, 갈라지고, 이제는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창문 유리도 대부분 깨져 있었다.
드디어 집 안으로 들어가
손전등을 들고 1층부터 탐험을 시작했다.
바닥을 가득 메운 각종 쓰레기, 곰팡이에 뒤덮인 소파, 구멍투성이의 벽, 스프레이로 낙서된 자국들…
전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폐가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예전 거주자의 생활이 엿보이는 가구나 소품들은
묘하게 분위기가 있어 흥미로웠다.
욕실에는 웬 마네킹이 버려져 있어
그건 진짜 놀라긴 했지만.
1층을 30분 정도 살펴본 뒤
드디어 목적이었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방이 두 개 있었고
먼저 앞쪽 방을 봤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이었다.
원래 서재였는지 바닥에는 책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 방에 빨간 손자국이 있을 터였다.
우리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마음을 다잡아 문을 열었다.
“우엇…”
우리 둘은 저절로 그런 소리를 냈다.
벽도, 바닥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빨간 손자국이 방 안을 온통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소문이 가짜거나, 있어도 벽 한쪽에 손자국 몇 개 있는 정도 아닐까
가볍게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 멍해졌다.
크기로 보아 아이 혹은 여성의 손으로 보였다.
다른 곳과는 명백히 공기가 달랐다.
땀날 정도의 더운 날씨였는데 방에 들어서는 순간 기온이 한순간에 영하로 떨어진 듯한 오싹함이 느껴져
이렇게 둘만 와버린 것을 뒤늦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스프링이 튀어나온 낡은 침대와 넘어진 사이드테이블 정도만 있었다.
도대체 과거에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폐가가 되었는가— 상상을 안 할 수 없었다.
숨막힐 듯한 이 음산함에 기가 질리면서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줄 생각에
나는 방 사진을 여러 장 찍기 시작했다.
열중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카즈키가 방 한가운데 서서 바닥이나 벽의 손자국을
심각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왜 그래, 뭐 하고 있어?”
“아니… 너 이 손자국 보고 아무 생각 안 들어?”
그 말에 잠시 손자국을 살폈지만
나는 잘 모르겠었다.
그러자 카즈키가 벽의 손자국 하나에
자기 왼손을 포개어 대며 말했다.
“봐. 여기에 있는 손자국,
전부 왼손뿐이야.”
그 말에 다시 방 안을 둘러보니, 정말로 그렇게 많던 손자국이
모두 왼손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진짜네. 대박… 너 잘 찾아냈다.”
“그렇지? 이상하잖아. 하나쯤은 오른손도 있을 법한데.”
“그러게, 왜 그러냐?”
“오른팔은 잘려 나갔으니까.”
어딘가에서 웅크린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어서 방 안쪽의 옷장에서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방을 나오기 직전, 반사적으로 뒤를 힐끗 봤는데, 옷장 속에서 전신이 붉게 물든 사람 모양의 무언가가
천천히 기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둘 다 앞다투어 계단을 뛰어 내려가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 자전거에 올라타
그저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런 진짜 괴현상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우리는 그 집에서 멀어지는 것밖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는 길 중간에 서로 집이 있는 방향이 달라 우리는 두 갈래로 흩어졌다.
붉게 물든 황혼 속을 죽어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땀범벅에 숨이 턱턱 차오른 상태로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하필 이런 때에 집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 혼자 거실에서 차가운 보리차를 마시며 겨우 진정이 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방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놨다는 것을 떠올렸다.
저런 걸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사진을 지우려고 했지만—
“삭제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시도하세요”
라는 메시지가 뜨며, 아무리 해도 삭제가 되지 않았다.
이유도 모르겠고 여러 번 시도해도 똑같아서,
등줄기를 차갑게 식히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때였다.
기익… 기익…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가 돌아온 건가? 하고 순간 생각했지만 바로 그런 생각을 지웠다.
가족이 저런 기괴한 걸음걸이를 할 리가 없었다.
기익… 기기익… 기익기익기익…
발소리는 비틀거리는 취객같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면서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거실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피가 싸늘해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사진을 찍은 것을 극심하게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몸을 얼어붙인 채 복도로 이어진 문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발소리는 마침내 거실 문 앞까지 왔고,
예상과 다르게 문을 열지는 않고 그대로 지나쳐
집 안쪽으로 사라져갔다.
긴장이 풀리며 약간 안도한 그 순간—
“이제 끝이야.”
갑자기 귀 바로 옆에서 아까 그 여자의 목소리가 속삭였고,
그 순간 나는 의식을 잃었다.
완전히 캄캄해진 거실에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저녁 7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엄마에게서 “늦는다. 저녁은 어제 남은 거 알아서 챙겨 먹어" 라는 LINE이 와 있었다.
불을 켜고 주위를 두려움 속에 확인해보았지만
이상한 기색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생각났다. 그 여자, 카즈키한테도 나타난 걸까?
나는 그에게 연락해 보기로 했다.
그의 안부도 걱정됐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 누구든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신호음만 울릴 뿐, 받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자동응답기로 넘어가나…’ 하고 포기하려던 순간, 드디어 통화가 연결되었다.
“카즈키! 나야. 너 괜찮았냐!?”
『아아……』
힘이 쭉 빠진, 맥없는 대답이었다.
한숨처럼도 들렸다.
“야, 너 주변에 이상한 일 없었어?”
『……왜 나만……』
“뭐? 야, 너 지금 어디야?”
『집에… 빨리… 가고 싶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앞뒤 안 맞는 말만 중얼거린 뒤 그대로 전화는 끊어졌다.
다시 걸었지만 이번엔 도저히 연결되지 않았다.
불길함이 가슴을 죄어 왔다. 혹시나 해서 카즈키 집에 전화를 걸어보니
역시나 예상대로, 전화를 받은 그의 어머니가
“아직 안 돌아와서 걱정하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식은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명백히 정상적이지 않다. 지금 카즈키에게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확신한 순간,
‘빨간 손의 집’에서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카즈키는 그 방에서 자기 손을 벽의 손자국에 겹쳐 대고 있었다.
아마, 아니 분명 절대 해서는 안 될 금기였을 것이다.
그 때문에 카즈키가 이상해지고 사라진 것이 틀림없다.
아직 늦지 않았을까?
제발 무사해라.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며, 지금이 급박한 상황임을 깨달은 나는
다시 빨간 손의 집으로 향할 결심을 굳혔다.
카즈키가 그 폐가에 붙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혼자 갈 수는 없고, 경찰에게 사정을 말해 여러 명이 같이 가는 게 현명하다.
붙잡아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그 생각으로 필요한 것을 가지러
나는 급히 복도로 나가 자기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불을 켰을 때—
전기 코드에 목을 매단 카즈키가 눈앞에 매달려 있었다.
이미 시간이 조금 지난 듯 발치에는 배설물이 흘러 있고, 온몸에는 빨간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뇌는 그 광경을 현실로 받아들이길 거부했지만
잠시 후 억지로라도 이해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까 그 기괴한 발소리, 너였던 거냐.
그러고 보니 현관문을 잠가두지 않았지.
뭐야, 이게…….
모든 힘이 빠져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희미하게 흔들리는 보라빛 얼굴의 카즈키를
눈물이 번지는 시야로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발소리가 카즈키라는 걸 알아챘다면, 적어도 그의 목숨만큼은 구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혹시 나는 시험받고 있었던 걸까? 용기를 내서 복도를 확인할 수 있는가를.
그 순간—
후후후…
밑바닥에서 울리는 듯한,
터무니없이 즐거워하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