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홍수 등의 재해는 일반적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호우 재해는 해마다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그런 집중호우 재해와 관련된, 한 무서운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연호가 아직 ‘분세이(文政)’이던 에도 시대의 이야기다. 지금의 오카야마현과 히로시마현에 걸친, 옛날에는 비슈(備州)라 불렸던 지역에서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어느 해 여름, 이 지방을 큰 태풍이 덮쳤다. 태풍에 의한 폭우는 사흘 밤낮을 계속해 이 지역에 큰 피해를 입혔다.
평소엔 온화하고 조용히 흐르던 강이, 폭우로 인해 표정을 완전히 바꿨다. 흙탕물이 되어 마을 전체를 삼킬 듯 범람했다. 그 결과 많은 마을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현대에는 제방 정비가 이루어져 조금 비가 온다고 넘치는 일은 없지만, 정비가 진행되기 전 쇼와 중기까지는 자주 강이 넘쳤다고 한다.
조금만 장마가 와도 강이 범람했다는 기록이 이 지역의 민속자료관에 남아 있다고 한다. 산간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원래 별다른 산업도 없어 비교적 가난했다.
이 해에 일어난 재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곤궁해졌다고 한다.
이 마을에 ‘분키치'라는 소년이 있었다. 나이는 13~14세.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다섯 명의 동생이 있었다.
앞서 말한 수해로 집이 침수되고 논밭도 어느 정도 피해를 받았지만, 분키치의 마을은 비교적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비가 그쳐 하늘에 다시 푸른 하늘이 떠오른 아침, 분키치는 부모와 할아버지와 함께 집 정리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을 때, 같은 마을의 소년 셋이 분키치를 찾아왔다.
분키치보다 한 살 많은 쇼키치(庄吉), 그의 남동생 쇼키치(正吉), 분키치와 동갑인 칸타(勘太)였다.
그들은 강 상류 근처의 마비키(馬引) 신사의 사당이 홍수로 떠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모습을 보러 가자며 분키치를 유혹하러 온 것이었다.
성실하고 진지한 분키치는, 집안을 돕는다는 이유로 초대를 거절했다.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합류하겠다고 전하며, 억지로 발걸음을 돌리는 셋을 배웅했다.
정오가 되어 잠시 작업을 멈추고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머니가 준비해 준 차가운 국수를 먹으며 몸을 쉬고 있을 때, 칸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보통이 아닌 모습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칸타는 놀란 나머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분키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칸타를 진정시키고 억지로 사정을 들었다.
칸타는 쇼키치 형제와 함께 마비키 신사로 향했다. 강 상류, 산 입구에 조용히 서 있던 신사의 사당이 떠내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모습을 보러 간 것이다.
말 그대로 신사 경내는 난장판이었다. 많은 잔해가 떠밀려와 있었고, 작은 사당은 흔적도 없이 떠내려가 있었다.
셋이 사당이 있던 자리에 다가가자, 그 기초 부분에 커다란 검은 철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입구로 보이는 그 철문에는 굵고 단단한 사슬과 거대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철문 너머가 궁금해진 셋은 주변에서 열쇠가 떨어져 있지 않을까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연히 쉽게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막막해하던 그때였다.
본 적 없는 소년이 말을 걸어왔다. 소년은 자신을 타스케라고 소개하며, 신사 너머의 산길을 넘어간 곳의 마을에서 왔다고 했다.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고 듣고 친척의 안부를 보러 왔다는 것이다. 셋은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비슷한 또래였기에 금방 친해졌다.
셋이 신사의 상태를 보러 왔다고 말하자, 타스케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신사의 지하에는 옛날 이 지역을 다스리던 무장이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자기도 그 자물쇠를 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 셋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자물쇠를 부수기로 했다.
근처에 굴러다니던 큰 돌 등을 가져와 여러 번 여러 번 자물쇠를 내리쳤지만 아이들의 힘으로 그렇게 쉽게 부서질 리 없었다.
한참 동안 자물쇠와 씨름한 끝에, 마침내 자물쇠를 부수는 데 성공했다. 자물쇠를 해제하고 묵직한 사슬을 철문에서 풀어냈다. 양쪽으로 여는 철문은 무거우, 네 명이 힘을 합쳐 겨우 열었다.
문 너머에는 좁은 돌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햇빛은 그 끝까지 닿지 않아 얼마나 깊은 동굴인지 알 수 없었고, 불길한 느낌에 셋은 선뜻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단 한 사람, 타스케만이 그들을 재촉했다. 그러자 가장 연장자인 쇼키치 형이 선두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쇼키치 동생, 칸타, 그리고 타스케 순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먼저 쇼키치 형이 들어갔고 뒤이어 쇼키치 동생이 따라갔다. 조금 늦게 계단을 한 칸 내려갔을 때, 원래 뒤에 있어야 할 타스케가 없는 것을 칸타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선두의 쇼키치 형에게 알렸지만, 그는 “겁먹고 어디 숨었겠지”라고 말했다. 둘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타스케의 모습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진행하려던 찰나, 칸타의 귀에 쇼키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동굴 안쪽에서 무언가 상자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칸타는 동굴에서 나와 두 사람이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먼저 쇼키치 동생이 올라왔고, 그 뒤로 길이 1자정도 되는 검은 상자를 품에 안은 쇼키치가 돌계단을 올라왔다.상자 윗면에는 붉은 부적이 붙어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셋은 그 안에 무장이 숨겼다는 보물이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쇼키치 형은 상자를 땅에 두고, 대충 붉은 부적을 뜯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검은 항아리가 들어 있었다.
항아리에도 부적이 붙어 있었다. 안에는 무엇인가 마른 물건이 들어 있는 듯했고, 흔들자 달그락 소리가 났다.
금화라도 들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셋은 실망했지만, 고생해 자물쇠를 깬 만큼 아직 약간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산산조각났다.
항아리 봉인을 끊는 순간, 검은 안개가 항아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연기라도 불처럼 사방으로 퍼지며 경내 전체를 뒤덮었다.
방금 전까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은 순식간에 해질녘처럼 어두워졌다.
그리고 경내의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아기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도 몰아쳤다.
섬뜩한 분위기에 겁을 먹은 셋은 급히 도망치려 했다. 칸타와 쇼키치 동생이 동시에 신사 입구를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반쯤 몸을 밖으로 내밀고 있던 쇼키치가 비명을 질렀다.
돌아보니, 수없이 많은 검은 사람 그림자, 그것도 아기 같은 모습의 그림자들이 쇼키치 형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쇼키치 동생은 형의 손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끌어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런 동생에게도 그림자들이 달라붙었다.
둘은 어쩔 도리도 없이 어둑한 돌계단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칸타는 그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서 두 사람의 모습은 동굴 깊숙이 사라져 갔다. 마지막엔 절규처럼 들리는 비명만이 남았다.
그 처절한 비명을 듣고서야, 칸타는 마치 몸이 굳어 있던 것이 풀린 듯 자신의 상황을 파악했다.
이대로라면 자신도 두 사람처럼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꿈틀거리는 그림자들을 비집고 경내 밖으로 도망쳤다.
흐느끼며 울면서도 칸타는 필사적으로 분키치 일행에게 모든 이야기를 마쳤다.
분키치가 반신반의하며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마비키 신사 너머에 마을 같은 건 없다. 아주 오래전에 사람이 끊겨 이미 폐촌이 된 곳이야.”
그 말을 들은 칸타는 말문이 막혔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강한 어조로 남자들을 모두 모으라고 지시했고, 아버지는 곧장 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분키치와 칸타에게 말했다.
“가혹한 말이지만… 쇼키치 형제는 아마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반 시각도 지나지 않아 마을 남자들이 모였고, 그들은 신사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마을 촌장에게 가겠다며, 가는 길에 칸타를 집에 데려다주고 사정을 설명하고 오겠다고 하며 집을 나섰다.
분키치는 그 자리에 남겨졌지만, 그때 할아버지에게서 “절대로 신사 근처에는 가면 안 된다”라는 당부를 받았다.
그런 말을 들었어도 궁금한 것은 막을 수 없어 분키치는 근처의 큰 나무에 올라 신사 쪽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신사 근처만 왜인지 짙고 어두운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질 무렵이 되어 신사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촌장 집으로 향했다. 촌장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촌장 집에는 이미 많은 주민이 몰려 있었고, 촌장과 함께 신관들이 약 열 명 있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이자 촌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일어난 일,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그때 신관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가장 나이가 들어 보였고, 동시에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이즈미"라고 소개하며, 어느 유서 깊은 신사의 신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가난한 땅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늘 궁핍하게 살았고, 척박한 토지에서는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기근을 두려워해야 하는 생활 속에서, 언젠가부터 ‘마비키(間引き)’가 만연하게 되었다.
‘마비키’란,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이거나, 때로는 낙태시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기가 되면 장남만 가문을 잇기 위해 남겨두고, 다른 형제자매들은 인신매매꾼에게 팔려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여자아이는 수요가 있어 적극적으로 팔렸다고 한다.
그러나 팔려간 아이들의 말로는 참혹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 부모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울 여유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이를 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만이라도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려고,
마비키 신사까지 데려가 사라져가는 아이를 배웅하는 부모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비키 신사는 별명으로 엔기리(縁切り, 인연을 끊는)신사라고도 불렸고, 그 산을 엔기리야마라고도 불렀다.(※타스케라는 소년이 왔다는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마찬가지로 이 산을 지나간 곳이라고 하는데, 마을로 가는 길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죽인 어머니나 아이를 팔아넘긴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의 탯줄을 신사에 봉납하게 되었다.
최소한의 공양이라도 되길 바란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어머니들이, 팔려간 혹은 죽은 아이를 뒤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랐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서 이 신사는 “엔기리 신사”, 혹은 “마비키(間引き) 신사”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원래는 말을 끌고 와 무병장수와 풍작을 기원하는 행사에서 비롯되어 ‘마비키(馬引) 신사’라 불렸던 곳이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던 어느 해, 마을에는 극심한 기근이 찾아왔다. 그것만이 아니라, 전염병이 만연해 마을 전체가 마치 독기에 뒤덮인 듯해졌다.
마비키 신사에는 신관이 있었지만 감당이 되지 않아 주변 신사들에 도움을 요청했다.
모여든 신관들이 원인을 조사한 끝에 밝혀진 것은, 봉납된 ‘탯줄’이 주물로 변해 마을 전체를 저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신관들은 사흘 밤낮 동안 축문을 외우고 씻김굿을 올렸다.
그리고 신사의 건물을 한 번 해체한 뒤, 그 탯줄이 든 항아리를 땅속 깊은 곳에 모셔 주변 신관들이 번갈아 가며 관리하게 했다.
또한 50년에 한 번 다시 봉인을 갱신하기로 했고, 마침 그 해가 그 시기였다.
신주는 이야기의 끝에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건은, 요괴에게 꾐에 빠진 아이들이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책임은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 땅에 뿌리내린 ‘마비키’ 문화, 즉 마을의 역사에 있다고 했다.
(분키치가 살던 시대에는 가난했어도 마비키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3일 3밤 동안 원령을 달래고 씻김을 진행할 것이라 말했다.
그와 함께 마을 사람들에게 다음 세 가지 금기를 엄격히 지키라고 당부했다.
절대로 신사에 가까이 가지 말 것
해가 지면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 것
누가 불러도, 절대로 대답하지 말 것
불필요한 외출도 금지라고 덧붙였다.
그날부터 3일 동안 씻김 의식이 이루어졌다. 마을 곳곳에는 횃불이 피워지고, 신관들은 교대로 마을을 돌며 축문을 외웠다.
그러자 마을 여기저기에서 아기의 울음소리,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는 소리, 어머니가 아이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분키치의 체험에 따르면, 빗장을 모두 닫은 집 안에서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문을 두드리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는 다름 아닌 쇼키치 형제의 목소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분키치는 신주의 금기를 지켜 그 부름에 절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3일 3밤의 의식이 끝난 뒤, 문제의 "탯줄이 든 항아리"는 사당 아래의 지하 깊숙한 곳에 다시 봉안되었다.
그 과정에서 쇼키치 형제의 변해버린 시신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 마을은, 지나친 고령화로 인해 소멸 직전의 한계 마을이 되었다.
언젠가는 사라질 이 자연 풍부한 마을에는, 아직도 이렇게 슬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온 나카무라 씨였다.
사실 나카무라 씨는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분키치의 직계 후손이라고 한다.
나카무라 씨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도 강이 범람하여 신사가 탁류에 휩쓸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도 마을 어른들로부터 “절대 신사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한다.
그 진짜 이유는 성인이 된 뒤에야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사당 아래에 그런 것이 있는지 조사한 적은 없고, 그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어른들의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히 아주 옛날에는 마비키라는 슬픈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언젠가 이 마을은 사라지겠죠.
그때까지 우리는 이 이야기를 전해갈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공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나카무라 씨의 시선 끝에, 작은 신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