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밤중에 배회, 아니 산책하는 게 취미다.
계절도 가을에 접어들어, 아직 낮에는 덥지만 한밤중이 되면 얇은 후드티를 걸치는 정도로 딱 좋은 기온이 된다.
우리 동네는 그렇게까지 시골이라고 할 것도 없고, 조금 걸어서 주택가를 벗어나면 곧장 뻗은 논길이 나타난다.
달이 밝은 날 같은 때 걸으면, 달빛에 비친 벼이삭들이 시원한 바람에 소리를 내며 일렁이는 게 참으로 기분 좋다.
차도 멀리 보이는 국도에 듬성듬성 라이트가 보일 정도로 근처를 지나가는 일도 거의 없다.
산책하는 그 순간만큼은 나 혼자만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그날도 달빛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평소처럼 주택가를 벗어나 한동안 걷자 익숙한 논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동안 걷다 조금 쌀쌀하게 느껴진 나는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긴 논길도 절반 정도까지 이르렀을 즈음, 문득 어떤 것을 깨달았다.
내 발소리에 조금 늦게 따라오듯이 또 하나,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었지만, 그날은 바람도 약하고 다른 소리는 나지 않는다.
나처럼 한밤중에 산책하는 사람이 우연히 뒤에 있는 걸까?
그렇다 해도 계속 따라오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애초에 언제부터 뒤에?
여러 생각을 돌리다 보니 등에 차가운 것이 흐르는 감각이 든다.
한밤중이라는 시각과 지금의 상황에,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눈앞의 풍경들이 갑자기 불안을 부추기는 요소로 변해간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과감하게 뒤를 돌아보려고 했을 때였다.
피-잉 포-옹 파-잉 포-옹
마을 방재방송 차임벨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열사병 대책 호소나 노인 실종 등이 있을 때 자주 하는 마을 전체에 내보내는 방송이다.
하지만 음이 심하게 깨진데다가 소리도 너무 크다.
귀가 아파져서 무심결에 귀를 막았다.
"...여기는...방재...〇〇마을입니다..."
억양 없는 여성의 목소리로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진다.
시각은 오전 2시를 넘어 있다.
왜 이런 시간에 방송이?
내 생각은 신경쓰지 않고 방송은 계속된다.
"※※※※가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은...뒤를 보지 마십시오..."
나는 떨리는 다리를 질질 끌듯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발끝이 흙을 끌어가는 듯한 습한 소리도 섞이기 시작한다.
"…뒤에 있습니다… 돌아보지 마십시오"
방재 방송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머리 바로 위에서 들려왔다.
등골이 오싹하게 식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멈춰 서서 숨을 죽였다.
그 순간, 바로 뒤에서 발소리가 딱 하고 멈췄다.
틀림없이 그 무언가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안에 있다.
더는 견딜 수 없어서, 나는 금지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거기에는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있었다.
땅에 닿을 듯 길게 늘어진 팔,
내 키보다 더 길게 뻗은 다리,
만화에서 보던 로쿠로쿠비마냥 이상하게 구부러진 긴 목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선의도 악의도 없고, 말 그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안구가 뽑혀나간 그 눈만큼은 또렷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보지 마십시오"
크게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그 방재 방송의 목소리였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다리가 꼬이듯 휘청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죽기 살기로 다리를 계속 움직였다.
호흡은 이미 한계였고, 폐가 타는 듯이 아팠다.
저 기괴한 것이 나를 쫓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만이
내 두 다리를 앞으로 내딛게 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동안,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도 안 되는
비명과 신음이 그 방재 방송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간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그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모습,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역겨운 움직임으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집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그 이형에게서 도망쳤다는 안도감과
죽도록 달린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그대로 현관에 주저앉아 버렸다.
하지만 그 이형은 변함없이 현관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신음 소리를 계속 흘려보내고 있었다.
현관에서 벌벌 떨며 앉아 있는 동안,
그 방재 방송은 점점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난 그대로 기절하듯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다시는 한밤중에 산책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밤에 잠들어 있을 때면,
나에게만 들리는 그 방재 방송이
논길 쪽에서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