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에는 세 명의 여성이 찍혀 있습니다. 그녀들은 저의 고등학교 친구였고, 저도 포함한 네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연락을 취하고, 식사하러 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친하게 지냈습니다.
진학 때문에 전 혼자 간사이로 떠난 반면 세명은 현지(도호쿠의 모현입니다)에 머물렀기에, 약간의 외로움은 느꼈지만, 메일이나 전화로의 근황보고는 가끔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여행지에서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2012년에 완성된 모 랜드마크 -- 숨길 필요도 없네요. 스카이 트리를 배경으로 햇볕에 탄 미소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세 사람은, 실로 즐거운 듯하고 음울함의 조각도 없습니다.
사진의 목적은 원래 진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제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이 사진 은 정말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만 요즘은 사진 가공 기술이 일반화되면서 사진이 갖는 본래의 의미는 조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곡하거나 지우거나 덧붙여서 왜곡된 사진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속이는 것으로 그 역할을 바뀌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사진의 진실성이라는 인간의 인지를 위태롭게 하는 물건으로 심령사진도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을 보여줘 우리를 두렵게 하는 심령사진. 왜 심령사진은 무서울까요?
첫 번째 이유로 거기에 찍힌 '영'이 무서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원망 어린 표정, 생기 없는 피부색 등 '영혼'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압니다. 이쪽을 즐겁게 하는 미소나 포즈를 취한 심령 사진을, 저는 모릅니다.
두 번째 이유로 본래 거기에 있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두려움을 들 수 있습니다. 허공에 나타나는 신체의 일부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본래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심령 사진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있을 리 없는 것이 있다」에 비하면 두렵지 않습니다만 이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 든 두 가지는 심령 사진 그 자체에 공포를 발견하기 위한 결과론일지 모릅니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사진은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가 그걸 사실이 아닌 무언갈 봐버리면, 사진의 진실성은 희미해져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점이 세 개면 그것을 사람의 얼굴로 인식할 정도로 인간의 인지와는 모호하고 허술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진이 피사체의 진실을 베꼈다고 해도, 사람의 인지가 그것을 덮어쓰면 존재하지 않는 영이 거기에 나타난다. 두렵지 않은 것이 두려워지고 만다. 뻔한 표현을 한다면 영혼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에는 세 명의 여성이 찍혀 있습니다. 그녀들은 제 고등학교 친구들로, 스카이 트리를 배경으로 웃는 얼굴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이 무섭습니다.
어제 스마트폰 포토폴더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사진, 내가 찍은 기억이 없는 사진, 파일 날짜가 2024년 5월로 되어 있는 사진, 이 사진은 뭐죠??
왜냐하면 그녀들은 13년 전에 죽었으니깐요. 나만, 그때 나만 칸사이에 있었고, 내년에는 모두 함께 시간을 내서 도쿄에 모여서 놀러 가자고,
이 사진은 누가 찍은거야?
왜 지금, 지금 와서 그녀들은 왜 이렇게 웃고 있는 거지?
왜 내 스마트폰에 있어?
그때 스카이트리도 없었을텐데?
이 사진은 심령 사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