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해가 질 참이었다.
여름의 긴 낮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 붉은 빛에 나무들은 그림자놀이처럼 검게 드리워지고, 숲 너머로는 밤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매미의 합창을 실어 나른다.
곧 밤이 된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눈앞에는 그녀가 누워 있었다.
그녀의 왼쪽 가슴에는 칼자루가 박혀 있었다.
생명력 넘치는 여름풀들이 액자처럼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그녀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정물화가 되어 있었다.
발치에서 메뚜기가 퍽하고 스프링이 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뛰어올라 내 시야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더니, 그대로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녀의 죽음을 감상하고 있었다.
── 모질.
갑자기, 그녀의 살짝 열린 입 사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모질.
모질.
기어 나오고 있다.
아아── 벌레다.
※
※
「만약 신이나 부처가 있다면, 사실 벌레 같은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날, 데이트로 찾은 기타가마쿠라의 어느 절에서, 불상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내심 설레면서도, 겉으론 일부러 시큰둥하게 “왜?” 하고 물었다.
「신은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하잖아? 사람처럼 생겼다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황금벌레나 보석벌레가 훨씬 자연스럽지 않아?」
“아마 홍백가요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반짝이는 옷을 입고 있을지도 몰라.”
내 농담에 개의치 않고, 그녀는 또 말을 이어갔다.
「신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많은 손을 갖고 있다며? 사람처럼 생겨선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거미나 지네 같은 모습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손이 많은 게 아니라 너무 빨리 움직여서 잔상이 생기는 거야. 그러니까 여러 개처럼 보이는 거지.”
「신은 세상의 모든 걸 꿰뚫어보는 눈을 갖고 있다며? 사람이면 이상하지 않아.
파리나 잠자리처럼 겹눈을 가진 쪽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감시 카메라 70억 대 분할 화면으로 보고 있는 거야. 아주 작아서 벌레돋보기 없으면 못 보겠지만.”
「신은 하늘을 날 수 있다며? 사람이면 그건 말이 안 돼.
나비나 벌처럼 날개가 있어야 자연스럽지?」
“아마 배에 헬륨가스를 잔뜩 넣어둔 거야. 그럼 날 수는 있어. 대신 목소리는 이상해지고 방귀도 멈추지 않겠지만.”
「궤변이네」
그녀가 웃었다.
「너야말로」
나도 웃었다.
※
그렇게 곤충학을 전공하게 된 그녀는 ‘작은 신들’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녀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변태하는 벌레의 이야기.
‘나비 애벌레는 번데기 속에서 한번 몸을 스프처럼 녹여서 완전히 분해한 뒤, 다시 아름다운 성충으로 재구성되는 거야.
그러면 몸뿐 아니라 뇌도, 기억도 다 녹아 없어지겠지?
예전 일은 아무것도 기억 못 하겠지.
……좀 슬프지 않아?’
날 수 없어도 나는 벌레의 이야기.
‘호박벌은 몸집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서 사실 물리적으로는 날 수 없는 게 정상인데, ‘나는 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어서 난대.
멋지지 않아?’
의태하는 벌레의 이야기.
‘하얀 꽃잎처럼 생긴 꽃사마귀는 진짜 흰 꽃을 보면, ‘너는 왜 움직이지 못해?’ 하고 안타까워할까?
어떻게 생각해?’
나는 벌레 이야기를 하는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잘 가……’
그녀가 작게 웃으며 스스로 쥔 칼을 자신의 가슴에 꽂아 넣던 그 순간조차도.
※
※
그것은 얼핏 보면 「혀」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홍색민달팽이 ― 그녀가 사랑하던 벌레 중 하나라는 것을.
이어 그녀의 입에서 줄줄이 무언가가 기어나왔다.
사람의 치아를 흉내 내는 벌레, 날개개미. 20~30마리 정도가 무리를 이루어 움직인다.
근연종인 은배개미나 충배개미의 모습도 그 안에 보였다.
위아래 입술이 따로따로 꿈틀거렸다.
윗입술호랑나비와 아랫입술호랑나비의 애벌레다.
이들은 성충이 되면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뾰족하고 귀여운 작은 코.
꽃줄사마귀.
밤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
오른쪽 한 점 무당벌레와 왼쪽 한 점 무당벌레.
단정한 눈썹.
오른눈썹벌레와 왼눈썹벌레.
부드러운 귀.
"오른귀모양벌레, 왼쪽다리모양벌레에 은색피어스벌레."
윤기 나는 긴 검은 머리카락으로 보였던 까마귀깃털벌레가 머리에서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이루고 있던 얼굴가죽벌레가 미끈하게 떠나가자,
얼굴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두개골 장수풍뎅이의 안쪽에 숨어 있던 지휘관, 회색뇌벌레가 촉촉하고 부드러운 몸을 풀숲에 눕히자,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던 벌레들도 조용히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어떤 것은 날아가고, 어떤 것은 걸어가고, 또 어떤 것은 흙 속으로 파고들었다.
흘러나오던 피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옷만이, 그녀의 허물처럼 그 자리에 남았다.
별빛 아래, 나는 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벌레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그녀로 의태하고 있었을까?
아주 최근일까.
조금 전부터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만난 그 순간부터였을까.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그녀를 사랑했던 걸까.
내 마음은 과연 누구에게── 아니, 무엇에게 향해 있었던 걸까.
풀숲 곳곳에서 그녀의 기척이 느껴졌다.
문득 깨닫자, 나는 작은 신들의 낙원 한가운데 서 있었다.
〈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