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그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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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는 여자친구가 “살 좀 올랐네?”라며 씨익 웃으며 내 아랫배를 툭툭 쳤던 것이다.
그날도 퇴근하자마자 바로 츄리닝 상하의를 입고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택가 사이 골목길을 말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니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코너를 돌자, 앞에 익숙한 공원 입구가 보였다.
‘○○공원’이라 새겨진 석문 사이를 경쾌하게 지나쳤다.
역할을 다한 모래놀이터와 그네를 스쳐 지나,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 후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산책로를 가로등 불빛을 의지해 달리고 있을 즈음,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아마 이 앞에 공중화장실이 있었지
하며 앞쪽을 바라보니, 가로등에 비친 회색 작은 건물이 외롭게 서 있었다.
속도를 조금 더 올려 입구까지 도달하자, 오른쪽에 있는 남자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코끝을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와 함께,
우울한 분위기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더럽게 타일이 깔린 바닥엔 누군가 벗어놓은 듯한 옷가지나 속옷이 흩어져 있고,
위쪽에선 파닥파닥 날개 소리가 들리기에 올려다보니,
눈알 무늬가 박힌 나방 여러 마리가 형광등 주위를 날고 있었다.
‘이거 좀 지저분한 화장실이네’
하며 다시 주위를 살피니,
왼편엔 소변기 세 개, 오른편엔 칸막이 화장실 세 개가 있었다.
앞쪽 두 칸은 열려 있었지만, 맨 안쪽은 닫혀 있었다.
─ 누가 안에 있나?
싶었지만, 가장 앞쪽 칸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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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볼일을 보고, 변기에 앉아 한숨 돌리려 앞을 보니 낙서가 하나 있었다.
긴 머리에 눈이 튀어나온 벌거벗은 남자 그림.
등에는 눈알 무늬의 날개가 있었다.
그 옆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모스맨’이라 적혀 있었다.
─ 모스맨… 그게 뭐야?
그 의미 불명의 낙서에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상태 그대로 숨을 죽였다.
「…………」
처음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더욱 귀를 기울이자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기………이……」
남자의 목소리다.
게다가 맨 안쪽 칸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 뭘 말하는 거지?
신경이 쓰인 나는 일어서서 오른쪽 칸막이 벽에 귀를 갖다 댔다.
그러자 목소리에 점차 의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아…기분……좋아……기…분…좋아……」
─ 뭐야, 기분 좋다고?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러자,
쿵…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맨 안쪽 문이 열린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을 죽였다.
왜인지 심장이 북처럼 두근거렸다.
─ 나오려는 건가?
그대로 상황을 지켜봤다.
수 분이 지났지만,
안쪽 칸에선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마치 주문처럼 반복되는 말뿐이었다.
「아아……기분…좋아…기분…좋아…기분좋아……기……」
무서웠지만, 언제까지고 있을 수는 없어 칸을 나가기로 했다.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자물쇠를 열고, 천천히 문을 밀었다.
오른쪽을 보니, 역시 맨 끝 칸은 열려 있었다.
그 칸의 천장 부근에는 나방 네댓 마리가 날고 있었다.
그대로 화장실을 벗어나려 했지만,
여기서 이상한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 맨 끝의 그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목 뒤에서 심장이 고동치는 걸 느끼며,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고 화장실 깊숙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파닥파닥거리는 나방 날갯짓 소리가 점점 커졌다.
조금씩 다가오는 끝 칸.
그와 함께 좁은 화장실 칸의 내부가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엣!?”
한순간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칸의 한가운데엔,
수많은 나방에 뒤덮인 남자가 서 있었다.
나방에 파묻힌 그 얼굴 사이로 드러난 두 눈동자는 크게 부릅떠져 있었고,
황홀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수한 나방들은 먹이에 몰린 치어처럼
그 하얗고 가느다란 몸에 쉴 새 없이 날아들고,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알아차렸는지
두 눈을 이쪽으로 향한 채 기쁜 듯이 미소 짓더니,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으악!!”
나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뒤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그렇게 화장실을 뛰쳐나와, 한걸음에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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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조깅을 그만두었다.
코스를 바꿔서 계속할까도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의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보다, 최근 들어 내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천장에 커다란 눈알 무늬의 나방이 붙어 있었고,
그 이후로는 밤에 밖을 걸으면 머리 위로 몇 마리의 나방이 날아다녔다.
쫓아내도 자꾸만 몸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얼마 전엔, 밖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스프 안에 나방이 날아들어 빠졌다.
여자친구에게 상담했지만
“그냥 우연 아니야?”라며 가볍게 넘겨버렸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마 부근이 간지럽고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보니,
어느새 얼굴에 수많은 나방이 붙어 있었고,
전 같았으면 깜짝 놀라 뛰어오르며 손으로 쫓아냈겠지만,
오늘 아침은……
뭔가 포근하게 감싸인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 정상이 아닌 변화가 시작된 게 느껴졌다.
【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