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는 중학교 3학년이고 미키는 중학교 1학년드고 아주 사이가 좋은 두 살 차이 자매다.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데다 착하고 귀여운 리사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았다.
그런 리사가 석 달 전부터 등교거부를 했다.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안쪽에서 장롱으로 문을 막고 있어 다른 가족들도 속수무책이다.
"그럼 미키야, 언니한테 갖다 줘."
"응, 알았어"
부엌에서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순순히 대답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날랐지만 최근에는 미키가 식사 담당이 되었다.
"엄마, 이 된장국 싱겁지 않니?"
"염분을 적게 했어, 혈압과 비만을 신경 쓰여서."
트레이를 들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계단을 올라간다.
"언니 밥이야"
역시 반응은 없다. 미키는 낙심해서 문 앞 바닥에 트레이를 놓는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방 안에선 생활의 기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리사는 복도에서 완전히 사람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트레이를 끌어당긴다. 이미 오랫동안 언니와 접촉하지 않은 사실에 외로움을 느껴 미키가 약한 소릴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어? 동아리에서 힘든 일 있었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나한테만 알려줘."
진심으로 걱정하여 호소하다. 방안에는 침묵이 서려 있었다. 풀이 죽어 부엌으로 돌아가니 설거지하던 어머니가 뒤돌아보며 위로 해주셨다.
"고생 많구나. 어떤 상태니?"
"잘 모르겠어, 문도 열어주지 않고… 자는 걸지 몰라."
"곧 수험인데…"
"자자, 리사는 힘든 나잇대야. 잠시 가만히 두자꾸나."
뺨에 손을 얹고 탄식하는 어머니를 신문을 보다 접은 아버지가 한가롭게 달래준다. 엄마는 언니의 기행 원인을 사춘기 한마디로 정리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등생에서 타락한 큰 딸을 방임하는 부모가 미키에겐 가슴 아팠다.
며칠 후 누나 방으로 저녁을 옮긴다. 여전히 노크에 반응이 없다.
"잠깐만"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려던차 방문손잡이가 돌아가 수 센티미터의 틈이 벌어진다. 석 달 만에 보는 언니 얼굴이다.
목욕을 하지 않은 탓에 잠옷은 땀냄새가 나고 지방으로 번들거리는 머리는 부스스하고 거식증으로 치부될 정도로 체중도 빠진다.
"내가 방에서 나가지 못하는 이유, 너에게만 알려줄게. 위험하니까."
"뭐야?"
"우리 집에 귀신이 나와"
"어?"
"밤만 되면 방에 와서 어둠 속에서 가만히 서 있어. 완전 짜증나."
정서 불안정하게 빠른 말로 중얼거리더니 멍한 미키에게서 리사가 트레이를 낚아챈다. 된장국을 냄새를 맡더니 창문을 열고 땅에 버린다.
"뭐 해, 모처럼 엄마가."
발끈하고 문틈에 한쪽 다리를 밀어넣어 들어간 방안엔 이상한 광경이 보인다. 침대 주변에 널브러진 과자 봉지보다 미키를 동요시킨 것은 방 안 곳곳에 붙은 수제 부적들이다.
공책을 뜯어 만든 거기에는 영문 모를 글자가 빽빽이 적혀 있다. 범자와도 비슷했지만 리사의 오리지널인 것 같다. 책상 위에는 화학 교과서와 제작 도중의 부적이 방치돼 있다.
창 밖에다 대고 그릇을 잘 흔들어 물기를 털어낸 리사가 지극히 진지하게 중얼거린다.
"이 된장국도 저주받았어"
"엄마가 만든 거야"
"저주받은 거야"
답답할 정도로 조밀하게 붙은 부적에 기가죽어 문을 닫으니 쉰 목소리가 들려온다.
"밤에는 나가면 안 돼, 귀신이 있으니까"
언니, 머리가 이상해...자랑스러운 언니의 변모에 충격을 받아 방으로 도망갔다.
리사의 주장은 마치 사리에 맞지 않는 망상의 산물이다. 13년째 살고 있는 미키조차 모르는 귀신이 우리 집에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그렇지만 전부 부정해버리기엔 마음이 불편해서 식사를 가져갈 때마다 이야기를 듣는다.
"언니가 말하는 그거 어떤 모습이야"
"놋페라보야"
"알아, 도감에서 봤어... 퉁퉁부은 고기 덩어리 같았어."
"응, 새하얗고 퉁퉁 불었어. 몇 시간이라도 멍하니 서 있다가 틈만 나면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해."
"부적은 언니가?"
"홈페이지 보면서 만들었어. 결계안은 안전해. 미키에게도 한 장 줄게."
틈틈이 들여다볼 때마다 늘어나는 부적과 그에 비례해 가속하는 광기에 전율했다.
우리 집에 귀신 같은 건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그러면 언니도 안심하고 나올 수 있고 다시 원래의 좋은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어.
어느 날 밤 미키는 리사가 나눠준 부적을 움켜쥐고 문을 열었다. 귀신이 실재하는지 아닌지 바로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기 위해서다.
불을 끈 복도를 걸어가자 언니의 방문을 하얀 덩어리가 막고 있었다.
벌거벗은 아버지였다.
칠칠치 못하게 늘어진 몸은 마치 지방 덩어리, 도감에 실려 있던 놋페라보와 흡사하다.
침을 삼키고 지켜보는 미키를 눈치채지도 못하고 방문손잡이를 돌려 달가닥, 달가닥거린다. 딸깍딸깍, 딸깍딸깍, 딸그락 달그락.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고 있을 언니가 떠올라 앞으로 구부정한 아버지를 더 쳐다보지 못하고 부리나케 발길을 돌렸다.
언니 말대로 우리 집에는 귀신이 있었다. 밤에 배회하는 지방 덩어리, 딸의 방문손잡이를 말없이 돌리는 아버지.
그것이 방 앞에서 매복하고 있는데 제정신일 수 있겠어?
엄마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며 계속 언니의 식사 담당을 하고 있을 때 미키는 어떤 것을 깨닫고 말았다.
"언니 된장국만 따로?'
"영양 좀 챙겨주려고"
웃으면서 다른 냄비의 내용물을 챙기는 엄마. 아버지는 테이블에서 석간을 읽고 있다. 트레이를 들고 계단을 오르던 중 냄새에서 희미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된장국을 꼭 버리는 언니, 책상 위에 열린 화학 교과서. 혹시나 해서 다시 본 부적에는 범자를 닮은 As 두 글자가 박혀 있었다.
부적 같은 게 아니다. 경고를 겸한 SOS다.
다음날 미키는 언니의 방과 이어진 뒷마당으로 향했다. 언니가 매번 된장국을 버린 곳의 풀은 왠지 시들어 있었다.
비소의 원소 기호는 As, 치사량은 1.5mg 정도. 된장국 성분을 알아봐 달라고 경찰에 부탁한들 받아줄 리 만무하다.
우리 집에는 귀신이 있다.
딸의 방문손잡이를 말없이 돌리는 아버지, 부드러운 미소로 된장국에 저주를 내리는 어머니, 오리지널 부적으로 캄캄한 방을 가득 채우는 언니.
화룡정점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나. 모든 것이 거짓이다.
며칠 후 미키는 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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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딸을 탐하는 아버지와 그런 딸을 질투해서 죽이려는 어머니... 저제상 집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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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주시는 글들 너무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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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벽에 읽으면 공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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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부족한 번역인데 재밌게 봐주시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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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씩 베스트 올라오길래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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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딸을 탐하는 아버지와 그런 딸을 질투해서 죽이려는 어머니... 저제상 집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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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벽에 읽으면 공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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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주시는 글들 너무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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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부족한 번역인데 재밌게 봐주시다니 감사합니다 | 23.09.16 19: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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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씩 베스트 올라오길래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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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차!!! | 23.09.19 02: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