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를 이렇게 까지 하게 만든건 너야.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구.
나는 몇번이고 나에게 되뇌었다.
나에겐 잘못이 없다.
먼저 괴롭힌 건 너니까.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한 것뿐이다.
그래. 이건 정당방위야. 정당방위.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아직까지 피가 묻어있는 것 같은 느낌에
물수건으로 몇번이고 닦아냈지만
아무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내 계획은 완벽했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하리라.
지금 자동차 트렁크에 누워있는 그 여자의 가족도
내가 한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처럼 내 뒤를 쫓아다니느라 며칠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겠지.
그 여자에게 내 머리카락이라던가 내가 쓰던 향수의 내음이 잔뜩이겠지만
그건 그 여자의 평소 행동을 봤을 때에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여자의 집착은 정신병원에서도 유명했으니까.
매일같이 내 집 문앞에 남겼던 빨간 쪽지도 유명하다.
심지어 집주인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정도로 그 여자는
내 주변에서 유명했다.
나를 이렇게까지 만든건 너야.
너 때문에 내 인생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구.
결혼을 약속한 그녀가 빨간 쪽지를 발견했을때의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왜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묻는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이별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이정도까지 집착하는 그 여자가 있는 이상.
나는 결혼도 하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혀버린다.
어째서 강경하게 대처하지 않았냐고?
나는 변호사도 구했고
경찰도 불러봤다.
하지만 나에게 칼부림이라도 하지않는 이상.
그 얄궂은 쪽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심지어 자작이 아니냐는 경찰의 비아냥을 들었을때에는 머리에 피가 꺼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흔한 관심종자가 되어버린 기분.
난 그들의 관심따윈 필요없었다.
정말 난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경찰도, 변호사도, 직장 동료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그녀와의 이별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 여자가 무서워 결혼할 수 없다는 그녀의 마지막 말이 지워지지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안위도 문제지만
앞으로도 찾아올 그 여자라면 나와 그녀 사이에 태어날 아이에게도 너무나 커다란 문제라고
그래서 내 아이를 지우겠다고 선언했다.
난 정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직장도, 친구도, 연인도.... 심지어 내 아이마저도...
그래서 난 그 여자를 처벌한 것이다.
이건 정당방위야 정당방위.
이건 더이상 어쩔수 없는 거였어.
나는 나에게 되뇌었지만
내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그 여자가 쫓아다닌 이후로 난 편집증마저 생겼다.
언제나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집 주인의 딸에게 큰 소리를 질러 겁을 줬다는 이유로
경찰서에도 다녀와야했다.
이 여자만 사라지면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오... 신이시여. 나에게 힘을 주소서.
한번 시작된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완벽한 계획을 짜기 위해
직장에는 일주일간 휴가를 얻었다.
인터넷을 통해 멀리 떨어진 도시의 콘서트를 예매하고
그 여자의 생활을 답습했다.
언제나처럼 나의 일정을 체크하고 내 직장 주위에서 맴도는 그 여자.
말을 건네도 언제나처럼 대답을 하지 않고 지나쳤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그 여자가 이야기하던 메세지.-내가 그 여자에게 보낸다던 메세지-를 활용했다.
편의점에서 계산하는 점원에게 '같이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근처 어디서 잠시 만날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물론 철저하게 무시당했지만
내 뒤에서 커피를 사는척 서있던 그 여자에게는 충분하게 전달되었다.
나는 조용히 거리를 걸었고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확실하게 낚아챘다.
예상밖의 일이라곤 피가 좀 더 뿜어져 나왔던 것뿐.
하지만 그정도에 대한 준비는 해두었으니 문제없었다
아무도. 나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 여자만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녔을 뿐이다.
이제. 이 여자만 어딘가에 묻어버리면 그만이다.
경찰서에 할 이야기도 정해두었다.
먼 곳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집주인도 내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
.
어느덧. 나는 내가 봐 두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이 장소라면 적어도 반년정도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전에 발견되더라도 손목에 그어진 상처는
그 여자가 자살했다는 증거로 충분했다.
항상 빨간 쪽지에 쓰여진 글씨처럼
워드프로세서로 유언장도 마련해두었다.
이걸로. 나에게 돌아올 혐의도 없다.
이제. 이 여자와의 질긴 인연도 끝이겠지.
돌아오는 길에 내 발자국을 지우며
그 여자의 운동화를 신고 거꾸로 걸어나왔다.
어차피 그 여자의 이름으로 빌린 차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도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건 없다.
누군가 따라온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는 내가 차를 세우자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문제는 없다.
이제 돌아가야지.....
.
.
.
.
돌아오는 길은 무척 평온했다.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행복했다.
심지어 평소에는 듣지 않던 락음악까지 들었다.
흥분한 탓에 규정속도를 어길뻔했지만
다행히 카메라에는 걸리지 않았다.
정해놓은 장소에 차를 내려놓고
최대한 멀리 돌아서 집에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술에 취한듯 비틀거리며 집에 올라갔다.
누가봐도 영락없이 취한 꼴이기에
집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딸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지만 집주인의 표정에는 나를 사회낙오자로 보는게 확실했다.
그래. 이런 시선도 오늘까지야.
내일은 다시 새로운 날이 시작되겠지....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준비해두었던 소주 2병과 수면제를 털어넣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
.
.
.
새로운 아침.
오랫만에 푹 잠들었던 것 같다.
평소처럼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고....
새로운 사람이 된 기분을 즐겼다.
이젠. 나를 괴롭힐 것은 없으니까.
그녀와도 다시 이야기해야지....
특별한 날에만 뿌리던 향수도 뿌렸다.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던 옷차림도
쓰지않던 왁스까지 발라가며 신경썼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나는 새로 태어난 거야.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나서는 순간.
나는 집 문에 꽂혀있는 빨간 쪽지를 발견했다.
.
.
.
-어제는 귀가가 늦으셨네요.
늦은 밤에 어디까지 다녀오셨나요.
당신이 만났던 여자와 무슨일이 있었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항상 당신 곁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줘요.
어제 당신이 갔다온 일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을께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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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소름끼치는데요. 빨간 쪽지의 여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ㄷㄷ 이번편도 재밋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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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니 정말 '나'를 지칭하는 표현이 매우 많네요. 나중에 다시 한번 수정해야겠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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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지도 표현하고싶었지만 아무래도 표현력 부족인 것 같습니다..... 쓰고싶었던 내용을 전부 담지 못한 느낌이에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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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소름끼치는데요. 빨간 쪽지의 여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ㄷㄷ 이번편도 재밋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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