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늦은 가을의 밤, 한 남자가 우산도 없이 엉망인 모습으로 밤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눈 앞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맺혔기에, 아니면 다만 혈액을 더럽히는 알코올의 기세가 너무나도 강했기에
그의 낡은 정장은 얼룩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아까 술집에서 시비가 붙었던 사내의 발길질로 인해 생긴 얼룩임에 틀림 없었다.
'인생 패배자 새/끼.'
그 사내가 했던 말이 마찬가지로 그의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다.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씨/발……."
택도 없는 자기 방어였지만 욕설이라도 내뱉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거라고 느껴졌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운이 좋았다. 천성적으로 덜렁대던 그는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 없었고, 간절히 원했던 일들은 비슷하게나마 일어나줬다. 그런 작은 사건 하나하나가 그를 만족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행복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비극은 연속된 행운의 마침표로부터 시작되었다.
10년 전, 그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그는 눈으로 덮힌 밤 도로를 걷던 중에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물에 흠뻑 젖은 그 남자는 다짜고짜 괴성을 지르며 그를 죽일 듯 달려들었고 당시 호전적이지 않았던 그는 괴한의 공격에 공포를 느끼며 도망쳤다. 괴한이 어째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 모습을 본 행인 몇 명이 괴한을 저지하기 위해 덤벼들었고 그들이 벌이고 있는 난투극을 주저앉아서 지켜보며 그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들의 난투극은 도로 한가운데서 일어났고 그의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로를 달리던 대형 트럭은 난투가 벌어지는 곳을 가차없이 덮쳤고 살아남은 것은 그 뿐이었다. 자신을 공격한 괴한을 저지하다가 목숨을 잃은 행인들이 그의 오랜 친구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희망의 마침표는 그 뒤를 책임지지 않았다. 그 후의 그의 인생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친구는 생기지 않았고 부모님에게는 계속해서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밤마다 그때의 악몽에 빠져들었고 괴한의 모습은 그의 기억과 망상 안에서 점차 뒤틀린 괴물이 되어 그를 구속했다.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실패만을 거듭했고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
그는 공원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것이 눈물일까 빗물일까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엇이든 비참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가슴 속 답답한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왔다. 젖은 풀 냄새, 축축하고 차가운 촉감, 흐린 시야,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이 끔찍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는 자신의 눈 앞에 한 소녀가 서있는 것을 깨달았다. 10대 후반정도 보이는 외모에 너무나도 하얀 피부와 어깨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스커트에 후드 티와 야상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의 절망적인 상황과는 너무나 비교된 모습이기에 그는 의아함보다 먼저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무슨 볼일 있냐?"
소녀는 그가 던진 날카로운 말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는 말 없이 자신이 쓰고 있는 우산으로 그를 적시고 있는 빗물을 막아주었다. 순식간에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그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에 대한 의문점은 분노가 사그라든 후에야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니."
술은 깬지 오래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 소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이질감은 어떠한 합리화로도 버릴 수가 없었고 내심 공포감마저 들었다. 그녀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야상의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내밀었다. 고급스럽게 코팅 된 명함이었다. 그는 가만히 그것을 받아보았다. 명함에는 '하이랜더가 바라보는 목표를 위해 - 절망을 먹는 아이'라고 쓰여 있었다.
"절망을…… 먹는 아이?"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도 가지 않는데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고 평소대로라면 사이비 종교의 전도라고 생각할만한 것이었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이질감은 감히 그녀에 대한 의심을 꺼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절망을 먹는 아이라니……. 하, 네가 남의 절망을 먹어주기라도 한단 말이야?"
그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왠지 그녀의 믿기 힘든 말에 희망을 걸고 싶었다. 어두운 밤이었기에,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눈 앞이 핑핑 도는 취기 뿐이었기에 더욱 더 그랬다.
"그럼 나의 절망도 먹어줄 수 있어?"
그는 자세를 바꾸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창한 것도 필요없어. 10년 전의 나를, 적어도 내 친구들이 나 대신 죽는 일만 없었으면."
가슴에서 무언가 북받쳐 올랐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 동시에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순간이었다.
"그래. 차라리 그때 내가 죽었다면 더 좋았겠지."
그는 한탄하듯 말했다. 속이 조금은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는 것으로 그의 상처는 간단하게 치유됐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그를 조금 쳐다보더니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그는 머릿 속이 혼미해지며 눈 앞이 혼란스러워짐을 느꼈다.
그의 눈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점멸했다. 욕지기가 올라왔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주변의 풍경은 더 이상 그가 있었던 공원이 아닌 눈이 내리고 있는 길 한가운데로 변해 있었다. 그의 앞에는 어떤 소년이 있었다.
그의 앞에 있던 소년는 10년 전의 그였다. 공포에 질렸던 어린 시절이었다.
소녀는 우산을 들고 남자가 있었던 의자를 바라보았다. 미소지으며, 입맛을 다시며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혹시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으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칙어 때문에 어찌할 줄 몰라 하다가 글 사이에 /를 넣었어요 당황스럽네여;;
(IP보기클릭).***.***
만화갤러리로 들어가시면 왼쪽 카테고리에 연재소설란 있습니다. 장르가 판타지 같은데, 그쪽에 어울리는 작품이군요.
(IP보기클릭).***.***
만화갤러리로 들어가시면 왼쪽 카테고리에 연재소설란 있습니다. 장르가 판타지 같은데, 그쪽에 어울리는 작품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