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조선영화 혹은 "반도영화"와 전시체제의 조선영화(1940년대~해방전)
‘반도영화‘란? 일본에서 개봉된 영화로서 조선의 향토색이 짙은 영화를 지칭
<나그네>(1937)
감독: 이규한
출연: 문예봉, 왕평
<한강>(1938) 감독: 방한준(1906~1950)
<어화>(1939) 감독: 안철영(1909~ ?)
반도영화의 특징은
1: 향토색을 화두로 하여 조선영화의 예술적 지향과 싱업적 판로의 개척
2: 극영화와 기록영화 사이에서 사실주의적인 양식 “반실사작품“
3: 조선영화의 '리리시즘 (lyricism)'의 재론
2: 극영화와 기록영화 사이에서 사실주의적인 양식 “반실사작품“
3: 조선영화의 '리리시즘 (lyricism)'의 재론
-"영화를 하나의 예술적 대상으로 자각하는", 즉 감정과 대상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시각을 제시했어
승화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시각을 제시했어
2세대 조선영화인으로의 세대교체
<1세대>:윤백남, 이경손, 나운규
일본 영화촬영소 유학파
<2세대>:이규환, 방한준, 박기채, 윤봉춘등
발성영화로의 스타일 변화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은 바로 이규환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상술한 1932<임자 없는 나룻배>의 감독이면서
또한 상술한 반도영화 <나그네>의 감독
(조선 최고 토키영화이면서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
1938 <군용열차> 기획, 원작, 각색을 맡았고
1974년까지 총 23편의 영화를 제작
전시체제의 조선영화
- 1940년대~해방전까지
- 1940년대~해방전까지
1920〜30년대 영화통제정책과 관람환경은 다음과 같다.
1) 영화의 도입과 상영장의 통제
-1:1917 조선총독부 도서과에서 활동사진 흥행물 단속: 조선인 집단행동차단
2) 1920년대 검열체계의 도입과 대중적 영향력 확대
-성격-
식민 통치에 방해가 되는 영화 제작과 상영 통제
식민 통치를 위한 선전영화
식민 통치를 위한 선전영화
-1: 1920 조선총독부 활동사진반 설치
-2: 1922년 이후 흥행장 및 흥행 취체규칙의 시행
-3: 1926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의 시행: 대본과 필름 검열
3) 1930년대 영화배급 통제와 관람환경 변화
-1: 1934 활동영화취체규칙시행: 검열이후 상황과 흥행장 통제
전시체제 전환과 조선영화령 시행
1) 전제체제 전환과 언론통제
-1: ‘총동원 체제’는 전쟁 수행을 궁극적 목표: 모든 분야 유기적 통합과 조정
-2: 내선일체에 입각한 조선 언론 기관 종합적 통제
2) 1940 조선영화령 시행과 신체제
-1: 영화 법적제도, 인적조직, 제작-배급-상영 체계에 통제 강화
-2: 영화를 계몽과 선전에 유익한 도구로 활용- 국책영화 제작
-3: 조선영화인 협회’(1939) 발족
-4: 영화신체제
-’조선영화주식회사’(1942) 발족: 민간 주도 영화사 병합 및 폐쇄(내가 말한 부관참시가 바로 이거야!)
- 민간 주도 영화사 병합 및 폐쇄- ‘문화영화’제작
친일/국책영화개념의 등장
1) 친일 영화
-1: 내용: 대동아공영권의 전쟁동원과 내선일체의 황국신민화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영화
-2: 시기: 중일전쟁 발발 이후인 1937년 이후로 제한
-3: 제작 문제: 중국 흔들림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대안으로 , 내선일체를 통한 황국신민화기도
-4: 친일과 국책 구분 : 친일영화는 대동아 공영권의 전쟁동원과 내선일체의 황국식민화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영화로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들2) 확장과 혼용된 용어
-1: 군국주의 어용영화 : 군국주의 영화란 한마디로 군사력에 의하여 국위를 나타내는 정부정책에
동조하고 이를 위해 계몽 설파하는 목적영화
-2: 국책영화 :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의 전시 동원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 시책의 영화 지칭
역사적 가치판단 배제
-3: 어용영화 : 영화예술의 독자성과 순수성을 져버리고 그 시대의 권력가나 기관에 아부하여 그의
정책에 공명하는 영화.
‘친일영화’는 스스로 일제 정책에 순응하여 협조하는 영화, ‘국책영화’는 권력기관이
추구하는 정책을 계몽하기 위해 기관이 직접 제작한 영화
-4: 합작 선전영화 : 일제의 정책선전을 식민지 주민에게 주입하기 위해 합작 형태로 식민지의 인력과
자본을 동원하여 제작된 영화
동조하고 이를 위해 계몽 설파하는 목적영화
-2: 국책영화 :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의 전시 동원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 시책의 영화 지칭
역사적 가치판단 배제
-3: 어용영화 : 영화예술의 독자성과 순수성을 져버리고 그 시대의 권력가나 기관에 아부하여 그의
정책에 공명하는 영화.
‘친일영화’는 스스로 일제 정책에 순응하여 협조하는 영화, ‘국책영화’는 권력기관이
추구하는 정책을 계몽하기 위해 기관이 직접 제작한 영화
-4: 합작 선전영화 : 일제의 정책선전을 식민지 주민에게 주입하기 위해 합작 형태로 식민지의 인력과
자본을 동원하여 제작된 영화
확장된 용어는 다음과 같다.
친일영화: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대동아 공영권의전쟁동원과 내선일체의
황국식민화의 이데올로기를 담아낸 영화
국책영화:
1: 식민지 치하와 유신체제기를 포함한 강압적 독재권력의 통치기에 국가정책과 정권의 홍보 목적으로 국가
기관의 지원에 의해 직접 제작되었거나 간접적인 지원을받고 유통된 영화
기관의 지원에 의해 직접 제작되었거나 간접적인 지원을받고 유통된 영화
2: 한국영화사에서 문화영화와 국가 직접 제작 영화이거나 국영화된 회사에서 제작한 영화
국책영화의 기원으로서 문화영화
1) 문화영화 : 쿨투르필름(Kulturfilm)
1930년대 일본에서 도입, 우파 영화, 교육, 계몽 영화, 전쟁 기록영화, 과학 영화, 민족 영화등
기록영화를 통칭, 이데올로기 전파와 국민 통합 목적
1930년대 일본에서 도입, 우파 영화, 교육, 계몽 영화, 전쟁 기록영화, 과학 영화, 민족 영화등
기록영화를 통칭, 이데올로기 전파와 국민 통합 목적
2) 위생영화 :
독일의 공중 위생 정책의 핵심인 건강관리와 위생을 합하여 위생으로 번역. 국가가 일반 국민 건강과
위생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
- <월하의 맹서>는 체신국에서 우편 저금 장려용 영화(1923)
독일의 공중 위생 정책의 핵심인 건강관리와 위생을 합하여 위생으로 번역. 국가가 일반 국민 건강과
위생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
- <월하의 맹서>는 체신국에서 우편 저금 장려용 영화(1923)
3) 뉴스 영화: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시 상황에 돌입한 뒤 영화의 선전-계몽 역할이 더
욱 강화됨에 따라 정책, 산업 양면에서 뉴스영화의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친일 국책영화의 이데올로기: 전체주의 천황제 파시즘
-1: 천황제 가족주의와 대동아 공영권
천황에 대한 충성/황국 전사의 우상화/일선동조론, 일본어 사용
-2: 지원병 제도와 징병제 홍보
조선인 지원병 촉구/강제 징용 수용
-3: 내선 결혼 장려와 총후 부인 이미지
총후부인이란 '남자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난 뒤 후방의 일을 내조로써 책임지는 부인'을 말한다.
일제의 권력의지와 지배 담론은 다음과 같아
국책 영화전략으로
1: 전시상황에 대한 내면화
2: 조선의 문화요소 차용을 통한 순치화
3: 제국 구성원의 가족화
4: 죽음의 미학화
4번같은 짓을 하니까 인명경시 풍조가 나온거고
국책영화의 명암은 뚜렷해
제작 위축과 표현 자유 제한
식민지 관객을 교화 대상으로, 영화는 프로파간다 수단으로의 전락
자생적 한국영화 산업 성장으로의 저해
동아시아 시장과 영화 기업화 시도-유일한 명?-
국가 주도형 영화는 이후 한국 독재시대의 국책영화로 이어짐
5개중 4개가 암담하네
당시의 친일 국책영화의 예시
<군용열차>(1938): 친일 국책 영화의 신호탄
감독: 서광제/원작: 이규환/ 제작: 성봉영화원, 도호영화주식회사
<망루의 결사대>(1943)
기획: 최인규
제작: 고려영화협회. 동보영화주식회사
감독: 이마이 다다시
제작: 고려영화협회. 동보영화주식회사
감독: 이마이 다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