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예상치 못했으면, 끝 또한 예기치 못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타키온.”
어느 날, 문득 트레이너가 연구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던 자신의 담당,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말한 건 그 징조였다.
“왜 그러는가, 모르모트군?”
“만약에 말이야, 내가 사라진다면 혼자서 살 수 있겠어?”
예상하지 못한 질문.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다소 정리가 안 되는 생활을 깨우쳐주려고 한 말인 줄 알고 이 당시에는 쾌활하게 넘겼다.
“당연히 살 수 있고말고! 모르모트군의 교정이 내게 큰 도움이 되어주지 않았나!”
“그래, 그렇구나.”
보통 때라면 ‘지금 개판부터 치우고 그런 말을 해라’라고 했을 터였지만, 모르모트, 아니 트레이너는 담담히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상하군, 왜 이런 걸 묻는 건가?”
“음, 그냥 네 답을 듣고 싶어서.”
“요즘 좀 마른 거 같은데, 밥은 제때 먹고 있는 건가? 내 밥만 챙겨주고 자기 끼니는 거르면 안 되네, 모르모트군.”
“어련히 알아서 먹는다, 먹어.”
어째서인지 웃는 표정으로 받아치는 그에게서 무언가 미심쩍음을 느꼈지만, 이때 자세히 물어야 했음을 아그네스 타키온은 몰랐다.
다음날, 그녀의 모르모트는 계약 해지 서류를 남긴 후 어딘가로 사라졌으니까.
-⏲-
처음 트레이너실에 들어갔을 때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계약 해지 서류와 ‘찾지 말아줘.’라고 쓰인 짧은 편지를 보자, 타키온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왜?
이유라도 말하고 사라져 주지, 왜 느닷없이 사라진단 말인가.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쾅!’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사이, 팀의 또 다른 우마무스메이자 그녀의 악우가 급히 들어왔다.
“타키온 씨, 트레이너님은요?”
“없어…. 이것만 남기고 없어졌다네….”
떨리는 손으로 자신과 그녀, 두 사람에게 남긴 서류를 건네주자 맨하탄 카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늦은 건가요. 뭔가 수상하다 싶었는데.”
“수상했다고?”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말에 되묻자, 긴 흑발의 우마무스메가 말했다.
“어제 트레이너님이 타키온 씨한테도 뭔갈 물어보지 않던가요? 가령, 홀로 설 수 있겠느냐 라던가.”
“분명히….”
모르모트가 그렇게 말하긴 했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 같은 ‘나 없으면 너 어떻게 사냐’ 같은 느낌의 말일 줄 알고 넘겼던 거지.
“제게도 어제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혼자서 설 수 있겠어?’라고요.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그렇게 기억을 돌이키던 그녀의 귀에 카페의 말이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당장 타즈나 씨를 찾아가 보세, 그녀라면 알 수도 있으니.”
그리고 빠르게 행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죄송합니다, 그분이 신상정보에 대해선 그 어떤 것도 함구하라고 하셔서요.”
“아.”
그런데 이미 조치는 끝난 후였다.
-⏲-
트레이너 기숙사에서 새벽에 챙길 짐만 챙기고 나온 후 열차에 몸을 실은 트레이너는 조용히 창밖을 내다봤다.
지금쯤이면 그를 찾으려고 그 둘은 난리가 난 상태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모든 인연을 끊으려면, 이 수 외에는 없었다.
‘부스럭.’
그는 말없이 가방을 열어 한가득 들어있는 약 봉투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하나를 뜯어 적게 잡아도 7알은 되어 보이는 약들을 입안에 털어 넣은 후 옆에 둔 물을 들이켰다.
그래, 이게 맞다.
끝은 조용히, 예상하지 못하게 찾아오게 해야 한다.
그는 무언가가 도려내는 통증이 느껴지는 배를 누른 후 희미하게 신음했다.
-⏲-
그날 저녁.
“기숙사도 이미 정리되어 있군, 이걸로 확실해졌네, 모르모트군은 이미 계획을 해놨던 거야.”
본래 트레이너가 쓰던 기숙사에 쳐들어가서 단서를 얻으려고 해본 아그네스 타키온은 더욱 황망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깔끔하다.
정말로 기본 그대로의 상태만 남았다.
“….”
한편, 맨하탄 카페는 구석구석 조심스레 살폈다.
혹여나 무언가 놓친 것이 있을까 싶어서 ‘친구’의 도움까지 받은 그녀는 이내 문득 무언가를 바닥 틈 사이에서 발견했다.
“알약…? 어째서 이런 게?”
“이리 줘보게.”
도통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감을 못 잡는 사이, 타키온이 그걸 낚아채서 살펴봤다. 그리고 바닥을 더 헤집어보자 서너 종류의 다른 알약들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종류가 다양하군, 표본으론 부족하지만 분석할 수는 있겠어. 카페, 따라오게.”
“잠시만요, 그렇게 빨리 가면!”
그걸 보고 무언가 길잡이를 찾은 느낌이 된 타키온은 급히 연구실로 돌아갔다. 그 발걸음은 실로 터프에서 경주할 때 보여주던 속도를 연상케 해 카페가 순간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먼지를 약에서 털어낸 그녀는 빠르게 PC의 프로그램을 전환하고 실험 도구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약을 만드는 건 쉽지만, 분석하는 건 생각 외로 어렵다.
일반적으로는.
하지만 특이점에 가까운 그녀의 두뇌라면,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래야 모르모트군이 대체 왜 이런 걸 흘릴 정도가 되었는지 안다.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데이터들을 입력한 후, 대조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뒤에는 어느새 뒤쫓아오는 데 성공한 맨하탄 카페가 숨을 고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시작했나요?”
“쉿.”
첫 알약의 분석이 분 단위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타키온은 손을 들어서 카페를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화학조성이 마침내 나오자, 데이터베이스에 이를 대조해 봤다.
“첫 알약은 이제 끝났네.”
“벌써요?”
“나 같은 두뇌면 장비만 있으면 이 정도는 쉽다네, 어디 보자.”
목록들과 대조하는 가운데, 마침내 똑같은 화합물을 발견하고 그 설명을 보자 아그네스 타키온은 멈칫했다. 눈동자가 흔들렸고, 이마에 희미한 식은땀이 흘렀다.
“플루오루우라실? 이거 화학요법 항암제인데?”
“뭐라고요?”
순간 불길함을 두 사람 전부 느꼈다.
설마.
아니겠지?
“그, 그래. 다음 약물도 분석해 보면 확실해지겠지. 나라도 실수 정도는 할 수 있는 법이니까.”
애써 결과를 외면하며 다음 알약들을 분석하자, 이번에는 더 충격적인 것이 나왔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야만 주는 강력한 진통제.
표적치료제.
그리고 추가로 나온 두 종류의 항암제.
“….”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맨하탄 카페는 입을 막고 말았고, 아그네스 타키온은 침묵했다. 이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였으니.
게다가 잠적이라.
“…카페.”
오랜 침묵 끝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일본 전역을 뒤져서라도, 모르모트, 아니 트레이너를 찾아야 하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르네.”
시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말이었다.
-⏲-
쉽지 않다.
작정하고 잠적한 사람을 찾기란 정말 쉽지 않다. 요컨대, 행방불명된 사람을 찾는 것과 똑같은 난이도다.
하지만 단서는 다행히도 있었다.
“트레이너님이 PC의 포맷은 안 하신 모양이군요.”
“검색 기록을 뒤져보세, 혹여나 무언가 있을지도 모르니.”
트레이너실의 PC를 켜서 기록을 뒤지기 시작한 두 우마무스메는 마침내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검색한 게 확실한, 호스피스 추천이라는 검색어. 이를 기반으로 이제 찾아나가야 했다.
그런데 일본 전역에 이런 곳이 좀 많은가.
범위를 좁히려면 그가 클릭한 걸로 보이는 사이트를 들어가야 했는데, 그마저도 혼슈 전역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위가 나왔다.
“…시간이 꽤 걸리겠네요.”
“그 시간을 단축해야 하네. 최대한 인맥을 활용해서 좁혀보게, 난 약을 만들어 볼 테니.”
“….”
그녀가 실험이 아닌, 약을 만들어 보겠다는 말에 카페는 말리지 않고 자신에게 건네진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무슨 약을 만들려 하는지 너무나 명백했으니까.
어차피 드림 트로피로 간 이후 시간은 있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잠적한 담당 트레이너를 되찾고자 각자의 역할을 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그네스 타키온은 자신의 재능에 자신이 있었다.
특이점에 가까운 지성이라면,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그를, 그녀의 모르모트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
“어째서, 어째서 안 되는 거지? 왜! 왜! 왜!”
그녀가 압도적인 절망을 맛보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단 사흘.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분석한 약을 먹고 있는 상태의 모르모트군을 되돌릴 약은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계속해서 도달했으니까.
광속을 초월한 허수 입자는, 마침내 절망의 벽을 마주했다.
갑자기 조금 우울한 걸 쓰고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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