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악역영애 리젤로테와 실황의 엔도 군과 해설의 코바야시양'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게임 속 캐릭터인 왕자에게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된 두 고등학생이 이 게임의 악역영애인 리젤로테의 속마음을 알려서 그녀의 파멸을 막자!는 내용이지요.
여기서 코바야시는 엔도를 이 게임에 끌어들이려고 팬디스크에 있는 리젤로테 스토리를 먼저 보여주고, 엔도는 거기에 훌륭하게 낚여서 눈물을 쏟습니다. 대체 무슨 내용이었는지 보겠습니다.
「츤데레 악역영애 리젤로테와 실황의 엔도 군과 해설의 코바야시 양」에 나오는
「매지컬하게 사랑해줘」 세계선의 「리젤로테의 수기」입니다.
※ 우울전개 주의
※ 이 세계선의 리젤로테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 설정을 아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재미있게 읽을 만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리해서 읽지 않아도 됩니다.
※ 「츤리제가 정사!」를 구호로 외치며 마음을 강하게 먹는 걸 추천합니다. 다만, 무리하게 읽지 않는 것이 베스트입니다.
※ 【】과 ■ 부분은 마녀의 힘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 너무나 괴로워서 마지막까지는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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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화)
얼마 뒤에 나라 서쪽 지방에서 큰 수해가 발생한다는 예언을, 그 땅에서 요양중이시던 유리아나 전하께서 신탁으로 받으셨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왕제 전하의 장녀이자 지크발트 전하의 사촌이 되는 12살 공주님께서 말이다.
신의 목소리는 본래 15세 전후에 들려오는 경우가 많을 테니, 정말로 신의 목소리였는지 회의적인 목소리도 일부 있다.
동시에,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녀를 차기 여왕으로 추대해야 된다는 의견이 불현듯 나와서 귀족회의를 소란스럽게 한 모양이지만, 왕도의 공기가 맞지 않아 병으로 쓰러지신 분에게 너무한 이야기이다.
애초에 그녀는 이때까지 왕이 될 자에 걸맞은 교육을 받으신 적도 없는데 말이다.
몸이 약해서 교육을 받지도 못한 그녀가 상대라면 신하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거라는 비열한 생각인 걸까. 화가 난다.
왕으로서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아닌 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왕태자이신 지크발트 전하도 분명 곧 있으면 신의 목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왕의 뒤를 이을 자를 변경할 필요따위는 없다.
신의 목소리란 일상적으로 항상 들려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기에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이번 일만 해도 지크발트 전하께서 서쪽 지방에 계셨다면 그 분이 들으셨겠지.
그 분은 어쩌다 보니 이때까지 그 은혜를 얻을 기회가 없으셨을 뿐, 왕의 자질을 신께서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견 따위는 빗나간 것도 정도가 있다.
아아, 화가 난다.
지크발트 전하 만큼 왕에 어울리시는 분은 없다.
그 분은 왕이 되시고, 나는 그 분을 지탱하는 왕비가 된다. 이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다.
3/30 (토)
유리아나 전하의 예언대로, 서쪽 지방에 어젯밤부터 큰 비가 내려 대규모의 토사유출이 발생했다.
예언에 따라 조기에 피난이 완료되었기 때문에 인적피해는 없어보이지만, 상당히 광범위의 토지, 건물, 축사에 피해가 생긴 모양이다.
침수되어버린 토지, 집이나 물건 등의 정화소독작업을 위해 신전은 조속히 신관들의 파견을 개시했다. 피해자나 부흥 작업원 등이 병이나 상처, 멘탈 쪽의 치료도 행한다고 한다.
나라의 기사단은 물론 리펜슈탈 가문에서도 치안 유지와 부흥 작업을 위해 기사와 마술사를 보내겠지. 그 양쪽의 지휘를 맡으실 아버님은 당분간 바빠지실 것임이 틀림없다. 나도 뒷받침을 해드려야겠지.
4/7 (일)
오늘은 지크발트 전하의 생신!
예년처럼 왕성에서 식전을 행했다. 그래, 예년처럼 왕태자의 탄생을 축하하기에 걸맞도록 화려하게. 예년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불쾌한 목소리를 낸 자를 끊어내느라 희생이 조금 있었지만, '예년처럼'이다.
「서쪽 지방이 피해를 입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라는 말은 일리있다고 생각하지만, 「유리아나 전하께서 들은 것은 틀림없는 신의 목소리였다고 증명되었는데도」라고 말하는 건 무례에도 정도가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지크발트 전하께서는 반드시 왕이 될 분이시다. 우습게 여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굉장히 화가 난다. 좀 더 철저하게 뭉개놓을 걸 그랬다.
이러면 안 되지. 냉정해져야 돼.
경사스럽게 18세를 맞이하여 성인이 되신 전하께서는 오늘도 빛나도록 아름다우셨다.
학원을 졸업할때까지는 성인으로 인정받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연령 쪽 요건은 충족했다. 그런 전하께서는 최근 어른의 매력이 한 층 더해지신 듯한, 차분함과 듬직함이 확고해지신 듯한 분위기이시며 행동과 표정 그 모든 것이 더욱 세련되어 지셨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미소는 반칙이다. 정면으로 똑바로 보았다가는 너무 눈부셔서 정신을 잃어버릴 지경이다.
식전용 예복을 몸에 두르신 전하는 그야말로 동화 속 왕자님처럼 빛나며 실로 차대 왕에 어울리는 기품과 위엄과 매력이 넘쳐흘
넘쳐흘 러서
그래서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런 말을... 아니 그렇다 해도 어째서 그런 말을 해버린 걸까......
식전에서 형식대로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약혼자로서 나란히 섰을 때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아무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지크발트 전하를 똑바로 보지는 못했지만, 파트너는 옆에 있으면 될 일이다. 시종일관 두근두근하기는 했지만, 딱히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문제는, 그 후에 가족끼리 사적인 환담을 나누는 장소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일어났다.
갑자기 티아나 왕비 폐하께서 「이제 슬슬 둘이서 결혼해도 될 나이네」 같은 말씀을 하셔서!
그렇지 않아도 지크발트 전하께서는 멋있으시고,
바깥 사람을 향해 바짝 당긴 표정도 근사하시지만 그 장소에서는 슬쩍 가볍게 긴장을 풀고 미소띤 얼굴로 변하셔서, 또 다른 매력이랄까 그 차이가 선명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신 달까,
어쨌든 나는 그 분이 좋아서, 그 마음으로 가득히 차올라서 나는
나는
「아직 나이 말고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잖아요」 같은 말을 해서 그 자리를 얼어붙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니야. 내가 미숙한 거다. 나로서는 아직 지크발트 전하와 나란히 서있을 뿐이지 그럴 실력은 없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그치만그치만 그 분은 그렇게나 멋있으시고 온화하시고 성실하시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으시고 학원 성적도 계속 우수신데 나는 어차피 가정교사에게 배운 것 밖에 없고 전하처럼 같은 나이대 귀족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전하의 의사나 많은 준비라던가 조정같은 것도
아무튼, 그래, 이렇게나 훌륭하신 분과 결혼하는 건데 지금의 내가 그에 걸맞은 걸까⁉라고, 그저 그런 의미로, 반사적으로 해버린 말이었는데.
「나는 아직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으니까. 왕태자로 있을 수 없게 된다면, 너와의 약혼도 다시 검토해야 될테니……」
그렇게 힘없는 미소로 전하께서 말씀하신 순간, 내 목을 스스로 베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큰일이었다.
전하의 경사스러운 날에 왕성에서 유혈사태를 벌이면 안 되지. 그렇게 생각할 이성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변명은 했다. 했을 것이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는 말을 하려고 애쓰기는 했다.
하지만 얼어붙은 그 자리의 분위기는 내가 물러날 때까지 그대로였으니, 역시 내가 죽음으로 사죄를 해야 되는 것이었겠지.
나는 어째서 이러는 걸까......
내일은 왕립마도학교의 입학식. 지금까지 이상으로 전하의 알현이 이루어지는 기회도 많을 텐데, 앞으로의 일이 걱정된다.
오늘 일에 대한 사죄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4/8 (월)
오늘 입학식에서 한 명, 심하게 눈에 띄는 신입생이 있었다. 피네 양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입장 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입학식 도중에 발(역주:발두르의 애칭)에게 에스코트 받으며 들어온 것이다.
우리 잘난 사촌께서는 쓸데없이 체격이 좋고, 그래 보여도 의외로 실력과 인기가 있으니까, 그에게 에스코트 받고 있는 그녀는 불쌍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여학생들로부터의 시선이 무서웠다고 생각한다.
그 뒤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발에게 물어봤더니,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교복도 입지 않은 채로 걸어서 정문을 통과했기 때문에 학생일리가 없다고 판단한 레온 샤허 교사에게 포박당했다는 모양이다. 의미를 모르겠다.
뭐 확실히, 포박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네 양은 학원 관계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검소한 복장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의미를 모르겠다.
우선 교사가 그녀를 의심스럽게 생각해서 붙잡으려고 할 때, 피네 양도 똑바로 이름을 말하고 설명을 하면 좋았을 것을, 어째서인지 전력을 다해서 응전했다.
지원을 요청받아 달려온 사람들 중에 발이 있어서, 그녀가 강력한 빛의 마법을 썼던 것과 그 생김새의 특징을 보고 그녀가 요전 날 서민 소녀가 마법으로 폭한을 격퇴했다는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태를 수습했다는 것이다.
발은 기사단에서 소문을 듣고 그녀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사건의 소녀가 오늘 입학한다는 사실은 교사도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교사는 '그 소녀는 어차피 어디 귀족 집안의 서자고, 강한 힘을 가졌다고 알려진 이상 부모의 비호하에 놓여있겠지'라고 생각한 듯 하다.
설마 이 근방 메이드보다도 낡은, 아니 검소한 복장으로 마차에도 타지 않은 채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원생의 증명이 되는 로브는 입학식에서 배포하는 것이기도 하고, 신입생은 피네 양을 제외하고 전원 교복을 입고 있다. 신입생을 포함한 모든 학원생은 마차를 학원에 들이는 단계에서 사전신청을 해서 허가받고 있다. 교사의 판단도 엉뚱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피네 양의 입학은 갑자기 결정된 것이라고는 들었지만, 제복을 준비할 시간이 모자랐던 것일까?
귀족은 아니기에 드레스 제작자가 주문제작을 후순위로 미루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 학원측에 그 사정을 설명해두었으면 그런 일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조금 경솔한 분인지도 모르겠다.
클래스메이트인 것 같으니 나도 신경을 써주어야 되는 것일까.
발이 뒷일을 생각 않고 분위기도 신경쓰지 않고 저지른 어리석은 행위 탓에 일부 여학생이 노려보기도 했으니, 가엽기도 하니까.
발이 말하기를, 피네 양은 본가가 먼 곳에 있는 것인지 이제까지는 왕도의 여관에서 혼자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이번 일을 미안하게 생각한 교사의 알선에 의해 학원의 직원숙소에서 지내기로 결정된 듯 하다. 마차도 없이 학교에 다니기에는 멀었던 모양이고, 안전이나 위생을 보아도 학원에 있는 숙소라면 안심이다.
하지만 사는 곳부터 그래서야 다른 것도 무엇이든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제복을 준비하는데에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라면, 어차피 나는 오늘만 입고 더 이상 입지 않을 이 제복의 사이즈를 조정해서 그녀에게 전해줘도 되겠지.
그 외에도 무언가 곤란한 점은 없는지 신경써주려고 생각한다.
4/9 (화)
오늘은 첫 수업. 신입생들의 실력을 측정하기 위해 3학년 합동으로 모의 전투 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그 피네 양은, 대단히 강했다.
그건 뭘까, 그건?
그것은 무엇이었던 걸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가 잘 안 될 뿐이지만, 어떤 무기를 들었든 얼마나 체격이 좋은 학생이든 관계없이, 그녀의 주먹으로 하늘을 날았다.
실제로 본 광경인데도 허황된 악몽같다. 아직 현실감이 없다.
그녀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는 탓인지 사정거리는 좁은 것 같았다.
그렇다해도 가까이 있는 순서대로 날아가버리는 듯한 대소동이고, 아니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려던 인물도 문득 깨달으니 그녀의 사정거리에 들어와서 날아간 듯한?
어쨌든, 그녀는 이동부터 해서 사람의 범주를 뛰어넘은 움직임을 한 듯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강하다. 그것은 틀림없다. 이번에는 남학생을 중심으로 그녀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부디 한 수 겨루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저 장비가 그렇게나 빈약하달까, 마법사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마법 지팡이가 볼품없었다는 점은 신경쓰였다. 그런 쓰레기 같은 물건에 그녀의 막대한 마력을 넣으면 폭발사산해버리겠지.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쓰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걸 허리에 달고 다닌 것일까. 그런 건 없는 게 나을 텐데.
그녀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무기를 들게 하면 어떻게 될까, 흥미가 끊이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지팡이를 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만약 검을 다룬다면, 지금은 발이 지니고 있는 우리 가문의 가보를 빌려주었을 때 얼마나 큰 활약을 보여줄 것인가. 이런, 역시 상상으로 밖에 허락 받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체격으로 그 장검을 다루는 것은 어려워 보이고, 그녀의 가벼운 움직임을 활용한 전투 스타일에는, 아니 그게 아니라 경솔하게 우리 가문의 가보를 혈연도 없는 자가 건드리게 하는 일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
그래, 현실적인 것은 역시 지팡이다. 어째서 그녀는 좀 더 제대로 된 지팡이를 들지 않은 것일까.
혹시나 싶지만, 그녀는 귀족 가문 태생이 아니니까 지팡이 장인과 인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힘을 견딜 수 있는 지팡이를 만들어야 된면, 소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울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체칠리에(역주: 막내동생)가 유니콘에게 채여갔을 때 역으로 쓰러뜨린 일이 있었다. 숲에서 혼자서 낮잠을 자다니,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당사자인 그 아이에게 설교를 했더니 「하지만 정말 좋은 소재를 손에 넣었다」라면서 반론을 해와서 설교가 연장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안목이 있는 그 아이가 그렇게까지 말한 유니콘 소재라면, 피네 양의 지팡이 소재로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저 클래스메이트에 지나지 않은 내가 지팡이를 준비해주는 건 이상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어차피 우리 집안에 회복, 보조 마법이 특기인 사람도 없고, 운명적이랄까, 그래, 부유한 자로서 혜택 받지 못한 자에게 갖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는 것은 책무 같은 것이고
이제 그만하자. 어쨌든 일단 주문해두기로 하자.
체칠리에가 얻은 소재로 어느 정도의 성능을 가진 물건이 만들어질 것인지 보고 싶다. 그걸로 됐겠지.
그 아이도 용돈으로 바꾸는 편이 기쁠 테니까 유니콘의 소재는 내가 사준다. 그걸 활용한다는 것이다.
혹시 피네 양 자신이 지팡이를 마련했고 그 쓰레기는 그 지팡이가 오기 전까지만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면, 만들어진 지팡이는 적당한 곳에 팔면 될 일이다.
어쨌든 지팡이를 발주하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그녀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래도 그건 학원에서 지정한 옷이라 조금 안도했다.
계속 운동복 차림이었던 건 조금 신경 쓰이지만, 그녀에게는 메이드 한 명도 붙어있지 않은 것 같고, 휴식용 방도 빌리지 않은 모양이니 갈아입을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겠지.
4/12 (금)
피네 양은 계속 운동복을 입고 있다.
실기가 있는 날이든 없는 날이든 관계없이.
아마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제복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겠지. 어이가 없었다.
당장은 내 것을 사이즈 조정한 제복을 주었고, 추가분으로 새로운 제복의 발주도 넣었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충분한, 걸까. 그녀를 대할 때 굉장히 오만한 태도로 강한 언사만 늘어놓는 것에 대한 사죄로는 모자란 기분이 든다.
그 아이를 볼 때면, 어째서인지 【잘 모르는 감정】이 치밀어 올라온다.
조바심? 미움? 화?
언동은 거칠어지고, 시선이, 태도가, 의도치 않을 정도로 오만하고 공격적인 것으로 변해버리는 듯한 그런 감정.
그런 감정을 품을 이유 따위는 없을 텐데.
속 마음으로 어떻게 느끼든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쯤은, 나라면 할 수 있을 터인데.
나는 그녀가 서민이라는 이유로, 태생이나 신분때문에 이렇게나 태도가 변해버리는 인간이었던 걸까. 싫어진다.
국가를, 국가를 지탱하는 모든 사람을, 그 분처럼, 평등하게 사랑하고 자비를 베푼다. 그 분의 옆에 있고 싶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태도는 좋지 않은 것이다. 뉘우치고 고친다.
사실, 그녀처럼 강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와는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피네 양은 귀엽다. 부러울 정도로.
우선, 작은 동물처럼 졸래졸래 움직이는 것이 귀엽다.
휙휙 바뀌는 표정에서는 눈을 뗄 수 없게 되어버리고, 갑자기 밑바닥 없이 밝게 웃는 얼굴을 봐버리면 심장이 꿰뚫린듯한 충격을 느낀다.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하늘 색 커다란 눈동자도 매력적이다.
달리듯 걸어가는 모습에 맞추어 둥실둥실 흔들리는 분홍색 머리카락은 나도 모르게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윤기나고, 게다가 그 위치가 마침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높이에 있는 것이다. 언젠가 쓰다듬고 싶어.
전투에서 보여주는 강력한 힘은 믿을 수 없을 정도고, 거기 더해 작고 화사한 체격도 눈길을 끈다.
피네 양은 전부가 전부 귀엽게 되어 있다. 그건 이제 마성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우리 일족은 전부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발 같은 경우엔 특히 약하겠지. 분명히 몇 초만에 반할 것이다. 혹시나 싶지만 이미 반해있는지도 모른다.
나야말로......
그녀를 앞에 두지만 않으면, 이렇게 그녀의 매력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도, 어째서 나는......
4/15 (월)
지크발트 전하께서 피네 양을 친구라고 선언하셨다.
입학식의 사건 때문인지 주변에서 조금 붕 떠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셨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분께서 특정한 여성을 특별 취급 하시다니.
어쩐지 굉장한 충격을 받아서, 손을 움직일 기력도 생기지 않 아
4/18 (목)
나는 대체,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오늘은 피네 양이 전하께 배워가며 공부를 했다. 그것 뿐이다.
장소도 개방된 중앙 정원이라 학교 건물에서도 무슨 일인지 잘 보인다. 그래, 아무 문제도 없는 장소와 상황이었는데, 그랬는데도.
지크발트 전하와 피네 양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도둑맞았다】고 느꼈다.
【그 분은 나의 것인데】라는 마음만이 나를 지배해서, 【분노】가, 【원망】이, 【오랜 세월 쌓인】, 그렇다. 그녀와 만난 것은 고작 며칠 전 일이라 오랜 세월일 리가 없는데도 오랜 세월 그랬다는 생각 밖에 없는, 【몇 년 동안 몇 백 년 동안 몇 천 년 동안 계속 짓밟혀 온 듯한 굴욕】이 찾아왔다.
괴롭다. 괴롭고, 괴로워서, 내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을 정도이다.
어째서?
전하께서도 말씀해주셨지 않은가. 내가 걱정할만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애초에 전하께서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잘 이해하고 있다. 그 분의 마음까지는 바라지 않아.
그저 그 분을 받쳐드리고 싶어. 그것 뿐이다. 그럴 터였다.
물론 그 분을 사랑하고 있다. 좋아하고 좋아하고 좋아하고 좋아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 분께 접근하는 무리는 모두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질투는, 언제든 품고 있다.
하지만 그 전부를 나는 속으로 삼켜야 되는 것이고, 속으로 삼켜왔다.
그랬는데도, 오늘의 나는 어째서인지 그러지 못했다.
나는 지크발트 전하는 물론이고, 피네 양과도 가능한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렇다면 「동기로서 나도 그녀의 학습을 도와주고 싶다」고 전하면 좋았을 일이다.
단지, 전하께서 걱정하시던 대로 피네 양에 대한 험담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 상황에 이성이신 지크발트 전하만 계신다면 또 다시 묘한 억측을 살 지도 모른다. 그렇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해도, 「잘 생긴 신사분이 아니면 배우기 싫은 걸까요?」라니, 비꼬는 듯한 언사를 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전하께서 화가 나신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나 심한 말투였다.
그런데도 나는, 【저 아이의 편을 드는 저 사람】이, 【미워서, 용서할 수 없어서, 사랑스러워서, 안타까워서】, 전부, 전부, ■■■■■라고
그 후, 어떻게 말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집에 돌아와 있는지 기억이 없다.
그저 몽롱하게, 피네 양이 겁먹은 모습이고, 지크발트 전하께서 그녀를 보호하듯이 우리 사이에 서 계신 모습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분께서 누군가 한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시다니.
그녀가 특별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내가, 그 분께서 그렇게 하셔야만 될 정도로 이상한 짓을 해버렸던 것일까.
나는, 【나】는
4/19(금)
식당에서 지크발트 전하께 어제 일에 대한 사죄를 했다.
그랬더니 「사죄는 피네 양에게 해야겠지」라고 말씀하셨다. 당연하다.
당연하다고, 지금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그 순간에 느낀 것은 【역시 당신은 그 아이의 편인 건가】라는 쇼크와, 적반하장에 지나지 않는 【터무니없는 증오】였다.
그리고 식당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다. 나도 전하도 주목을 모으기 쉬운 입장이다.
당연히 이쪽을 향한 주위의 시선이, 그 순간에는 어쩐지 【연적에게 패한 나를 비웃고 있는 듯 해서】, 【너무나 비참해서】......
나는 「내 약혼자에게 부끄러움도 모르고 구애하는 서민」이라고 그녀를 매도하고 사죄를 거부. 그것을 책망하신 전하께 「왕태자이신 당신께서 간단히 농락당하시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같은 걸, 말했다.
분명히 내가, 이 입으로 말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저 친구 관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겠지. 왜냐면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가 된지 아직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친구라 해도, 그렇게까지 터놓고 이해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냉정해진 지금은 그걸 잘 안다.
그런데도 그 순간의 나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듯하다고, 그 사람이 바람을 피운 듯 하다고 굳게 믿고】 소란을 피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소란은 곧바로 주변에 전파되어, 보수적이거나 리펜슈탈 가문과 같은 파벌인 귀족 가문의 자녀는 내 편에 섰다.
나는 전하께서 존중해야 할 약혼자의 입장이며,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다른 여성을 곁에 두는 행위 따위는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전하와 같은 학년인 마르슈너 공작 가문의 영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전하께 의견을 낸 것은 그 공작가 영식 뿐이고, 전하께서는 오해라고 말씀하셨지만, 소동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경솔한 언동을 한 피네 양이 나쁜 거라고, 분수를 맞게 행동하라고 학생들이 차츰 목소리를 높여 식당은 이상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피네 양에게 모의 전투전에서 진 남학생이나, 피네 양이 친하게 지내는 누군가를 동경했는지도 모르는 여학생의 사적인 원한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발이나 파비앙 올텐부르크 자작 영식이 급히 와서 피네 양을 감싼 것도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겠지. 몇 명에게 추파를 던진 거냐고 매도하는 학생마저 있을 정도이다.
마지막에 다가온 레온 샤허 교사는 피네 양이 나에게 사죄를 하도록 재촉했지만, 그가 한 순간 나를 노려본 시선은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로 차가웠다.
여럿이서 서민인 소녀를 몰아세우다니, 집단 괴롭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사실 무근인 트집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요란하게 떠들어대다니.
그 교사는 나를 경멸한 거겠지.
결국 피네 양은, 나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렇게 된 이상 그것 말고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겠지. 나 만이 아니라, 그 장소는 꺼림직할 정도로 【악의】에 지배되어 있었으니까.
발은, 올텐부르크 자작 영식은, 교사는,
지크발트 전하께서는,
그 모습을 가여운 듯 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어 식당에서, 그녀들로부터, 도망쳐나왔다.
그녀들로부터 등을 돌리기 직전, 【그 사람은 그 아이를 지키 듯, 불쌍히 여기는 듯 다가가서, 나를 경멸하듯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이 나를, 노려】
봐
나, 내가 사죄해야 될 것이었다.
그랬는데, 학생들 대부분은 내가 옳다고. 사죄해야 할 건 그 아이 쪽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닌데도, 분명 나와 그 아이의 신분 차이 때문에, 내가 옳은 것처럼 여겨지게 되어버렸다.
어째서 나는 그런 짓을.
이제는, 결정적인 대립을 해버린 거겠지.
나는 【그 아이의 적이 된 것이 틀림 없다】.
분명 이런 비열한 처사를 한 나는, 경멸 받았다. 미움 받았다.
미움 받았겠지.
피네 양에게도.
지 크발 트 전하에게 도
어째서
4/20(토)
참혹한 【꿈】을 꾸었다.
그것이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잊어버리고 싶은데도,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머리 속에 남아있다.
그 때문인지 오전 중의 훈련도 자습도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오후에는 발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어제 일에 대해서 심하게 혼났다.
너무나 비열하다고, 나 답지 않다고.
솔직하게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의 말을 입에 담은 나의 몸 상태를, 발은 걱정해주었지만.
지크발트 전하와 피네 양에게 보내는 사죄의 편지를 발에게 맡겼다.
편지를 받아주실까. 읽어주실까.
확인할 용기는 없다.
아무리 해도, 그 【꿈】처럼 【증오스러운 그 아이들】에게 참혹한 짓을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 아이】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다가가서는 안 된다.
가까운 시일에 행해질 예정인 티아나 왕비 전하와의 공부 모임. 분명 티 타임에는 평소처럼 지크발트 전하께서도 오시겠지.
보통은 기대하고 있던 그 시간이, 지금은 조금 두려워진다.
5/2(목)
오늘, 피네 양에게, 물을 끼얹었다.
머리부터 성대하게, 마법을 써서, 온 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기세 좋게.
달려오신 지크발트 전하께서는 내가 갑자기 흉악한 행위를 저지른 이유를 물으셨지만, 나 자신조차 그렇게까지 해버린 이유를 몰랐다.
변명은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사죄하고, 무언가 처벌이 있다면 집을 통해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뒤,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피네 양은 괜찮을까.
겨울의 기색은 완전히 사라지고 봄이 가득한 낮이었다고는 해도, 물놀이를 할 만한 계절은 아직 멀다.
그녀가 몸을 상하지는 않았을 지 걱정이다.
불은 틀림없이 꺼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 쪽도 괜찮은 걸까.
방과 후 피네 양이 중앙정원에서 마법 수련을 하고 있었고,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았다.
오늘은 그렇게나 두려워했던 【증오】가 그렇게까지 솟아오르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지크발트 전하와 함께 있지 않을 때라면 조금은 평소처럼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고전하고 있는 모양이니 무언가 조언 한 마디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다가간 바로 그 때.
하늘하늘 불안정하게 있던, 그녀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불꽃이 휙 하고 크게 요동치며 그녀의 옷 소매에 엉겨붙어 불길이 옮겨붙으려던 참이었다.
이대로면 그녀는 어찌 될까, 곧장 불을 꺼야만 해.라고, 그럴 생각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랬을 터인데.
불을 끄기 위해 내가 불러낸 물의 기세는 【그야말로 악의가 느껴질 만큼의 과잉】이어서 깨닫고 보니 피네 양의 전신을 적시고, 불쌍하게도 추위에 떨게 만들 정도였다.
당황한 나머지 힘조절을 잘못했다.
상대가 다른 누군가였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전하께 설명해드렸겠지.
하지만 분명, 그것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불가사의한, 하지만 분명히 【내】가 그녀에게 품은 【증오】가, 【질투】가, 【원한】이 나의 마법 컨트롤을 무너뜨린 것이 틀림없다. 내가 싫어진다.
이렇게까지 사악하고 음험한 나 같은 건 비난받는 것이 당연하다.
대체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가 조금 불안하지만, 어떤 것이든 불복따위는 하지 않는다. 내가 잘못했다.
그보다도 피네 양이 걱정이다.
나한테 갑자기 물을 끼얹어진 그녀는, 굉장히 겁먹은 듯 보였다.
처벌과는 별개로 그녀에게 무언가 보상을 해야만 하겠지.
라고 말하기 보다 내가 그녀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이전에 발주했던 그것이 도착했다.
어쨌든 내일이라도 그녀에게 사죄하자. 그것도 사죄의 증표로써 건네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5/3 (금)
어제 내가 피네 양에게 물을 끼얹은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방면이 되었다.
그 후 옷이 그을린 것을 눈치챈 그녀가 중재 해주었다는 듯 하다.
「오히려,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웃는 그녀를 보며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쩜 이리 착한 아이인지.
이렇게나 착한 아이이고, 귀엽고, 솔직하고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하고, 너무나 매력적이라,
비참해진다.
그녀가 어제 나에게 물을 맞은 뒤, 지크발트 전하와 거리로 나섰던 모양이다.
그 분의 약혼자인 내가 심한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젖어버린 그녀의 옷 대신 「귀여운 옷을 잔뜩 사주셨다」는 듯 하다.
제복과 운동복은 있어도 사복에 대해서는 곤란했던 모양이라,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나의 사죄는 필요 없다고.
나는 지크발트 전하와 둘이서 나서본 적, 없다.
【미워】
아니야
【나의 빛을 훔쳐가지 말아줘】
아니야. 그 분은, 빛 처럼 눈부신 그 분이라는 사람은, 애초부터 내것이 아니었어.
【그 아이만 없어진다면】
아니야. 피네 양은 나쁘지 않아.
【좋아하고 사랑하는 누구보다도 내가 당신을】
아니야. 이런 감정은, 밖으로 드러내도 되는 것이 아니야.
【미워 용서 못해】
아니야! 아니야아니야아니야!
■■■■■
아니야.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머리 속에서 계속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나】는
그 【꿈】처럼 하려고 지팡이를 꺼내려 했지만, 내 손에 닿은 것은 그녀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그것이었다.
그녀의 눈동자처럼 맑은 하늘색으로 빛나는 그것이, 단지 거기에 있는 것 만으로 모든 것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듯한 맑은 기운을 가진 그것이, 【목소리】를 멀어지게 하고 나를 냉정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즉시 그것을 꼭꼭 부여잡고, 나는 그녀에게 어제 일을 사죄했다.
피네 양은 그저 순수하게 웃으며 사죄를 받아들이고, 다시 한 번 내가 불을 꺼준일에 감사를 표했지만, 그 자리에 계시던 지크발트 전하께서 나를 보시는 눈은 【사실은 이 아이에게 해를 끼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죄의 물건은 전해주지를 못했지만, 우선 머리를 숙이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쩐지 피곤하다.
5/6 (월)
신관인 아르투르 리히터가 학원에 복귀했다.
지크발트 전하께서 기뻐보이시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또 리히터만 중용받는 나날이 시작되는 것일까 생각하면 화가 난다.
아르투르 리히터만 전하께 의지받다니 치사하다.
그렇게나 경박하고, 분명 신관으로서의 능력은 우수한 모양이지만 사생활은 결코 칭찬할 만한 것은 아니고, 사려 깊음과 배려심이 장점이기는 해도 쓸데없이 이곳 저곳에서 그 걸 써먹는 듯한 남자의 어디가 좋으신 걸까.
내가 더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다. 그 분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들은, 장래에는 부부로서 나란히 설 예정일 관계일 터인데.
어째서 전하는 리히터에게만 편하게 대하시는 것인지. 나에게도 조금 쯤은 진짜 얼굴을 보여주시면 좋을 텐데.
이래저래 화가 나기는 하지만, 역시 전하께서 의지하시고 편하게 대하시는 것이 가능한 존재는 얻기 어려운 것이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니, 역시 화가 난다.
뭐냐고 그 인간은. 스스럼 없이 지크발트 전하와 어깨동무 같은 거나 하고.
오늘 방과 후에 있던 일이다.
전하께서도 참 그렇게나 친하게 구는 그 인간을 싫어하시기는 커녕 웃으면서 받아주시고, 그 때 웃는 얼굴은 나이대에 걸맞다고 할까, 보통 학생 같은, 체면치레 따위 조금도 없는 웃음이라 눈길이 이끌렸다.
굉장히 방해하고 싶은데도 그러지도 못하고, 빠득빠득 이를 갈면서 그 분들의 뒤를 따라갔더니 갑자기 시합이 시작되고, 깨닫고 보니 리히터가 피네 양에게 맞아서 하늘을 날고 있다. 꼴 좋다.
뭐, 아무리 그래도 '눈 앞에서 죽기라도 한다면 뒷맛이 안 좋으려나'라고 한 순간 생각했지만, 피네 양도 힘조절 정도는 했을 것이고, 리히터도 의식만 돌아오면 어떤 상처든 그 자리에서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 곳에는 전하께서 계시니까 걱정따위는 하지 않았다. 걱정 안 했다 정말로.
그 후 잘 보니 그 장소에 같이 있었던 듯한 발은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뭘 하려고는 해도 공격 하나 내밀지 못 하는 사이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며 시합은 종료되었다.
한심하기는. 본래 그가 가진 실력이라면, 적어도 일방적으로 꼼짝 못하고 당할 정도는 아닐 텐데.
리펜슈탈 가문의 사람이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뭐, 저런 패배 방법은 어느 의미로는 굉장히 리펜슈탈 답기는 하지만.
우리 가문의 사람들은 전부 “반하면 평생 지면서 산다”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발은 언제가 되어서야 아버지께 '여동생들과의 약혼을 없던 것으로 해주기를 바란다'면서 고개를 숙이러 찾아올까.
설마설마설마, 자각이 없나......?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그래도, 발이라면 가능한가......?
그게 아니면 설마, 피네 양이 발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자신의 마음은 포기하고 있다는......?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이제 서둘러 빼앗아가면 좋겠다. 그렇게만 되면, 나도......
응, 다음 번에 발의 등짝을 발차기로 날려버리려고 생각한다.
발에 관한 건 다음 과제다.
그것보다도, 오늘, 나는 또 저질렀다.
시합 후, 입학 후 한 달이 경과했는데도 변함없이 피네 양의 허리에 매달려있는 그 쓰레기 같던 지팡이를 파괴했다.
전하를 뒤쫓아왔다는 것을 눈속임하고 싶어서, 또 무슨 일을 저질러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과 역시나 조금의 질투가 있어서, 굉장히 가시 돋친 태도로 그런 만행을 행한 나로 인해, 그 자리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아니, 그 자리에서 성한 곳 하나 없을 정도로 부숴버려야 된다고,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나 가볍게 맨손으로 파괴할 수 있는 물건에 피네 양의 마력을 불어넣으면 반드시 지팡이는 부서진다.
그렇게 되면 불어넣은 마력은 갈 곳을 잃게 되어 폭발하겠지. 피네 양이나 어쩌면 그 장소에 있던 누군가도 상처를 입고 만다.
그러니 그 쓰레기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파괴해야 했다. 그건 틀림없다.
그래도, 역시 태도와 방식이 좋지 않았던 거겠지.
나의 주장은 일단 받아들여졌지만, 발과 리히터, 거기에 지크발트 전하까지 나의 방식을 비난하고, 그리고 대신할 지팡이는 자신들 중에 누군가가 준비해주기로 결론이 난 것이다.
내가 준비해온 지팡이 따위는 신용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폭발할 수 있는 지팡이를 전해줄 듯한 생각이 든다고.
그렇겠지, 라고 생각한다.
내가 반대 입장이더라도, 4월부터 계속 괴롭히기만 하는 비열한 여자가 가져온 지팡위 따위는 무서워서라도 안 쓴다.
더구나 그 직전에 그녀가 이제까지 사용해온 지팡이를 무참히 파괴한 것이다. 악의 밖에 없을 거라고 여겨지는 것도 당연하다.
피네 양은 그럴 리가 없다고 남성들에게 반론했지만...... 정말 착한 아이다. 싫어질 정도로.
결국 새로운 지팡이는, 아무래도 지크발트 전하께서 준비해주시는 것 같다. 왕가의 컬렉션 중에서 피네 양에게 어울리는 대체품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아, 아아, 분명 훌륭한 지팡이겠지. 소재는 역시 유니콘 소재일까.
그래도 이전 것이 파괴되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예전에 만들어진 물건을 전한다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피네 양에게 딱 맞는 물건은 아니지 않을까, 이게 아니지.
그런 말을 해봐야, 이미 그저 비아냥으로 밖에 들리지 않겠지.
어쩐지 이것 저것 모두 바라던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모두 내가 잘못했을 뿐이기는 하지만, 【그 아이가 나타났으니까 그렇지】【그 아이만 없었다면】같은 생각이 끊임없이 맴돌며 또 다시 싫어진다.
아아, 이제는, 정말로 이것 저것 다 싫어진다.
나는 이렇게나 어리석었던 것일까?
어째서 피네 양과 지크발트 전하에 대해서 평범하게 대하지를 못 하는 걸까.
【그 아이】가 【그 사람】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아니야.
내가 나쁜 거야. 고쳐야만 해. 고치고 싶은데.
어째서.
5/21 (화)
오늘은 1학년과 3학년의 합동수업이 있었다.
전하께서 지도역의 중심이시고, 내가 그 보좌를 임명받아 오랜만에 그 분 곁에 섰지만, 이전보다도 어딘가 어색한 듯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무언가 안 좋은 술렁거림이 있어서 가보니,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치료마법이 특기인 자들의 그룹에 있는 피네 양이었다.
우리들이 달려갈 때에는 피네 양과 같은 그룹인 아르투르 리히터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설명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피네 양은 잘 모르는 것인지 멍하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고, 그 손에는
손에는 아름다운 금색 리본을 두른, 하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지크발트 전하께서 하사하신 것 같았다.
지팡이도, 리본도.
【빼앗겼다】
그 마음으로 가득차버린 나는 【분노】에 몸을 맡기고 그 아이를 심하게 책망했다.
모든 학년 중에 2학년생은 없는 장소였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당연히 억눌러야만 하는 감정인 채로.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나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리본 색의 의미 같은 건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싶었을 뿐이다」
「전하께 받은 지팡이니까, 전하께 받은 리본을 감아보았다」
「하지만 이 리본은 이 지팡이를 넣은 상자에 묶여있던 것을 재사용했을 뿐」
「다른 뜻은 없는, 우연」
피네 양이 당황해서 그렇게 변명하는 것을 나는 【슬픔과 분노와 절망】 속에서 들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있어서는 우연인 이 사태를 만든 것은?
피네 양은 분명 상식이나 새상의 유행에 둔한 편이기는 하지만, 지크발트 전하는?
그렇게 속된 것을 전하께 불어넣을 인물은 거의 없지만, 리히터는 여성의 유행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인간은 전하의 친우다.
그 인간으로부터 들었을 가능성은 높다.
만약 전하께서 은밀한 사랑따위를 하고 있다면, 그 멋쟁이로부터 적극적으로 그런 정보를 모으고 계시겠지.
전하는 「아무 것도 몰랐다」고 말씀하셨지만, 【믿을 수 있을리가 없다】.
약혼자인 나에게는 그렇게 말씀 하실 수 밖에 없을 뿐이겠지.
다시 이전처럼 주변의 사람들을 써서 피네 양이 책망받지 않게 하려고 생각하신 것임이 틀림 없다.
사실 그 분은 피네 양에게 지팡이도 리본도 보내셨으니까.
이렇게 까지 갈 갖추어진 우연따위 있을리가 없어.
다시 말해 이것은, 전하께서 바라신 일.
피네 양의 일방적인 동경이라면 아직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렇기는 커녕.
그런데도 피네 양은
【그 아이】는 몹시 당황한 모습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긴】 리본을 풀어서
버리려고 했다
【미워 미워 미워 미워미워미워!】
【내가 아무리 원해도 손에 넣지 못한 것을, 저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바쳐진다!】
게다가 【나에게는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만 잡다하게 처리해버리고】,
【증오가, 원망이, 분노가, 증오가】 넘쳐흘러
나 자신이 어떤 얼굴을 했는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아르투르 리히터가 거기서 마법을 쓰지 않았다면, 대체 무슨 짓을 했을지......
돌연히 눈부시고 따뜻한 빛에 둘러싸여, 나는 조금 냉정함을 되찾고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현기증을 일으켜버린 나에게, 리히터가 즉시 회복마법을 쓴 모양이다.
이 인간은 이래저래 칠칠맞은 남자이다만, 신관으로서의 실력은 확실하다.
리히터의 회복마법에 감싸인 뒤에는 묘하게 머리가 맑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방금까지 몸에 남아 있던 있던 수면부족으로 인한 피로도 전부 깨끗하게 정화된 듯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 여운으로 멍하니 있는 사이, 지크발트 전하과 피네 양이 나란히 나에게 사죄를 했다.
오해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오해.
오해, 인 것일까.
의심과 불안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대중이 보는 앞에 전하께서 머리를 계속 숙이고 계시는 일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똑같이 고개를 숙이는 것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야 마치 내가 두 사람과 적대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고.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역】같아서, 그런 역할 따위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어떻게든 사죄를 받아들이고, 우리들은 강의에 돌아왔다.
귀가 직후에 불쾌하게 만든 일에 대한 사과라면서 전하께서 보내신 꽃다발이 도착했지만, 색색들이 모인 꽃들 안에 레나의 꽃(역주 : 지크발트의 상징. 리젤로테가 머리에 꽂은 꽃)은 들어있지 않았다.
이제, 그 꽃은 그 아이에게만 바쳐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파고드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모처럼 그 분께 받은 것인데도, 솔직하게 기뻐할 수가 없다.
싫어진다.
어째서, 나는......
6/1 (토)
오늘, 국왕 폐하께서 나와 지크발트 전하의 약혼 해소에 대한 타진을 은밀히 보내신 듯 하다.
오랜만에 성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로부터 「당분간 생각할 시간을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왔다」라는 말과 함께 전해들었다.
기어코 유리아나 전하를 여왕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억누를 수 없게 된 모양이다.
그리고 유리아나 전하를 여왕으로 모신다면, 그 반려에 어울리는 건 이제까지 왕태자로서 교육을 받아오신 지크발트 전하 이외에는 없다. 그런 말도 동시에 올라왔다고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왕으로서 실무 대부분을 실제로 행하시는 건 지크발트 전하이시겠지. 분명 혼란은 적을 것이다.
단지 유리아나 전하와 지크발트 전하는 부군 되시는 분들이 형제관계이실 뿐만 아니라, 모군 되시는 분들도 사촌관계이시다.
아무리 그래도 혈연적으로 너무 가깝기 때문에, 폐하께서는 두 분의 결혼 이외의 수단을 모색하고 계신다고 한다.
유리아나 전하께서는 병약하시니, 혹시 다른 왕족 중에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자가 나타난다면, 그 쪽을 후계자로 삼고 싶다고 말씀하신 모양이다.
다만 그 왕족이 남성일 경우, 폐하의 입장에서는 왕비에 걸맞은 자를, 다시 말해 나를, 그 자에게 보내고 싶다 하셨다. 그 경우 지크발트 전하는 좀 더 격이 낮은, 왕위를 위협할 생각이 없다고 명확히 알릴 수 있는 누군가를 처로 맞이하게 할 것이라고도 하셨다.
지크발트 전하를 왕의 일을 맡은 부군으로 할 것인가, 나를 지크발트 전하가 아닌 왕의 왕비로 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방해가 되는 나와 지크발트 전하의 약혼은 해소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나는 왕비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크발트 전하의 반려가 되고 싶을 뿐인데.
그러나 폐하께서도 능력을 인정하시는 유력 귀족의 딸인 나를 이대로 약혼자로 둔다면, 전하의 입장은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신의 목소리를 듣지를 못하는 몸이라 해도, 왕태자의 지위를 양도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가'하는 억측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혹은 '왕태자에서 내려온다 해도 빼앗긴 왕위를 되찾으러 올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같은 생각도 있겠지.
지크발트 전하의 곁에 서는 사람에 어울리도록 노력한 결과와, 미래의 왕비에 걸맞을 정도로 은혜받은 태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와태자 전하 이외의 사람 곁에 있기에는 과분했던 모양이다.
그 분의 방해는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 해도, 혹시 그 분의 약혼자로 있지 못하게 된다면 【이 세계 전부를 원망하고, 증오하고, 멸망해버리라고 소망해】버릴 것 같아서, 두렵다.
아버지께서도 이것저것 말쓴을 하셨지만, 【그 사람에게 있어서 나는 방해가 되었을 뿐】【버림받았다, 미움받았다】【그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어버리는】 그런 생각에만 몰두하게 되어버려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다. 괴로워.
어쩌면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수단 중 하나는 피네 양인 건 아닐까 같은, 그런 생각도 머리를 스친다.
피가 너무 진해지는 것이 문제라면, 후계자는 비밀리에 지크발트 전하의 연인이 된 피네 양이 낳게 한 뒤 두 전하의 아이로 공표하면 된다. 이런 건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비도덕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이용당해버릴 정도로 그 아이의 입장은 약하다.
혹은 명확히 왕위를 위협할 생각이 없다고 알릴 정도의 부인이라는 것은, 강한 마력은 있지만 뒷배는 없는 그녀를 어딘가 적당한 귀족가의 양녀로 삼아서 진행시킨... 다던가.
요컨데, 【그 사람이 그 아이를 바라니까】, 그 바람을 어떻게든 이루기 위해 【방해꾼인 나를 제거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버려서, 나는
어째서 신께서는 지크발트 전하께 목소리를 들려주시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신께서는 유리아나 전하께 목소리를 들려주신 것일까.
【어째서 세계는 나에게서 그 사람을 빼앗는 걸까】
【어째서】
나의 마음을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최소한 지크발트 전하께서 학원을 졸업하실 때까지 약혼 해소는 기다려 달라고 끈질기게 청원해주신 모양이다.
전하께서는 분명 그때까지 신의 목소리를 들으실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누구보다 왕의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지크발트 전하이시며, 그 왕비에 걸맞은 것은 나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폐하께서는 그런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괴로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한다.
아버지는 교섭을 계속 하시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언제까지 계속하실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고 하셨다.
국왕 폐하도, 귀족의회도, 왕태자의 변경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 분께서는 왕이 되실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말이다.
설령 내가 왕비가 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지크발트 전하께서 왕이 되지 않는 일 따위,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돼.
그 분께서 왕이 되기 위해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를 쌓아 왔다고 생각하는가.
그 분 이외에 그 누가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데에 어울린다는 것인가.
하지만 동시에 전하께서는 이미 왕태자라는 입장이, 그 정도의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입장이 싫어지시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의 대해서도 특별취급하지도 못하고 누구를 대하든 평등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싫증이 나신 건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전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 아이를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한 끝에】, 그 분 자신께서 마치 왕에 걸맞은 능력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시는 것이 아닐까.
사실은 신의 목소리가 들리시지만,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같은 생각. 두 사람이 만난 시기를 따져보면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진다.
그 분께서 얼마나 왕에 걸맞은 분이 되려고 하시는가. 나는 그것을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는데도.
하지만 【세계의 모든 것과 천칭에 걸어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아이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하고,
【그 아이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왕의 자리든 신의 자리든 아깝지 않겠지】라고,
그런 【목소리】가 끊임없이 머리에 울려퍼진다.
【나】는
【나는 그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뿐인데】
【그 아이가, 그 사람이, 이 세계가 그것을 방해하는 거라면, 차라리, 전부】
아아, 이 나라나 이 세계에 위기라도 닥친다면, 분명 지크발트 전하는 신의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텐데.
6/14(금)
오늘이 창세이신무투대회의 참가 접수 마지막 날이었던 모양이다.
발에게 듣고 처음으로 '벌써 그런 시기였나'라고 깨달았다.
내가 망연자실한 사이에도 세상은 움직이고, 약혼 해소를 회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이에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던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발이 가르쳐준 우승 후보인 출장 예정 페어에 대한 정보가,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로?
그런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분께서는 매년 참가하지 않으셨다고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을 위축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런데도, 그 아이를 위해서......?
반신반의하면서 어쨌든 참가를 급히 신청했지만, 대회 당일까지 조금 시간이 있다.
그 때까지는, 불확정한 정보를 가지고 움직이지는 않으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정보가 단지 소문에 지나지 않은 잘못 된 것이라면, 출장을 취소하면 될 일이다.
6/21(금)
오늘 학원에서 창세이신무투대회가 개최되었다.
창세신은 여신 리레나 님만이 아니라, 과거 힘을 너무 쓰신 나머지 이 세계에서 사라진 남자 신도 계셨다는 전승을 본받아 남녀 2인 1조로 페어를 짜서 무술을 겨루는 이 대회.
나는 발과 조를 짜서 출장하여 준우승을 하고,
이전부터 우승후보라고 여겨졌던,
지크발트 전하와 피네 양 페어가 우승했다.
전력은 다했다.
발 같은 경우에도, 방심도 봐주기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피네 양에게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크발트 전하와 함께 하는 그녀를 우승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만은, 그렇기에 나와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오늘의 발은 피네 양보다도 여동생인 나를, 나의 마음을 우선해서, 지켜주려 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과의 시합 전에는 「어디까지 리제를 상처 입혀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라고 나 이상으로 분개할 정도이다.
나도 발도, 틀림없이 전력을 다 했다.
우리는 서로의 버릇도 숙지하고 있고, 연계도 딱 들어맞았다.
그래도, 졌다. 이기지 못했다.
손도 발도 못 내밀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해도 단 한 발짝, 그녀들에게 닿지 못 했다.
피네 양과 전하는, 강했다.
힐러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오는 전투 스타일의 피네 양을, 온갖 마법에 정통하신 지크발트 전하께서 교묘하게 서포트하셨다.
그래, 오늘 그녀들의 승리는 주로 피네 양의 활약에 의한 것처럼 생각된다.
아니, 정확히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보이도록 전하께서 힘쓰신 것이겠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대회가 끝난 후 학생들의 피네 양을 보는 눈이 명확히 변했다.
지금까지 어딘가 그녀를 업신여기는 일이 많았던 눈들이 완전히 바뀌어서 호의, 흥미, 경의, 동경, 그런 종류의 것들로.
분명, 그것이야말로 지크발트 전하께서 노리는 것이었겠지.
피네 양이 어려운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 실력을 모두에게 보인다면 그것이 개선되어 갈 것은 당연하니까.
입학 후부터 그녀에 대해 신경쓰시던 전하께서 그 도움을 맡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냉정한 내가 생각하는 한 편, 두 사람이 서로의 건투를 칭찬하고 우승을 기뻐하며 웃는 모습을 본 순간, 【좋지 않은 감정】이 날뛰려 했다.
【어째서 나를 선택해주지 않는 거야?】
【이렇게까지 한심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나는 당신에게 외면받고 있는 거야?】
【저 아이는 어째서, 언제나 나의 빛을 빼앗는 거야?】
「약혼자가 있는 몸으로 약혼자 이외의 여성을 파트너로 삼으시다니, 경멸합니다. 피네 양이 곤란해 해서 그랬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발이 먼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뭐라고 말해버렸을까.
그가 내 등을 받쳐주지 않았다면, 분명 서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슬퍼. 분해괴로워질투나괘씸해】
그런 감정이 그 후로 계속 계속 이 가슴에서 날뛰고 있다.
【굴욕에는 복수를! 불의에는 제재를! 배신에는 복수를!】 그런 【목소리】가,
【목소리】가
머리가 아프다. 줄곧, 계속.
봄부터 계속, 깊게 잠드는 날이 줄어들었다.
시합 종료 후, 나는 두통 탓에 상당히 안색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상당히 위태로운 기색이라도 내보여 버린 것일까.
나는 곧바로, 억지로 발에게 안긴 채 퇴장 당해버렸다.
그 순간에는 대단히 화가 났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크발트 전하는, 단 한순간, 어딘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신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 분명 기분 탓이겠지.
그 분께서, 사람 앞에서 감정을, 그것도 악감정을 보이는 일 따위 없다. 하지만, 만약에, 혹시라도 기분 탓이 아니라고 한다면.
내가 약혼자 이외의 이성과 파트너를 짜고 급기야 몸을 밀착해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먼저 한 것은 그 쪽이고, 우리들은 남매 같은 것이고, 무엇보다 발은 나를 돌봐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야말로 약혼자에 대해 성실하다고 말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건 아닌가 하고, 그렇게 생각해버리신 것일까.
만약 오늘 일이, 전하가 피네 양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할 근거가 되어버렸다고 한다면,
괴롭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아아, 아아, 【이제 차라리, 모든 것을 전부 부숴 버린다면, 이 고통도 끝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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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죄송합니다.
리젤로테의 수기가 너무 괴로워서, 저로서는 더 이상 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쓴 부분과 플롯을 공개하오니, '아~아. 그런 설정이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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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일)
오늘 마르슈너 공작부인의 차 모임에 초대되어 우연히, 아니, 그것을 가장한 거겠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르슈너 공작영식과 둘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원래부터 그 집안 사람들은 모두 귀족답게 완곡한 말을 사용하신다. 게다가 너무나 엉뚱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이것이 공작영식의 진의인지 어떤지 모호한 부분도 있지만......
아무래도 마르슈너 공작영식은, 실무를 행하는 왕과 신의 목소리를 듣는 예언자를 따로 세워야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듯 하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있는 타국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뭐 이건 오늘 나온 각 나라의 과자로 인해 나온 말이지만. 하지만 그것과 유리아나 전하의 건강상태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나는 왕비가 되어야 할 존재라는 칭찬, 그런 화제와 나란히 나오면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괜찮은 기분이 든다.
지크발트 전하와 유리아나 전하를 각각 왕과 예언자로 삼는다.
그 체제가 확립되면 분명 혼란은 적겠지. 나도 분명 왕비가 될 것이다.
그걸 목표로 하면 된다고 유도당한 것이겠지.
왕가로부터의 혼약해소의 타진 자체가 그것에 이의를 뜻하는 것이라고 파악해서, 그걸 물고 늘어지려고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예언자의 경우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그렇다면, 왕은 무엇을 근거로 누구에게 어떻게 해서 인정 받으라는 말인가.
현재 왕의 자식이라는 혈통을 그 정당성의 근거라고 한다면, 당시 왕의 직계 자손들이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방계 왕족이 왕위를 계승해왔던 이때까지의 우리 나라 역사를 무엇이라 할 것인가.
유리아나 전하와 지크발트 전하는 그런대로 양호한 사촌관계이시지만, 각자의 후계는 누가 잇게 되지? 지금 세대가 원만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싸움의 불씨가 되는 것은 아닌가?
애초에 마르슈너 공작가야 말로 2세대 전에 왕태자였지만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왕이 되지 못한 인물이 일으킨 공작가인데 말이다.
왕과 예언자를 나눈다고 결정되면, 마르슈너 공작가야 말로 정당한 왕가라고 고발한 뒤 혁명이라도 일으킬 생각인 것은 아닐까.
마르슈너 공작영식은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지크발트 전하로부터 무엇이든 빼앗으려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시, 그렇게 된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순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면, 그 사람은 분명 나에게 돌아올 거야. 나만의 그 사람으로 돌아와 줄 거야.】
그런 식의 너무나 악마적이고 감미로운 울림의 【목소리】가, 하늘의 계시처럼 나에게 내려왔다.
예언자 역할도 못하고 왕으로서도 인정받지 못하신 다면, 지크발트 전하께서는 공작 가문을 일으키실 가능성이 높다.
한번 결정적으로 패배한 후라면, 설령 내가 공작부인이 된다 해도 왕위 찬탈 따위 할 수 없다고 다들 생각하겠지. 내가 마르슈너 공작 가문에 협력했던 과거가 있다면 그것을 묵인해줄 가능성은 높다.
혹은 싸움을 피하기 위해 지크발트 전하께서 어딘가의 데릴사위가 되셔서 작위를 얻는 길을 바라신다면, 리펜슈탈 후작 자리가 괜찮지 않을까.
이런.
이런 내 멋대로인 천한 생각,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죄가 된다.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도.
오늘 일에 대해서는 아버지께도, 왕가에게도 보고하지는 않았다.
왕가에 대한 반대 의견이 명확하지는 않은 의혹 단계라 해도, 보고를 올려서 경계를 촉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왕가에 충실한 가신으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행동이다.
그래도, 그렇다 해도, 아무리 해도.
【그 사람이, 내가 있는 곳까지 떨어져 주면 좋겠어】라는, 그런 【소망】을, 부정하지 못해서.
애초에 공작영식은 명확한 말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공작영식도 나도,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학원생이고, 그저 허담이나 공상을 이야기하는 것쯤은 아직 용서받을 수 있는 입장이니 아니야. 이런 건 기만이야. 나 자신이 너무나 추악해서 토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그거면 돼】라고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나는, 【집어 삼켜질 듯, 지배 받을 듯, 저항을 포기하고 싶어지게 된다. 목소리에 집어 삼켜진다는 것은, 분명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 듯 심히 편안해지는 마음이 될 것 같다고 예감하고 있다. 이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쳐 오랜만에 편안히 잠들 수 있을 듯한 기분이】 안돼.
그 분은, 지크발트 전하는, 나의 빛.
닿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손에 넣고 싶다는 것 따위 바라지 않는다.
그 분의 빛을 상하게 하는 일 따위 용서받을 수 없다. 용서하지 않는다.
정신차려라, 리젤로테 리펜슈탈.
마음을 강하게, 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7/12 (금)(주:이 부분은 플롯 그대로입니다)
・6주년 기념으로 쓴 SS「나의 약혼자는, 실은 츤데레에 귀여워」의 뒤집어진 이야기.
「리젤로테의 수기를 보고 느낀 대로라면, 리제땅은 모두와 시끌벅쩍 하는 걸 동경하는 모양이고! 리제땅도 지금 있는 공략대상도 다 같이 가면 되는 거야!」 (역주 : 코바야시의 대사. 피네가 발두르와 둘이서만 가면 코카트리스에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지크발트를 유도함)
「모처럼의 과외 수업에 친구들과 사이좋게 행동하고 있는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쯤의 시간대.
다음 주부터, 왕립마도학원은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그것을 위해 우리 학원생들은 오늘 학교 뒷산의 【대청소】를 행할 예정이다.
이 【대청소】란, 청소라고는 칭하지만 보통의 청소활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다니는 학원 뒤쪽에 위치한 산, 그 곳에 숨어든 무수한 몬스터를 우리 학원생 전원이 힘을 합쳐 사냥하는 것을 칭하는 것이다.
“모처럼의 과외 수업에 친구들과 사이좋게 행동하고 있는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분함도 있어 피네에게 승부를 걸었지만, 피네는 바질리스크를 쓰러뜨리고 리젤로테는 패배를 인정한다.
인망으로 이긴 그녀.
왕비에 어울리는 것은 한 사람으로서 지닌 능력이 높은 자신이 아니라, 모두에게 사랑받고 주변 사람들의 협력을 얻는 그녀 쪽이겠지.
7/19 (금)
오늘은 나의 생일. 학기말이기도 해서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도 여느 때와 달리 나란히 별채로 돌아오시고 발도 한 달음에 와주어서, 자택에서 조촐한 축하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동생들로부터도 편지와 예쁘장한 선물이 도착해서, 정말 기뻐서,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리펜슈탈 영지가 그립다.
오늘은 가족과 평온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렇기에 역시 요 근래의 나는 이상했다고 느낀다.
여름 방학 중에는 가능한 왕도에서 떨어져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교류하고 있는 가문에서도 축하 선물이 도착하고, 지크발트 전하께서는 티아라를 내려주셨다.
이 정도의 물건이라면 하루 이틀 만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분명 이전부터 준비해주신 선물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약혼 해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 타이밍에 이거라니 참으로 비꼬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지크발트 왕태자 전하께서는 학원을 졸업하신 후 성년을 맞은 왕족으로서 공무가 늘어나겠지. 나도 전하의 파트너로서 격식 높은 자리에 전하를 모시고 따라갈 때에는 티아라가 필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티아라라니, 일반적인 후작 가문의 딸에게는 과분한 물건이다.
내가 이것을 착용할 기회가 앞으로 있을까. 있다고 한들, 그 때 내 곁에 서있는 분은 지크발트 전하이실까.
그런 소극적인 생각만 하게 되어버리는 자신이 싫어진다.
부디, 부디 내가 이것을 착용하고 지크발트 전하의 곁에 서는 미래가 찾아오기를. 그리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신께 기도했다.
8월
・어떻게든 질질 끌어왔지만 약혼해소가 결정되었다. (한 줄 정도로 처리)
・세 여동생이 와글와글 법석을 부리며 자신을 데리고 돌아다닌다. 격려해주려는 것일까.
・옆 영지에 나타난 도적단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아 거절한다.(츤리제 본편에서는 리젤로테가 리본 재료비를 구하기 위해 쓰러뜨린 도적단임)
발이 '차라리 네가 여후작이라도 되면 좋겠다'라고 말해와서, 지크발트 전하의 부하가 되는 거라면 그것도 좋은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한 달동안 피네와 만나지 않음 & 고대의 마녀가 가까운 곳인 왕도에 없었기 때문에 점점 긍정적이고 냉정한 느낌으로)
・여동생과 발의 서투른 위로 덕분인지,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진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직전, 어떻게든 회복하고자 8월 첫머리 약혼해소 당일에 있던 일을 되돌아본다.
아버지와 티아나님은 계속 말려주셨지만, 국왕 폐하의 강한 요망.
왕가로서 가능한 만큼 보상을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일국의 왕이 머리를 숙이기까지 함.
마지막으로 지크발트와 둘이서 이야기를 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말함.
마지막이라고 말한 시점에서 폐하의 요망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해도.
지크발트로부터 「너는, 한심한 나를 싫어하고 있겠지.」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18세가 되어버린 내가 단지 첫 번째 왕자일 뿐인데도 왕태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리젤로테가 약혼자였던 덕분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어. 감사도 하고 있지.」
「하지만, 이제는 그냥 첫째 왕자가 되고 싶어.」
「신께서 내가 왕에 걸맞지 않다고 하신다면, 이 입장을 고집할 생각 따위는 없어.」
같은 말을 피곤한 기색으로 말해와서, 약혼의 해소를 승낙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조금 마음이 놓인 듯한 지크로부터 「나는 그리 좋은 약혼자가 아니었지. 너에겐 미움받아 왔을지도 모르지만, 나(와타시)는... 나(보쿠)는...... 너의 왕자님이 되고 싶었어. 잘 있어 리젤로테, 나의 첫사랑. 지금까지 고마웠어.」
리젤로테는 「전하는 저의 왕자님이에요」도, 「저야말로 당신이 첫 사랑이에요」도, 「아니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도 이제와서는 말하지 못했다. 곤란하게 만들 뿐이니까.
하지만, 레나의 꽃은 떼지 않는다.
지크발트 전하는 반드시 신의 목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물론 약혼을 되돌릴 것이라고 폐하께서는 말씀하셨다.
서류상으로는 약혼자가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기분만큼은 약혼자.
만약 다시 약혼자가 된다면 그 때에는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9월
・신학기 시작
지크발트가 「리젤로테 양, 피네」라고 불러서 충격을 받는다.
(여름방학 동안 피네는 성에서 메이드 일을 하고 있었기에(여름방학 때 지크발트를 선택하면 나오는 이벤트)(다른 공략대상자의 경우 여행이나 모험을 하게 됨), 지크발트 입장에서는 그저 그 때의 버릇이 나와서 피네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너무나 안색이 안 좋아보여서 피네가 회복마법을 씀 → 두통(고대의 마녀와 상당히 일체화한 듯한 느낌)
나는 이제, 저분이 경칭을 생략하시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그 아이와 나란히 계시는 전하의 모습을 자주 본다.
내 약혼자가 아니게 되어서인지, 중책에서 벗어나서인지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
・피네가 진지한 노력으로 얻은 성과(8월에 리젤로테가 토벌하지 않았던 도적단이 규모를 키운 까닭에 피해가 늘어나서 나라의 주도로 토벌함. 피네는 치료마법사로서 참가하고, 전투 방면에서도 대활약)를,
그렇게 갑자기 규모가 커질리가 없다는 둥, 이번에는 누구를 홀렸냐는 둥 사람들 앞에서 트집을 잡으며 피네를 몰아붙이지만,
4월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누구도 편이 되어주지 않고 차가운 시선만 받는다.
「리젤로테 양 답지 않다」고 지크발트에게 말을 듣자
나 답다는 것이 뭐였지?
미래의 왕비답기 위해 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지 못하게 된 뒤에는?
하지만 내가 살아온 방식은 전부 당신을 위해서였는데, 지크발트 전하의 약혼자가 아닌 나 따위, 이제 어떻게 숨을 쉬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10월
・나 자신도 이제 모르겠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생각부터 시작해서 다섯 살때부터의 꿈인 「저는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그런 꿈을 계속, 계속, ......당신을 만난 그 때부터, 계속 바라왔어요」에 관한 첫 사랑을 한 날에 대한 회상. (역주 : 리젤로테와 지크발트가 고백하는 장면)
계속, 계속 꿈꿔온 것이다.
이제 와서, 지크발트 전하의 약혼자가 아닌 나 따위가, 내 빛과 꿈을 뒤쫓는 것 조차 용서받지 못한 나 따위가 어떻게 해야 될 지를 알리도 없다.
아아, 【목소리】가 시끄럽다.
【나는 그저, 당신과 있고 싶었어】
【당신만 있다면.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는데】
【이 세계가 다시, 나와 당신만 있게 된다면】
【방해되는 것은, 전부, 전부, 부서져버려라】
(여기서부터 명확하게 수기에 쓰인 【】가 늘어난다)
・마르슈너 공작가로부터 약혼을 타진
(리젤로테는 왕비에 걸맞은 사람이기 때문)
(마르슈너는 왕가에 반역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것도 이젠 어찌되든 상관없어보이는 느낌)
11월
・무도회의 준비. 각 공략 대상자로부터 선물을 받는 피네.
지크발트가 피네에게 보낸 것은 드레스였다.
이후 용서할 수 없다는 둥 빼았겼다는 둥 【】만 잔뜩 나오며 마녀와 동조가 마무리 된 듯한 느낌으로 끝난다.
???
그 손으로 그 아이를 만지는 것 따위, 그 목소리로 그 아이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것 따위, 그 웃는 얼굴을 그 아이에게 향하는 것 따위, 절대로 용서 하지 않아. 용서 못 해.
그러나, 그 사람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내가 사랑한 그 사람은, 이제, 어디에도 없겠지.
아아, 아아,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세계따위 멸망해버리는 게 나아.】
Q. 이 세계선의 리제땅에게 구원은 없나요?
A. 없습니다.
리젤로테가 불쌍하다고 느끼셨나요? 행복해지기를 바라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애니메이션과 소설을 추천해드립니다.
만화가 제일 좋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막판에 연재종료가 되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