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만 형제살해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 왕위 계승을 확보하기 위해 일어난 관행 중 하나로, 새로운 술탄이 즉위할 때 형제들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관행이었다. 이 관행은 주로 왕위 계승 분쟁을 방지하고 내부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장자 상속제와 달리 튀르크족 전통대로 배틀로얄에 가까운 "능력주의적 계승 체계"를 채택했는데
이로 인해 술탄의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 초기에는 반란과 내전이 빈번했다. 1402년과 1413년 사이의 공위 시대가 대표적이었다.
이 계승 방식 때문에 오스만 이전에도 여러 튀르크 제국들이 분열로 망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정된것이 1451년에 즉위한 "정복제" 메흐메트 2세가 도입한 "정복자의 법", 이른바 형제살해 허용법이다. 본인도 즉위할때 이복동생을 죽였다고 한다.
제위 후반에 율법학자들을 협박해서에게 허락을 받아 제정했다는 이 법은 "왕위를 둘러싼 분쟁은 제국에 해악이다. 따라서 새로운 술탄은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 형제들을 제거할 권리가 있다"는 명분 아래 형제살해를 정당화했다.
메흐메트 2세의 아들 바예지드 2세는 동생 젬과 경쟁했는데 젬이 유럽으로 도망가서 교황청에게 좋은 볼모가 된 사례 이후 진짜 관행으로 굳어졌다.

주로 교살이나 독살로 이루어졌는데
대표적 사례로 1566년 즉위한 셀림 2세는 즉위 후 경쟁자였던 동생 바예지드와 그 아들들을 처형했고

1595년 즉위한 메흐메트 3세는 최고기록으로 무려 19명이나 되는 형제들을 죽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동생들은 너무 어려서 형제살해의 관습조차 알지 못한 채 왕위에 오른 형을 해맑은 모습으로 축하했는데, 메흐메트 3세는 이때 슬픔으로 억장이 무너져서 고개를 돌린채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전부는 아니지만 무려 60여명의 왕자들이 형제나 삼촌, 아버지 등에 의해 알라 곁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어느 오스트리아 대사에 의하면 "[오스만] 황제의 아들이라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왕위에 오르면 다른 사람들은 죽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황제의 동생이 살아 있으면 군대의 요구는 끝이 없다. 황제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신이시여 당신의 형제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는데, 이는 그를 즉위시키려는 그들의 의지를 나타낸다."
이 관행은 체제 안정에는 실제로 어느정도 성공적이었지만, 외국은 물론이고 당대 오스만 제국 내에서도 끔찍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여론이 나빠지고 왕자가 남아나지 않자 아흐메트 1세가 1617년 즉위할때 동생 무스타파를 살해하지 않고 격리시킨 것을 시작으로 연장자 상속제로 바뀌며 사실상 폐지되어갔으며
살해 대신 별궁인 카페스(황금 새장)에 가두어 평생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완화되었다. 이 제도 또한 19세기에 폐지된다.

이 엽기적인 관습은 오스만 제국을 "냉혈한 권력 투쟁의 공간"으로 각인시키는 상징으로 남겼으며.
국가를 위해 왕족조차 희생하는, 권력 유지를 위한 폭력의 합리화라는 오스만 제국의 흥망성쇠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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