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의 전황이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최악으로 불리하게 돌아가던 1741년 말~1742년 초,
이제 그녀의 영토를 케이크처럼 쉽게 나눠먹는 것만 남았다고 기세등등해진, 프로이센과 바이에른을 비롯한 반합스 연합군 측에서는 급기야 마리아 테레지아를 노골적으로 성희롱하는 다양한 야짤들을 만들어 온 유럽에 뿌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바이에른의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프로이센 국왕과 작센 선제후가 마리아 테레지아 옆에서 그녀의 연회복을 가위로 잘라내고, 그녀의 뒤에서는 바이에른 선제후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위요구자, 카를 알브레히트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뜯어내는 조각이 새겨진 메달을 찍어내서 뿌려기 시작했고
이것도 모자라 급기야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슴가, 다리, 허벅지가 노출된 "벌거벗은 여왕님" 누드화가 그려져 전 유럽에 퍼져나갔다.
물론 이런 알페스 야짤들을 접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격노했지만, 감자대왕에게 합스부르크군이 학대파 앞의 참피마냥 일가실각당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그녀에게 이런 성희롱을 막을 현실적인 방법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이런 섹드립 뇌절은 결과적으로 역효과만 불렀는데, 이 꼴을 본 당시 유럽의 귀부인들이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오히려 감정이입을 하게 되어 십시일반으로 그녀를 돕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1500여 명에 달하는 귀부인들이 각기 금화 30기니씩 모금하여 4만 5천 기니의 성금을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전했다.
그 후에도 영국에서는 마리아 테레지아를 지원하려는 여성들의 운동이 계속되어, 특히 팔순의 말버러 공작부인은 4만 파운드의 거액을 내놓기도 했다.
-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에서

(IP보기클릭)221.159.***.***
(IP보기클릭)18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