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용해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가격은 언제나와 똑같은 것이다!”
산해경의 연단방. 이국적인 약초의 향이 가득한 그곳을 늘 지키는 야쿠시 사야가 활달하게 웃으며 약재를 내민다.
“고맙습니다. 야쿠시 씨.”
그 약재를 받아드는 것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누군가.
“매번 말하는 거지만, 복용량과 용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함부로 다른 약과 함께 먹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사야는 대가로 받아든 돈의 액수를 즐겁게 확인하며 형식적인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네, 걱정 마세요. 피로회복 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일어서는 누군가. 사야는 구태여 더 캐묻지 않는다. 그녀 자신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 잘못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이 약재와 혼용되어 유의미한 악영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생산 및 유통이 금지된 극히 희소한 금지약물 몇 종 뿐이니까.
“그럼 잘 가는 것이다! 다음 거래일에 차질 없도록 미리 약재 마련해둘테니 또 오라는 것이다!”
사야에게 손을 흔들고 연단방 바깥으로 나온 누군가는, 후드를 한층 더 깊게 눌러쓰고 인적 없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불결하기 그지없는 뒷골목에서도 가장 허름한 문 앞에 당도해서는 문을 세 번, 잠시 후 네 번, 그리고 일곱 번 두드린다.
-끼이익
문이 비명을 지르며 힘겹게 열리고, 그 너머에 선 험상궂은 문지기가 말없이 고갯짓을 한다. 문지기의 안내에 따라 어두운 복도로 들어서서 벽으로 위장된 비밀 문을 열어젖힌다.
“아, 오랜만이야. 고객님.”
연단방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위험한 향기가 훅 풍겨와 콧잔등이 움찔하며 찡그려진다. 향기의 근원인 [오욕의 미후], 신타니 카이는 나른하게 감긴 눈으로 빙긋 웃으며 고객을 반갑게 맞이할 뿐이었다. 고객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기침하며 카이의 건너편에 앉았다.
“이번에도 똑같은 거지? 여기, 준비해뒀어.”
카이가 봉투 하나를 건네며 장죽(長竹)을 한모금 빨아들였다가 내쉰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한층 더 위험한 향기가 풍겨온다.
“...신타니 씨. 이번 약재는 양이 조금 적은 것 같습니다만.”
고객은 봉투의 크기가 평소보다 명백히 작음을 확인하고 불만스레 말했다.
“아- 미안. 요즘 현룡문의 단속이 심해졌거든. 그것도 겨우 모은거야.”
“치잇.”
고객의 불평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카이. 항의의 표시로 혀를 차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뭐, 됐습니다. 다음번 거래는 언제 가능하죠?”
“으음… 3주 정도 후려나. 그때쯤이면 거래할 만큼 모을 수 있을 것 같네.”
“3주인가요…. 알겠습니다.”
여기서 더 항의해봐야 달라질 것이 없음을 깨달은 고객은 대금을 건네고 약봉투를 향해 손을 뻗는다. 허나 카이는 왜인지 약봉투를 담뱃대로 잡아당겨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다.
“...뭐 하시는 거죠?”
“아니,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말야. 매번 이런 위험한 약재를 사서 어디에 쓰는거야?
자칫 잘못 복용하면 극독이 될 수도 있는 재료인데.”
능글맞은 미소를 흘리며 묻는 카이.
“그것에 대해 묻지 않는게 거래 조건 아니었나요?”
고객은 적의를 숨기려는 노력조차 않으며 받아친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말야. 나도 판매자로서 내가 파는 것들이 대강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아야…”
-철컥.
그 대답으로 돌아온 것은 이마를 향해 겨눠진 총구였다. 당장이라도 발사될 듯 방아쇠가 반쯤 당겨진 상태로.
“이 자식!”
카이의 호위들 역시 위협적으로 무기를 꺼내든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고객의 총구는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워워, 진정해. 농담이야, 농담. 친근함의 표시로 농담 한 번 해본거라고? 여기, 약 가져가.”
카이가 킬킬 웃으며 담뱃대로 약봉투를 밀어낸다. 고객은 망설임없이 봉투를 낚아챈 뒤 발걸음을 돌렸다.
“아, 참고로 다음번 거래부터는 대금 15% 인상되니까 참고해. 리스크가 너무 커져서 그 정도는 받지 않으면 손해거든.”
“제대로 준비해 두기나 하세요.”
그 짧은 대화를 끝으로, 방에는 다시금 침묵이 맴돌았다. 카이는 고객이 빠져나간 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또다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흐흐. 무섭기도 하셔라, 우리 고객님.”
희뿌연 연기로 가득한 방 안. 카이의 광기어린 웃음소리만이 메아리친다.
————————
붉은겨울 연방학원의 가장 호화로운 건물.
그리고 그 건물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방.
그 방 한가운데의 천개 달린 침대 위.
“...헉!”
그 침대 가운데에서, 백발의 학생 하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하아, 하아….”
붉은겨울의 학생회장, 렌카와 체리노.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그만 체구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깨어나고서도 한참 동안 가만히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다. 연신 눈을 깜빡이면서, 거친 숨을 진정시키면서.
-지끈
머리가 지끈댄다. 자신이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침실의 한 가운데임에도, 온몸이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당장 도망쳐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토모에? 토모에… 어디 있나?”
영문을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덜덜 떨던 체리노가 처음으로 찾은 것은 토모에였다. 숱한 쿠데타와 혼란 속에서도 늘상 자신을 보좌하던 충성스러운 부관, 사시로 토모에.
토모에만 있다면 괜찮아.
토모에라면 어떻게든 해줄거야.
그렇게 되뇌며 토모에를 찾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다.
왜일까. 토모에는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가 닿는 곳에 있어주었는데. 왜 지금은 와주지 않는걸까?
“...아윽!”
지끈거림이 한층 더 심해진다. 숨이 다시 가빠지고, 눈물이 한두방울 흘러내리더니 이내 굵은 줄기를 이룬다.
혼란스럽다.
두렵다.
증오스럽다.
이런저런 감정이 뒤섞여 휘몰아친다.
하지만 이 감정의 이유도, 그것이 향하는 방향도 알 수 없다.
“토모에, 토모에, 토모에….”
머리를 감싸쥔 채 몸을 웅크린 체리노가 흐느끼며 연신 토모에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가 어서 이 감정을 진정시켜주었으면 좋겠다. 이 이유 모를 동요를 잠재워주었으면 좋겠다.
-지끈.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찾아온 지끈거림.
“...윽!”
그 지끈거림이, 최악의 고통과 함께 머릿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케묵은 기억 하나를 떠오르게 한다.
-토모…에….
-네에. 맞아요. 토모에랍니다.
당신의 이름은 뭐라고 했죠?
-체리노…. 렌카와 체리노.
붉은겨울 연방학원의 위대한 학생회장, 체리노….
-네에. 맞아요. 당신은 체리노랍니다.
이 붉은겨울 연방학원의 가장 위대한 존재, 렌카와 체리노!
-꼭… 기억하세요?
“끄으으…윽. 으학!”
체리노의 팔다리가 경련한다. 눈물과 침이 통제를 벗어나 질질 흘러내린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가득하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난 체리노가 아니야!
난 붉은겨울 연방학원 출신도 아니고, 학생회장 나부랭이는 더더욱 아니야!
체리노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목소리가 시끄럽게 메아리친다. 이제껏 그녀 자신조차도 잊고 있던 진실을 전하기 위해.
도망쳐.
본능이 그리 외친다. 온몸이 흠뻑 젖은 솜처럼 무겁지만, 한조각 남은 힘을 쥐어짜 팔로 스스로의 몸을 밀어낸다.
“흐, 흐으, 흐으, 흐으… 크윽!”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지끈대는 머리를 달래며, 침대 바깥으로 기어 내려가려다 그대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비틀대며 문으로 향한다. 단 한 순간이라도 빨리 도망쳐야 하니까. 몸의 아픔 따위야 나중에 돌봐도 충분하다.
“빠, 빨리, 빨리…! 그 여자가 오기 전에!”
육중한 문에 겨우 다다라 문고리를 비틀어 밖으로 빠져나가려 해보지만, 문은 야속하게도 꿈쩍하지 않는다.
“어이! 이봐! 거기 밖에 누구 없나! 당장 이 문을 열어! 지금 당장!”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고, 온몸으로 부딪히며 고래고래 소리친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하지만 다시 문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무슨 수를 써서든 빠져나가야 한다. 그 여자가 오기 전에, 반드시!
-삐이걱…
그 바람이 하늘에 닿은 걸까?
철옹성 같던 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어머나~ 체리노 짱…. 일찍 일어났네요?”
하지만 그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토모에.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한 명.
“앗… 아아….”
체리노가 주춤주춤 뒷걸음질친다
콧잔등을 따라 흘러내린 땀 한방울이 떨어지며 바닥에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왜 그러시나요? 언제나처럼 옷을 갈아입혀달라고 하지 않으시네요.
아침 간식을 달라고도 하지 않으시고요….”
토모에가 싱긋 웃으며 허리를 굽혀 체리노와 눈을 맞춘다. 체리노는 토모에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마주하고 그대로 굳고 말았다. 스스로가 뱀과 맞닥뜨린 쥐라도 된 기분이었다.
“오, 옷은… 내, 내가…”
무어라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 더듬더듬 입을 연다. 하지만 본능이 그녀의 말을 멈추게 했다. 어째서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금 자신의 본심을 토모에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가… 갈아입혀… 주게나. 토모에…. 그 다음에는 오전 간식도 내오고….”
체리노가 떨려오는 몸을 필사적으로 달래며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린다. 토모에는 여전히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체리노의 잠옷을 벗겨낸 뒤 정복으로 능숙하게 갈아입혀 주었다.
“그, 그럼… 시장하니 어서 간식을 가져와 주게나….”
체리노가 토모에를 채근한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탈출하기 위함이었다.
“후후, 시장하실 줄 알고 미리 챙겨왔지요.”
하지만 토모에는 그런 체리노의 애처로운 발버둥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아버린다. 체리노는 토모에의 가방에서 나온 간식 한무더기가 테이블에 세팅되는 것을 보고 깊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어떤가요, 오늘의 오전 간식은?”
“마… 맛있군. 언제나처럼… 하핫….”
토모에가 뚫어져라 쳐다보는 탓에 마치 모래를 씹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티를 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억지로 씹어삼킨다. 체리노는 자신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는 것도 알지 못한채 억지 웃음을 지었다.
“그, 그럼… 이제 슬슬 공무를 보도록 할까? 붉은겨울 연방학원의 학생들은, 이 위대한… 체리노 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니까 말야…! 하… 하하!”
괜찮아. 이만하면 그럴듯해.
스스로를 타이르듯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천만 다행히도 토모에는 체리노의 뒤를 쫓지 않는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누구라도 붙잡고 진실을 알려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것이다.
‘문까지 다섯 걸음… 넷, 셋, 둘….’
“저기, 체리노 짱?”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 배후에서 토모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체리노는 속으로 저주를 퍼부으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나, 토모에?”
“수염은 안 붙이시나요?”
여전히 웃고 있는 토모에의 손에 체리노의 수염이 들려있었다. 체리노는 순간 철렁이는 가슴을 다독이며 천천히 한걸음씩 토모에에게 다간다.
“앗… 아하하…. 내 정신 좀 보게. 내가 그만 깜빡… 했군.”
사지가 공포로 덜덜 떨려온다. 식은땀이 흘러내려 등허리가 축축하다. 악어의 아가리로 걸어들어간다 한들 이보다 두렵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견딘다. 견뎌야만 한다. 체리노는 평정을 가장하며 수염을 향해 손을 천천히 뻗는다.
-콰악
수염이 손에 닿는 순간, 토모에가 체리노의 팔목을 강하게 쥐었다.
“읏! 뭐, 뭔가? 토모에!”
“벌써 이렇게 키가 커버렸네요. 체리노 짱.”
토모에는 체리노의 팔목이 그녀의 정복으로부터 반 뼘 빠져나온 것을 보고 한탄했다. 피부를 파고드는 토모에의 손아귀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어떻게든 빼내려고 시도해 보아도, 그녀의 손가락은 땅속 깊이 뿌리박은 고목의 가지처럼 굳건했다.
“어, 어서 놓지 못하겠나?! 이런 행위는 자네라 해도 용납할 수 없네! 숙청당하고 싶은가?”
“평소라면 거들떠도 안봤을 당근 케이크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도 모두 드셨고요…. 이상하네요.
그리고 이 머리카락은 뭐죠? 갓 내린 눈발처럼 순백색이어야 할 체리노 짱의 머리칼이 더러워졌잖아요.
이런건… 귀엽지 않다구요. 체리노 짱.”
발버둥치며 토모에를 떼어놓으려 하는 체리노. 하지만 토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체리노의 백발 사이에 드문드문 숨겨진 갈색 머리카락을 보며 눈을 찌푸린다.
“노, 놓으라고… 하지 않았나! 아프단 말일세! 놔, 놓으라고! 이 정신병자야!”
“하아, 심지어 그런 귀엽지 않은 말투까지 쓰다니. 안되지요. 체리노쨩은 언제까지고 작고 귀엽지 않으면 안돼요.”
비로소 토모에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위선적인 웃음마저도 사라진 토모에의 얼굴은 체리노가 이제껏 봐 온 그 무엇보다도 무시무시했다.
“이… 이거 놔! 난 체리노가 아니야! 이 미치광이 자식! 대체 지금까지 내게 무슨…!”
-짜악!!
격앙한 체리노가 더욱 격렬히 몸부림친다. 하지만 그 대답으로 되돌아온 것은 온 힘을 담은 토모에의 따귀였다.
“크, 학…! 아아…아?”
머릿속에서 별이 번쩍인다. 입 전체가 불타는 듯 뜨겁다. 코와 입에서 흘러내린 피가 체리노의 새하얀 정복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체리노는 나동그라진 채 파들파들 떨며 토모에를 올려다보았다.
“틀렸어요. 당신은 체리노에요. 렌카와 체리노라고요.”
토모에가 다시금 미소지으며 체리노의 말을 정정한다. 반박 한 마디조차 받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웃기지 마! 난 체리노가 아니야! 대체 지금까지 몇년이나…! 몇년이나 날 농락한 거냐고! 당장 날 여기서 내보내!!”
체리노는 피를 사방으로 튀기며 악에 받혀 소리친다. 토모에의 발치에 피가 튀어 흰 구두에 핏방울이 점점이 박혔다.
“정말. 언제쯤 이해해 주실런지.”
토모에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하고는 품속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
체리노의 눈이 전에 없을 만큼 크게 뜨인다. 저 자그만 약병이 그 무엇보다도 위험하다는 것을, 그녀는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히, 히이…! 흐기익!”
꼴사나운 비명과 함께, 체리노가 바닥을 기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무슨 수를 써서든, 한시라도 빨리 토모에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어딜 그리도 급히 가시는 건가요? 체리노 짱.”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제발 그 병 저리 치우라고! 제발 부탁이니까…! 보내주세요, 보내달라고요!”
하지만 토모에는 단 다섯 걸음 만에 체리노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뒤집은 후 가슴팍을 눌러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고정하자, 체리노는 비명을 지르며 애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네에, 그럼요. 회장님이 해달라는 대로 해드려야죠. 이 약만 드시고 나면요.”
“우웁…! 웁!”
체리노의 눈물겨운 구걸이 무색하게도, 토모에는 가차없이 약병을 뒤집어 그 내용물을 체리노의 입에 쑤셔넣었다. 정체모를 액체 한모금, 한모금이 넘어갈 때마다 체리노의 발버둥이 잦아들고,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진다.
“회장님, 절 알아보시겠어요?”
체리노가 완전히 저항을 멈춘지 약 10분이 경과한 시점, 토모에가 체리노와 눈을 맞추며 묻는다.
“토모에….”
“네에. 맞아요. 토모에랍니다.”
힘없는 대답이 돌아오자, 토모에는 화색을 띠며 체리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신의 이름은 뭐라고 했죠?”
“체리노…. 렌카와 체리노.
붉은겨울 연방학원의 위대한 학생회장, 체리노….”
텅 빈 눈동자를 한 체리노가 기계적인 답을 내놓는다.
“네에. 맞아요. 당신은 체리노랍니다.
이 붉은겨울 연방학원의 가장 위대한 존재, 렌카와 체리노!”
토모에가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소매 바깥으로 삐져나온 체리노의 팔이 다시 소매 길이에 맞게 줄어든 것도, 드문드문 섞여 있던 갈색 머리카락이 다시 순백색으로 돌아온 것도 기뻤지만,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체리노가 제멋대로 구는 ‘귀여운’ 성격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약속이에요?”
토모에가 헝클어진 체리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조금… 피곤하군…. 오늘은 쉬어야겠어.
오후 간식 시간이 되면 깨워줘… 토모에.”
체리노는 그 요청을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토모에는 그런 체리노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뺨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반쯤 굳은 핏자국으로부터 비릿한 쇠 맛이 났으나, 토모에는 그마저도 사랑스러운지 자신의 혀로 핥아 말끔하게 닦아냈다.
“후후, 잘자요. 귀엽고 귀여운 나만의 체리노 짱.”
토모에는 어느새 깨끗해진 체리노의 자그만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그녀를 안아들어 침대 위에 뉘였다.
붉은겨울 연방학원의 가장 호화로운 건물.
그리고 그 건물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방.
그 방 한가운데의 천개 달린 침대 위.
곤히 잠든 체리노의 곁에 토모에가 있었다.
그녀의 백색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
체리노 저 잼민이가 어떻게 고3임?
> 토모에가 아무나 데려다 세뇌시킨거 아님?
고3이 어떻게 저 체격임?
> 토모에가 약먹여서 성장 억제한거아님?
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쓴 괴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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