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책 임무도 그렇고,
아란나라의 서사는 애당초
무슨 이유로 구성된 걸까?
오늘은 이 얘기를 해볼까 함.
심연에 침식된 바나라나가
다시금 생명을 되찾았고,
아란나라의 정체는 사실
바사라 나무의 씨앗임을 알아
수메르 우림의 식생과 윤회를
숲의 책 임무에서 볼 수 있었지.
직접 입은 숲의 사람,
아란나라들은 수메르에서
인간시대 이전의 원시 문화를
대표하는 존재들이었음.
그래서 숲의 책 임무 중에는
인간 문화를 모방하는 묘사가
퀘스트로도 나왔지.
남매 같은 가족 흉내도 내면서,
요리를 만들어 나눠 먹었고,
텃밭을 일구는 경우도 있었음.
기억을 동력 삼아 살아가는
아란나라들에게 저런 문화란
그저 취미생활에 불과했겠지만,
아란나라에게 저런 행태를
알려준 존재를 이미 알잖아?
우리가 찾는 남매의 다른 한 명,
일명 심연의 공주는 아란나라에게
'이별하여 찾는 중인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인간 세상을 알려준 셈.
즉, 가족에 대한 기억이 근간인 거지.
동물은 모두 그렇겠지만, 특히 인간처럼
갓 태어난 순간 거동도 못하는 존재는
가족이 처음 접하는 '기억되는 존재'니까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할 수 있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란나라를 두고 '기억'에 대해
많은 요소가 신비롭게 설정됐지.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잊히면
아예 시각적으로도 안 보이고,
동력으로 써먹은 기억을 소진하면
그 기억 자체를 완전히 잊어서
마치 낯선 사람마냥 굴기도 했음.
그럼, 우리 질문은 이것이지.
왜 하필 '기억'인 걸까?
이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수메르 곳곳에 박아두어
소재로 써먹은 걸까?
그건 바로 기억이
존재의 근간이기 때문임.
찬찬히 설명해볼게.
숲의 책 임무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간다르바 성곽에서의
마신임무 3장 1막을 마친 뒤,
수메르성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치게 되어 있잖아?
"세상이.. 날 잊어.."
위 대사를 기억 못하지는 않겠지?
룩카데바타의 진의가 밝혀지기 전,
수메르에서 처음 접한 '기억'의 주제는
바로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었음.
티바트의 기억에 대한 설명.)
즉, 간다르바 성곽에서 1막을 마치고,
수메르성에 가던 중에 라나를 만나서
숲의 책 임무를 그대로 완파한다고 하면,
수메르 마신임무 3장의 2막부터 5막은
그 뒤에야 접하는 구조인 셈이지.
그래서 망각에 대한 공포를 안 뒤,
숲이 모든 걸 기억한다는 서사를
먼저 접한 다음에야, 자신의 존재를
부디 잊어달라는 룩카데바타의
간절한 부탁을 접하는 구조였음.
"세상이 완전히 날 잊어주기를.."
수메르에서 마지막으로 접하는
'기억'에 대한 최후의 전언은
존재의 소멸마저도 수용하는
완전한 망각의 소망이었음.
우리는 지혜로운 룩카데바타로부터
개인의 존재 역시 잊혀도 괜찮다는,
따뜻하면서도 자비로운 말을 들었지.
비늘병을 치유한 병자도,
선량한 마음을 품는 것이 곧
지혜임을 깨우친 학술인도
이제 룩카데바타를 대신하여
그녀의 의지를 이어갈 것임.
때문에 룩카데바타의 존재 의의는
가르침을 남기는 역할을 수행한
초기불교 역사 속 석가모니의 제자
아난다를 대행하는 배역이었음.
수메르의 불교를 다루면서
위 내용을 이미 다룬 바 있는데,
모든 존재에게 '나의 존재'보다
그 흔적이 남긴 '삶의 의지'야말로
진정 의미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지.
모든 건 변한다는 무상을 믿어서,
'나'라는 존재 또한 그저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여김.
이를 각각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라 가르친다고.
여기서 제법무아는 잘 기억해두고..
자, 그럼 수메르 전체에서의
서사 배치를 되짚어볼까?
잊히는 것이 두렵다는 원초적 공포,
세상(숲)이 모두를 기억한다는 순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어머니의,
스스로의 존재를 지움에도 불구하고
망각조차 꺾지 못하는 은혜와 자비.
위 세가지가 수메르 우림의 주제였고,
이를 대비시키기 위해 배치된 게
바로 수메르 사막의 서사였음.
핵심이 된 월드임무는 누가 뭐래도
역시 제트와 연관된 임무였지?
지금은 모래만 휘날리는
적왕과 화신의 옛 영토에서,
영원불변만 따르는 족속들을 만나
함께하는 가족의 의미를 다뤘지.
적왕의 사막에서 만난 사마일은
죽음마저 초월한 세계로 넘어가,
불변하는 적왕의 영광을 이으려 했으나
현재까지는 사실상 실종 상태이고..
화신의 사막에서 타니트 부족은
바벨 대모를 필두로 옛 번영을
'영원의 오아시스'로부터 꿈꾸었지만
배신으로 점철된 비극만 남겼음.
그러나 마지막 지역은 또 달랐지.
세번째 사막 '모래가 에워싼 황야'는
페르시아 신화 속의 새 시무르그가
부파불교를 거쳐 성립한 대승불교의
창업자 나가르주나(नागार्जुनः, 용수)와
함께 심연의 마물에 맞선 곳이었음.
여기서 정말 특이하던 점은,
주인공인 소루쉬가 그토록 희생을
신격화에 가깝게 우러러 봤으나,
서사 끝나고 보니 희생은 없고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는 점.
결말이 너무 싱거웠지만,
아마 '운명'을 작위적으로 따져
임의의 평가를 매기지 말라는
교훈을 주려던 걸로 보임.
나히다가 마신임무를 거치며
타인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처럼,
소루쉬는 여행자와의 수행을 통해서
멋대로 운명을 특정하는 생각이
아주 허망한 짓임을 깨우쳤음.
인간 존재에 있어 운명이란
자신이 태어난 존재 의의를
실현하는 길이라 여기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심상에 매몰된다면
스스로를 제약시키는 우를 범함.
대표사례가 바로 스카라무슈였고,
신의 심장을 갖지 못한 상태로는
마치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가
완전히 잊히는 것처럼 굴고 있었음.
그래서 메인빌런으로 등장했으나
우리 눈에 너무나 비루해 보인 거지.
그는 자신의 추태를 견디지 못해
나중에는 직접 세계수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지우기까지 했고..
덕분에 악역임에도 그의 선택은
기억과 운명이라는 화두를
수메르 서사의 중심에 끌고 왔지.
어느 존재에게든 '잊힘'이란,
존재의 인정마저 부정당하는 일임.
여전히 존재한다고 한들,
기억에서 잊힌 뒤에는 결국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같은 의미에서 [기억과 망각]은
형이상학의 존재론에서도
아주 중요한 화두였음.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진리'는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라고 하며,
이는 사실 '망각'을 의미하는
저승의 강이자 여신, '레테(Λήθη)'에
부정사를 붙여 '망각하지 않음'을
의미한 단어에서 유래했음.
이데아론을 주장한 플라톤은
진리를 깨닫는 과정더러,
본디 타고난 [본질(이데아)]을
지금은 잠시 잊은 상태이지만
망각을 깨부숨으로써 상기하여
다시 떠올리는 과정이라고 했지.
(*이를 '상기론'이라 부름.)
잊고 있던 본질을 다시 떠올려
우리는 우주의 창조 원리부터,
변화의 근저에 놓인 인과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소리임.
ㅇㅇ..
[기억]은 곧 존재의 근간이며,
[망각]은 곧 존재의 소멸임.
좀 멀리 돌아왔지만,
이걸 수메르 우림의 서사에서
주축이던 브라만교와 불교에 대입해
존재론의 관점에서 해설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구성이 됨.
이렇게 표만 툭 던져 놓으면
댓글창에서 욕을 ㄷ지게 먹겠지?
일단 용어정리부터 가보자.
먼저, 에고이론과
번들이론이 보일 거임.
이 둘은 존재론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갈래지.
두 이론은 뇌과학 이론 중에서
자아의식의 존재를 탐구한 것으로,
먼저 에고이론은 자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으며,
당연하게도 번들이론은 반대로
자아라는 건 허상에 불과하고
사실은 정보의 집합일 뿐이라며
에고이론을 반박한 이론임.
음, 여기는 루리웹이니까
애니메이션으로 예를 들면,
공각기동대 극장판으로 나온
'Ghost in the Shell(1995)'이
기억에 따른 존재론을 다룸.
여기서 이런 대사가 나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많은 부품이 필요하듯이,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놀랍도록 많은 것이 필요해."
"타인과 구별하기 위한 얼굴,
의식하지 않는 목소리,
눈 뜰 때 응시하는 손,
어렸을 때의 기억, 미래에의 예감.."
"그뿐만이 아냐.
내 전뇌가 액세스할 수 있는
방대한 정보와 네트워크의 너비,
그것 전부가 내 일부이고,
나라는 의식 자체를 만들어 내.
그리고는 동시에 나를
어떤 한계에 계속 제약하지!"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삶에서 접하는 단편적 정보들이
기억으로 모여서 겹쳤을 때,
정보가 응집된 상황을 곡해하여
그게 곧 자신의 본질을 이룬다고
'착각'하게 마련이라는 것임.
쉽게 풀자면 '기억'을 과연
'나'라고 할 수 있겠냐는 소리지.
일단은 예시를 계속 보자.
위 짤의 아저씨는 작중 청소부인데
빌런에게 전자 두뇌를 해킹당해서
독신자임에도 가족이 있다고 믿어,
이혼한 아내의 뒤를 스스로가
빌런의 도움으로 캐는 중이라 여겼음.
ㅇㅇ, 빌런에게 이용당한 거였지.
사실은 외무성 직원에게 접근하여
외교적 테러를 구상 중인 범죄에
간접적으로 가담하는 중이었음.
청소부는 직원을 아내로 '착각'한 거고.

청소부는 결국 진상을 알게 되자
자신이 혼자라는 걸 알고는
심적으로 굉장히 괴로워했음.
즉, 간단한 정보 왜곡으로
존재 근간을 아예 뒤튼 거지.
이제 저 청소부는 '누가 된 걸까?'
10 년 넘게 혼자 사는 외로운 청소부?
남 모를 이유로 아내와 이혼했지만
화목한 가정을 지키려던 가장?
에고이론은 '나'라는 존재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이론이나,
기억 하나 바뀌는 것만으로
존재의 근간을 비틀리고 말았음.
그래서 '기억의 관점'으로는
에고이론이란 허상에 불과함.
애초에 '나'를 상정한 기억을
다른 기억으로 바꾸면 그만이니까.
반대로, 기억의 관점만을
극단적으로 포착하면서,
개인의 존재 근간은 죄다
정보의 집합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흔히 '번들 이론'이라 부름.
즉, 존재론 중 에고이론은
'나'를 '나라고 규정'하는 거고,
번들이론은 그딴 거 없다고
반박하는 존재론인 거지.
수메르의 1막의 주제가
'망각에의 공포'라 했던가?
지금 다시 생각하니 어때?
아직도 '잊히는 것'의 의미가
이전만큼 크게 보이시려나?
재미있게도 위 두 이론을
수메르에서 등장한 브라만교와
불교의 존재론에도 대입할 수 있음.
브라만교의 존재론은 범신론(汎神論)임.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도 하지.
이건 에고이론과 일맥상통함.
브라만교에서는 존재의 뿌리는
현실을 초월한 우주적 존재인
브라만(ब्राह्मण)이라고 봤음.
즉, 세상천지에 널린 존재는
각자가 브라만의 파편이라는 것.
때문에 온 세상에 신이 있다 하여
범신론이라고 하는 거지.
물론 '나'도 그 신 중 한 명이고.
(*애니미즘과는 또 다르니 주의.)
그리고 그 브라만이 환상을 거쳐
현실 세상에 구현된 실체가 바로
아트만(आत्मन्)이라고 하지.
상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현실의 나'는 육신을 빌린 것이며
득도한 뒤에는 '진정한 나'가 되어
다시 우주로 되돌아간다고 믿었음.
(이게 브라만교의 '윤회' 교리임.
불교의 윤회도 여기서 왔음.)
브라만과 아트만을 중국에서
각각 범(梵)과 아(我)로 번역했고,
'범과 아는 하나와 같다'는 의미에서
범아일여라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은 브라만을 잊은
아트만이 다시 브라만을 깨우치려면
명상을 해야 한다고 여겼지.
(플라톤의 상기론, 아직 기억하지?)
그리고 아란나라의 터전인
바나라나는 이 브라만교가
직접 구현된 공간이었음.
아란나라가 기억의 힘을 품고
이를 소진하여 바사라 나무가 되면,
그 지역 일대가 바나라나로 변하고
다시 거기서 아란나라들이 태어나지.
아란나라라는 씨앗 하나가
바나라나라는 작은 우주를
일구면서 '초월적 존재'가 된 셈.
이게 아란나라 세상의 윤회였음.
문제는 그 근간의 동력을
호요버스는 하필 '기억'으로
설정하고 있었다는 점이지.
그래서 불교의 존재론이 등장한 거임.
불교의 존재론적 교리는 바로
앞서 언급한 '제법무아'거든.
여기서 무아(無我)의 '아(我)'도
브라만교에서의 아트만인데,
불교는 이 아트만을 부정했음.
세상에 '나'라고 할 만한
존재는 없다고 가르치는데,
정말로 없다는 소리라기보다는
쉽게 허물어지기도 하니까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소리임.
그래서 불교의 제법무아는
번들이론에 기반하여
괴로움을 덜기 위한 교리로
'나'에게 집착을 갖지 말라고 함.
'기억'으로 맺힌 존재를
고정되고 불변하는 '나'로
오인하면 안 되니까.
이거 수메르에서도 봤는데,
뭔지 기억을 하려나?
바로 심연교단의 창시를 다룬
카리베르트의 중간장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았다고.
카리베르트는 겨우 깨어났더니
뒤바뀐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자식을 떠나보낸 클로타르는
존재 의의를 잃고 신앙에 매달렸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장면은..
지맥에 흐르던 500년 전을
'지금'의 시간대와 혼동했고,
여행자는 심연에 붙은 남매와
'나'의 존재까지 맞바꿨음.
저 거울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우린 여행자로 움직이는 줄 알았으나
거울에 맺힌 형상 따위로도
순식간에 존재감을 위기로 내몰렸음.
기억의 혼재가 자아마저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는데,
만일 여행자의 정신이 미약했다면
깨어나고 곧장 남매의 길을
본인도 답습하지 않았을까?
결국 수메르 우림의 서사 3단계는
존재의 근간을 뒤흔들리더라도
그 심상에 사로잡혀 괴로워 말고,
스스로의 뜻한 바를 끝까지
꿋꿋하게 밀어붙이라는 격려인 거지.
숲의 책 임무는 그 중에서도
브라만교의 존재론적 착각을
'기억'을 소재 삼아 방향을 틀어
다른 해답을 제시한 기점인 거고.
기억이 잊혀도 개인의 존재 의의가
아예 의미 없어지는 게 아니니,
그런 걱정 따위는 덜라는 소리임.
그렇기에 나온 대사가 바로
'운명이야말로 궁극의 지식이다'
-라는 아리송한 대사였음.
나히다가 이 말을 언급하자
룩카데바타도 정말 똑똑하다며
나히다에게 맞장구를 쳐줬지.
그 이유를 앞서 룩카데바타가
이런 식으로 설명해줬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는 해도
똑같은 모양의 가지를 뻗지 않을 테니,
어떤 존재든 아무리 똑같이 빚어도
서로 다른 운명을 살아가니까.
그리고 서로 다른 운명에서
서로 다른 앎을 실천하기에
운명마다 개별적인 지식이 축적되고,
정보가 쌓이고, 기억이 되는 셈임.
일단 나히다부터가
'모두를 사랑하는' 여정에서
'자신만 사랑하지 않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지.
다행히 마신임무에서 해결했지만..
알하이탐의 경우는 언어가
보편적인 구조를 품었다고 여기나,
정작 본인의 인생관은 다분히
개인주의적이며 실존주의적이지.
왜냐?
개인이 없으면 구조도 없고,
구조가 없으면 개인도 없으니까.
(이건 현대철학 얘기인데,
나중에 따로 게시글 쓸게..)
룸메이트 카베도 재밌음.
카베는 인생사가 굴곡진 편인데
그래서 허무주의에도 빠졌지.
허나 타인을 돕는 마음가짐으로써,
즉, 사랑을 베푸는 일이 역설적이게도
스스로의 자기존재감을 지탱하여
허무감을 타파할 수 있음을 몰랐고.
이런 식으로 삶을 살면서
세상을 통찰하여 배움을 거듭하고,
맹목에 의한 맹점을 메워가며
이들은 운명을 자아내고 있었음.
그렇지 못한 인물들이
수메르 서사에서 뭘 했는지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잖아?
그러므로 수메르의 [지혜]는
근본적인 '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가장 겸허한 [무지]로부터
운명을 출발시키는 관념이었지.
결국 숲이 모든 걸 기억하기에
우리는 불안에 떨 이유가 없고,
그저 서로의 존재를 떠받쳐주어
삶의 의지를 함께 품는 지혜인
불교의 혜업이 최종 결론이 될 수 있었음.
내가 전하려던 메세지를
제대로 전달했으려나 모르겠네..
할 말은 참 많은데, 정리가 안 돼.
너무 아리송한 내용 있거나
바꿨으면 하는 건 댓글로 써줘.ㅋㅋ
p.s. 혹시 내가 써놓은
다른 글들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이용하면 됨.
https://m.ruliweb.com/game/85342/read/23474
요건 각종 유래, 모티브 관련 글,
https://m.ruliweb.com/game/85342/read/27930
요건 이번 게시글 같은
각종 서사해설 글 모은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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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카데미아 원신학부 교수님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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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못하는 신이 인간한테 무슨 소용일지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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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대현자 아자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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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업뎃 후반대에 게임에 복귀해서 마신임무 이전에 아란나라 퀘를 먼저 했는데, 숲이 모든걸 기억할거란 그 말이 수메르를 전전하던 내나 항상 마음속에 자리잡고 날 지탱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음 글 잘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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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읽다가 바로 스크롤 내렸다 추천을 하기 위해서 이제다시 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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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하무주의 같은 느낌이네 그게 모범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방향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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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마신임무부터 사막까지 이어지는 월드임무들보다 아란나라들이랑 룰루랄라하는 숲의책이 더 재미있었어 그래서 마지막에 더 울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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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카데미아 원신학부 교수님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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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단말기 조작자로 알고 이씀. | 23.10.20 19:3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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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못하는 신이 인간한테 무슨 소용일지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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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하무주의 같은 느낌이네 그게 모범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방향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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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업뎃 후반대에 게임에 복귀해서 마신임무 이전에 아란나라 퀘를 먼저 했는데, 숲이 모든걸 기억할거란 그 말이 수메르를 전전하던 내나 항상 마음속에 자리잡고 날 지탱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음 글 잘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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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대현자 아자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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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0.20 20:1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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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마신임무부터 사막까지 이어지는 월드임무들보다 아란나라들이랑 룰루랄라하는 숲의책이 더 재미있었어 그래서 마지막에 더 울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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