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토 기숙사의 지하, 일반적인 지하층보다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으슥한 곳에는 작은 방 하나가 있다.
지하에 있는 방이라기에는 깔끔하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지만, 백색 등 하나만으로 조명을 밝혀놓은 곳이기에 특유의 어둡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가리진 못했다.
우마무스메들은 일반적으로 어둠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지하 깊은, 스산한 공간은 그녀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그 방 안에 앉아 있는 것은 우마무스메였다.
우마무스메도 트레이너도 모두가 잠든 야심한 새벽, 밤샘 기미가 걸릴 각오를 하더라도 이곳에 왔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표하는 일이다. 한 명은 익숙한 듯,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긴장되는 듯이 앉아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지만.
흑갈색 꼬리를 살랑거리고, 두 귀를 쫑긋쫑긋 세우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우마무스메는, 중앙 트레센 학원에서도 익히 잘 알려진 우마무스메였다.
그야 당연하리라. 중상으로는 일본 더비와 가을 텐노상 트로피의 소유자, 그랑프리로는 아리마 기념 2착의 빛나는 성적을 낸 우마무스메를 모른다면, 중앙 트레센 뿐만이 아니라 이 업계의 사람이나 우마무스메가 아닐 것이다.
그런 우마무스메가 왜 이런 지하 깊숙한 곳에, 백색 조명 하나를 벗 삼아 경찰서 조사실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책상 위에 턱을 괸 채로 꼬리를 살랑이고 있는가.
그 의문의 답은 그녀의 맞은편에서 우물쭈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다른 우마무스메가 대답하리라.
“저기, 저어…진짜인가요? 상담…그러니까, 확실한 솔루션을 제공해 준다는 소문이…….”
당근색의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렸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다. 후후, 웃으며 그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한다.
“그래요, 사일런스 스즈카 씨. 확실한…무엇보다 확실한 솔루션을 제공해 드린답니다.”
“믿어도…괜찮을까요?”
“그럼요, 당연하죠, 물론이죠. 저, 에이신 플래시랍니다.”
“에이신 씨…!”
에이신 플래시.
그 이름 여섯 글자가 가지는 의미는 그녀의 빛나는 G1 중상 트로피보다도 컸다.
중앙 트레센의 우마무스메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중등부와 고등부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하면, 한창 사춘기 소녀들이란 말이다.
많은 수의 우마무스메들이 그녀들의 담당 트레이너를 개처럼 ㅁㅁ…으려 하진 않지만, 그런 생각 한 번쯤은 했고, 혹은 담당 트레이너에게 대놓고 연심을 드러내며 다니는 부류도 존재한다.
물론, 담당 트레이너가 그것을 받아준다면야 좋은 일이겠지만, 대부분의 담당 트레이너들이 자기보다 훨씬 어린, 그것도 미성년인 우마무스메들의 마음을 받아 줄 리는 없었고, 까놓고 말해서 거절하면 다행이기라도 하지, 아예 모르거나 신경도 안 쓰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상식적으로 자기보다 열 살 가까이 소녀들이 담당 트레이너라는 이유만으로 좋아한다? 그런 형편 좋은 판타지 같은 일을 믿을 지능의 트레이너들이 중앙 트레센에 합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소녀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마음을 부딪치고 깨지고 상처받고 고통받고 가끔 설레다가도 한순간 처참하게 망가지는, 그런 애처로운 성욕…이 양념처럼 조금 첨가된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런 황량한 중앙 트레센의 세계에서, 담당 트레이너들과의 관계가 상사상애인 것을 넘어 이미 우마뾰이 전설까지 노래한 우마무스메가 몇 명 있는 것이다.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이 중앙 트레센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몇 명이란 바로 마루젠스키, 아그네스 타키온, 타이키 셔틀, 아이네스 후진, 그리고 에이신 플래시였다.
그런데 왜 하필 에이신 플래시가 사일런스 스즈카의 상담을 들어준다고 하는 것인가.
사실 에이신 플래시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업…이었지만, 부득이한 소거법으로 인하여 그녀가 이 작은 업을 지게 된 것이었다.
중앙 트레센의 우마무스메들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연애 상담을 누구에게 할까…하고 생각을 해 본다면, 마루젠스키는 아니다. 이 주책바가지 아가씨는 분명 언니다운 포용력과 포근함이 있지만, 나이에 맞게 주책이고 입이 싸다.
그렇다고 아이네스 후진에게 상담하자니, 그녀는 담당 트레이너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 및 집안을 살리기 위한 자금 모으기에 열중이다. 레이스로 번 상금도 모자라서 아르바이트하느라 바쁘니, 그녀에게 뭔가 시간을 내서 부탁하는 것은 미안하다.
그럼 아그네스 타키온에게 상담을 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미친 우마무스메 취급을 받을 것이 뻔하다. 그야 당연하다. 상담을 가장한 임상실험에 돌입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타이키 셔틀에게 상담을 하자니, 그녀의 아메리칸 스타일의 마인드와 간간이 튀어나오는 영어는 중앙 트레센의 우마무스메에게는 큰 장벽 중의 하나였다. 뭐, 그라스 원더나 엘 콘도르 파사 같은 귀국 자녀들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어느 쪽이건 연애 상담이 필요한 쪽은 아니다.
그러니까 남은 선택지는 에이신 플래시뿐이다. 단정하고 수려한 용모와 더불어 착하고 성실한 성격에 말도 잘 들어주고 입도 무거우면서 포용력 있는 우마무스메가 아닌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릿토 기숙사의 지하, 가장 구석진 공간에 에이신 플래시가 운영하는 연애상담소가 신설되었고, 이따금 에이신 플래시가 마음 내킬 때 상담 의뢰를 받아 이렇게 상담에 응하는 것이다.
참고로 지하 깊숙한 공간에서 상담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사생활 보호를 위한 비밀 엄수 때문에 그렇다곤 하지만, 실제로는 트레이너들과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설계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 방을 찾아서 사용하라고 한 이는 후지 키세키, 릿토 기숙사 사감이었다.
“그런데 사일런스 스즈카 씨는 이미 담당 트레이너 씨와 연애 중이신 것 아닌가요?”
에이신 플래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일런스 스즈카는 우소데쇼, 하고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게, 트레이너 씨가 너무 초식계…라서요.”
“아…….”
에이신 플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사일런스 스즈카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또한 어느 쪽이냐 굳이 따지자면 초식계일 테니까.
물론 에이신 플래시에 비해 상대적 초식계라는 것은 에이신 플래시 본인 빼고 다 아는 사실이지만, 본인에게는 어쨌건 초식계인 것이다.
“들어보세요. 지난 주말에는 같이 신사 데이트도 하고, 손잡고 산책도 하고, 저녁도 같이 외식했는데 글쎄, 성 같은 호텔에 가려고 만반의 준비까지 다 했는데 글쎄, 차 몰고 중앙 트레센으로 가더라니까요? 기숙사 통금 늦으면 안 된다고.”
“…….”
“차에서 눈빛으로 그렇게 신호를 보내도 하하 웃으며 다른 소리만 하고…레이스 이야기하는 건 저도 좋아하니까 괜찮은데, ‘일찍 들어가서 쉬어야지’라니, 분위기 파악 좀 했으면 좋겠어요.”
“으음….”
“그리고 기숙사 통금은 당연히 외박계 내고 갔어요! 얼마나 준비를…승부 속옷이랑 스타킹이랑 이것저것 준비해 갔는데…거짓말, 거짓말같죠?”
“하아…….”
서러운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는 사일런스 스즈카를 보며, 에이신 플래시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귀찮거나 해서가 아니라, 사일런스 스즈카의 담당 트레이너의 행보에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1년 6개월을 사귀었는데 우마뾰이는커녕 키스도 못 해 봤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이런 상황, 우소데쇼….”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차치하고서라도 에이신 플래시는 그녀의 일을 해야 한다. 사일런스 스즈카의 서러움에는 공감하지만, 공감만 하고 있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혹시, 트레이너 씨가 그…어려우시다거나…아, 오해는 말아주세요. 스즈카 씨의 트레이너분이 마냥 젊기만 한 나이는 아니시니, 혹시나 해서요.”
“처음에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한번은 제가 옷 갈아입는 걸 트레이너 씨가 보신 적이 있으시거든요. 그때 트레이너 씨가 화장실을 잠시 다녀오시더니 강한 당근 주스 냄새와 함께 돌아오신 적이 있어요.”
“아~그런 문제는 아니네요.”
가장 큰 고비는 넘긴 것이다. 신체적, 혹은 다른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뾰이에 어려움이 있는 남성이었더라면 정말로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사일런스 스즈카의 트레이너는 충분히 혈기 왕성한 히토미미 수컷이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다. 사일런스 스즈카와 상호 합의 하의 연애를 하는 상황이니만큼 마음이 없다거나 하는 것은 아닐 테니, 이것밖에 없다. 에이신 플래시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에헴, 어깨를 쭉 폈다.
“절제, 네요.”
“절제…라고요?”
“스즈카 씨의 트레이너분은 워낙 모범생 같고 착실한 분이니만큼 절제하고 계신 거로 생각해요.”
“도대체 뭘 절제를, 하아…….”
사일런스 스즈카의 한숨은 당연했다. 그녀 또한 바보가 아니기에, 에이신 플래시가 말하는 절제가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바보 트레이너 씨, 자신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연인으로서 성실하고 건전하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로 쓸데없고 바보 같은 마음가짐이다.
“뭐, 제 트레이너 씨도 처음에는 그러셨으니까 스즈카 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요.”
“저는 어떻게 해야…….”
에이신 플래시는 히죽 웃었다. 이런 성실하고 레이스에 모든 것을 바친 것만 같은 선두코패스…아니, 이차원의 도망자 또한 한 마리의 우마무스메라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오싹하게 했다.
모든 우마무스메들이 사랑(뾰이)를 쟁취할 때까지 힘내는 것이 자신의 기쁨이니까. 특히 룸메이트. 특히 기숙사에서 방을 공유하는 어떤 우마무스메. 특히 어디의 우마돌. 특히 스마트라는 이름에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연애 허접 더트마가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 기쁨이니까.
물론 이 새끼…아니, 이 룸메이트 친구가 여기 온다면 반쯤 죽일 생각이다. 진심으로. 그동안의 조언을 조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웃음과 분노를 가까스로 참으며 에이신 플래시는 입을 열었다.
“저는 요리 만들어 드릴게요, 라고 트레이너 씨를 중앙 트레센 외부로 불러놓고 곧바로 뾰이 해버렸지만요, 스즈카 씨는 곧바로 그러긴 어려우실 테니까요.”
“그, 그건…확실히 조금, 트레이너 씨에게 실례니까요.”
“그런 성실함, 연애 중에는 어디 접어서 보관이라도 해 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게 말랑한 생각으로 히토미미 수컷을 사로잡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큿…….”
“사랑은 전쟁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지는 거니까요. 승리와 패배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에요…!”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며 불끈, 주먹을 쥐는 에이신 플래시의 박력은 과연 진격밖에 모르는 대독일 아리아 혈통의 기상 그 자체였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박수를 짝짝짝 치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저처럼 두려움 없이 뾰이로의 돌격을 할 수는 없으니,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사용하여 차근차근히 진행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에이신 씨…! 부디 저에게 가르침을……!”
에이신 플래시의 카리스마에 감명받은 사일런스 스즈카는 반짝반짝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우마무스메를 그냥 내버려 둘 에이신 플래시가 아니었다.
“스즈카 씨는 아직 키스도 하지 못하셨다고 하셨죠.”
“큿…….”
“그렇네요. 키스부터 해 볼까요.”
너무나 당연한 말에 사일런스 스즈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어떻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물러요―!!”
“꺄악?!”
책상을 쾅! 치며 에이신 플래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일런스 스즈카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에이신 플래시의 거대한 88이 흔들리는 것을 보자 반사적으로 ‘큿……’하고 죽일 듯이 그것을 노려보았다.
“스즈카 씨?”
“핫…?! 아, 듣고 있어요.”
“아무튼, 지금 어떻게 분위기를 만드냐고 물어보셨나요?”
“그게, 역시 분위기라는 게 중요하니―”
하지만 사일런스 스즈카의 말에 에이신 플래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발전이 없는 우마무스메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런 우마무스메를 영광스러운 승리(뾰이)의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 에이신 플래시의 작은 사명이 아니겠는가.
“정말 물러요, 스즈카 씨. 분위기…? 그런 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스킬입니다.”
“엣.”
“히토미미 수컷을 사로잡는 키스의 스킬, 그것이 절제를 깨부수는 데에는 더 중요한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엣?”
“다시 말해서, 입 안을 녹여버릴 정도로 키스를 잘하면, 히토미미 수컷의 위용 넘치는 포신, 그러니까 당근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듭니다!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에요!”
“에엑―?!”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된 사일런스 스즈카는 연신 괴성을 내지르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에이신 플래시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래서 연애 허접들이란.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히토미미 수컷이 초식계라면 우마무스메가 육식계가 되면 문제없는 겁니다! 그러니 키스를 하지 못했다면, 첫 키스를 깊고 진한 키스로 트레이너분의 입안 구석구석을 녹여버리면 한방에 절제 박살! 그리고 그대로 진격! 진격! 진격!”
“일리가……있어요!”
사일런스 스즈카는 감화되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신 플래시에게는 아직 그녀에게 전수해야 할 팁,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첫 키스를 ‘너무 잘’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트레이너분을 위해 연습을 많이 했더라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더라도, 진짜 잘할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첫’키스에서는 안 돼요, 안 돼.”
“어째서인가요?”
“히토미미 수컷의 본능은 백이면 백 상대방이 자신의 ‘처음’이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처음인데 너무 잘하면, 그 마음에 의심의 싹이 자라나기 시작한답니다. 이 녀석 왜 이렇게 잘하지? 왜 이렇게 익숙한 것 같지? 혹시 내가 처음이 아닌가? 같은 생각을 한다고요. 그런 생각이 들면…게임 끝입니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으니까요.”
“그, 그렇군요.”
“그러니까 ‘너무’ 잘하지만 마세요. 트레이너분의 입안 구석구석을 녹일 듯 끈적이면서도, 어딘가 미묘할 정도로 어색하게,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하지만 부끄러워하면서. 마지막으로 촉촉한 눈으로 살짝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표정을 지으면……함락입니다. 완벽한 거예요.”
에이신 플래시의 설명은 완벽했지만, 유일한 단점이 하나 있었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단점을 콕 집어서 물어본다.
“그런데…어떻게 그런 키스를 하나요?”
“좋은 지적이에요.”
에이신 플래시는 웃으며 책상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런 질문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꺼낸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자에 앉힌 뒤, 사일런스 스즈카를 보았다.
“지금부터 시범을 보여드릴 테니 참고해 주세요.”
“네? 엣, 에엣…아앗…!?”
에이신 플래시는 의자에 앉힌 그것의 입에 붙여져 있는 테이프를 지이익 떼어냈다. 하지만 눈가리개는 빼지 않았다. 손을 묶어둔 수갑도 풀지 않았다. 다리는…어차피 도망가지 못할 테니까 그냥 뒀다.
그리고 그것, 그러니까 에이신 플래시 본인의 담당 트레이너 씨를 살살 흔들어 깨운다. 분명 자고 있었을 테지만 에이신 플래시가 갑자기 깨우는 것에 익숙한 듯이, 그는 으음…하고 잠을 깨더니 이내 한숨부터 푹 쉬었다.
“야…에이신, 또 밤중에 쳐들어와서 이게 뭐 하는 거니.”
그의 말에 에이신 플래시는 손가락을 코앞에 가져다 대며 쉿, 하고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침묵의 제스쳐를 보냈다. 조용히 하라는, 그의 일상을 부수지 말라는 뜻이리라.
……이미 부서진 것 같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사일런스 스즈카는 생각했다.
“응…뭘까요, 트레이너 씨.”
“잠 깨니 손은 묶여있고 눈은 가려져 있고 침대도 아니네? 에휴…그래, 하루 이틀이냐. 기숙사는 어떻게 나온 거야? 릿토 기숙사는 사감이 왜 있냐, 아이고 말세다 말세야.”
“후후, 그럴 리 없잖아요, 트레이너 씨. 이건 트레이너 씨의 꿈인걸요.”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한데.”
“꿈이 아니라면 당신의 애마가 새벽에 기숙사에서 빠져나와서 트레이너 씨의 기숙사 문을 따고 트레이너 씨를 묶고 눈을 가리고 의자에 앉혀두는 데까지 아무에게도 안 들키고, 트레이너 씨가 잠에서 안 깨는 게…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그, 그런가…아? 확실히 그건 불가능…하지.”
“그러니까 꿈이에요.”
사실은 사감인 후지 키세키의 묵인하에 벌어진 일이고, 뭐…중앙 트레센의 거의 모든 우마무스메들은 공범이나 다름없으니 서로서로 눈감아주는 것이 없잖아 있는 것뿐이지만, 그런 정보를 트레이너 씨는 모르시니까. 에이신 플래시는 후후, 작게 웃었다.
“꿈…인가, 그래, 꿈…이구나. 꿈이야…꿈.”
“네에, 꿈이에요. 그러니까 트레이너 씨…잔뜩, 기분 좋은 일…하자구요?”
“으아악 아니야! 꿈에서까지 힘들어지고 싶지 않아!”
“…….”
허공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반항 아닌 반항을 하는 트레이너 씨를, 에이신 플래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았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으면서 엄살이 심하다, 우리 트레이너 씨는.
게다가 지금은 손님, 그러니까 사일런스 스즈카도 보고 있다는 것이다. 트레이너 씨와의 관계가 어긋나 있다고 생각하게 둘 수는 없다. 솔직히, 트레이너 씨를 쥐어짜는 우마무스메라고 소문나고 싶지 않다.
어디까지나 에이신 플래시는 청순하고 가련…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여성스러운 우마무스메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이신 플래시는, 자꾸만 이상한 헛소리를 하려 드는 트레이너 씨의 입을 막아버렸다. 사일런스 스즈카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켜며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막았다.
“음…후음…으읍, 음…츗…츄읏, 읏…♡”
“……!!”
츄와압, 하는 강렬한 소리와 트레이너 씨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일 분 정도 지속되다가, 에이신 플래시가 푸하~, 하고 입을 뗌과 동시에 힘이 다했는지 바닥에 축 늘어졌다. 그런 트레이너 씨의 귓가에 에이신 플래시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트레이너 씨♪”
아마 듣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일런스 스즈카도 그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레이너 씨는 ㅂㅈ 못하시겠지만, 에이신 플래시는 눈가를 촉촉하게 적신 채 살짝 뺨을 붉히며 고개를 살그머니 돌렸다. 완벽한 퐉스무스메의 자세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그 모습에 감격, 그리고 또 감격하여 연신 소리가 나지 않는 손뼉을 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완벽해요.”
“대단…대단해요, 에이신 씨…!”
“요는, 체리 꼭지 묶기 같은 것으로 키스 연습을 열심히 하시고, 표정 관리 연습도 열심히 하셔서, 이 타이밍이다 싶을 때 그냥 저지르세요. 허락보단 용서가 쉬워요.”
그럴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사일런스 스즈카의 사고는 이미 에이신 플래시를 뾰이 고수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라면 뭐든 할 기세였다.
“네……!”
그래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대독일의 정신을 받아들인다. 남은 것은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독점력…아니, 불퇴전의 마음과 결행뿐이다.
“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트레이너 씨의 귀…아니, 선두의 경치를 반드시 맛보도록 하겠어요…!”
“바로 그 자세에요, 스즈카 씨.”
상담자의 얼굴이 한층 밝아진 것을 본 에이신 플래시는 오랜만에 맛보는 거대한 만족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으로 또 한 커플이 우마뾰이 전설을 노래하리라. 에이신 플래시의 기쁨과 환희다.
그리고 호흡이 짧아 다시 잠들어버린 그녀의 트레이너 씨를 들쳐메고, 사일런스 스즈카와 함께 방을 나섰다.
한 명은 트레이너 기숙사로.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결행을 위해 체리 꼭지 묶는 것부터 연습하러.
중앙 트레센의 새벽은 고요했고,
두 우마무스메는 밤샘 기미를 얻었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일런스 스즈카는 담당 트레이너에게 진하고 깊은 키스에 성공하게 되었고, 성 같은 호텔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에이신 플래시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에이신 플래시의 트레이너 씨는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남성 영양제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중앙 트레센의 어느 하루였다.
=================
자, 잠자는 트레이너를 보쌈해 오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트레이너 씨? 헛소리 말고 빨리 벗어요.
히…히익…!
하지만 거부 못하니까 순애죠?
(IP보기클릭)121.143.***.***
연애 허접들을 본 타이키(상상도)
(IP보기클릭)223.38.***.***
생각해보면... 다른 트레이너들은 자기 담당들의 야밤일탈(?)을 사감들이 막아줄거라 기대하지만... .... 후지 키세키의 트레이너는....? 구원이 없다.
(IP보기클릭)220.73.***.***
1회차면 시리즈란 거죠? 그렇죠?
(IP보기클릭)175.195.***.***
에이신과 트레이너의 공개키스 ㅗㅜㅑ
(IP보기클릭)121.143.***.***
연애 허접들을 본 타이키(상상도)
(IP보기클릭)59.12.***.***
(IP보기클릭)175.195.***.***
에이신과 트레이너의 공개키스 ㅗㅜㅑ
(IP보기클릭)180.224.***.***
(IP보기클릭)223.38.***.***
생각해보면... 다른 트레이너들은 자기 담당들의 야밤일탈(?)을 사감들이 막아줄거라 기대하지만... .... 후지 키세키의 트레이너는....? 구원이 없다.
(IP보기클릭)121.164.***.***
(IP보기클릭)220.73.***.***
1회차면 시리즈란 거죠? 그렇죠?
(IP보기클릭)118.235.***.***
(IP보기클릭)223.38.***.***